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부유섬-1
“묠니르랑 이거 말고는 뭐··· 그냥저냥이지. 애초에 레전더리급 정도 되는 아이템들은 팔려고 하질 않으니까.”
“난 연금술사다. 제작도 가능하다. 내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으니 아이템을 하나 만들어주겠다.”
블라즈코비츠는 곧바로 제작에 들어가야겠다며 의욕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잠깐만.”
“응? 뭔가.”
진원은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를 멈춰 세우고 인벤토리에서 고대의 피를 건네주었다.
차원 퀘스트에서 아돌프에게 얻은 피.
‘분명히 연금술사가 다룰 수 있다고 했지.’
블라즈코비츠는 한동안 아이템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아이템이 있었는가? 이걸 어디서 얻었지?”
“특별 퀘스트를 통해서 얻었어. 그냥 운이 좀 좋았지. 그래서 이것도 해결해 줄 수 있어?”
“으음······.”
진원의 부탁에 그녀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로서는 너의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일에 최대한의 준비를 하고 싶거든.”
“그런가. 그럼 나도 당연히 도와주겠다. 나중에 연락하겠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녀는 고대의 피를 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는 진원을 보며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다루기 쉬워서 다행이네.’
* * *
서울대학교의 특별 실습장.
불과 얼마 전 완공된 실습장은 플레이어들에게만 개방된다.
거기다 기초적인 검이나 창, 단검 같은 무기류들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고, 크기도 꽤 컸다.
“이게 다 누구 돈으로 지어졌습니까!”
“국민의 세금으로요!”
“쉬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알겠습니까!”
“예!”
학생들이 연신 땀을 흘려대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학과의 학생들이 모두 들어가도 여유로운 크기.
아마 내년과 내후년에 입학하는 학생들까지 고려해 만든 듯했다.
“그 정도로는 오크가 비웃습니다. 다시!”
“끄아아아!”
“하압!”
시간이 지나 학생들은 전반적인 이론수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기합들.
“허억··· 헉!”
그리고 한쪽으로 빠져 개별적으로 체력강화훈련을 하던 손하윤.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잠시 자리에서 행동을 멈추었다.
“손하윤 학생! A급 플레이어라도 체력이 없으면 뭐라고 했습니까!”
“아, 아무 쓸모도 없다고 했습니다!”
건장한 근육질의 남성이 그녀에게 쉬지 말라며 윽박질렀다.
“그걸 알면서 왜 그럽니까!”
“죄, 죄송합니다아!”
손하윤은 A급 판정을 받은 플레이어답게, 특별 지도교사가 붙었다.
실습을 진행하며 그녀가 약한 부분이 체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개인 트레이너를 붙인 것.
‘아··· 진원 오빠 좀 만나러 가고 싶은데. 헤엑!’
최근 들어 훈련 강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아져, 집에만 오면 잠에 빠지는 그녀였다.
“와, 미쳤다. 이거 도대체 며칠이나 더 해야 하냐?”
“이거 일주일은 더 한다던데.”
그것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거기! 실습 도중에 잡담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푸쉬업 50개!”
“허억!”
“아오! 그러게 나한테 왜 말을 거냐!”
서로 조용히 잡담을 나누던 학생들은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던전에는 어떻게 들어가려고 합니까!”
지도를 맡은 교사들은 그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플레이어 이벤트가 지금까지 총 2번.
그것도 짧은 빈도로 발생했다.
만약 플레이어학과의 학생들이 다음 이벤트에 끌려가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학교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깎일 것이다.
“허허··· 열심히들 하고 있구만.”
서울대학교 총장인 최준석은 훈련받는 학생들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윤이도 열심히 하는구나.”
협회장의 손녀라는 위치에 있고, 학과의 유일한 A급 플레이어.
최준석은 그녀가 싫은 내색 없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며,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김진원 씨도 부를까.”
* * *
연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로비.
그리고 이곳에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의 가이드 역할을 맡은 관리자.
언뜻 보면 고블린같이 생긴 녀석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중이었다.
“하암. 김진원 그 인간이 다녀간 이후로 어떻게 한 명도 안 들어올 수가 있냐? 살다 살다 이런 행성은 처음이네.”
녀석은 연옥의 포탈 근처가 군인들과 플레이어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진원 이외에는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은 곳.
특히나 왕 첸이 이전, 이곳에서 소동을 일으킨 이후로는 더욱 경계가 강화되었다.
“이러다 심심해서 돌아가시겠네. 에휴.”
“그래? 그럼 잘됐네.”
“뭐? 어떤 녀석이 나한테 반말을··· 헉!”
턱을 괴고 멍한 표정을 짓던 관리자.
녀석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성을 내려 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인물이 김진원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자리를 박차고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아이고오! 오셨습니까, 김진원 님! 키키킥! 오랫동안 안 오셔서 정말 심심했습니다요!”
“그러냐? 그럼 지금부터 나랑 2층으로 가면 되겠네.”
진원은 비굴한 표정을 짓는 관리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응? 잠깐. 그런데 이 인간···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손에 들고 있는 망치는 또 뭐야?’
눈알을 굴려대며 어떻게 하면 끌려가지 않을까 생각하던 관리자.
녀석은 진원이 들고 있는 묠니르를 보며 순간 소리를 질렀다.
“허억! 에픽 아이템! 도대체 그걸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응? 저번 이벤트에서 1등 해서 얻었지.”
“아무리 그래도 에픽 아이템을 주다니······.”
관리자는 이번 행성의 밸런스도 역시나 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망치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 사태를 만든 놈들에 대해 아냐?”
“예, 예?”
“주모자들이 누군지 아냐고.”
관리자는 진원이 묠니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것을 알아챘고, 빠르게 대답했다.
“모, 모릅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요! 저는 그냥 이곳을 안내하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누구한테?”
“눈을 뜨니까 이곳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정말이에요!”
정말로 모르는듯한 눈치.
진원은 팔을 눈앞으로 치켜드는 녀석을 향해 망치를 들이밀었다.
“구라면, 알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믿어줄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역시 김진원 님은 마음씨가 좋은 분··· 크악?”
관리자가 살았다는 표정을 짓길 잠시, 관리자의 뒤에서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잠깐만요! 저는 진짜 거짓말을 안 했습니다!”
“응? 알아. 믿어준다니까?”
“그럼 이건 또 왜······.”
말끝을 흐린 관리자는 뭔가 큰일 났다는 것을 감지했다.
“같이 가야지. 연옥 2층.”
그리고 그 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아악! 김진원 님! 전 1층에 대해서만 알지 2층은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나는 너를 믿는다. 고기방··· 아니, 관리자.”
“저는 이곳에서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가이드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구요!”
관리자는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붉은 늑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 썼다.
“여기는 나밖에 못 들어오니까 안심하고 가이드 해 주면 된다.”
“이익! 이건 횡포라고요! 그리고 다 들었습니다! 전 고기 방패가 아니라고요!”
“내가 언제. 그냥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관리자는 자신을 미끼 취급하는 진원을 보며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한테 이 정도로 대드는 인간은 전 행성을 찾아봐도 네놈밖에 없을 거다.’
한동안 붉은 늑대의 손안에서 발악하던 녀석은, 결국 포기했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제발 살아 돌아갈 수 있게만 해주세요.”
연옥 2층으로 입장하는 포탈 앞, 관리자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연옥-2층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2층의 권장 항마력은 80입니다. 현재 플레이어 김진원의 항마력은 50입니다.
근력: 100 민첩: 100 체력: 70 마력: 135 지배력: 140
미분배 포인트: 0
연옥에 들어가기 전, 진원은 상태 창을 열어 남은 스텟을 민첩과 마력에 투자했다.
“이 정도로 준비했으면 괜찮을 거다. 그리고 2층 클리어하면 너한테도 좀 떼어줄게.”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관리자는 진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앞의 인간은 연옥 1층에서도 엄청난 아이템을 얻었어. 2층까지 클리어한다면······.’
꿀꺽.
진원은 녀석의 침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하는 것 보고.”
* * *
띠링.
[연옥 2층으로 입장하였습니다.]
[항마력이 낮아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감소합니다!]
연옥 2층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진원을 맞이해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푸른 하늘.
그러나 밑을 보면.
“그어어어!”
“기이이익!”
아래에는 어둠 속에서 팔을 휘젓고 있는 붉은 인영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 김진원 님?”
“왜? 네가 아는 거야?”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던 관리자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곳은 부유섬입니다. 저도 직접 본 것은 처음입니다.”
녀석의 설명에 따르면, 부유섬은 거대한 섬 하나를 중심으로 작은 섬들이 공중에 떠 있다고 한다.
그 수는 10개.
진원이 현재 땅 위에 서 있는 장소도 작은 부유섬 중 하나였다.
“저기 보이시죠? 딱 봐도 엄청나게 큰 거요. 저곳에 있는 보스를 잡으시면 될 겁니다.”
녀석은 손가락으로 중앙에 떠 있는 거대한 섬을 가리켰다.
“그래?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움직이냐?”
“그건··· 죄송합니다만. 저도 잘 모릅니다.”
진원은 관리자의 대답을 듣고 섬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공중에 떠 있는 섬들끼리의 거리가 꽤 멀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500미터는 그냥 넘어 보인다.
“마도사, 저기까지 한번 가봐라.”
“예, 주인님!”
잠시 고민하던 진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소환수를 꺼냈다.
“크, 크윽! 뭔가 이상합니다!”
자신 있게 나타난 녀석은 곧바로 얼굴을 땅에 박았다.
“꼼수는 안된다 이거냐. 일단 백과사전을 한번 써봐야겠네.”
“내가 날지를 못한다고? 이게 무슨 일이냐!”
진원은 분한 듯이 말을 내뱉는 소환수를 뒤로하고, 부유섬을 향해 아이템을 사용했다.
[부유섬-심장부]
- 설명: 부유섬에서 나타나는 조건들을 만족하면 갈 수 있는 장소. 도착하면 보스 몬스터가 나타난다.
- 공략 포인트: ???
[부유섬]
- 설명: 심장부의 계단 역할을 하는 작은 섬.
- 공략 포인트: 평범한 방법으로는 건널 수 없다. 일정 시간마다 다리가 생성되는데, 이때 밑에 있는 몬스터들이 다리에 달라붙는다.
[망령]
- 설명: 부유섬에서 죽어 나가며 실체를 가진 원혼들.
- 공략 포인트: 물리, 마법 공격이 듣지 않는다. 다만, 고통스러워는 한다. 최대한 닿지 않는 편이 좋다.
“뭐,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관리자는 백과사전의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진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긴장한듯한 눈빛.
아무래도 녀석은 밑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보며,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