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부유섬-6
‘아무리 빨리 휘둘러도 나에게 닿을 리가 없겠지.’
제왕은 자신의 안면에 다가오는 무기를 느끼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피하고 녀석을 쓰러트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는 진원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진원에게 죽을 계획이었다.
‘언제까지고 고독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제왕은 보스의 힘을 계승 받아 무장이라는 특별한 힘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족쇄가 되어, 그를 부유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죽기 전에··· 나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저 인간의 모든 힘을 느껴보고 싶군.’
그는 진원의 무기를 쳐낼 생각으로 손바닥을 들었다.
빠각!
“···그 무기. 평범한 무기는 아니군.”
제왕은 기괴하게 뒤틀린 오른손을 뒤로하고, 빠르게 물러났다.
“너, 일부러 봐주는 거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거라. 앞서 말했듯이, 난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이니까.”
진원은 자신의 공격을 일부러 허용해주는 놈을 노려보았다.
놈의 날렵했던 움직임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난 남자다운 싸움을 하고 싶다. 여기에 어울려 주지 않겠는가? 죽기 전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지 멋대로네.”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진원은 묠니르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놈의 오른손을 응시했다.
‘무장이 없으면 피해를 입는 건가.’
놈이 아무리 보스의 힘을 계승 받고,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거쳤다고 해도.
‘결국엔 인간의 몸이라는 거네.’
제왕은 그사이 오른손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진원을 향해 달려왔다.
빠악! 퍼억! 뻐억!
그 뒤로 시작된 난타전.
부유섬 심장부의 지면이 울릴 정도의 충격.
진원과 제왕은 서로 물러나지 않고 공방을 주고받았다.
“뭐, 뭐지? 도대체 저 인간은 정체가 뭐죠?”
타노아는 보스에게 망치를 휘둘러대는 진원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분명히 저 플레이어는 소환사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소환사가 저렇게 단독으로 강력한 힘을 낼 수가 있지?
‘에픽 무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납득이 안 가.’
녀석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하자, 혼란스러운지 공중을 산만하게 날아다녔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부유섬의 보스가 된 거지? 거기다 왜 저렇게 강한 거야!’
이곳은 부유섬 2층.
저 인간들은 부유섬 3층도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힘을 자랑했다.
“사, 살아나갈 수 있을까?”
저 인간이 보스에게 지기라도 하면, 자신 또한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진원은 절대 안 져!]
“히익! 죄송합니다!”
메시아는 타노아의 혼잣말을 듣고 목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붉은 늑대도 진원이 싸우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전투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따로 생각이 있다는 그의 말에 움직이지 않았다.
“이길 겁니다. 적어도 저는 김진원 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관리자 역시 주먹을 불끈 쥐며 진원이 승리하길 빌었다.
빠악! 퍼억!
진원과 제왕이 말없이 공방을 주고받던 중, 결국 제왕이 먼저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흐흐흐.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모르겠군.”
그는 만신창이가 된 전신을 보며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무장을 사용했더라면 미미한 피해로 그쳤을 수준.
이런 기분 또한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허억, 미친놈이네.”
진원 역시 절반 이하로 줄어든 HP를 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놈이 봐준 수준이 이 정도라니.
띠링.
[명예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희석된 엘릭서를 꺼내 회복하는 사이.
‘이걸로 150포인트 모았다.’
메시지를 확인한 진원은 곧바로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심연의 마누스의 특수 행동, 부패의 균열을 구매했다.
제왕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기합을 넣으며 무장을 사용했다.
“이제는 즐길 만큼 즐겼다. 제대로 한 방 날리겠다. 부디, 죽지 말아주게.”
그는 진지해진 눈빛으로 정권 자세를 취했다.
“이걸 막거나, 맞아도 살아있다면 내가 진 걸로 하겠다.”
제왕의 왼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무장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진한 색깔.
“얘들아! 모두 나와라! 달려들 생각하지 말고 막아!”
“분부대로.”
[진원. 저거, 위험해 보여.]
놈의 왼손에 맺힌 기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알 수가 없다.
섣불리 달려드는 것은 위험하다.
‘눈으로 확인하고 받아치는 쪽이 낫겠어.’
그의 지시에 소환수들이 앞쪽에 자리 잡았고, 양 옆으로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위치했다.
“마누스, 내가 신호하면 부패의 균열을 사용해라.”
끄덕.
마지막으로 진원이 소환한 마누스는 가만히 제왕을 응시했다.
“역시 뭔가를 숨기고 있었구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만! 하압!”
제왕은 마누스를 신기한 듯이 훑어보고, 스킬: 무장 폭열권을 사용했다.
그가 보스가 되고 얻은 유일한 스킬.
무장의 힘을 한 지점에 응축한 뒤, 그 기운을 방출해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얘들아!”
“맡겨주십시오!”
[맡겨줘!]
한 줄기 빛처럼 쏘아지는 제왕의 공격.
진원이 와인드 업 하는 사이, 소환수들이 스킬을 사용해 제왕의 공격에 대비했다.
[꼬마 디멘션 워커가 뒤틀린 차원: 메가모프를 사용합니다. MP를 600 소모합니다.]
[메시아가 밤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HP를 500 소모합니다.]
[붉은 늑대가 스킬: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쿠아앙!
진원이 던진 묠니르가 허무하게 튕겨 나가길 잠시, 소환수들이 온 힘을 다해 제왕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대로 조금만 버텨라! 마누스! 지금 사용해!”
끄덕.
띠링.
[심연의 마누스가 부패의 균열을 사용합니다. HP와 MP를 500 소모합니다.]
마누스 소환 시마다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킬, 부패의 균열.
‘저놈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이 기회다.’
촤악! 촥!
마누스의 손짓에, 지면에서 거대한 가시들이 하나씩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검은색을 띠는 가시들은 빠른 속도로 전방으로 나아갔다.
“음? 저건?”
제왕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힘을 느끼고, 순간 눈을 크게 뜨며 스킬을 거뒀다.
“저런 소름 끼치는 힘이라니! 날 정말 즐겁게 해주는구나!”
그는 신난 듯이 웃으며 오히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크아아아!”
무장을 유지한 채로, 가시들을 막아내려는 의도인 듯했다.
그러나 마누스가 소환한 것은 부패의 효과를 가진 가시.
제왕의 손이 가시에 닿기가 무섭게, 그의 신체가 급속도로 썩어들어갔다.
“크, 크하하하하! 엄청나다! 이건 정말 엄청나구나! 재밌었다! 인간!”
그의 팔은 순식간에 썩어 없어졌고, 곧이어 전신까지 검게 물들며 무너져 내렸다.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
띠링.
[보스: 부유섬의 제왕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항마력이 영구적으로 50 상승합니다.]
[명예 포인트를 30 획득하였습니다.]
[연옥 2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B
추가 보상: 상급 마정석 1개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후우, 이번엔 진짜 운이 좋았네.”
진원은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HP와 MP가 위험할 수준으로 깎여나갔다.
놈이 봐준 것이 이 정도였다.
“주군, 죄송합니다.”
[진원… 피가 필요해.]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까지 너덜너덜해진 상태.
“그래, 다들 고생했다.”
진원은 소환수들이 회복할 때까지 MP포션을 연달아 마셨다.
그 사이, 메시아가 진원의 팔을 물고 체력을 보충했다.
“순식간에 죽었어··· 방금 저건 뭐였지? 뭐야?”
“켁! 저, 저도 처음 봅니다!”
타노아는 관리자의 목을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메시아가 잠시 녀석의 줄을 놓아줘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마누스가 사용한 스킬을 보고 상당히 놀란 듯했다.
‘1층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저런 건 없었는데. 어쨌든 무서운 인간이다.’
관리자는 김진원한테 절대로 대들지 않겠다고 명심했다.
타노아와 관리자가 멍하니 보스가 서 있던 장소를 바라보던 사이.
“후, 이제야 괜찮은 것 같네.”
진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MP포션을 20개가 넘게 사용하고 나서야, 소환수들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메시아 또한 피해가 컸는지, 상당히 오랫동안 자신의 피를 빨았다.
띠링.
“뭐야?”
그가 일어나기 무섭게, 눈앞에서 메시지가 연달아 나타났다.
[스킬: 무장을 계승 받으시겠습니까?]
Y/N
#무장을 계승 받으면 부유섬-심장부 밖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안 받지. 미쳤냐?”
진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빠르게 거절했다.
무장의 힘이 확실히 강한 것은 맞지만, 던전에서 나갈 수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괜찮네.”
[항마력 100 달성으로 인해 모든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카리나의 심장이 상점에 추가되었습니다!]
제왕을 잡아 2레벨 업에, 모든 스텟 10 상승.
나쁘지 않은 보상이지만, 아이템이 없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그런데 카리나의 심장? 이건 전부터 도대체 뭐지?”
예전, 카리나의 심장을 보호하는 퀘스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연옥 1층에서도 그렇고, 2층을 클리어하니 상점에 추가가 되어있다니.
“일단 뭔지 확인이나 해보자.”
[아이템: 카리나의 심장]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는 심장. 몬스터들이 섭취해도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종류: 비약
등급: 레전더리
효과: 1. 모든 스텟 +10 2. 정신계열스킬에 면역.
구매제한: 항마력 100 이상
가격: 1골드
“면역이라고?”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한 진원은 순간 소리를 질렀다.
스텟이 상승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면역 효과를 가진 아이템은 본 적도 없다.
“거기다가 계열 스킬이 모두 면역이라니···….”
정신계열의 스킬만큼은 레벨로써 대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들이 작정하고 정신계열 스킬만 사용한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상대하기 귀찮았으니까.
거기다가 가격은 겨우 1골드.
“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쿠구구궁!
“헉! 김진원 님!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불안한 기운을 느낀 관리자가 진원에게 다가왔다.
[1분 뒤, 부유섬이 붕괴합니다. 연옥 3층은 로비를 통해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래, 바로 나가자.”
“김진원 님! 저도 같이 가요!”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진원 역시 메시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포탈에 몸을 맡겼다.
* * *
연옥의 로비로 돌아오자, 관리자와 뒤따라온 타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 지옥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지?”
“그냥 3층에 있을 걸··· 괜히 나와 가지고!”
진원은 녀석들을 보며 피식 웃은 후, 고추참치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고생했다.”
“우왓! 감사합니다아!”
“이, 이것이 그 귀하다는 지구의 음식!”
녀석들의 죽을 것 같던 표정도 잠시, 각자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어쨌든 난 돌아갔다가 나중에 올 테니까,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진원은 로비의 구석진 곳에 생성된 포탈을 슥 쳐다보았다.
‘연옥 3층이라. 클리어까지 이제 한 번이다.’
타노아와 관리자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