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알림
“모든 레전더리 아이템이라고 했으니까, 판매했던 돈까지 전부 다 내놔.”
“…알았다. 당장 미국에 돌아가서 가지고 오겠다. 조금만 기다려라.”
브랜든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신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망할. 유투브에서 저런 거대한 가시는 본 적도 없다.’
그렇다는 말은, 김진원이 힘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미치겠군. 말도 안 되게 강하잖아! 어떻게 하면 저렇게 변할 수 있는 거지?’
브랜든은 한국으로 오기 전, 카밀라를 시켜 김진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라고 지시했다.
‘생각보다 대단한 내용들은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E급 던전에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는 것 정도?
- 처음에는 직업도 없는 짐꾼이었다고 하네요. 제 생각이지만… E급 던전 안에서 발견된 포탈. 거기에서 무슨 영향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포탈에 관한 내용은 1도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의도적으로 힘을 써서 통제했겠지.
‘젠장… 당분간 던전만 돌아야겠군.’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눈앞에 진원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헛짓하지 말고 빨리 갔다 와라. 그러게 미리 아이템들 좀 가져다 놓지 그랬냐?”
“이익…….”
브랜든은 진원의 약 올리는 듯한 말투에 순간 화를 낼 뻔했지만, 금세 가라앉히고 자리를 떠났다.
짝짝짝짝.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을 눈치챈 협회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손태욱을 제외하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허허허, 해외의 협회장들은 겁이 많나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김진원 씨.”
손태욱은 시원스럽게 웃으며 진원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던데요.”
얼마 전까지 세계 랭크 1위였던 플레이어, 브랜든.
혹시 몰라,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놈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약했다.
“진원 씨에게는 그럴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는데… 저 카메라들 보이시죠?”
손태욱이 구석진 곳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 4개를 가리켰다.
하나는 결투의 여파로 완전히 부서졌지만, 나머지는 멀쩡했다.
“지금 유투브에 생중계 중입니다. 허허허!”
“예?”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해주시는 거지?
그럼 내가 방금 했던 말도 그대로 나왔다는 거잖아?
분명히 내가 강해진 건 맞지만, 그걸 사람들한테 대놓고 말하는 것은 좀 그런데…….
띠링.
진원이 살짝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자신의 유투브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제목: 내가 바로 불꽃 남자 김진원이다. 꿇어라.]
[제목: 어딜 보는 거냐? 나는 여기에 있다.]
“아, 최은식 이 새끼가 진짜…….”
중2병스러운 제목과 함께 올라온 영상들.
진원은 정색하며, 곧바로 엘리트 길드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명예 포인트를 가장 많이 획득하게 되었다.
* * *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타다닥. 딸깍.
조용히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다.
직원들은 소파에 앉아 있는 진원과, 업무용 책상에서 작업하는 최은식의 눈치를 살폈다.
“으윽…….”
그는 부어오른 이마에 파스를 바르며, 고통에 눈을 찡그렸다.
브랜든과의 결투가 있었던 날, 재빠르게 영상을 업로드 한 최은식.
조회 수야 엄청나게 챙겼지만, 부끄러움은 전부 진원이 감당해야 했다.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그랬냐. 지금이라도 빨리 제목 바꿔.”
“옙…….”
진원은 3시간 뒤에 아이템을 들고 찾아올 브랜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띠링.
[마이룸 입장이 가능합니다.]
‘벌써 시간이 다 지났나 보네.’
놈에게 아이템을 건네받고 던전에 가려고 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띠링.
“뭐야?”
그런데… 알림이 두 개였다.
[플레이어 이벤트 알림]
이벤트 개시: 10일 뒤
지난 이벤트 1등에게 제공되는 알림입니다.
혜택1: 다음 이벤트에 4명까지 지정해 이벤트에 함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지정하지 않으면, 무작위 플레이어가 참가합니다.)
혜택2: 이벤트에 유리한 힌트를 하나 제공합니다.(시야 선점)
#이벤트 강제 참가 대상입니다.
다른 하나의 알림을 확인한 진원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알림.
역시 이번에도, 자신은 강제 참가 대상이었다.
“모두들, 일 없으면 일찍 퇴근해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장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이시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린 업무는 돌아가서 해. 빨리 퇴근하자.”
“옙!”
“알겠습니다!”
직원들은 그를 따라 퇴근했고, 어느새 남은 사람은 진원과 최은식, 단 두 명이었다.
“형, 저도 나갈까요……?”
최은식은 진원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너도 와서 같이 들어. 사람들 불러놨으니까.”
“네!”
“아, 그리고 마실 것 좀 준비해라.”
“네! 간식도 같이 꺼낼게요!”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실실 웃으며 과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시간 뒤.
“뭐야, 급한 일이 있다니? 전화로는 왜 안 돼?”
신혜진을 시작으로, 고재원과 이서훈까지 안으로 들어왔다.
“형, 오랜만에 불러주셨네요. 길드원으로 받아주시려고요? 아! 그리고 세계 랭크 1위하신 거 축하드려요!”
이서훈도 간만에 진원을 봐서인지, 들뜬 기분을 내비쳤다.
“다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건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마.”
“제자야,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진지한 진원의 태도에, 고재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과자를 집어 들었다.
“아니, 근데 저런 꼬맹이 둘은 왜 부른 거야? 네 말투를 딱 들어보면, 무슨 던전이나 퀘스트 같은 게 터진 것 같은데?”
신혜진은 자리에 앉아 있는 고재원과 이서훈을 보며,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 내가 너보다 세 배는 더 살았겠다, 이 녀석아!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
“저도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고요! 무시하지 마세요!”
“아, 다들 설명해 줄 테니까 조용히 좀 해봐.”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벌써 이러면 어떻게 하냐.
진원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자신에게 시선을 모았다.
“잘 들어. 내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플레이어 이벤트 때문이야.”
“뭐? 이벤트?”
“그래.”
이벤트라는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럴 것이, 시스템의 알림도 없는데 플레이어 이벤트라니.
“아무래도 나한테만 알림이 온 것 같다. 지난 이벤트에서 1등에게 제공되는 혜택이라고 하네.”
진원은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일 정도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최대 4명까지 이벤트에 참가할 사람을 지목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고, 시야 선점이 힌트라는 거지?”
“그래.”
“그래서 우리 4명을 부른 거야?”
“일단은 그게 맞아.”
진원의 대답을 들은 신혜진은 팔짱을 끼며, 주위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김진원, 최은식, 그리고 꼬맹이 둘에 나 하나.’
이벤트가 참가하는 것은 둘째치고, 어린애 두 명은 무리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왜 이렇게 멤버를 구성했는지 질문했다.
“일단 이서훈은 아직 어려. 학생이 맞아. 웬만하면 안 부르려고 했지. 그런데 시야 선점이라는 힌트가 마음에 걸려서 불렀다. 이놈이 생각보다 그쪽으로는 도움이 되거든.”
“물론이죠, 형! 그동안 연습 많이 했다고요!”
이서훈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대답했다.
형의 부탁이라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는 분은 내 스승이다. 이름은 고재원. 나를 제외하고 여기서 가장 강하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제자야, 너 정말 많이 컸구나. 싸가지 없는 것도 같이 컸어! 껄껄!”
가만히 말을 듣던 고재원은 뭐가 그리 웃긴지 시끄럽게 웃어댔다.
“그리고 당연히 나와 함께 이벤트에 참가하는 거니까, 도와준다면 레전더리 아이템을 하나씩 줄게.”
“푸흡!”
“네에?”
“헉!”
신혜진은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는 말에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야, 잠깐만. 여기 있는 사람만 4명이야. 그럼 4개를 준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인당 1개씩 준다.”
“…도대체 어디서 났길래 그래? 돈이 문제가 아닌데?”
그녀는 진원의 파격적인 제안에 말까지 더듬으며 질문했다.
플레이어 이벤트.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소에 내던져진다.
‘그래도 레전더리 아이템이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지만 최소 수백억의 가격대를 형성하는 아이템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거기다 김진원도 같이 간다.
이전에 있었던 이벤트를 두 번 다 1등하고 돌아온 괴물 같은 녀석이라면, 함께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 레전더리 아이템 하나 장만할 때도 됐지.’
이 멤버로 이벤트를 참여한다고 하면 불안한 감이 있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만큼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그녀는 주위를 슥 훑어보고, 먼저 대답했다.
“좋아, 그럼 그때 돼서 미리 일정 빼놓을게.”
“저도 갑니다! 형!”
“형! 저도 갈래요!”
최은식과 이서훈도 이에 질세라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런데 제자야. 레전더리 아이템 하나가 얼마나 하느냐?”
진원이 고재원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길 잠시.
“껄껄! 제자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그도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남은 시간은 좀 있으니까, 그동안 최대한 스펙을 올려 둬.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그래. 그럼 아이템 줄 때 연락 줘.”
“잠깐만 있어봐. 곧 오니까.”
“뭐가?”
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신혜진을 다시 앉혔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밖을 보면, 울상을 지은 채로 걸어오는 브랜든과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여성이 보였다.
“아, 쟤가 걔야? 너한테 발렸다는 사람.”
“그래, 근데 너보다는 훨씬 셀걸?”
“뭐 어때. 나 건드리면 네가 혼내준다고 하면 되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길 잠시, 브랜든과 카밀라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다…….”
“안녕하세요, 김진원 님. 지난번에는 브랜든 님이 많은 실례를 끼쳤습니다. 모자란 금액은 빠른 시일내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툭.
힘없이 아이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브랜든.
카밀라는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보고,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진원에게 말을 건넸다.
“네, 그런데 이놈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아, 그거 말인가요? 김진원 님에게 대들다가 왕창 깨져서 그런 듯하네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속상했는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카밀라!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아, 저도 모르게 그만. 이만 가요.”
브랜든은 순간 카밀라에게 고함을 질렀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 어억!”
브랜든이 갑작스럽게 넘어졌다.
그의 비서, 카밀라는 바닥에 엎어진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카, 카밀라! 보고 있지만 말고 나 좀 도와!”
“그러게 누가 그런 스킬을 두 번이나 쓰래요?”
그녀는 브랜든을 일으켜, 어깨에 짊어지고 나갔다.
날씬한 체구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힘이었다.
“일단 아이템 하나씩 가져가.”
시선을 돌린 진원은 테이블 위로 아이템을 하나씩 늘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