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중국으로-1
1박 2일간의 강화훈련이 끝났다.
마지막 훈련인 던전 실습까지 깔끔하게 마친 학생들.
“아, 진심. 쓰러지겠다.”
“나도. 진짜 집에 가면 잠만 잘 듯.”
“그래도 레벨 좀 올리니까 뿌듯하네.”
다들 지친 얼굴로 버스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손하윤. 잠깐 이리 와 봐.”
“네? 왜요?”
진원은 버스에 타기 전, 학생들이 없는 장소로 그녀를 불러냈다.
“자. 너 주 스텟이 마력이라고 했지? 이거 써라.”
“어? 이거…… 유니크에 장신구잖아요? 진짜 저 가져도 돼요?”
제주도에서 보스를 처치하고 얻은 리치의 이어링.
마력 스텟 15와 함께 MP 회복량이 상승하는 유니크 아이템.
꽤 준수한 옵션이었지만, 자신이 착용하기는 싫었다.
‘귀걸이를 하는 것도 그런데, 생긴 것도 참…….’
애초에 액세서리, 특히 귀걸이는 정말 싫어하는 진원이었기 때문.
“난 귀걸이 싫어해. 딱히 줄 사람도 없고, 너 해라.”
“진짜 가져도 되죠? 나중에 뺏는 거 아니죠?”
“그래.”
“정말 고맙습니다, 오빠!”
손하윤은 진원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귀걸이를 재빠르게 가져가 착용했다.
“버스 출발하겠다. 빨리 가자.”
“네!”
그녀는 기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버스로 향했다.
해골 모양의 유치한 귀걸이였지만, 진원에게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너무해.]
“왜?”
진원의 옆자리에 앉은 메시아가 서운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아니야.]
“너한테는 더 좋은 걸 줄게. 걱정 마라.”
[정말이야?]
더 좋은 것을 준다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풀어졌다.
왠지 묘한 경쟁심을 느끼는 듯했다.
‘어쨌든 이걸로 레전더리 아이템을 받을 수 있겠네.’
그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총장실로 향하기로 했다.
* * *
서울과학수사연구소.
한참 동안 뭔가에 집중하던 블라즈코비츠가 탄성을 질렀다.
“드, 드디어 알아냈다!”
진원이 그녀에게 맡긴 고대의 피.
연금술사의 스킬을 사용해, 숨겨져 있던 효과가 어떤 것인지 알아냈다.
“음. 그런데 뭔가 애매하다. 분명히 등급은 레전더리인데.”
찬찬히 내용을 확인하던 그녀는, 다른 연구원들을 불러왔다.
“애매하네요.”
“확실하지가 않군요.”
“직접 사용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녀와 거의 비슷한 대답을 내놓은 연구원들.
블라즈코비츠는 고대의 피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고 싶었지만, 당장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만들어야 할 포션이 꽤 많다. 준비는 철저히 한다.”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연구원들에게 손짓했다.
“네.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연구원들은 드디어 자신들에게도 중요한 업무를 부탁하는 건가 싶어, 빠르게 다가왔다.
“국밥.”
“예?”
“순대국밥 잘하는 집으로. 배달 좀 시켜줬으면 한다.”
“아, 예…….”
기대를 안고 그녀에게 다가온 연구들은, 허탈하게 웃으며 배달 어플을 켰다.
* * *
서울대학교 총장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느긋하게 보고서를 읽던 총장 최준석.
“돌아오셨구만. 허허. 미리 꺼내놔야겠네.”
그는 학생들이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전, 진원에게 보여주었던 레전더리 아이템을 꺼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는데.”
본래는 졸업과 함께 약속한 아이템이었지만, 그가 미리 지급하려고 마음먹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플레이어 이벤트. 그리고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 또 언제 그런 일에 휘말려도 이상하지 않으니.”
과거의 일을 떠올려 보면, 진원에게 유독 불리한 조건으로 이벤트가 진행되었기 때문.
딸깍.
그가 아이템을 손에 쥐고 있길 5분 정도.
총장실의 문이 열리며 진원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진원 씨. 안 그래도 오실 줄 알고 미리 꺼내 놨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크이!”
“허허. 간식거리도 준비해야겠군요.”
최준석은 진원의 옆에 서 있는 콩콩이를 보며 과자들을 꺼냈다.
“학생들은 어떠셨습니까? 잘하던가요?”
“네. 앞으로 직업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견 길드 정도는 무난하게 들어가지 않을까요? 졸업까지 시간도 꽤 남았으니까요.”
이전에 강사 손지석과 잠깐 대화했을 때, 학생들은 평소 강도 높은 훈련에도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했으니.
“우리 학교가 본격적으로 나라에서 지원을 받고 있으니, 그만큼 결과를 내야 하거든요. 허허. 잘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는 진원에게 커피를 타 주고, 손에 있던 아이템을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진원 씨라면 약속을 어기지 않으실 것 같으니, 미리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더 좋겠지요.”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이전에 확인할 수 없었던 붉은 공.
아이템의 정체를 확인한 진원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템: 정체불명의 마블]
스킬에 알록달록한 색감이 추가될 수도 있다.
종류: 기타
등급: 레전더리
효과: 스킬에 무작위 특성을 부여합니다. 직업 스킬에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특성 부여 아이템이라. 거기다 스킬에다가 부여라니, 처음 봅니다.”
“허허. 제가 괜히 많은 돈을 들여가며 엄중히 보관한 게 아닙니다.”
장비에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아이템.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거기다 자신도 지금껏 획득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용할 스킬은 정해져 있지.’
직업 스킬에 사용할 수 없다면, 남은 것은 마구밖에 없다.
자신이 레벨1일 때부터 함께해온 스킬이었으니까.
띠링.
[정체불명의 마블 효과를 스킬:마구에 적용하시겠습니까?]
Y/N
진원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버튼을 눌렀다.
주르륵.
손에 잡혀 있던 붉은 공이 녹아내리며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응?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괜찮습니다. 제대로 적용되고 있어요.”
총장은 형태가 무너지는 아이템을 보며 불안한 듯했다.
띠링.
[스킬: 마구에 속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잠시 후.
메시지를 확인한 진원은 곧바로 스킬을 확인했다.
추가 효과: 화 속성을 가집니다. ON/OFF가 가능합니다. (화 속성 추가 대미지 +15퍼센트)
‘화 속성이라.’
거기다가 원할 때 원래의 마구로 되돌릴 수도 있다.
화악!
호기심에 마구를 한 번 사용해 본다.
검은색을 띠는 마구와는 달리, 화염에 휩싸인 공 하나가 나타났다.
“괜찮네요.”
“제대로 된 것 같아 다행이군요.”
무작위 특성 중 적용된 화 속성.
무난하게 좋은 속성이다.
웬만한 몬스터들에게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후회하지 않으신가요? 제가 볼 때 이건 돈을 줘도 못 구하는 아이템일 텐데요.”
이미 사용해 버렸지만, 스킬에 특성을 부여하는 아이템은 진원에게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허허! 아껴둬 봐야 뭐 하겠습니까! 제 주인을 찾아간 셈 쳐야죠. 국민들이 위험해지면 도와주시는 거로 충분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죠. 감사합니다.”
문명호에게 받은 칠지도, 그리고 총장 최준석에게 받은 정체불명의 마블.
이렇게 좋은 아이템들을 받고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저는 이후에 일정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해주십시오.”
“크이!”
밖을 나서는 진원의 뒤로, 콩콩이가 빵을 입에 문 채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 * *
다음 날, 진원은 국제공항에서 떨어진 장소에서 블라즈코비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의 약속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이 정도 스펙업을 했다면 바로 가도 문제없겠다고 판단했다.
“이게 위조 신분증에 여권이라 이거지. 그런데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손태욱에게 전달받은 신분증과 여권.
당연히 이름과 외모도 달라,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준이었다.
그러나 손태욱은 이미 이야기가 끝났으니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김진원. 미안하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약속 시간보다 20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블라즈코비츠가 배낭을 메고 뛰어왔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괜찮아.”
“후우. 일단 이걸 마셔라.”
그녀는 숨을 고르며 품에서 플라스크를 꺼냈다.
주황색을 띠는 액체.
[연금술사의 변신 물약]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맛이 특징이다.
종류: 비약
등급: 유니크
효과: 일정 시간 동안 외모를 바꿔줍니다.
제작자: 블라즈코비츠
“……이거 꼭 마셔야 하냐?”
“그렇다. 마셔야 한다. 확실한 것이 좋다.”
효과를 확인한 진원은 싫은 내색을 비췄다.
그러나 그녀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그의 눈앞으로 물약을 들이밀었다.
“그래. 그 고대의 피는 어떻게 됐어?”
“그거 다 마시면 바로 줄 수 있다.”
“그래, 알았다.”
후우.
카리나의 심장도 어떻게든 먹었다.
진원은 과연 그것보다 더 역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라고 하며 물약을 들이켰다.
“크으…… 뭐 이딴 맛이 다 있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최대한 신경 써서 만든 거다.”
그녀도 뒤이어 물약을 마시고, 두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스스스.
외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눈동자 색과 머리색, 그리고 피부색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진원의 모습은 겉으로 보면 외국인이라도 착각할 정도.
“여기 있다. 이걸 알아내는 데 꽤 고생했다.”
근처의 거울을 보며 변한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고대의 피를 꺼내 진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래, 고맙다. 그런데 목소리까지 바뀌네?”
“내 능력이 좀 좋다.”
자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들은 블라즈코비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 마족, 악마, 뱀파이어 종류의 대상에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상의 힘을 강화합니다.
‘역시. 고대의 피라길래 대충 예상은 했었는데.’
곧바로 메시아에게 건네주고 싶었지만, 우선은 중국으로 가는 것이 먼저다.
진원은 고대의 피를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 * *
무난하게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해,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변신 물약의 효과 때문인지, 중간에 속이 뒤집힐 뻔했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아. 그리고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 한 번 더 마셔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숙면을 취하던 블라즈코비츠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뭐라고?”
“지속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다. 하지만 걱정 마라. 충분히 만들어 두었다!”
그녀는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진원을 보며, 걱정 말라는 듯이 물약을 흔들어 보였다.
저 끔찍한 것을 몇 번을 더 마셔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왔다.
“일단은 숙소로 가서 회의한다. 정보를 충분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
그녀는 미리 예약했다는 호텔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아. 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네 것까지 충분히 들고 왔다.”
그녀는 기대하라는 듯이 빵빵한 배낭을 툭툭 쳤다.
“그러냐.”
둘은 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호텔에 도착했다.
사람 다섯 명은 충분히 잘 만한 넓고 호화로운 방.
“그런데 왜 방은 하나냐?”
“두 개 잡기엔 너무 사치다.”
“그렇긴 하겠네.”
그가 적당히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블라즈코비츠가 배낭에서 제작한 아이템을 꺼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