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중국으로-3
“이곳을 전부 찾아보았지만, 사진과 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었어.”
“키긱!”
“없다고? 아버지가 분명히 이곳에 있다고 했다!”
블라즈코비츠는 아버지를 못 찾았다는 말에 순간 언성을 높였다.
“진정해라. 너희 아버지 우수하시다며. 다른 곳에 갇혀 있을 수도 있어. 꼭 구해드릴게.”
“알았다··· 미안하다, 진원.”
진원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 붉은 늑대의 보고를 기다렸다.
“주군, 이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통로로 향하는 곳을 지키는 인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붉은 늑대는 그 후 건물에 대한 구조와 적들의 규모에 대해 보고했다.
“생각보다 구조가 많이 복잡한 것 같네.”
아무래도 은밀하게 그녀의 아버지를 빼내는 것은 어려울 듯했다.
“그냥 이곳을 부숴버리는 건 어때?”
“뭐, 뭐라고?”
진원의 화끈한 제안에 그녀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중국에 쌓인 것이 좀 있거든. 신분을 들킬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야 상관없다. 하지만 진원. 네가 묠니르를 쓰거나 소환수들을 부린다면,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블라즈코비츠의 걱정스러운 말에, 진원은 괜찮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총잡이의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괜찮아. 이것만 끼고 할 거니까.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이곳을 뒤집어엎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
어차피 이 장소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없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입구는 무장한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차라리 주의를 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알겠다. 그럼 이걸 하나 더 마셔라.”
“···그거 꼭 마셔야 되냐? 아까 마셨잖아.”
“확실한 것이 좋다.”
그녀는 표정을 구기는 진원에게 연금술사의 물약을 쥐여 주었다.
꿀꺽.
“크으. 진짜 돌아가면 맛있는 거 잔뜩 먹어야겠네.”
“나도 같이 도와주겠다, 진원.”
블라즈코비츠는 품에서 추가적으로 포션들을 꺼냈다.
다양한 색을 띠는 포션들.
그녀는 연달아 포션을 삼키기 시작했다.
“끄으, 연속으로 마시니까 나도 힘들다.”
그녀가 마신 포션들은 일정 시간 동안 스텟과 함께, 신체의 내구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스스스.
잠시 후,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됐다. 지속 시간은 1시간 정도다.”
“그 정도면 괜찮겠지. 그리고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아버지를 구하러 왔는데, 딸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블라즈코비츠는 가죽 장갑을 착용하며 진원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가자.”
“나도 생각보다 강하다, 진원.”
둘이 연구소 방을 나오자,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던 사람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침! 침입······.”
“조용해라!”
블라즈코비츠는 재빠르게 남성에게 접근해 팔꿈치로 복부를 가격했다.
물약의 효과 때문인지 상당히 민첩해졌다.
뻐억!
“커억!”
남성은 무장한 상태였지만, 별 저항도 못 해본 채 그대로 몸이 허물어졌다.
그녀는 쓰러지는 남성을 받아 조용히 구석으로 치웠다.
‘좀 하네?’
제작 전문 계열인 플레이어라고 알고 있어, 전투 쪽은 기대를 안 했었는데.
“침입자다! 빨리 지원을 불러!”
“굳이 조심스럽게 처리할 필요는 없지!”
진원은 멀리서 달려오는 남성에게 접근해, 주먹으로 복부를 세게 밀었다.
“컥!”
터엉!
거구의 남성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봐준 거야.”
앞뒤 안 보고 힘껏 쳤으면 남성은 즉사했을 수준의 위력이었다.
근력 130의 위력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 그게 봐준 건가? 대단하다.”
“난 이곳저곳 부수며 주위를 끌 테니까, 그 사이 통로로 들어가라. 붉은 늑대, 따라붙어. 그리고 이 방을 나가면 알지? 되도록 말은 하지 마.”
“분부대로.”
“알겠다. 부탁한다, 김진원.”
블라즈코비츠 뒤로 실체화하지 않은 붉은 늑대가 따라붙었다.
진원은 주위의 거대한 모니터나 컴퓨터들을 부숴나갔다.
퐈악! 파사삭!
‘안 오면 니들 연구한 거 다 부서진다.’
그리고 일부러 주의를 끌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요란하게 행동했다.
“망할!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막아, 빨리 막아라!”
“스킬을 써라! 그냥 죽이라고!”
“빨리 왕 첸 님에게 보고부터 해!”
뒤늦게 온 지원 병력들은 진원을 향해 마나 건을 발사했다.
그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쏟아지는 탄환들을 모두 회피했다.
“아니?”
“프, 플레이어다!”
병력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방금 왕 첸이라고 했나?’
적당히 주의를 끌다가 블라즈코비츠와 합류하려 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런 우연이 다 있네. 눈에 보이는 건 전부 부숴줄게.’
그는 와인드 업 하고, 마구까지 사용해 연구소를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화속성이 부여된 마구는 불이 붙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다 옮겨붙었다.
화르르르!
“부, 불부터 꺼라! 침입자보다 연구자료가 먼저다! 빨리!”
진원은 호들갑 떠는 병력들을 무시한 채, 다른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도 더 있다고 했지.’
왕 첸.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지.
“스프링클러가 작동을 안 합니다!”
“그럼 소화기라도 갖고 오라고!”
무장한 병력들은 멀어져가는 진원을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 * *
같은 시각.
중국 광저우의 5성급 호텔.
왕 첸은 테라스에 놓인 침대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2주 정도 뒤에 연구 결과도 나온다고 했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겠네. 이연우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저, 왕 첸 님.”
왕 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사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뭐야. 결과가 벌써 나왔어?”
그는 검은 양복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건네받으며, 기분 좋은 듯이 말했다.
“급하시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야? 슈트에 관한 결과라도 나왔어?”
- 큰일 났습니다! 왕 첸 님!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거기다 굉음과 비명 소리까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왕 첸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 치, 침입자입니다!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인물 두 명이 난입했습니다! 특히 한 명은 연구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두 명? 너희들 설마. 겨우 두 명한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어느새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
왕 첸의 부하는 순간 겁을 먹었지만, 보고는 끝까지 마쳐야 했다.
- 한 명이 너무 강합니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며, 단순히 완력과 함께 불붙은 화염구를 던져대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피해가······.
“갑자기 뭐야! 바로 간다! A급하고 B급 플레이어들 최대한 호출해!”
- 예! 알겠습니다!
왕 첸은 사납게 전화를 끊고, 검은 양복에게 비행기를 예약하라고 명령했다.
“후, 갑자기 뭐지?”
겨우 플레이어 두 명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어떻게 알아냈지? 아니, 그전에.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온 거야?’
그곳은 슈트 개발을 위해, 자신이 비밀리에 지은 연구소다.
‘지금까지 부은 돈이 얼만데, 이대로 파괴되면 큰일이다.’
하필이면 차원 도약을 모두 사용해 버렸을 때 치고 들어오다니.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지금부터 출발해도 최소 4시간은 잡아야 한다.
“후우. 제발 데이터라도 보존해라. 그것조차 못하면 너희들은 그냥 벌레들이야.”
왕 첸은 표정을 험악하게 구기며 밖으로 나섰다.
* * *
연구소 내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넓고 복잡했다.
블라즈코비츠는 20분 가까이 수많은 연구실을 확인해나갔다.
‘음, 너무 많다. 이래서는 몇 시간이 걸려도 모자랄 거다.’
그녀는 눈앞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구실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진원이 도와주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른 블라즈코비츠가 발걸음을 떼길 잠시.
빠악!
“흡!”
“끄아아아!”
무장한 남성 하나가 그녀의 눈가를 스쳐 날아갔다.
‘모니터나 컴퓨터 같은 것들은 이쪽으로 오면서 깔끔하게 박살 냈다. 그런데 뭐 이렇게 많아?’
“히이익! 살려주십시오!”
소란을 알아차린 연구원들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밖으로 나왔다.
진원은 방에서 나오는 연구원들을 힐끔 쳐다본 뒤, 귀찮다는 듯이 손짓했다.
‘말을 못 하는 게 이렇게 답답할 줄은.’
이곳을 헤집어 놓은 인물들이 누구인지, 최대한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말은 최대한 아껴야 했다.
‘일단 이대로 계속 가자.’
진원의 손짓에 블라즈코비츠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손목 부근을 가리켰다.
‘1시간. 알고 있어.’
그녀가 지도를 보며 계산한 제한시간.
본격적으로 지원 병력들이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었다.
‘나도 스킬이나 장비 없이 모든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솔직하게 10분이면 그녀의 아버지를 데리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넓다. 도대체 연구실만 몇 개야? 이 새끼들 돈이 얼마나 많은 거지?’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컸다.
이어진 통로만 해도 3개는 더 있다.
‘시간 안에 다 살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 움직이고 있는 소환수는 쥐로 모습을 바꾼 꼬마 임프.
그리고 메시아가 만들어 낸 쥐들까지 광범위하게 수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아버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없었다.
“찾았어, 진원. 사진과 똑같은 남자야.”
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잘했어. 그래서 어디에 있어?”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방 안에 있어. 내 피조물들이 환풍구를 통해서 발견했어.”
“잘했어. 바로 가자. 안내해줘.”
“알았어.”
찌익!
통로에서 쥐 한 마리가 나타나, 진원에게 따라오라는 듯이 약하게 울었다.
툭.
진원은 블라즈코비츠에게 다가가 고개를 까딱였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신호.
‘알았다.’
그녀는 진원을 따라 빠르게 달렸다.
* * *
진원은 마주치는 병력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주먹을 뻗었다.
뻐억!
“끄아아아!”
“이게 도대체 무슨 힘이냐!”
“A급 플레이어들은 언제 오는 거냐! 호출했다면서!”
“망할! 아직 30분은 더 걸린다고!”
이제 그의 힘이 압도적인 것을 깨달았는지, 무장한 남성들은 오히려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어딜 튈려고. 한 놈도 안 놓친다.’
진원은 주위에 보이는 병력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해 나갔다.
많아야 주먹질 두 번 정도.
대부분은 한 방 만에 나가떨어졌다.
찍!
쥐는 두꺼운 철문 앞에서 멈췄다.
“여기야, 진원.”
‘그래. 여기는… 맨주먹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철판 표면의 색깔을 보면, 분명히 저건 마정석을 소재로 강화한 문이다.
‘카메라 같은 건 없고··· 주위에 기척도 없다.’
잠시 주위를 살펴본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묠니르를 꺼냈다.
“흐읍!”
티잉! 팅!
탱크의 포탄도 가볍게 막아내는 철문이 가볍게 부서졌다.
‘망할. 안쪽에도 문이 하나 더 있어? 도대체 이 안에 사람을 왜 가둬 놓는 거야?’
그의 눈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철문.
진한 색깔을 보면 이것은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