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이벤트: 괴수의 무덤-2
최은식: 형!! 제 앞에 나타난 놈, 악마예요!
김진원: 바로 갈 테니까, 나머지는 라인 잘 지켜!
진원은 최은식이 위치한 라인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바로 가겠다.”
“네? 아, 네!”
붉은 늑대는 이서훈을 짊어지고, 그 뒤를 따랐다.
티잉!
“크윽!”
“크하하하하! 내 공격을 막아내다니! 튼튼한 인간이 나타났구나!”
최은식은 밑쪽의 라인에서 악마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자신을 서열 11위의 악마라고 소개한 구시온.
놈은 성인 남성과 비슷한 체격과 신장을 가졌지만, 날렵한 움직임과 묵직한 발차기는 엄청난 박력을 자랑했다.
티잉!
‘끅! 분명히 퍼펙트 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정도 충격이라고?’
최은식은 기합을 내지르며 방패로 놈의 다리를 힘껏 밀어냈다.
‘큭, 저기 정수들 주워야 하는데…….’
그 사이, 미니 몬스터들이 서로 죽여대며 녹색을 띠는 작은 유리병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게 정수인가? 이걸 많이 모아야 이긴다고 하던데.”
구시온이 자세를 낮춰 정수를 집으려는 찰나.
“은식아! 앞으로 치고 나가!”
휘익!
최은식이 있는 장소로 도착한 진원이, 구시온을 향해 묠니르를 힘껏 날렸다.
“호오, 인간. 네놈은 꽤나… 음!”
구시온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관찰하기도 잠시, 메시아가 놈의 뒤편에서 나타나 목덜미를 노렸다.
“혀, 형! 다 챙겼습니다!”
“그래, 일단 뒤에 빠져있어.”
“네!”
그 사이 미니 몬스터들 사이에서 정수를 열심히 챙긴 최은식은, 유리병을 품에 안은 채로 조심스럽게 빠졌다.
“이서훈! 너는 이곳에서 탐색스킬 좀 사용해라! 맵을 전체적으로 파악해줘!”
“네, 형!”
그는 진원의 지시에 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퍽! 퍼억!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메시아와 싸우고 있는 눈앞의 악마.
놈은 그녀의 강력한 힘에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메시아는 얼마 전 힘을 되찾았는데, 저놈이 강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백과사전을 꺼내려던 사이, 상태 창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은식아! 너 상태 창 열어봐!”
“예? 갑자기 왜요?”
“내 레벨이 1로 되어 있는데, 너는 어떻게 돼 있냐?”
“1, 1이라고요? 어… 뭐야? 나도 1이네?”
자신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최은식은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질렀다.
‘공용레벨이 적용된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나.’
뒤이어 도착한 신혜진과 스승님의 메시지.
그들 역시 레벨이 1로 초기화되었다고 알려왔다.
신혜진: 아, 뭐 이딴 게 다있어? 스킬은 다 있는데 레벨이 1이야! 모든 스텟이 10이라고! 뭐 이딴 이벤트가 다 있어?
고재원: 허어, 왠지 숨이 차다 싶더니 이런 일이…….
김진원: 이곳에선 공용레벨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싸우지 말고 레벨만 올리세요!
급하게 메시지를 보낸 뒤, 다시 한번 자신의 상태창을 점검한다.
‘다른 파티원들의 스텟이 전부 10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모든 스텟이 50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묠니르의 공격력도 엄청 낮아져 있네.’
역시 이 맵을 만든 놈은, 이벤트가 빨리 끝나는 것을 염두해 둔 듯했다.
“메시아! 일단 뒤로 물러나!”
“알았어.”
직업 스킬도 2일 동안 사용 못하지만, 자신에게는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있다.
놈들의 숫자는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놈들이 우리와 같은 5명이라면, 이 이벤트 맵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크흐흐, 재밌군. 이게 그런데 뭔가… 만족스러운 힘이 나오지 않는군. 뭔가 약해진 느낌이다.”
한동안 메시아와 싸우던 구시온이 입가를 스윽 닦으며 실실 웃었다.
역시 적들도 똑같은 패널티가 적용 중인 듯했다.
“메시아. 여기서 저놈과 최대한 싸우지 말고, 거리만 유지해줘.”
“알았어.”
일단 이곳은 메시아에게 맡겨놓는다.
그리고 다른 라인에 힘을 실어, 빠르게 밀어 붙여보기로 했다.
“형! 맵이 생각보다 넓어요!”
“일단 중앙으로 간다!”
현재 우리 팀의 레벨은 2.
적들은 1.
시작은 나쁘지 않다.
메시지를 통해 전달받은 내용은 악마 4마리가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놈들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레벨이다. 일단 팀 레벨이 중요해.’
이쪽은 붉은 늑대와 메시아까지 합치면 7명이다.
집중적으로 한곳을 밀어붙여, 놈들을 끌어들여서 경험치 손실을 내게 한다.
‘가끔씩 유투브로 게임 강의를 보곤 했는데, 이게 도움이 될 줄이야.’
아직 확실히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충분히 할 만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이봐! 나와 싸우자! 피하지만 말고 싸우라고!”
“싫어, 진원이 싸우지 말랬어.”
진원은 성난 듯이 말을 내뱉은 구시온은 뒤로하고, 중앙 라인으로 내달렸다.
* * *
이벤트가 시작되고 10분이 지났다.
고재원은 맵의 중앙에서 자기들끼리 싸워대는 미니 몬스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가 일단 건드리지 말라니, 가만히 있겠다만.”
눈앞에 보이는 악마.
자신을 간단하게 제파르라고 소개한 놈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힘내라! 밀어붙여! 이겨라!”
“쯧쯧…….”
뭐 저런 정신없는 놈이 다 있지, 라고 생각하며 팀 레벨을 들여다본다.
‘저것이 높아야 우리가 이긴다고 했지.’
현재 자신의 팀 레벨은 방금 3이 되었고,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팀 스킬이 생겨났다.
[팀 레벨 3 달성으로 공용스킬, 귀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5초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핵이 있는 기지로 돌아갈 수 있는 스킬.
‘레벨이라는 것이 올라갈수록, 저런 것들을 하나씩 주겠다 이거구나. 녀석의 말대로구나.’
컴퓨터 게임이랑 비슷하다고 했었나.
정말 제자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스승님.”
“오, 제자야. 왔구나.”
잠시 후, 중앙에 도착한 진원과 나머지 일행들.
“붉은 늑대, 바로 위로 가서 신혜진을 이쪽으로 보내라.”
“분부대로.”
붉은 늑대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주위가 많이 어두워. 기습을 조심해야겠는데.’
어느 정도 돌아다녀 보니, 구조물들이야 별것 없었지만 어두운 맵이 자신을 신경 쓰이게 했다.
“신혜진도 오니까, 이대로 바로 밀어붙이자.”
“네, 형!”
“알겠다.”
진원은 미니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일행들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어? 어어?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졌어?”
제파르는 갑작스럽게 불어난 인원에 당황해, 재빠르게 팀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대체 얘들은 뭐 하는 거냐고!”
“다른 놈들은 어디 갔냐?”
진원은 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그걸 알려줄 것 같니?”
“그럼 너부터 뒤지는 거지 뭐.”
“재밌네.”
제파르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탑 뒤로 빠졌다.
‘저 탑은 무슨 기능이 있는 거지?’
미니 몬스터가 가까이 오면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건축물인가?
‘부숴보면 알겠지.’
진원은 파티원들과 함께 적팀의 미니 몬스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탑으로 접근했다.
“이봐! 빨리 좀 오라고! 벌써 탑 하나가 날아가게 생겼다고오!”
망할 악마 놈들.
하필이면 이런 이벤트 맵에 악마를 네 놈이나 집어넣다니!
제파르는 기분 나쁜 천사 인형을 떠올리며 눈을 찡그렸다.
‘한 놈은 인간이고, 다른 한 놈은 아직도 움직이질 않는다니.’
저 위의 레벨.
인간 쪽은 벌써 4레벨을 달성했다.
그에 비해… 이쪽은 아직도 2레벨.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인간 쪽도 무슨 스킬을 준비한다고 했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놈도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제파르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이봐! 이 탑은 생각보다 단단하다고! 거기다 공용 경험치인 거 몰라?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들면 다른 라인이… 뭐지?”
저 인간들은 이 이벤트 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른다, 라고 생각하며 말하던 순간.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팀 레벨을 보고 의문을 느꼈다.
“네가 신경 쓸 것 없고, 그냥 빨리 죽어.”
“큭! 이러면 탑이 금방 부서지는데…….”
진원과 고재원, 그리고 최은식이 탑에 힘껏 공격을 가하고, 뒤에 미니 몬스터들이 걸어와 녹색 액체를 뱉었다.
퉁! 투웅!
“뭐가 이렇게 단단해?”
묠니르로 탑을 힘껏 두들기던 진원은, 생각보다 튼튼한 내구성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스텟이 낮아서 그런 건가.
“형! 팀 레벨이 낮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깨질 것 같구나!”
돌로 만든 듯한 거대한 탑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오! 하여튼 악마들은 협동성이 1도 없네!”
탑 뒤에서 열심히 메시지를 보내던 제파르는 날개를 펼치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야! 나 왔어!”
그 사이 신혜진까지 합류해 중앙에만 5명이 모이게 되었다.
띠링.
[탑을 파괴했습니다.]
“후, 드디어 하나 깼네.”
미니 몬스터들과 탑을 공격하길 10분.
드디어 메시지와 함께 탑이 무너졌다.
“탑을 깨면 팀 경험치를 많이 주나 본데? 저기 봐봐.”
신혜진이 위쪽에 표시된 팀 레벨을 가리켰다.
과연.
탑을 부수니, 경험치 바가 절반 이상 차올랐다.
“그런데 악마 놈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이대로면 하루 만에 끝내겠는데?”
현재 우리 쪽 팀 레벨은 5.
적은 이제야 3레벨을 달성했다.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있는 쪽은, 악마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고 있다고 한다.
딱히 버겁지 않다고 하니, 일단 포지션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형, 엄청난 명언이 하나 있어요.”
“뭔데?”
스킬로 맵을 탐색하던 이서훈이 뒤편에서 입을 열었다.
“5명이 모이면, 1명은 반드시 쓰레기가 있다는 말이요.”
“그래? 듣고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네.”
묘하게 납득 되는 말이었다.
지난번 점령전 이벤트에서는, 군인 한 명이 바로 도망쳤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너희들은 데려왔으니, 우리 쪽에서는 없지.”
“네, 그런데 저쪽에서는 있는 것 같네요.”
“한 놈이 아닌 것 같은데.”
이벤트가 시작된 지 벌써 1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확인된 적이 고작 세 놈.
최소 2명은 더 있을 텐데, 모습조차 드러내고 있질 않았다.
“정수도 많이 모았으니까, 반납하러 가자.”
“네. 5레벨이 되고, 정수 수납기능이 생기니까 확실히 편하네요.”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네, 에휴.”
신혜진은 자기 발밑을 지나다니는 미니 몬스터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서 바로 괴수 불러낼 거니까, 모두 따라붙어.”
지금까지 모은 정수가 110개.
괴수를 불러낼 때 필요한 정수가 100개.
‘놈들은 이제 50개를 모았네.’
이대로만 가면, 무난하게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진원과 일행들이 귀환 스킬을 사용해 핵이 있는 기지로 돌아왔다.
“느낌 참 묘하네요.”
“그러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이쪽으로 돌아오는 게 참.”
귀환 스킬을 사용한 최은식과 신혜진이 신기한 듯 몸 주위를 훑었다.
“바로 괴수를 불러낼게.”
진원이 기지의 핵에 다가가자, 정수를 반납하겠냐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단 첫 번째는 알아본다는 느낌으로 가자.”
“그래, 괴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감이 있으니까.”
100개의 정수를 반납하자, 핵 안에 꿈틀거리던 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