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부유섬-3
‘묠니르라, 후후. 거기다 저 인간, 꽤 강해 보이기도 하잖아?’
타노아는 진원에게 최대한 악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으읍! 읍!”
“넌 갑자기 뭐하냐?”
그는 아까부터 제대로 말을 못 뱉는 관리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자 녀석은 눈짓으로 타노아를 열심히 가리켰다.
“풀어.”
“네?”
“저거 네가 한 거 아니냐?”
그의 말에 타노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어쨌든 생각은 결정은 내리셨나요?”
당연히 진원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리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한 요정이 자신을 아무 대가 없이 도와준다?
거기다 이곳은 연옥 2층의 던전.
의심부터 하는 건 당연하다.
“거기 그대로 있어 봐.”
“네?”
그는 허공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는 타노아에게 백과사전을 사용했다.
“그건 뭔가요? 아니!”
타노아는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을 보며 순간 눈을 빛냈다.
그러나 녀석은 백과사전의 옵션을 확인하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도대체 인간이 왜 저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거야!’
레전더리 등급의 감정 아이템.
분명히 저 인간은 아이템을 자신에게 사용하려는 속셈이다.
저 정도의 등급이면 자신의 본색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타노아는 백과사전을 파괴할 생각으로 작은 팔에 기운을 담았다.
스스스.
“허튼짓하면 베겠다.”
[움직이지 마.]
그러나 아이템에 근접하기도 전에, 진원의 곁에서 나타난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들은 각자 위협하듯이 칼과 손가락을 들어 타노아를 가리키며 경고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내가 만만해 보이냐?”
“······.”
그리고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
얼마 전 아이템의 효과를 받아 민첩 스텟 100을 달성한 진원이다.
타노아의 날렵함은 충분히 눈으로 포착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별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 플레이어라고 해도 겨우 인간! 넌 왜 그렇게 건방진 거야!”
타노아는 어차피 자신의 정체가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 힘을 사용했다.
파즈즈!
타노아의 머리 위로 수많은 바늘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겉으로 봐도 수천은 넘어 보이는 숫자.
“으읍! 푸하! 김진원 님! 저 녀석 위험한 놈이에요!”
관리자는 말문이 트이자마자 진원의 등 뒤로 가 숨었다.
[타노아]
설명: 연옥 3층에서 종종 나타나는 몬스터. 플레이어들을 도와주는 척하며 배신하는 걸 즐긴다.
- 공략 포인트: 타노아는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다. 레벨 70 정도는 넘겨야 싸워 볼 만하다.
“그래, 그런 것 같네.”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라.
“이 정도로 스텟을 올려놨는데 노란색이라 이거지.”
현재 자신의 레벨은 64.
그러나 스텟과 스킬, 그리고 아이템을 종합한다면 그보다 훨씬 높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어디 한 번 와봐. 별거 없겠는데?”
진원은 타노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도발했다.
“이익! 내 힘이 두렵지 않아? 이 수천 개의 바늘이 네 몸을 꿰뚫어 버린다고! 그리고 네가 죽으면, 그 뒤에······.”
“말이 많다. 내가 먼저 갈까?”
“이익! 건방진 인간 놈이이이!”
하늘을 가득 메운 바늘.
자신이 손가락만 까닥인다면, 일제히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그냥 죽여야겠어.’
타노아는 오히려 재밌다는 듯이 웃는 진원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메시아, 어때. 저것들 막아낼 수 있겠어?”
그의 말에, 메시아는 타노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쉬울 것 같아.]
“이익! 그냥 다 죽어!”
타노아의 손짓에 가느다란 바늘들이 일제히 쏘아졌다.
쉬쉬쉭!
[메시아가 밤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HP를 500 소모합니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메시아는 재빠르게 장막으로 부유섬 전체를 감쌌다.
“그래 봤자 잠깐이겠지!”
타노아는 쏘아지는 바늘에 더욱 힘을 실었다.
시간이 지나고, 구체형태에 빈틈없이 박힌 바늘들.
“도대체 뭐야? 분명히 내가 가진 힘을 최대한 사용했는데······.”
타노아는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구체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스스스.
잠시 후.
밤의 장막이 사라지자마자 타노아의 머리 옆으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뭐, 뭐야?”
녀석은 당황하며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그것은 진원이 날린 마구.
마력과 근력이 세 자릿수를 넘겨 더욱 강화된 스킬.
진원이 최대한 스킬에 힘과 제구력을 실어 녀석에게 날렸던 것.
‘아, 안 보였어? 뭘 한 거지?’
와인드 업 자세에서 돌아온 그는, 당황해하는 타노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 나한테 죽을래, 아니면 히든 피스 가르쳐주고 죽을래?”
* * *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분위기.
이시현은 업무용 자리에서 취미인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었다.
‘사놓고 15일 동안 조립하지 못한 한정판을 드디어!’
들뜬 기분으로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부하직원들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그가 무엇을 하는지 힐끔거렸다.
‘직원들 뽑으니까 이제야 여유가 생기네.’
이시현은 오늘 별로 할 일도 없으니 마음껏 취미 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딸깍. 딸깍.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변한 그는 부속품들을 서서히 조립해나갔다.
한편.
최은식은 모니터에 유투브를 켜놓고 뭔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시현에게 손짓했다.
“흐음··· 이시현 씨, 이거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아 보여요?”
“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는 조립부품들을 한곳에 조심히 모아놓고, 최은식이 앉아있는 자리로 향했다.
제목 후보: 1. 제주도의 구원자 김진원의 하이라이트 모음.
2. 엘리트 길드의 길드장 클라쓰가 이 정도입니다.
3. 응. 그거 아니야. 김진원에게 참교육 당하는 몬스터들.
“이거 중에 어느 것이 조회 수가 많이 뽑힐 것 같나요?”
“그냥 세 개 중에 아무거나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영상 퀄리티야 사장님을 이길 만한 플레이어가 또 있을까 싶네요.”
“그러면 안 됩니다!”
최은식은 적당히 대답하는 그를 향해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
형이 명예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모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설명까지 붙여서.
“그, 그렇군요. 제가 볼 때 2번이나 3번이 나아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번 쪽이 좋습니다.”
“역시 이시현 씨도 그렇죠?”
이시현은 최은식의 열정에 말려들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곧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앞으로 10포인트 정도만 모으면 된다고 하셨지!’
형은 현재 연옥 2층에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스킬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안정적일 것이다.
‘어그로 최대한 끌릴 만한 거로 찾아보자.’
최은식은 수십 장의 섬네일 후보들을 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 * *
연옥 2층의 부유섬.
“흐윽! 죄송해요! 주제를 모르고 나대서 죄송해요!”
타노아는 얇은 밧줄로 목이 묶인 채, 눈물을 흘려댔다.
그리고 그 밧줄을 잡은 메시아와 무섭게 타노아를 쏘아보는 붉은 늑대.
“너, 머리 좀 쓰네. 진짜 죽이려고 했는데.”
“으아앙! 죽이지 마세요오! 잘못했어요!”
“아, 시끄럽네. 계속 울면 뚝배기 날려버린다.”
진원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타노아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끅! 히끅!”
5분 전의 자신감 있는 태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원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낀 타노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히든 피스를 자신이 직접 찾아내겠다는 말까지 했다.
“김진원 님.”
“왜.”
“저한테는 잘 대해주신 거였군요.”
관리자는 벌레 취급당하는 타노아를 보며 속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저··· 그런데 주인님.”
[네가 뭔데 진원을 주인님이라고 불러?]
“히익!”
주인님이라는 말에, 메시아가 화가 난 듯 잡고 있는 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기, 김진원 님!”
갑작스러운 메시아의 살기.
타노아는 곧바로 호칭을 바꿨다.
“왜. 히든 피스 찾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찾아내면 정말 저를 보내주시는 건가요?”
타노아는 간절한 눈빛으로 진원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인간은 마음이 여리다고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니.”
그러나 그 간절함은 고작 1초 만에 부서져 버렸다.
“그래서 건너뛸 수 있는 구간이 어디라고?”
“네··· 여기서 넘어가서 3번째 구간. 거기서 6번째 구간으로 점프할 수 있어요.”
타노아가 부유섬을 가리키길 잠시.
꼬르르륵.
녀석의 배 속이 진동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관리자를 바라보며,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저는 또 갑자기 왜!”
“스읍! 김진원 님! 저 못생긴 녀석.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이대로면 저 죽어버릴 것 같아요······.”
관리자는 타노아를 보고 기겁했다.
그러나 녀석은 개의치 않고 진원을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다.
“네가 지금 어떤 처치에 있는지 모르나 본데.”
그는 대답 대신 묠니르를 치켜들었다.
“히익! 잘못했어요! 그런데 저 정말 오랫동안 굶었다구요! 이러다 정말 죽어요! 그럼 히든피스도 못 찾는다구요!”
타노아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도, 필요한 말은 꼬박꼬박 뱉었다.
“경우에 따라서 엄청 좋은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어요! 정말이에요!”
“쯧, 구라면 알지?”
진원은 상점을 열어 음식을 몇 개 건네주었다.
물론 저 녀석에게 정보를 캐내고 죽여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죽으면 히든 피스를 얻은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설명에 일단 살려두기로 했다.
“이, 이건······.”
통조림을 두 손으로 들고 조심스럽게 맛본 타노아.
그녀는 잠시 후, 음식에 머리를 박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이 기름이 넘치는 맛! 도대체 어떤 몬스터지? 새빨간 색이라면······.”
타노아는 진원이 건네준 고추 참치를 먹으며,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어요!”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으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타노아.
진원은 녀석을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너. 이거 내가 사는 곳에서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여, 역시 귀한 건가요. 그런 엄청난 음식을 저한테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타노아는 진원을 보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자신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처지.
히든 피스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그래. 그리고 나만이 이 음식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내 부하가 된다면, 이거 하나씩 먹게 해 줄 건데.”
진원의 목적은 타노아를 완전히 길들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고추 참치를 보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에, 분명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녀석은 연옥 3층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곳에 대한 정보도 꽤 가지고 있을 터.
차라리 길들여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나한테 위협적인 수준도 아니고.’
타노아가 뒤통수라도 치려고 한다?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할게요! 전 지금부터 김진원 님의 부하입니다! 제발 시켜주세요!”
타노아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오히려 부탁해왔다.
어차피 히든 피스를 찾아도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부하가 되어 맛있는 음식을 받아먹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진원은 실실 웃으며 타노아에게 고추 참치 1캔을 던져주었다.
“앞으로 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