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이벤트: 괴수의 무덤-1
- 김진원, 나다. 아버지가 너에게 꼭 주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한다. 오늘 시간 되나?
그녀는 손태욱이 따로 마련해준 연구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끔 연락해 근황을 알리곤 했다.
“그래, 잠깐 받는 거라면야.”
- 그런데 그동안 어디 갔다 온 거냐? 연락이 안 되던데.
블라즈코비츠는 기가 막힌 국밥집을 찾았다며, 언제 한번 같이 가자고 말해왔다.
그동안 그녀가 자신에게 보낸 국밥 사진만 대략 20장.
한국 음식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잠시 퀘스트 좀 하고 왔지. 당분간은 바쁠 것 같으니까, 나중에 가자.”
- 알았다.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 아, 그리고 되도록 너 혼자서 왔으면 좋겠다.
“일단 알았다. 바로 갈게.”
진원은 그녀에게 주소를 듣고,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 * *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의 지하.
“아직은 연구해야 할 것이 많지만, 성능은 충분할 것 같다.”
블라즈코비츠의 아버지, 니콜라이가 완성된 슈트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김진원 덕분에 지옥 같은 중국의 연구소에서 빠져나왔다.
거기다 자신은 모르는 손태욱이라는 남성이 이렇게 편의를 봐주다니.
‘분명히 김진원의 입김이 작용했겠지.’
이렇게 신세를 졌다면, 당연히 갚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렸다.
다른 연구원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한 채로, 오직 혼자서.
“오늘은 드디어 편하게 잘 수 있겠군.”
그가 따끔거리는 눈에 점안액을 몇 방울 떨어트리던 사이, 문이 열리며 블라즈코비츠와 진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신기하네. 우리나라도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구나.”
“물론 아는 사람이 몇 없으니, 말하면 안 된다, 진원.”
“그래.”
진원은 연구실을 찬찬히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벽 쪽에 쌓인 엄청난 양의 커피 캔과 에너지 드링크.
그리고 눈가에 점안액을 넣던 니콜라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 오오! 바로 와주어서 정말 고맙네! 김진원!”
니콜라이는 진원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반갑다고 하신다.”
“그래, 그래서 뭐 때문에 날 부른 거냐고 물어봐 줘.”
“저걸 너한테 주고 싶다고 하신다.”
검은색의 전신 타이즈에 시선을 옮기자, 니콜라이가 그것을 들고 와 자신에게 건넸다.
“이거··· 그건데. 중국에서 연구하던 슈트 아니냐?”
“맞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아버지가 완성 시켰다. 테스트용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답게, 니콜라이 또한 상당한 능력을 자랑하는 듯했다.
‘나야 이런 분야는 잘 모르지만, 혼자서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
그런데 이 디자인은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딱 봐도 눈에 너무 튀는데.
“이 슈트는 권총 수준의 탄환과 또 뭐라고 했죠? 아, 간단한 날붙이 정도는 가볍게 막아낸다고 한다.”
블라즈코비츠가 니콜라이의 말을 번역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아, 아직 테스트용이라서 이 정도라고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욱 굉장한 것을 만들어 준다고 하신다.”
니콜라이가 그녀의 어깨를 치며 뭐라고 하자, 눈을 살짝 찡그리며 말을 덧붙였다.
“쉽게 말하면, 엄청난 방어력을 가진다. 이런 뜻이죠?”
“그렇다.”
진원은 받은 슈트를 이리저리 만지며 관찰해보았다.
겉보기에는 신축성이 좋은 쫄쫄이 같은데,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니.
‘1개라고 했지. 그럼 줄 사람은 정해져 있네.’
진원은 잠금 기능이 있는 슈트케이스를 건네받은 뒤,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연구소를 나섰다.
* * *
다음날, 이벤트 시작 15분 전.
진원을 포함해 5명의 플레이어가 엘리트 길드 사무실에 모였다.
“비상약에, 물은 형이 있으니까 괜찮고, 혹시 모르니 이것도···….”
최은식은 커다란 배낭에 이것저것 넣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진원에게 질문했다.
“형, 혹시 뜨거운 물도 나오나요?”
“왜?”
“라면 좀 챙길까 생각해서요.”
“···일단 넣어.”
“예!”
신혜진은 손목시계를 몇 번 들여다보더니, 미심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야, 진짜 이벤트 하는 거 맞아? 아직까지도 알림이 없는데?”
“내 메시지에는 15분 남았다고 뜨니까 확실해. 조금 더 기다려 봐.”
“빨리 끝내자꾸나. 벌써 이틀째 술을 마시지 못했다.”
긴장감 없는 대화.
이시현은 그들이 나누는 말을 들으며, 플레이어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어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도 1등하고 오시겠지. 업무나 열심히 하자.’
사장님은 지지난번도, 지난번도 멀쩡하게 돌아왔다.
이젠 딱히 걱정도 되지 않았다.
“형, 일단 입었는데… 이게 정말 총알을 막아줘요?”
잠시 후.
니콜라이가 개발한 슈트를 착용한 이서훈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저거 그냥 내복 아니야?”
“전신 타이즈네요.”
“밤에 입고 자면 따뜻할 것 같구나.”
그 모습이 신기한지, 그들의 시선은 슈트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서훈은 그것이 부끄러운지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성능은 확실하니까,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는 참아.”
“네, 알았어요···….”
띠링.
이서훈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순간, 플레이어 모두에게 알림이 들리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어 이벤트- 괴수의 무덤]
김진원을 포함한 한국의 플레이어 5명 VS ???
#플레이어 김진원은 강제참가 대상입니다.
#지금부터 5분 뒤, 이벤트 지역으로 강제전송됩니다.
“이번에는 5분밖에 시간을 안 준다 이거냐. 다들 준비해.”
진원은 이벤트의 악랄함에 불쾌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까지 하면 벌써 세 번째의 이벤트.
그리고 보란 듯이 자신은 이벤트의 강제참가대상이었다.
* * *
중국의 한 연구시설.
넓은 연구실을 혼자서 사용하는 한국의 S급 플레이어, 이연우.
- 살아 돌아오기만 해라, 이연우.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 그래, 상대가 김진원이니, 아니면 어쩔 수 없고. 네 연구자료는 잘 보관하고 있으니 걱정 마.
“예…….”
그는 왕 첸과 간단히 통화를 나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플레이어 이벤트 메시지.
자신이 참가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퍽! 퍼억!
“망할! 망하알! 또 김진원이라고? 씨바알!”
이연우는 통화를 끝내고, 이성을 잃은 것처럼 주먹으로 벽을 힘껏 쳤다.
주먹이 까지고 피가 흘러내렸지만, 통증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연구가 거의 완성되어 가는데,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S급 플레이어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만 받던 이연우.
그는 이번 연구만 끝낸다면, 자신의 뜻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버텨왔다.
그런데 하필 자신이 이벤트에 참가해야 한다니.
더럽게 운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내 연구자료를 쉽게 넘겨줄 수는 없지.’
왕 첸.
그는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죽으면, 그걸로 끝.
그리고 연구자료들은 왕 첸이 꿀꺽할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바이러스를 심길 잘했어.’
자신이 지정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연구자료를 읽으려 하면 실행되는 바이러스.
당연히 백업 본에도 조치는 취해두었다.
“후우, 살아만 돌아오자. 하필이면 상대가 김진원이라니.”
거기다 놈은 얼마 전, 세계 랭크 1위를 갱신했다.
맞붙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연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포탈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 * *
“여기가 이번 이벤트 맵이라 이거지.”
진원은 눈앞에 들어온 거대한 수정체를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꿀럭. 꿀럭.
거대한 크기를 가진 원형의 구 안에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는 알이 들어있었다.
“어우, 징그러워.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신혜진이 기겁하는 사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플레이어 이벤트- 괴수의 무덤]
7일 안으로 상대 팀의 핵을 파괴한 플레이어 측이 우승합니다.
2. 이곳에서는 공용레벨이 적용됩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욱 강해지며, 부가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공용레벨은 일정 시간마다 등장하는 미니 몬스터를 처치하면 올릴 수 있습니다.
4. 핵은 괴수를 이용해서만 파괴할 수 있습니다.
5. 일정 시간마다 중립 몬스터, 싸움꾼이 등장합니다.
6. 괴수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미니 몬스터를 처치하고, 정수를 얻어 반납해야 합니다.
7. 괴수는 사라진 후, 1시간의 대기시간을 가집니다.
8. 팀원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4일
우승 팀 : ???
패배 팀 : 사망
#플레이어 김진원은 직업 스킬을 2일 동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진원을 포함한 일행들은 조용히 설명을 읽어내려갔다.
“어? 야!”
그리고 전원이, 마지막 부분에서 소리를 질렀다.
“형! 이거요!”
“하… 또야?”
자신에게 어느 정도 패널티가 가해질 것은 예상했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표시할 줄이야.
‘나한테만 왜 이러는 거냐? 망할 놈들이.’
이것도 바알이 말한 천사의 짓거린가?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신혜진이 모두를 불러보았다.
“야! 너도 눈치챘지? 이번 이벤트. 게임이랑 되게 비슷해.”
“그래.”
“맞아요. 저도 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전설의 연합을 플레이한 적이 있는 세 명은, 격한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두 명은 그게 뭔가 싶어 질문해왔다.
“전설의 연합이랑 비슷해요. 저기 한번 보세요.”
진원의 말에, 나머지 일행들이 시선을 돌렸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갈래 길.
그리고 커다란 탑이 하나씩 세워져 있는 모습.
“그러니까 이 이벤트의 목적은 이 녀석을 이용해서, 상대편의 핵을 파괴하는 거지.”
진원이 고재원과 최은식에게 상세히 설명하던 사이.
“꾸웨에엑!”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미니 몬스터가 한 마리씩 튀어나왔다.
발을 질질 끌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흡사 좀비와 같았다.
크기가 50센치 정도 되는 것만 빼면.
“아오, 전설의 연합 미니 몬스터는 귀여운데 얘들은 왜 이렇게 생겼어? 침 질질 흘리는 거 봐!”
“일단 이벤트는 시작되었으니까, 각자 라인을 맡자.”
진원은 서서히 앞으로 전진하는 미니 몬스터를 보며, 일행들에게 라인을 하나씩 배정했다.
“이서훈이랑 나는 같이 움직일 거야. 버거우면 바로 알려줘.”
상대측의 규모와 전력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일단, 각 라인에 한 명씩 서서 탐색전을 하기로 의견을 나눴다.
“너… 진짜 괜찮겠어?”
다들 라인을 향해 달려가던 사이, 신혜진이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마지막 메시지가 신경 쓰인 듯했다.
“그래, 2일 정도야 괜찮겠지.”
“일단 나도 갈 테니까, 메시지 잘 봐!”
“너도 조심해라.”
신혜진이 중앙으로 뛰어나가고, 진원도 이서훈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 여기 미니맵도 되게 비슷하게 생겼네요. 이런 이벤트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나도 모르지. 알았으면 직접 가서 뚝배기를 부숴버리는데.”
일단 전체적인 이벤트의 파악이 필요하다.
진원은 이서훈과 함께, 힘이 부족한 라인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확실히 시야 선점이 중요하겠네.’
적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이서훈의 스킬.
확실히 이번 이벤트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듯했다.
김진원: 다들 어때. 적들은?
신혜진: 아직 안 보이는데. 이놈들 경험치 다 놓치는데 뭐 하는 거야?
고재원: 음,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구나.
허공에 떠오른 키패드로 현재 상황을 물어보던 중.
최은식이 느낌표를 여러 개 띄우며 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