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강화훈련-1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실.
진원은 연옥에서 돌아온 뒤, 협회장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손태욱을 찾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시죠, 진원 씨.”
갑작스러운 그의 연락에도, 손태욱은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대답했다.
“크이!”
“허허, 콩콩이와 메시아도 왔구나. 잠깐만 기다려라. 마침 선물 받은 과자들이 있거든.”
손태욱은 진원의 곁에 있는 콩콩이와 메시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와작. 와작.
“크이! 크이!”
[맛있어.]
큰 접시에 가득 담긴 과자들.
콩콩이와 메시아는 과자를 먹으면서도, 서로 진원의 무릎 위에 앉으려고 다퉜다.
“얘들아, 정신 사납다. 둘 중 하나만 앉아.”
“크, 크이!”
[알았어.]
그의 말에 둘은 진지한 표정으로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크, 크이이이!”
[내가 이겼어. 빨리 내려가.]
애초에 콩콩이는 주먹이나 보자기밖에 못 내기 때문에, 메시아가 가볍게 승리를 가져갔다.
“다들 진원 씨를 좋아하나 보군요.”
손태욱은 자리에서 투닥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것 같네요. 아, 제가 만나자고 한 건 협회장님의 힘이 좀 필요합니다.”
“제 힘입니까. 진원 씨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저에게 가능한 것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손태욱은 진원이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온다는 것이 내심 기뻤다.
현재 그는 굳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한 플레이어였으니까.
“아, 그런데 연옥 2층을 클리어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곳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드리죠.”
현재 진원이 독점하고 있는 이계 던전.
그곳에는 어떤 몬스터가 있고, 던전 구조는 어떤지 호기심이 샘솟았다.
‘시간이야 충분하니까.’
진원은 자신이 연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해,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던전을 독점할 수 있게 된 것도 손태욱의 도움이 컸기 때문.
“정말 흥미롭군요. 말하는 몬스터라. 거기다가 2층, 부유섬···이라고 했습니까. 진원 씨조차 감당이 안 된다는 보스라니,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진원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손태욱은, 부유섬의 보스, 제왕에 대해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저 포탈에서 던전브레이크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2층이 저 정도면, 3층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몬스터가 있는 건지.
“아무래도 제왕이 상당한 이레귤러였다고 하네요. 물론 확실하지는 않지만.”
진원은 그의 표정을 읽고 안심하라는 듯이 대답해주었다.
“거기다 연옥에서 상당한 스펙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번 보시겠어요?”
진원은 상태 창을 열어, 손태욱에게 보여주었다.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스텟까지만.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상점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숨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 이건, 진원 씨의 상태 창입니까?”
“그렇죠.”
“허어, 도대체 이게 무슨······.”
손태욱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놀란 듯했다.
‘그에 대해서는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예상할 수 없군.’
유니크 직업이라 스텟이 5개인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모든 스텟이··· 100을 넘었다.
거기다 가장 높은 스텟은 160이라고?
‘진원 씨의 레벨은 66. 확실히 단기간에 이정도 성장을 한 플레이어는 없다.’
폭발적인 성장도 그렇지만, 진원은 레벨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랭커 중 전사 플레이어 한 명이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지. 자신의 주요 스텟이 150을 넘어간다면, 맨손으로도 탱크를 부숴버릴 수 있다고.’
그런 말을 했던 플레이어조차 레벨이 70에 육박하는데, 근력 스텟이 100을 넘기지 못했었다.
‘그의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강력하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레벨과 스텟을 보여주는 거지?
손태욱이 복잡한 표정으로 진원을 쳐다보았다.
“살면서 이런 수치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진원 씨보다 강한 플레이어는 없을 겁니다.”
“네, 그래서 세계 플레이어 랭크를 갱신하려고 합니다.”
“갱신. 그렇군요.”
현재 진원의 순위는 최하위권.
그가 세계 랭킹을 갱신하는 순간 1위가 될 것이다.
‘진작에 갱신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갱신을 한다는 것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진원의 의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레전더리 아이템의 독점권을 노리시는 거군요.”
“네, 먼저 협회장님께 보여드린 이유가 그겁니다. 이 정도 수치면 1위가 될 수 있을까 해서요.”
공식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손태욱은 랭킹 1위의 스펙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진원의 스텟이라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경력을 뚫고 확실하게 1위를 차치할 수 있으리라.
“다만 랭킹 갱신을 위해서는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각 나라의 협회장들 5명 이상의 인증을 받아야 하죠.”
손태욱은 랭크 갱신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네. 그럼 때가 되면 알려주시고,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위조 신분증에 관해섭니다.”
“예? 그건 갑자기 왜?”
뭔가 범죄의 냄새가 풍기는 단어.
손태욱은 진원이 위조 신분증을 요구하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블라즈코비츠. 아시죠? 러시아의 연금술사.”
“예, 유명한 분이더군요. 거기다가 얼마 전에 엘리트 길드 소속이 되었다고 하던데. 정말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진원 씨.”
“그 녀석을 도와줘야 할 일이 생겨서요. 자세한 건 말씀 못 드립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손태욱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위조 신분증이야 충분히 만들 수야 있다.
문제는… 그가 향하려는 곳이 중국인 것.
‘안 그래도 중국과의 관계가 안 좋은데, 진원 씨가 가서 문제라도 일으켰다가는…….’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중국 플레이어들이 한국으로 넘어와 깽판을 칠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는 만큼, 피해도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조용히 볼일만 보고 올 예정이니, 괜찮을 겁니다.”
진원은 손태욱의 걱정을 알기라도 하듯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진원 씨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가 없군요.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다른 볼일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크이!”
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콩콩이가 손태욱을 향해 손을 몇 번 흔들어주었다.
“그래, 또 오거라. 메시아도.”
끄덕.
진원이 완전히 협회장실에서 나간 것을 확인한 손태욱은, 그대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스읍! 후우. 허허··· 대한민국에 이런 보물이 있었을 줄이야!”
잠시 안정을 되찾은 그는, 곧바로 문명호에게 연락했다.
“대통령님. 예, 절대로 김진원 씨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면 안 됩니다.”
그는 들뜬 기색으로 통화를 이어나갔다.
* * *
서울대학교의 플레이어학과 강의실.
학과생들은 필수로 참가해야 하는 강화훈련의 공지를 보고 불만을 토해냈다.
“아, 미친! 도대체 뭐야? 여기 군대야? 매일 굴리는 건 그렇다 쳐도, 1박 2일은 뭐야?”
“그 대신에 장학금 비율을 엄청나게 높였잖아. 난 그래도 몸이 적응했는지 할 만하더라.”
남학생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 손하윤이 앓는 소리를 내며 강의실로 들어왔다.
“아··· 죽겠다.”
왜 이렇게 빡세냐며 대화를 나누던 남학생들은 그녀를 보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학과의 유일한 A급 플레이어답게, 개인 트레이너가 붙었었다.
‘그래도 쟤만큼은 아니지.’
그리고 학과생 중 가장 강도가 높은 훈련을 받았다.
“헤헤···….”
그녀는 책상 위에 엎어져 지친 듯이 한숨을 쉬다가, 스마트폰을 보고 실실 웃었다.
“···너무 힘들어서 맛이 갔나 봐.”
“조용히 해! 다 들리잖아!”
손하윤은 학과 공지를 읽다가, 김진원도 이번 훈련에 함께 한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S급 플레이어 김진원 씨도 훈련에 참여하니, 반드시 전원 참가 요망.
그녀는 달라진 자신의 힘을 진원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 * *
다음 날 아침.
콩콩이가 신난 듯이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다.
“크~크이! 크이!”
“그렇게 좋냐? 짜식.”
“크이!”
이번 강화훈련에는 콩콩이도 데려가기로 했다.
녀석은 오랫동안 안에만 있었으니 지루하기도 했을 것이다.
교수에게는 허락을 맡았으니 딱히 문제는 없겠지.
“가자. 하루만 지나면 바로 레전더리 아이템 획득이다.”
“크이!”
차를 끌고 집합장소에 도착하자, 버스가 세 대 대기하고 있었다.
“아, 오빠! 콩콩이도 안녕!”
“크이!”
“어? 그런데 얘 꽤 큰 것 같은데?”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진원을 발견한 손하윤이 달려온다.
그녀의 팔이나 다리에는 파스들이 여러 개 붙여져 있었다.
“훈련 열심히 하나 보네.”
“네! 그런데 웬일이에요? 오빠, 시험 말고는 학교 안 오잖아요.”
“총장님이 참가하면 좋은 거 주신대서.”
“진짜요? 뭔데요?”
“그냥 아이템. 더우니까 좀 떨어져 봐.”
진원은 자연스럽게 달라붙은 손하윤을 떼어내고, 앞쪽에 서 있는 교수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일정표를 꼼꼼히 점검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진원 씨. 진원 씨는 그냥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손영철은 그를 보며 일정표를 하나 건네주었다.
‘오, 생각보다··· 빡세게 굴리는 거 같네.’
내용을 확인한 진원은 예상보다 강도 높은 훈련에 감탄했다.
‘마지막에는 4인 1조로 D급 던전에 들어간다라.’
최근에 훈련이 힘들어졌다고 듣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 내용 때문인 듯했다.
잠시 후.
진원이 버스가 올라타기가 무섭게, 손하윤이 그의 등 뒤로 바짝 달라붙었다.
‘오빠 옆에 앉을 기회!’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생들, 심지어 남학생들까지 진원의 옆자리에 앉고 싶어 했다.
얼마 전 유투브에 업로드된 제주도 영상을 본 남학생들에게 있어서, 진원은 존경의 대상.
‘난 바로 가방부터 날린다.’
‘난 몸부터 날린다.’
본인은 모르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는 와중.
스스스.
[나 여기 앉을래.]
“그래.”
메시아가 버스의 중앙좌석에 나타났다.
진원은 자연스럽게 메시아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아··· 오빠 옆자리.”
“쩝.”
손하윤과 학생들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툭툭.
“응? 왜 그래 콩콩아?”
“크이!”
콩콩이가 같이 앉아주겠다고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풉, 그래.”
“자, 그럼 인원도 다 모였고. 훈련장으로 출발합니다.”
교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버스들이 한 대씩 출발했다.
마치 MT를 가는듯한 분위기.
학생들은 저마다 풀어진 기분으로 잡담을 나눴다.
‘나중에 힘들 텐데, 그냥 놔둬야겠군.’
교수는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을 제지하지 않고, 앞자리에서 다시 한번 일정표를 체크해 나갔다.
* * *
버스는 2시간가량 달려, 야영장이 연상되는 산속에 도착했다.
앞쪽에는 허름한 시설과 함께, 선글라스와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이 뒷짐을 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 야··· 이거.”
“조졌네.”
“미치겠네. 나 아직 근육통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