175. 이벤트: 괴수의 무덤-7
- 와, 저게 말이 되냐?”
- ㅅㅂ 내가 뭘 본 거임?
- 와 ㅋㅋㅋㅋㅋㅋ.
진원이 악마들을 자비 없이 죽여대는 영상은 그대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송출되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실시간으로 채팅이 올라오며, 진원의 엄청난 힘에 심취했다.
- 아니, 이거 5인용 이벤트 아님? 김진원 혼자 다 해 먹는데?
- 아이언5 vs 그랜드마스터1 수준.
- 악마 쪽에 현상 수배범 이연우 있네ㅋㅋ. 참교육가자.
- 와… 악마 새끼들 중에도 트롤러가 있네. 트롤러 다 뒤졌으면.
인간 하나가 악마들을 자비 없이 학살하는 장면은, 그동안 몬스터에게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었다.
“이제 다 끝났군. 아직도 힘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한국의 플레이어가 이렇게 강하다니…….”
“김진원… 어떻게든 우리 쪽의 소속으로 만들고 싶군.”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아는 세계 랭커들도, 이벤트 영상을 보며 진원의 강력한 힘에 경악했다.
“나랑 할 때는 봐줬다는 거냐? 김진원.”
세계 랭크 2위의 브랜든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인상을 구기면서도,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악마 놈들은 상당히 강하다. 겉으로 봐도 알 수 있어.”
그리고 분명히, 김진원의 눈동자가 서서히 풀리며 몸이 허물어지려는 장면이 한번 잡혔었다.
“분명히 악마 놈의 능력이겠지.”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원상태로 돌아온 진원과 그를 무시하던 악마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도대체 그 한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브랜든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영상 분석을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장면을 돌려보았다.
* * *
“말도… 말도 안 됩니다…….”
이연우는 별 힘도 못 써보고 죽은 바싸고의 시체를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바싸고는 자신이 불러낸 악마 중 가장 강력한 놈이었다.
“서열 3위의 악마가 저렇게 허무하게…….”
이연우는 저 멀리서 기어오는 괴수 한 마리를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 놈들이 이렇게 쓸모없을 줄이야…….’
김진원 쪽에서 괴수를 세 마리 소환하는 동안, 이쪽은 단 한 마리도 불러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악마들을 협동성이 1도 없어서, 전부 자기 멋대로 움직였다.
그것 때문에 팀 레벨 손해부터, 정수의 손해까지.
‘멍청한 악마들을 커버하기 위해 무리해서 악마들을 불러냈는데!’
이연우는 천천히 다가오는 진원을 보며,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커헉! 케헥!”
그리고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연달아 악마를 소환한 반동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면 난 글렀다. 추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연우는 이를 악물며, 억지로 상반신을 일으켜 진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에 널브러진 다른 악마들의 시체.
분명히 직업 스킬은 잠겨있을 텐데도, 저렇게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다니.
‘놀랍도록 차분한 눈이다.’
혹시 저놈이 진정한 악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할 말은 없냐?”
진원은 이연우의 앞에서 망치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대천사 길드.
자신의 여동생을 납치하도록 김수환에게 사주한 장본인이 눈앞에 있다.
이놈만은 편하게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크. 크하하… 졌습니다. 당신에게 죽기 전에, 제가 아는 정보들을 털어놓겠습니다.”
이연우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뭐가 그리 웃긴지 큰 소리로 웃어댔다.
“김진원. 당신 하나 때문에, 나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죠. 악마화 프로젝트, 대규모 정화. 그리고 내가 열심히 몸집을 부풀린 대천사 길드. 모두 다 말입니다.”
“그게 다 뭔지 불어.”
진원은 꺼림칙한 이연우의 말에, 놈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대답을 요구했다.
“크흐흐… 저에게 그럴 시간은 없는 것 같으니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연우는 몰려오는 고통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중국의 플레이어 왕 첸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왕 첸한테 당한 게 얼만데. 죽어도 곱게 죽지는 않겠습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자신을 노예 취급한 왕 첸.
놈에게는 쌓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
“허억! 이벤트가 끝나고 돌아가면, 왕 첸을 처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연우는 가쁜 숨을 내쉬며, 대규모 정화의 계획과 함께 실행한 수많은 실험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모든 정보를 진원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그걸 믿을 것 같냐?”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의 판단입니다.”
“목숨 구걸이라도 하는 거냐?”
“그럴 리가요. 어차피 당신이 죽이지 않아도, 저는 죽겠지만요.”
진원은 이연우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내용들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만약 저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왕 첸.
그 새끼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크… 크흐흐… 저는 어릴 때부터… 신을…….”
“말이 많다.”
빠각!
“끄아아아아!”
진원이 이연우의 팔다리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어차피 곧 이벤트는 끝나고, 놈은 죽는다.
하지만 놈을 편하게 보내주기는 싫었다.
“네가 말한 정보가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너한테 쌓인 건 별개지.”
빠각!
“으아아아아아!”
네 개의 팔다리가 모두 부러진 이연우.
그는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끝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진원을 응시했다.
“크, 크하하! 역시 저도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하찮은 인간이었습니다!”
“뭐라는 거냐, 사이비 새끼가. 이벤트가 끝나면 어떻게 뒤지나 한번 보자.”
어느새 핵의 근처까지 다가와 둥글게 몸을 마는 괴수.
이대로 괴수가 핵을 부수면, 이벤트는 끝난다.
정수를 모아주던 일행들에게는 이제 이벤트가 끝날 것 같으니, 기지에서 대기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키에에에!”
괴수가 핵을 박살 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
띠링.
[플레이어 이벤트, 괴수의 무덤이 종료됩니다.]
[플레이어 김진원 팀이 우승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기지가 부서지자, 메시지가 떠오르며 이벤트의 끝을 알렸다.
[기여도 1위: 김진원 -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인간.]
[기여도 2위: 고재원 - 좀 쓸만한 놈.]
[기여도 3위: 최은식 - 쓸만한 고기 방패.]
[기여도 4위: 이서훈 - 맵 좀 읽을 줄 아는 애.]
[기여도 5위: 신혜진 - 버스 탈 줄 아는 애.]
띠링. 띠링.
신혜진: 야! 내가 기여도 5위라고? 버스 탈 줄 아는 애는 또 뭔데! 내가 밥으로 보이냐?
고재원: 흠흠. 이번에도 제자가 1등이구나. 이번에는 내가 1등을 한번 노려봤는데, 아쉽구나.
신혜진이 성난 듯이 채팅을 보내오던 도중,
“안녕? 또 만났네!”
점령전 이벤트에서 만났던 천사 인형이, 다시 진원의 눈앞에 나타났다.
“너 이 새끼…….”
“아! 맞다. 내가 깜빡했네. 우승자 쪽을 돌려보내야지.”
녀석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일행들을 원래 있던 장소로 돌려보냈다.
“저, 저건 또 무슨…….”
“어? 너 살아 있었구나? 아! 맞다. 내가 죽여야 하는 거였지?”
천사 인형은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이연우에게 다가가, 이마를 톡 건드렸다.
주르르르.
그러자 이연우의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시작해, 아예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최대한 안 아프게 보냈어! 내가 이래 보여도 꽤 친절하거든.”
놈은 진원의 머리 위에서 둥글게 날아다니며, 1등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 정말 대단한데? 3번의 이벤트에서 모두 같은 녀석이 1등을 한 적은 처음이야!”
“크, 크윽! 이 새끼! 이거 안 풀어?”
저번처럼, 어느새 움직임이 봉인된 자신의 몸.
어떻게든 기를 쓰며 힘을 넣어보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지, 진원!”
“주군!”
그리고 그것은 붉은 늑대와 메시아도 마찬가지.
“그렇게 노려보아도 하나도 안 무섭거든?”
천사 인형은 말을 마치고 선택지 3개를 진원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무려! 10분이나 기다려 줄 수 있어! 어때? 원래는 1분인데 너에게만 10배 이벤트야!”
“망할 새끼가…….”
“넌 정말 입이 험한 인간이구나.”
진원은 레벨과 스펙을 올렸음에도, 저 우스꽝스러운 천사 앞에서 무력한 모습에 짜증이 솟구쳤다.
‘일단, 일단 참자.’
그리고 기다리자.
이번 이벤트가 끝나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선택지로 시선을 옮겼다.
[기여도 1위 플레이어 특별 보상]
에픽 장비 변환권
2. 이벤트 전용 스킬 1개.
3. 보너스 라이프 +1
지난번과 거의 비슷한 보상들.
달라진 점이 있다면, 2번의 내용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이벤트 전용 스킬은 어떤 것을 준다는 거지?”
“좋아! 연속 3번이나 1등했으니, 알려줄게! 현재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스킬을 제공해! 그리고 어떤 스킬을 받게 될지는 나도 몰라!”
천사 인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설명해 주었다.
‘이벤트 전용 스킬이라…….’
에픽 장비야 많을수록 좋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으니까.
하지만 놈의 설명을 듣고 나니, 2번 쪽으로 눈길이 갔다.
‘무작위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번에는 스킬을 얻어보자.’
진원은 잠시의 고민 후, 스킬을 받겠다고 대답했다.
“넌 도박사의 기질이 있구나! 마음에 드는 인간이야! 2번! 이벤트 전용 스킬!”
인형이 말과 함께 팔을 휘적거리자, 진원의 눈앞에서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띠링.
[특수 스킬, 에이션트 붐이 추가되었습니다!]
“우와! 너 정말 대단한데? 그거 엄청 좋은 스킬이야!”
천사 인형이 대견하다는 듯 진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
상당히 기분이 더러웠지만, 지금은 참기로 했다.
[에이션트 붐]
플레이어 김진원 전용 스킬.
고대의 폭발력이 담긴 구를 생성합니다.
상당한 폭발 범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범위 안의 모든 적은 40퍼센트의 HP가 감소합니다. (고정피해)
(소모 값: 없음)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새롭게 보상으로 얻은 스킬의 성능이 굉장했기 때문이었다.
‘소모 값이 없는데, 이 정도 성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사기 스킬이다.’
거기다가 대상은 모든 적들.
그 말은, 아군으로 인식된 대상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신이 가진 스킬, 마구: 블랙홀도 아군은 끌어들이지 않았으니까.
“축하, 축하! 내 생각에, 그게 이벤트 스킬 중에서 3번째로 좋은 걸 거야.”
“…이거보다 더 사기인 스킬이 2개나 있다고?”
“그래! 그러니까 다음에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 봐! 운이 좋으면 얻을 수 있겠지?”
다음이라는 말이 나오자, 진원의 인상이 사납게 변했다.
“다음? 너, 도대체 이딴 의미 없는 이벤트를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 그리고 왜 한국에서만 여는 거냐?”
“그건 말 못 하지롱!”
천사 인형은 혀를 빼죽 내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못생긴 놈이, 저런 표정을 지으니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또 잊을 뻔했네.”
놈은 진원의 등 뒤로 포탈을 열며, 추가보상을 주겠다며 품을 뒤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