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161화 (161/200)

161. 테로토스 -2

‘이 정도면 먹혀들겠지. 내 취향은 아니다만, 어쩔 수 없다.’

연출된 장면이었지만, 테로토스인들의 경계를 풀기에는 충분했다.

현재 그들이 필요한 것은 도움이다.

그들의 옷차림과 외모를 본다면, 제대로 된 의식주조차 누리지 못하는 듯했다.

“구, 구원자다! 구원자님!”

“신은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감사합니다! 이런 희망도 없는 곳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성들은 전부 무릎을 꿇었고,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거인을 처리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너희를 구해주러 왔다.”

“우오오!”

“크흐흑!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었는데!”

진원의 노림수는 완벽하게 먹혔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경계를 푼 지 오래.

“크이… 크이이…….”

섬광을 사용하고 있던 콩콩이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이런 용도로 사용할 줄은 몰랐던 듯했다.

진원은 콩콩이의 시선은 적당히 넘기고, 상점을 열었다.

‘여기에서, 이거 하나면 완벽하다.’

그리고 통조림과 물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일단 얘기는 나중에 하고, 식량하고 물부터 챙겨라.”

촤르르르.

허공에서 쏟아지는 식량들.

“어? 저, 저것은… 물! 물이다!”

“먹을 거다!”

“우와아아아!”

테로토스인들은 식량을 보자마자, 눈을 치켜뜨고 달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조심스러웠던 녀석들이 말이다.

‘그만큼 굶주렸다는 거겠지.’

진원은 게걸스럽게 통조림을 먹는 남성들을 보며, 소환수들을 다시 집어넣었다.

“정말로 거인을 죽이러 온… 구원자님이세요?”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툭툭 내던지듯이 뱉던 말투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말고 먹어도 된다.”

“저, 저는 배 안 고파요! 지금 당장이라도 거인을 죽이러…….”

꼬르르륵!

“어차피 바로 움직이진 못해. 정보가 먼저니까. 괜찮으니까 배부터 채워.”

“…네, 잘 먹겠습니다.”

어느새 고분고분해진 아이는 통조림 하나를 능숙하게 뜯었다.

* * *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큰 실례를…….”

“그동안 너무 굶주려서 잠시 이성을 잃은 것 같습니다.”

테로토스인들은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자, 가만히 서 있는 진원을 보고 식사를 멈추었다.

“괜찮으니까, 계속 식사해도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

“예. 그것이라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구원자님.”

“구원자라고 하지 말고, 진원이라고 불러. 김진원이 내 이름이다.”

자꾸 구원자라고 들으니, 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예, 그럼 김진원 님.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테로토스인들 중에 리더로 보이는 자가 진원을 은신처 안쪽으로 이끌었다.

“죄송합니다.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괜찮다. 신경 안 써도 된다.”

대머리의 남성은, 성인 두 명이 간신히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음… 그럼 뭐부터 설명 드려야 할까요. 구원… 진원 님께서는 이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역병을 퍼트리는 거인이 있고, 그것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

“그렇군요. 그럼 최대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은 파쿨이라고 간단히 소개한 테로토스인.

그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이 이렇게 변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지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죠.”

겉보기에는 인간과 별다를 것 없는 외모.

단지 차이가 있다면, 폐활량이 상당히 좋아 숨을 10분씩 참을 수 있다는 것 정도.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한번 나타났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은 현상이었죠.”

“메시지라고?”

“네, 그렇습니다. 이 이후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시스템이 이쪽에서도 나타났다는 건가?

“거인 테로크가 출현합니다. 단지 이게 끝이었습니다. 다른 테로토스인들도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신경 쓰지 않았죠.”

한창 말을 잇던 그는, 과거의 끔찍한 일이 떠올랐는지 입술을 조금씩 떨었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로 거대한 놈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너무 커서, 녀석을 한눈에 담기에도 벅찼죠.”

테로크는 메시지와 함께 허공에서 나타났는데, 놈이 착지할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고 말했다.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던 녀석들만 살아남았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죽었죠.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놈은 그 이후.

지상을 돌아다니며 건축물을 부수고, 살아 있는 것들은 모조리 먹어댔다고 한다.

“지상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그것도 거인 때문이야?”

“문제… 그렇습니다. 지상에 있는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어있어, 10분 정도만 숨을 쉬어도 치명적인 수준입니다.”

“일단 공격이 먹히나 봐야 알 것 같은데…….”

말보다는 실제로 보는 것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파쿨에게 거인의 위치를 물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땅이 울리지 않는 걸 보면, 놈이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거인이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거대한 진동이 느껴지는 수준이라.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진원은 팔짱을 끼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퀘스트의 내용은 거인의 힘을 무력화시키거나, 처치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준 기간은 300일.

‘무작정 죽일 수 있는 녀석은 아닌 것 같네.’

지난번 차원 퀘스트야 운이 좋게 척척 진행되었지만, 아무래도 이번은 아닌 듯했다.

‘애초에 거인을 피해서 지하에서만 사는 테로토스 인들이다. 이번은 나 혼자서 해결해야 된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곳의 지리에 대해 안내해 줄 테로토스인 1명은 필요했다.

“일단 지상을 안내해줄 녀석이 하나 필요하다. 생명에 대해서는 걱정 말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파쿨은 이곳에 있는 모든 테로토스인들을 불러모았다.

“그런데 넌 뭐하냐, 콩콩아?”

“크이!”

콩콩이는 녀석들에게 신성한 존재라고 불리며 손으로 떠 받들여지고 있었다.

“어찌 이런 귀하신 분이…….”

녀석이 힐러 계열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런 듯했다.

“크이!”

콩콩이는 진원의 시선을 느끼고, 녀석들의 손을 급하게 떨쳐냈다.

“다들, 거인을 처치하기 위해서 길을 안내해줄 녀석이 한 명 필요하다. 나는 이곳의 지리를 잘 몰라.”

진원의 말에, 테로토스인들은 침음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가 구원자라고 해도, 지상은 숨만 쉬어도 위험한 장소.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정말로 그놈을 죽일 수 있는 겁니까? 저기, 파쿨 님. 제대로 설명 드린 것 맞죠?”

테로토스인 한 명이,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물론 진원 님이 엄청난 힘을 지녔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 거인 놈은 웬만한 공격은 먹히지도 않잖아요!”

“그래! 분명히 내가 봤어! 놈의 다리에 집중된 공격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어!”

그들의 불안감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기껏 힘을 지닌 구원자가 이곳에 왔는데,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듯했다.

“다들 조용.”

진원의 말에,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일단 내가 거인을 직접보고, 놈에게 공격이 먹히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한다. 그래야 그 뒤의 계획을 세울 수 있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기, 김진원 님…….”

전혀 동요하지 않는 태도.

‘이곳과 아무 상관 없는 분이 저렇게까지…….’

‘우리가 몸을 사릴 때가 아니다.’

테로토스인들은, 그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보며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이 지리를 가장 잘 압니다!”

녀석들은 경쟁하듯이 손을 치켜들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알았으니까 조용. 일단 떨어져 봐.”

진원이 정렬한 테로토스인들을 살펴보던 와중.

‘그러고 보니 얘가 있었지.’

자신을 이곳까지 안내해준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날렵한 몸놀림.

거기에 이곳의 지리에도 익숙한 듯했다.

“너, 이름이 뭐야.”

“저요? 쿠란입니다.”

“그래. 너, 이 주위 잘 알지? 나랑 같이 가자.”

“정말요?”

녀석은 자신의 말에 기쁜 듯이 앞으로 다가왔다.

“구원자님, 아무리 그래도 얘는 어립니다. 저희가 안내하는 것이…….”

“저 말고는 그동안 밖에 한 명도 안 나갔잖아요! 다들 나가면 죽는다고 겁만 먹었으면서!”

“…….”

쿠란의 일침에 테로토스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살피거나, 쓸만한 것들을 구해 온다며 매번 밖으로 나가던 것은 쿠란뿐이었으니.

“그렇게 됐으니까 다들 이곳에 있어라. 정찰만 하고 올 거니까.”

“그, 그렇다면 이것을 가져가 주십시오!”

파쿨은 구석진 곳에서 방독면 형태를 한 마스크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걸 쓰면 지상에서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할 겁니다. 하나밖에 없어서,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거는 네가 써라.”

“네, 네!”

진원이 마스크를 쿠란에게 건네주고,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아, 김진원 님! 거인의 약점은 왼쪽 다리입니다!”

“무슨 소리냐? 그놈한테 약점이 어디 있어?”

“내가 봤었어! 분명히 놈이 다리를 움켜쥐고 소리를 내던 것을 들었다고!”

“겨우 그것 가지고 판단하다니! 네놈의 머리는 비어 있군.”

“뭐라고!”

테로토스인 한 명이 거인에게 취약한 신체가 있다고 말해왔다.

다른 녀석들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며 그를 질책했다.

“내가 파쿨한테 들었을 때는, 약점 같은 것은 없다던데. 확실해?”

진원은 싸울 듯이 언성을 높이는 녀석들을 보고, 파쿨에게 물었다.

“신빙성이 없는 정보로군요. 그런데, 거인의 위치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거라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괜히 밖으로 돌아다녔겠어요?”

쿠란이 자신에게 맡겨달라며 끼어들었다.

“얼마나 떨어져 있어?”

“제 발걸음으로 20일은 걸릴 거예요. 그래도 괘, 괜찮아요! 여기 쓸 것도 있고, 김진원 님도 있으니까요!”

녀석은 자신을 꼭 데려가 달라는 듯이 대답해왔다.

‘저분이랑 같이 있으면, 적어도 굶지는 않을 거야. 확실해.’

저분이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남은 식량은 엄격하게 통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허기를 느끼는 나날이 반복되겠지.

‘이곳에서 내가 가장 약해. 분명히 식량을 제일 조금 주겠지.’

이곳은 이미 진원은 모르는 체계가 잡혀 있는 상황.

쿠란은 이곳에서 가만히 숨어 있다가 죽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서 해결책을 찾는 것을 선택했다.

“그럼 얘 데리고 간다.”

“예! 몸조심하십시오, 김진원 님!”

“그리고 그동안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알아 놔. 폐활량 좋다며? 이런 애도 지상으로 나가는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날 서 있는 듯한 말투에, 테로토스인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놈들의 잘못이 아닌 건 알지만, 계속 보니 뭔가 답답하단 말이지.’

진원은 곧바로 지상으로 향했고, 그 뒤를 쿠란과 콩콩이가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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