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이벤트: 괴수의 무덤-4
“저건……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 문명호는, 눈을 크게 깜빡이며 다른 보좌관들을 쳐다보았다.
“허공에 갑자기 화, 화면 같은 것이 송출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보좌관들 역시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했는지 어쩔줄 몰라했다.
‘누구냐.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냐!’
Full HD로 출력된 것 같은 화질.
저것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누가 내보내는 건지.
그리고 어떤 원리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김진원과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나옵니다!”
잠시 지지직거리던 화면에 불이 들어오며, 김진원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되었다.
“어?”
“어, 야! 저기 봐라!”
“하늘에 빔 프로젝터라도 쏘나?”
길을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나, 회사에서 업무를 보던 직장인들, 그리고 학생들까지.
“김진원이다!”
“저거 플레이어 이벤트다! 생중계라고!”
“실화냐? 갑자기 뭐야?”
전부 하던 일을 멈추고, 뭔가에 홀린 듯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허어…… 이 현상은 세계적으로 전부 나타났나 보군.”
SNS를 보면, 세계의 주요 수도에서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미친 듯이 업로드되는 게시글들.
얼마 지나지 않아, SNS의 사이트들이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대, 대통령님!”
“이번엔 또 뭔가?”
가뜩이나 혼란한 와중에, 보좌관들이 허공을 보라며 자신을 재촉했다.
“악마?”
방금 전까지 김진원과 그 일행들을 나타내 주던 화면이, 지금은 악마들을 클로즈 업 하고 있었다.
“저건 이연우! 저 새끼가 왜 저기 있는 거냐!”
문명호는 악마들 사이에 서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 성을 냈다.
놈의 직업은 악마술사.
거기다 네 마리의 악마를 끼고 김진원의 적으로 나타났다.
‘설마 놈이 무슨 짓을 꾸민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갔다.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우리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거지?’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익명1: 와 미쳤네. ㅋㅋㅋㅋ 나 방금 치킨 시킴.
익명2: 전설의 연합 경기보다 이게 훨씬 재밌을 듯. 근데 치킨집 배달 밀렸네 엌ㅋㅋㅋㅋ
익명3: 와, 이게 플레이어 이벤트라고? 근데 왜 김진원은 연속 3번 출전이냐? 존나 치사한 거 아님? 개꿀빠네.
익명4: 응 니가 가면 1회차에 벌써 죽고 없어.
“쯧. 한심한 놈들.”
문명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업로드되는 글을 보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조치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군. 그래도 되도록 화면 근처에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주게.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도 꼭 하고!”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은 우스울 정도의 크기.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최대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보좌관들도 덩달아 일어나 급하게 자리를 비웠다.
* * *
“자, 일단 다들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기지로 귀환한 진원은 일행들에게 상점 특제 포션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어? 한번 마시면 HP가 2천이나 찬다고? 이거 도대체 어디서 얻었어?”
“이, 이거 엄청 비싸지 않을까요? 진짜 받아도 되나요, 형?”
신혜진과 최은식은 기가 막힌 얼굴로 진원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퀘스트해서 얻은 거야. 비싼 거 맞으니까 위급할 때 꼭 마시고, 이거도 하나씩 받아.”
혹시라도 상태 이상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 희석된 엘릭서까지 추가적으로 구매해 건네주었다.
‘이젠 남은 골드도 얼마 없네.’
악마들을 모조리 죽이고 골드를 수급하겠다고 다짐하던 사이,
쿵!
악마가 있는 기지 쪽에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충격과 마력이 전해져 왔다.
“그럼 다시 바로 가죠. 저쪽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레벨은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쉬고 있는 틈은 없었다.
잠시 정비를 하는 동안,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경험치를 수급해 주고 있어 레벨의 격차는 더욱 졌지만.
‘뭔가 스킬이라도 쓴 건가. 어쨌든 방심할 수는 없겠는데.’
방금 느껴진 상당한 마력.
자신에 비하면야 낮은 수준이었지만, 직업 스킬이 잠겨 있는 상황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위쪽하고 중앙 쪽 탑은 적당히 밀어뒀으니, 이제 밑쪽으로 가죠.”
“그러자꾸나.”
“네, 형! 지금 우리 팀 레벨이 13, 적 쪽은 이제 9에요! 포탑을 하나씩 밀면서, 싸움꾼 각을 보면 될 것 같아요!”
이서훈이 맵을 훑어보며, 열정적으로 말해왔다.
‘최대한 레벨 차를 만들어 놓고, 괴수를 풀어서 한번에 몰아치는 것이 내 생각에 베스트다.’
팀 레벨이 차이가 날수록, 양 팀 간의 격차가 벌어진다.
현재 악마와의 레벨 차이는 4.
놈들과의 격차가 5 정도로 벌어졌을 때, 괴수를 소환하고 밀어붙이기로 했다.
“다들 밑 라인으로 달려요! 그리고 은식아! 너는 중앙 라인으로 가서 경험치만 먹어! 최대한 거리 유지해야 한다!”
“네, 형! 맡겨주세요!”
최은식은 자신감 있게 웃어 보이며, 곧바로 중앙 라인으로 달려 나갔다.
그동안 변수를 대비해 최대한 같이 붙어 다녔지만, 팀 레벨 10을 달성하고 차원문 스킬이 생겼다.
녀석이 위험해지면, 곧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일단 놈들한테 뭔가가 있는 것 같으니, 메시아는 우리 쪽으로 붙여놓자.’
초감각 능력을 가진 메시아라면, 은신 같은 까다로운 스킬을 잡아내 줄 것이다.
* * *
“이놈들 포기한 거 같은데? 왜 막으러 안 오는 거야?”
신혜진이 허물어지는 탑을 보며 이상하다고 말을 이었다.
“중앙하고 탑 쪽도 악마가 가만히 경험치만 먹는다고 하네. 안 막으면 우리야 좋지.”
밑 라인의 탑이 허무하게 공격당하는 사이, 악마들은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정 거리를 두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고 최은식과 붉은 늑대가 보고를 해왔다.
“이대로 안쪽까지 가서 탑 하나를 더 부수고, 괴수를 불러낸 뒤에 밀어 버리자.”
놈들의 기지 근처에 있는 탑.
저것 하나만 부숴 버리면, 팀 레벨 차이는 5로 벌어진다.
그에 딱 맞춰서 정수도 200개로 채워질 듯했다.
이대로 가면 순조롭게 이기겠다 생각한 순간,
“진원! 뒤로 빠져!”
메시아가 다급하게 소리쳐 왔고, 진원은 곧바로 일행들을 뒤로 물렸다.
“뒤로 물러나! 빨리!”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갑작스러운 진원의 행동에 일행들은 의문감을 느꼈지만, 허공을 확인하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쿠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면에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악마 하나가 착지했다.
흙먼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악마는 아몬.
이벤트가 시작되고 처음 보는 놈이었다.
“아까 중앙에서는 못 봤는데 그동안 숨어 있었냐?”
“내가 인간들 상대로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나?”
놈은 자신의 말에 코웃음 치며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상반신은 악마의 몸체에, 하반신은 말과 같은 모습.
마치 켄타우로스를 연상시켰다.
“다들 뒤로 물러나. 나 혼자…….”
“제자야. 저놈은 나한테 맡기고 탑을 부수거라.”
묠니르를 꺼내려던 진원의 팔을, 고재원이 붙잡았다.
놈의 이름색은 노란색.
자신에게 있어서 적당히 쉬운 상대라는 뜻.
“허허! 제자가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데 스승이 뒤에서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겠나!”
“그걸 사용하시게요?”
“그래. 저놈에게는 사용해야 할 것 같구나. 그래도 걱정 마라. 이번엔 쓰러지지 않을 터이니.”
고재원은 진원에게서 받은 포션들을 흔들어 보였다.
‘팀 레벨 차이도 나고, 스승님이라면 괜찮겠지.’
스승님이 저놈을 잡아두는 동안 탑 하나, 아니.
두 개까지도 밀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 서열 7위의 악마인 아몬을 두고 기세가 좋구나.”
“네가 서열 7위라고?”
7위가 저렇게 약하다고?
진원이 1위와 7위의 차이가 엄청나다고 생각하자, 아몬은 그 표정을 보고 씨익 웃었다.
“두려운가? 인간. 두렵겠지. 그리고 이 나를 소환한 인간. 그놈은 쓸 만한 능력을 가졌기에, 내가 일부러 죽이지 않았지.”
아몬은 단단히 착각한 듯 말을 늘어놓으며, 조금씩 발을 굴렀다.
“뭐라냐 병신이.”
“뭐, 뭐라고?”
“스승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맡겨두거라.”
아몬이 화를 내기도 전, 고재원은 스킬:패왕의 영역을 시전해 놈을 고유의 공간으로 끌고 갔다.
단일 대상이라면 준비 동작은 필요 없는 듯했다.
“어? 방금 뭐야. 사라졌는데? 꼬맹이는 또 어디 갔어?”
“꼬맹이가 아니고 스승님이라니까 그러네. 스킬 써서 데려간 거니까, 걱정 말고 탑이나 밀자.”
“스킬?”
힘껏 자세를 잡고 스킬을 준비하던 신혜진은, 악마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자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 * *
“여긴 또 어디지?”
아몬은 갑작스럽게 환경이 변하자, 주위를 경계하며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황야.
그리고 미미한 바람이 느껴졌다.
“어디긴, 네놈의 무덤이지.”
성인의 모습으로 변한 고재원이 커다란 비석 옆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인간,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곱게 죽이지 않겠다.”
아몬은 성난 듯이 발을 구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준비를 했다.
상당히 강하고 맛있어 보이는 인간을 발견했는데, 도중에 자신을 방해하다니.
“나는 네놈을 깔끔하게 두 동강 내주마.”
“건방진 놈. 최대한 고통스럽게 짓밟아 주겠다!”
스스스스.
아몬의 말과 함께 시꺼먼 마기가 피어올랐고,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나, 고재원은 패왕의 힘을 원한다.”
우우웅-
그것을 본 고재원도 비석에서 검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크아아아!”
잠시 후.
세 배 이상 커진 덩치와 함께, 거대한 창을 들고 모습을 드러낸 아몬이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참을성이 없는 놈이구나.”
엄청난 땅의 울림.
그리고 10미터가 넘는 두께와 길이를 가진 아몬의 창.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에, 가장 강한 놈이었다.
“쓰러질 때까지 몇 번이고 휘둘러주마.”
고재원은 점점 가속이 붙어 빨라지는 아몬을 보며, 숨을 힘껏 들이마시며 검을 위로 치켜올렸다.
“나! 패왕의 이름을 짊어진 자!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왜를 쳐부술지니!”
쉬이익!
고재원이 횡 베기로 거대한 푸른빛을 쏘았다.
반달 모양의 형태를 갖춘 검기는 아몬에게 날아갔지만, 놈은 당황한 기색 없이 지면을 힘껏 박찼다.
“따라오는 건가. 좀 귀찮군.”
아몬이 공중으로 뛰어올랐지만, 검기는 귀신같이 방향을 틀어 놈을 추격했다.
“신기한 놈이구나. 공중에서 방향을 틀다니.”
고재원은 공중에서도 몸을 이리저리 틀며 다가오는 아몬을 향해, 검기를 다시 날렸다.
전방과 후방, 양쪽에서 달려드는 거대한 검기들!
“흠, 이건 내 능력을 사용해야겠군.”
아몬은 창에 마기를 불어넣어 무기의 힘을 개방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뭐냐! 왜 무기에 마기가 담기지 않는 거냐!”
저 검기는 아무리 자신이라도 해도, 맨몸으로 받아낼 수 없었다.
“큭!”
아몬은 이벤트의 팀 레벨이 적용되어 능력치가 하락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원인을 깨닫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회피에만 집중하고 있던 사이.
“꽤 잘 피하는구나. 이걸로 끝내겠다.”
고재원이 다시 한 번, 검을 치켜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