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부유섬-2
“그래, 작은 섬마다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면 다리가 생긴다고 하네.”
“오오, 그것 참 다행이군요. 알겠습니다!”
관리자는 진원의 자신감 있는 행동에 표정이 밝아졌다.
‘연옥 2층. 특히 부유섬 같은 경우는 클리어 확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다른 행성의 플레이어들은 클리어 자체를 못하고 죽어 나갔으니.’
그런데··· 저 인간을 보면 단신으로도 부유섬을 클리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띠링.
잠시 후, 알림음과 함께 도착한 메시지.
진원은 내용을 확인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게 다야?”
[부유섬1의 요구]
조건: 지면에 누워 10분 동안 하늘을 바라보기.
보상: 3분간 다리생성
“엥? 뭐지?”
그리고 그것은 관리자도 마찬가지.
“뭔가 이상하네요. 진짜 부유섬 맞나?”
“뭐 아는 것이라도 있냐?”
“예? 저도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연옥 2층인데 너무 쉬운 것 아닌가 싶어서요.”
녀석은 진원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연옥 2층 정도 되면 플레이어들이 10분마다 2명씩은 죽어 나가는 수준이라고 했는데.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일단 저쪽으로 건너가려면 조건을 만족시켜야겠네.”
진원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묠니르를 꺼내 놓은 뒤, 자신의 팔을 베개 삼아 그대로 누웠다.
“너도 누워.”
“예?”
“그래야 다리가 생길 거 아냐.”
“아, 예…….”
관리자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그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누웠다.
“뭐지. 진짜 10분 동안 이러고 있으면 끝이야?”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한 지 8분째, 진원은 완료까지 2분 남았다는 메시지를 보며 허탈한 듯 웃었다.
혹시나 무슨 상황이 발생할까 싶어 전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저 망할 놈들만 없어도 편안하게 누워있으면 되는데 말이죠.”
관리자는 부유섬의 밑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망령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윽박질렀다.
“기이이익!”
“크아아악!”
그러나 오히려 놈들을 자극했는지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
이쪽으로 떨어지기만 하면 물어 뜯어버리겠다는 분위기.
관리자는 괜히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래도 저기는 떨어지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 응?”
쿠구구궁!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유섬이 갑작스럽게 밑으로 하강했다.
“이런 X발! 역시 뭔가 있었잖아!”
진원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을 불러냈다.
“기이익!”
“크이익!”
망령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진원과 관리자를 보며 격하게 반응했다.
“얘들아, 최대한 이놈들한테 닿지 마라!”
“분부대로.”
[알았어.]
진원은 팔을 휘적거리며 부유섬 위로 올라오려는 망령들에게, 묠니르의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파지지직!
“그이이!”
“크아악!”
묠니르에서 사납게 튀던 전격을 맞은 놈들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망령들은 부유섬을 둘러싸고 다시금 팔을 휘적거렸다.
“힉! 김진원 님! 살려주십시오!”
관리자는 어느새 진원의 다리를 붙잡고 겁에 질린 듯 몸을 떨고 있었다.
“넌 그대로 가만히 있어라!”
“예, 옙!”
“얘들아! 스킬 아끼지 말고 갈겨!”
“맡겨주십시오.”
[알았어!]
진원이 망령들에게 묠니르를 힘껏 던진다.
놈들이 주춤하던 사이, 붉은 늑대와 메시아를 비롯한 소환수들이 놈들에게 스킬을 퍼부었다.
[붉은 늑대가 스킬: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메시아가 다크레이를 사용합니다. HP를 300 소모합니다.]
[꼬마 마도사가 버스트를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죽어라! 죽어! 벌레들아!”
그러나 망령들은 진원과 소환수들의 공격을 아무리 맞아도, 외형조차 변하지 않았다.
“크아!”
“구아아!”
잠깐 고통스럽다는 듯이 비명만 질러댈 뿐.
“10분 채웠다. 이놈들은 생각보다 느리네.”
진원은 느릿하게 팔을 움직이는 망령들을 가뿐하게 피해냈다.
그 뒤로 2분이 지나자, 조건이 만족 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부유섬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이놈들에게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 말고는 없겠다.”
“헤엑. 헤엑. 끔찍했습니다.”
관리자는 2분이 이렇게 긴 시간일 리가 없다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직 안 끝났다.”
“예? 억!”
진원은 방금 막 생성된 다리에 하나둘씩 들러붙기 시작하는 망령들을 보며, 관리자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스킬: 순간 가속을 사용했다.
“얘들아, 놈들이 우리 건드리지 못하게 엄호해라!”
성인 남성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넓이.
“맡겨주십시오.”
[알았어.]
진원은 붉은 늑대와 메시아의 엄호를 받으며 다리를 건너갔다.
다음 부유섬까지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초 정도.
“아악! 나 죽네. 이러다 저 진짜 죽는다구요!”
그러나 관리자는 다리를 타고 넘어오는 망령들을 보며, 급기야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녀석들은 부유섬에는 들어오지 못하는지, 다리에 달라붙어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래? 그럼 돌아갈래? 아는 것도 없는데 이대로 계속 있는 것도 좀 그렇겠네.”
“저, 정말입니까?”
듣던 중 반가운 말!
관리자는 살짝 미안한 듯이 말하는 진원을 보며 곧바로 표정을 바꾼다.
그리고 재빠르게 품을 뒤적거려 귀환석을 꺼냈다.
“제가 김진원 씨한테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사실은 정말로 마음씨가 넓은…….”
띠링.
[연옥 2층부터는 귀환석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그러나 녀석은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에 절망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 * *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뭐, 뭐야. 내가 갑자기 잠들었어?”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뜬 김지원.
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책상에 놓여있는 시계를 본다.
“벌써 오후 5시잖아? 하아… 분명히 어제 일찍 잤었는데.”
오빠가 소개해 준 해외에서 유명한 심리상담사가 오셨는데, 상담 중 잠이 들어버리다니.
“아, 쪽팔려… 응?”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콩콩이와 오빠의 스승이라는 고재원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의 외모와 키를 가진 그는, 소파에 앉아 종이신문을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 여긴 무슨 일로… 오빠 만나러 오셨어요?”
“제자가 당분간 너 좀 돌봐달라고 이야기하더구나. 크흠. 제자 부탁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지.”
고재원은 종이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어… 근데 여기 술 냄새나는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 여기서 술 마셨어요?”
김지원은 그를 쳐다보며 순간 언성을 높였다.
“흠흠, 제자가 선물해준 술이라서, 가볍게 딱 한 잔만 마셨다. 제자한테는 말하지 말거라.”
“진짜 한 잔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고재원이 헛기침을 하던 사이.
“크이? 크이!”
거실에서 심심한 듯 돌아다니고 있던 콩콩이가 놀아달라는 듯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어허 이 녀석이!”
“크이!”
갑작스러운 콩콩이의 행동에 고재원이 몸을 일으켰고.
투웅.
그의 품에서 커다란 술병이 하나 떨어졌다.
“할아버지! 우리 집 안에서 그렇게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해요!”
그것을 본 김지원은 고재원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크흠!”
그가 진원에게 부탁받은 것은 동생 김지원의 경호.
전시회가 끝나고 한동안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진원은 그에게 비싼 술과 함께 당분간만 동생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술을 마셨다는 일이 진원의 입에 들어가면, 녀석에게도 상당한 잔소리를 들어야 할 터였다.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그렇게 좋은 술을 나한테 들이밀면.’
안 마시고 어떻게 배기냔 말이다.
“할아버지! 빨리 베란다 문 열어요! 환기하게!”
“그렇게 하마.”
고재원은 김지원의 말을 순순히 들으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진원이 두 번째 부유섬에서 지시사항이 나타나길 기다린 지 30분.
[부유섬2의 요구]
조건: 1시간 동안 대기
보상: 3분간 다리생성
“또 대기야?”
그는 이전과 비슷한 조건을 보며 질린 듯이 말을 뱉었다.
거기다 시간은 훨씬 길어진 1시간.
차라리 몬스터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놈들을 잡으며 경험치라고 얻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으니까.
“켁! 1시간이나요?”
관리자는 메시지를 보며 기겁했다.
부유섬이 언제 또 하강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1시간이나 안고 있어야 한다니!
“그런데 저건 또 뭐냐?”
“예? 뭐가요?”
관리자가 혼자 중얼거리던 사이, 진원이 하늘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얼핏 보면 작은 점처럼 보이는 물체는, 진원이 서 있는 부유섬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얘는 또 뭐야?”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람.
네 쌍의 날개를 파닥거리며 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영화에서나 나오던 요정이 떠올랐다.
“히익! 기, 김진원 님! 저거! 조심하셔야 합… 읍?”
관리자는 요정의 정체를 아는 듯했다.
녀석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이 호들갑을 떨다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이 조용해졌다.
‘재미없게 그러지 말자. 알았지? 죽고 싶지 않지?’
끄덕.
관리자는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서늘한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저 녀석이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연옥 3층에서도 낮은 확률로 출현하는 타노아잖아!
요정같이 작고 앙증맞은 외모 뒤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
‘녀석은 플레이어들을 도와주는 가이드의 역할을 자처해.’
그리고 적당히 아이템을 쥐여주고, 때로는 협력까지 해주지.
마지막에는 플레이어들이 가장 절망할 타이밍에 배신을 한다.
그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표정을 감상한 뒤, 힘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는 희대의 싸이코!
“읍! 으읍!”
관리자는 어떻게든 진원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에게 곁눈질했다.
“뭐냐? 넌 갑자기 왜 말을 못 해?”
“어머! 제가 너무 아름다워서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요?”
“으읍! 읍!”
타노아는 날개를 팔락거리며 진원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환하게 웃었다.
“아직 부유섬에 오신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플레이어님은 정말 운이 좋으세요!”
“뭐가?”
진원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타노아를 바라보았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이곳에 대해서라면 정말 빠삭하거든요!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이곳에 숨겨진 히든피스를 얻게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게 뭐냐?”
타노아는 건방지게 말하는 인간을 보며 살짝 화가 났지만, 이내 가라앉히고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있는 이 작은 섬들.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이 나타나요!”
“그래? 그런데 넌 우리를 도와줘서 얻는 게 뭐냐?”
“전 딱히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들이 부유섬을 클리어해주길 바랄 뿐이에요!”
말을 마친 타노아는 활짝 웃으며 눈앞의 인간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길 기다렸다.
‘이 정도로 질이 좋은 인간은 처음이야. 거기다 에픽 아이템까지 가지고 있잖아?’
속으로 입맛을 잔뜩 다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