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테로토스-4
“망할! 저놈들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저걸 봐라!”
약 200미터 떨어진 지점.
크루가 가리킨 곳에는 잿빛의 피부를 가진 몬스터가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오염된 테로토스인]
놈의 눈코입은 전부 살덩이로 막혀 있었고, 길게 자라난 손톱을 땅에 끌고 다녔다.
“으윽! 다시 봐도 정말 역겹군. 여기선 다른 쪽으로 돌아가… 응?”
크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몬스터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서걱!
[오염된 테로토스인을 처치하였습니다!]
“어……?”
“좋아, 여기서는 경험치를 주는 것 같네.”
이전에 차원 퀘스트를 수행했던 장소, 알데바란.
그곳에서는 여유시간이 많았지만, 경험치를 얻을 수 없어 아쉬웠었다.
“이놈들 어디로 가면 많이 볼 수 있냐?”
“으, 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돌아다니다가 한 마리씩 보긴 했다만.”
진원이 가볍게 몬스터를 처치하자, 크루는 무안한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놈의 어떤 점이 위험한지 경고를 하기도 전에 목을 날려버렸으니.
‘저 정도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군.’
놈의 손톱에는 오염을 일으키는 독이 있는데, 애초에 진원에게 접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몬스터는 보일 때마다 처리하는 걸로 하고, 다시 가자.”
* * *
진원은 2일간의 강행군 끝에 크루가 지정한 위치에 도착했다.
“다행히 입구는 막히지 않았군.”
거대한 산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뚫어놓는 듯한 느낌.
마치 광산을 연상하게 했다.
“그건 그렇고, 김진원. 정말 대단하군… 단시간에 여기까지 오다니…….”
크루는 멍한 머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휴식이라고 해 봐야 중간에 쪽잠을 잔 게 전부였는데, 저렇게 쌩쌩하다니.
“테로나이트가 제대로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군. 자, 나를 따라오게.”
“그래. 콩콩아, 불 좀 밝혀줘.”
“크이!”
크루가 앞장서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지정했던 이 장소는 가장 많은 테로나이트를 품고 있었다.
이곳에서 소재를 제대로 구할 수 없다면, 다른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터.
“후우, 다행이군. 여기부터는 무사하다.”
중간 지점에 도착한 크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불규칙한 모양의 돌이 여기저기 박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것들이 전부 테로나이트다. 채굴하는 것은 나에게 맡겨주게.”
크루는 진원에게 건네받은 포션을 힘껏 들이켜고,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양으로 가능해?”
진원은 조심스럽게 망치를 두드리고 있는 크루에게 질문했다.
녀석이 말한 정보로 보면, 거인의 크기는 최소 30미터.
과연 이 정도의 테로나이트로 녀석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까?
“놈을 죽이는 건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건 자네라고 해도 불가능해.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면 되네.”
크루는 테로나이트를 이용해, 일회용 작살을 만들 생각이었다.
‘이것으로 놈의 다리를 꿰뚫어,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그럼 알아서 굶어 죽든가 하겠지.’
그것이 최선이었다.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한다면야, 강력한 무기를 못 만들 것도 없었지만.
‘그 전에 테로토스가 없어지는 것이 먼저겠군.’
그건 너무 현실성이 없었기에 배제했다.
톡. 톡.
“여기 좀 올려다오. 그렇지, 후우. 이 정도면 거의 다 했군.”
크루는 붉은 늑대의 어깨를 밟고 천장에 있는 테로나이트를 채취하고 있었다.
“…아직인가.”
“음!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더 왼쪽으로 가주게.”
붉은 늑대는 살짝 불만스러운 기색을 비쳤지만, 크루는 신경 쓰지 않고 테로나이트의 채굴에 집중했다.
“그런데 김진원은 어디에 간 거지?”
한참 동안 망치질을 이어가던 그는, 진원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아, 김진원 님이라면 저기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몬스터가 있다면서요.”
“…이곳에서도 있었나. 망할 놈들.”
크루는 쿠란의 설명에 작업속도를 올렸다.
툭! 투욱!
그가 한편에 테로나이트를 가득 쌓아둘 때쯤, 진원이 포션을 마시며 모습을 나타냈다.
“10마리밖에 없어서 아쉽네.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 그렇게 많이 있었다니!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자! 이 정도로는 한 발밖에 만들지 못해!”
크루는 곧바로 광산 안쪽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한 발이라니, 뭘 만들려고 그러냐?”
“흠. 날카롭고 거대한 쇠붙이를 생각하고 있다.”
거인의 다리를 꿰뚫을 쇠창살.
진원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해 보면, 최대 두 발까지 만들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그걸 발사시켜줄 장치를 만들어야 하니… 두 개도 빠듯하다.’
진원은 쇠붙이를 어떻게 사용할 건지 물어보았다.
“음, 놈의 한쪽 다리에 두 발을 맞춰 균형을 무너뜨릴 생각이네. 나머지 기간은 발사대를 만들어야 해.”
“두 발이라… 겨우 그걸로 되겠어?”
크루는 진원이 질문한 의도를 알았는지 걱정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 두 개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걸 날릴 발사대가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네.”
“발사대라… 굳이 안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자신의 소환수, 디멘션 워커가 거대화한 뒤 발사대의 역할을 하면 된다.
물론 그에 맞춰 크기는 조정해야 하겠지만.
“저, 정말 그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다섯 개까지는 만들 수 있네.”
“그래. 일단 테로나이트를 마저 챙기고 나가서 보여줄게.”
크루는 못 믿겠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직접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흐음. 생각보다 많이 모았지만, 이것을 한 번에 들고 옮기는 것도 문제로군.”
어느새 수북하게 쌓인 광석들.
이것들을 자신의 은신처까지 옮기는 것도 문제였다.
“가공하기 전에 충격에 약해서 말이지…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흥분해서, 험험…….”
크루는 테로나이트를 보며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순간 신이나 거침없이 테로나이트를 채굴했지만, 옮길 수단은 전혀 생각을 못 했다.
“비켜봐.”
그리고 그 문제는 진원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다.
“다 들어가려나 모르겠네.”
그는 인벤토리를 열고, 테로나이트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허업! 저건 또 뭐냐!”
“다시 봐도 신기하네요. 물도 그렇고,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크루와 쿠란은, 진공청소기처럼 안으로 들어가는 광석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좋아, 아슬아슬하게 다 들어갔네.”
남은 인벤토리 공간을 모두 차지한 테로나이트들.
확실히 양이 많기는 했다.
“이쯤이면 되겠네. 나와라.”
진원은 광산 밖으로 나와, 넓은 평야에 자리를 잡고 소환수를 꺼냈다.
“보여줘라.”
끄덕.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꼬마 디멘션 워커가 스킬을 사용해, 크기를 키웠다.
“오, 오오… 확실히. 이 정도의 덩치라면 발사대가 없어도 되겠네.”
크루는 소환수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섯 개 정도 만들 수 있겠군. 효과에 대해서는 확실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네.”
테로나이트를 소재로 한 무기들을 들고 용감하게 돌진했던 테로토스인들.
그리고 자신은 분명히 거인의 다리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그전까지 생채기 하나 없던 녀석의 다리가 말이다.
“좋아, 그럼 바로 돌아가자.”
* * *
크루는 자신의 은신처에 도착하자마자, 무기의 제작에 들어갔다.
“쿠란은 파쿨이 있는 곳으로 갔고… 붉은 늑대를 붙여놓았으니 괜찮겠지.”
진원이 쿠란을 이전의 은신처로 보낸 목적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나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녀석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길래, 붉은 늑대와 함께 포션을 건네주었다.
“일단 거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큰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진원은 지상에서 몬스터들을 처리해가면서, 거인이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위치로 향했다.
[오염된 테로토스인을 처치하였습니다!]
“역시 이 위치가 맞나 본데?”
거인이 있는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몬스터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많으면 나야 좋지. 콩콩아!”
“크이!”
[골드 캥거루가 패스트힐을 사용합니다.]
HP가 적당히 떨어지면 콩콩이의 힐을 받고, 틈마다 포션을 마시며 패널티에 적응해나갔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메시아와 함께 놈들을 처치하길 잠시, 반가운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좋아. 드디어 레벨업이다.”
이대로 무기가 완성되기 전까지 최대한 몬스터들을 처치한다면, 1레벨 정도는 더 올릴 수 있을 듯했다.
“진원, 여기… 너무 기분 나빠.”
메시아가 손에 묻은 찐득한 액체를 힘껏 털어내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조금만 참으…라고는 못하겠네. 이번에는 많이 참아야 할 거야. 대신 돌아가면 솜사탕 마음껏 먹게 해줄게.”
“알았어.”
솜사탕이라는 말에, 불만스럽던 그녀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 * *
“이쯤이라고 했지.”
“크아아!”
진원은 손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아무렇지 않게 묠니르로 쳐냈다.
[오염된 테로토스인을 처치하였습니다!]
한 대에 한 놈씩.
놈들의 머리가 가볍게 터져나갔다.
그럼에도 놈들은 지능이 없는지, 오히려 더욱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래 주면 나야 좋지. 흡!”
진원은 달려드는 녀석에게 묠니르의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파지직!
“크에에엑!”
사납게 튀던 전류가 몬스터들에게 덮쳐, 순식간에 놈들의 움직임을 멎게 했다.
“아오! 뭔 냄새가…….”
진원은 몬스터들의 시체에서 나는 역한 냄새에 코를 쥐어 잡았다.
이놈들은 그냥 머리를 날려서 처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사이.
“저건 또 뭐냐?”
나체로 누워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피부가 완전 새까만 것만 빼면, 어딜 봐도 사람이었다.
‘몬스턴가?’
남성은 주위의 잔해물들로 몸을 덮고, 눈을 뜬 채로 누워있었다.
진원은 조용히 백과사전을 꺼내 남성에게 사용했다.
‘망할. 이놈이 테로타잖아!’
그리고 의외의 결과에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테로타]
- 설명: 힘을 비축할 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 공략 포인트: 테로타는 강력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놈의 숨결이 테로토스인에게 직접 닿으면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된다. 테로나이트가 약점이다.
놈의 이름 색은 검은색.
현재로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크루의 말대로, 테로나이트가 약점이다. 무기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테로타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몬스터들과 소란을 피웠는데, 다행히 놈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아… 진짜 뚝배기 한 대 치면 바로 죽을 것 같은데.’
마치 전설의 연합에서 느낄 수 있는 ‘딸피의 유혹’이었다.
‘천천히 가자. 놈은 자고 있고, 시간은 많으니까.’
진원은 테로타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크이…….”
콩콩이도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진원의 행동을 따라 했다.
‘일단 다른 곳에서 몬스터들을 잡아보자.’
67의 레벨에도 놈의 이름은 검은색.
크루가 무기를 완성하기 전에 레벨을 최대한 올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향하던 도중, 붉은 늑대가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