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중국으로-2
“김진원.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라. 내가 직접 만들었다.”
그녀는 발목까지 오는 높이의 남성용 부츠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연금술사의 강화 부츠]
총탄을 막아낼 정도로 강력한 내구력을 자랑한다.
종류: 장비
등급: 레전더리
효과: 마력+10 민첩+10 근력+10
제작자: 블라즈코비츠
“이걸 줘도 되냐? 내 길드에 들어오고 고대의 피를 사용하게 해준 것으로도 충분한데.”
레전더리 등급의 장비.
거기다 3가지의 스텟이 10씩 상승하는 효과.
자신이 현재 착용하고 있는 신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만 해도 3억 4천인데, 저건 거래소에 올리기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이겠네.’
블라즈코비츠는 그가 살짝 부담감을 느끼는 듯하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다. 이것을 받고 꼭 아버지를 구해줬으면 한다.”
“그래. 그건 걱정 마라.”
애당초 전투가 목적이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를 빼내기만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메시아. 이거 마셔 볼래? 네 거야.”
[고마워 진원.]
그는 부츠의 착용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대의 피를 꺼내 메시아에게 건네주었다.
꿀꺽.
[너무 맛없어.]
그녀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잘 마셨어. 응? 뭐야?”
그리고 진원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띠링.
[뱀파이어 군주에게 효과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
“특수한 조건이라고? 그런데 그게 뭔지는 안 가르쳐 주네.”
하지만 메시아는 이미 피를 마셨고, 옆에는 타이머까지 나타나 그를 재촉했다.
“일단 누르고 보자. 이대로 날려 버리는 건 아까우니까.”
진원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수락 버튼을 눌렀다.
[뱀파이어 군주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라고?”
고통을 이해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진원이 어이없어하는 사이.
“컥! 크억!”
“김진원! 갑자기 무슨 일이냐!”
[지, 진원!]
그는 갑작스러운 통증과 함께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미친……. 말도 안 되게 아프잖아!’
엄청난 고통.
지금껏 전투에서 느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장 목을 칼로 쑤셔도 이것보다는 훨씬 덜 아플 수준이었다.
“끄아아아!”
“주군!”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주인니임!”
그가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자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까지 나타나 안절부절못했다.
“잠깐 비켜봐라.”
블라즈코비츠가 진원에게 포션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방금 그 피 때문인가? 원인이라면 그것밖에 없다.”
“끄으…….”
한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원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허. 겨우 1분이라고?’
1분이 지나자 고통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말도 안 되게 아팠는데. 도대체 이 녀석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길래…….’
진원은 메시아를 보자 괜히 측은한 감정이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띠링.
[뱀파이어 군주가 힘의 일부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메시지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괜찮아? 진원?”
“그래. 어? 너 목소리가 나온다!”
“어? 어, 어째서지?”
그녀는 자신도 당황한 듯 손으로 목을 어루만졌다.
깊게 새겨져 있던 흉터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음? 메시아는 분명히. 말을 못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저 피의 효과임에 틀림없다.”
가늘고 얇지만, 확실히 들려오는 메시아의 목소리.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진원…….”
메시아는 자신이 말할 수 있음에 감동해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고생했다.”
“응.”
진원은 자신의 품에 안겨 오는 메시아를 굳이 밀쳐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많이 답답했겠지.’
그녀에게 있어 대화 상대는 자신밖에 없었을 테니까.
진원이 피를 건네준 아돌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때, 메시아가 자신의 품에서 떨어졌다.
“목소리 말고 달라진 건 없어?”
“있어. 이제 이게 가능해.”
그녀가 눈을 잡고 잠시 집중하는가 싶더니.
“키엑!”
박쥐 형태를 한 몬스터들이 10마리가 넘게 나타났다.
심연의 돋보기를 통해 본 적이 있던 피조물 생성.
아무래도 그 스킬인 듯했다.
‘지금까지 사용할 수가 없었나 보네.’
박쥐들은 메시아의 주위를 한동안 맴돌다가 사라졌다.
“좀 더 힘을 내면 이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 수 있어…… 그러려면 진원의 피가 필요해.”
“그래. 어쨌든 잘됐네.”
“응.”
항상 무표정했던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그럼 지금부터 작전 회의다.”
블라즈코비츠는 메시아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 * *
타이거 길드의 길드장실.
신혜진은 진원에게 볼일이 있어 전화를 거는 중이다.
“아. 이놈은 왜 또 연락을 안 받아?”
오랜만에 하는 연락.
듣기로는 이계 던전에 다녀왔다가 서울대학교 강화 훈련에 참가했다고 했는데.
“설마 그사이 또 던전에 간 거야? 대단하다 진짜. 내가 볼 때 저것도 중독인데.”
그녀는 통화가 연결되지 않자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엘리트 길드로 연락했다.
-엘리트 길드의 행정팀장 이시현입니다.
“아, 저 타이거 길드의 신혜진인데요. 김진원한테 볼일이 있는데, 그 녀석 지금 어디 있나요?
-안녕하세요, 신혜진 님. 사장님은 지금 중국에 가 계십니다.
“중국이요? 거긴 갑자기 또 왜?”
중국이라고 하니, 괜히 불안해졌다.
이놈 저번에 전시회에서 중국인 플레이어들한테 습격당했다고 보복하러 가는 거 아냐?
-아.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신혜진 씨랑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으신 것 같아서…….
이시현의 말을 끝까지 듣던 신혜진은 짧게 고맙다고 말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러시아의 연금술사랑 같이 중국에 갔다고? 그것도 단둘이? 이놈 도대체 뭐 하러 간 거야?”
진원에 대해 생각하니 괜히 불안해졌다.
같이 간 여성에 대한 걱정이 아니다.
“제발 중국에서 난동만 부리지 마라. 제발!”
이 시기에 문제라도 일으켰다가는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
물론 우리나라를 먼저 건드린 것은 중국이다.
그러나 놈들이 가진 힘이 너무나 강대했기 때문에, 한국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빨리 협회장님한테 연락 좀 해봐야겠어.”
그녀는 진원에게 본래의 용건도 잊어버린 채, 손태욱에게 급히 연락했다.
* * *
진원과 블라즈코비츠는 그날 새벽 호텔을 나섰다.
그녀의 아버지가 갇혀 있다는 연구소는 지도상에는 없다고 했다.
“다행이다. 아버지의 편지에. 연구소의 위치와 들어갈 방법까지 적혀 있다.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최대한 인적이 드문 장소를 통해 이동했다.
“그러냐.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 목 따가운데.”
진원은 그녀가 제작한 아이템이 불편한지 목을 긁어댔다.
“인식 저해 아이템이다. 오늘만 참으면 좋겠다.”
“그래. 알았다. 그래서 얼마나 더 가면 되냐?”
“거의 다 왔다.”
가만히 블라즈코비츠의 뒤를 따라간 지 40분.
그녀는 땅에 있는 맨홀을 유심하게 관찰했다.
“설마 이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든가 그런 것은 아니지?”
“진원, 날카롭다. 네 말이 맞다.”
악취만 안 났으면 좋겠는데.
“여기다, 진원. 잘 봐라. 다른 맨홀과는 다르다.”
그녀는 화려한 꽃문양이 새겨져 있는 맨홀을 가리켰다.
확실히 지금까지 지나쳐 오던 맨홀과는 다르긴 했다.
거기다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도 않은 구석진 곳에 있었으니.
“다르긴 하네.”
“여긴 원래 막힌 곳이라서 단순하게 힘으로 열어야 한다. 부탁한다.”
“그래.”
진원은 자세를 낮추고 맨홀 뚜껑을 살펴보았다.
“아예 못 열게 막아놨네. 이걸 써야겠는데.”
작은 홈까지 빈틈없이 막혀 있어, 묠니르를 꺼냈다.
“놈들이 눈치채면 안 된다. 힘 조절 잘해야 한다.”
“걱정 마라.”
그의 망치를 본 블라즈코비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톡. 톡.
망치로 못을 박듯이 살살 두드리길 수차례.
쩌저적.
맨홀 뚜껑에 조금씩 금이 가더니, 완전히 갈라졌다.
“좋아. 안내해.”
“고맙다, 진원.”
지하에 들어가니 몰려오는 퀴퀴한 냄새.
진원은 인상을 쓰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다, 진원.”
“이런 곳에서 뭘 연구하는 거야?”
복잡한 갈래 길을 여러 번 거치니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보이는 틈새로 바쁘게 지나다니는 연구원들을 가리켰다.
“아버지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지?”
“그렇다.”
“좋아. 일단 여기 있는 놈들부터 처리하자.”
둘은 숨을 죽이며, 연구소 밑을 통해 나아갔다.
“얘들아. 준비해.”
“맡겨주십시오.”
“응.”
쿠궁. 쿠궁.
“응? 너 무슨 소리 안 들렸냐?”
정신없이 연구를 진행하던 남성 한 명이 벽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가? 난 못 들었는데? 그것보다 빨리 결과물을 내야 하니까 집중해. 앞으로 2주밖에 안 남았다고!”
“그,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남성은 금세 신경을 끄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파사삭!
“아니? 끅!”
“커헉!”
연구실에 있던 두 명의 연구원들.
그들은 갑작스럽게 벽을 뚫고 나타난 붉은 늑대와 메시아에 의해 기절했다.
“좋아. 안 들킨 것 같네. 붉은 늑대. 메시아. 임프.”
모래를 털며 주위를 살펴본 진원은, 녀석들에게 블라즈코비츠의 아버지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맡겨줘.”
“분부대로.”
“키긱!”
사진을 잠시 들여다보던 메시아는 10마리의 쥐를 만들어 냈다.
임프도 변형을 사용해 하얀색을 띠는 쥐로 변했다.
스스슥.
작은 몸체를 가진 쥐들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연구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를 붉은 늑대가 실체화하지 않은 채로 따라갔다.
“이건…… 중국이 벌써 이걸 만들고 있다고?”
그사이.
모니터를 쳐다보면 블라즈코비츠는,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무언가를 확인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뭔데 그래?”
“아무래도 여기는 장비를 만드는 곳인 것 같다. 특히 플레이어에 특화된 장비.”
그녀가 능숙하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걸 봐라. 아무래도 이곳에서 수트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 같다.”
그녀가 띄워준 화면에는 고무 재질로 만든 듯한 전신 타이즈가 있었다.
“이게 수트라고? 그냥 쫄쫄이 같은데.”
“쉽게 볼 것이 아니다. 진원. 아직 연구 중인 것 같은데. 벌써 이 정도까지 진행했을 줄이야.”
블라즈코비츠는 손톱을 깨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플레이어 수트.
마정석과 과학력을 융합해 군사 무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미국까지 비밀리에 진행한 연구.
‘막대한 비용과 한계에 부딪혀서. 성공한 나라는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그런데 중국은 보란 듯이 샘플까지 만들어 냈다.
‘분명히. 이놈들은 아버지를 혹사시켰다.’
그녀가 이곳을 박살 내고 싶다고 생각하길 잠시.
메시아가 보낸 쥐들과 진원의 소환수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