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전시회-4
“장 슈잉! 넘어가지 마라! 일단 기다려!”
“끼익! 김진원! 죽여버린다!”
진원의 행동이 도발인 것을 눈치챈 장 민은 장 슈잉의 행동을 보고 다급하게 말렸지만, 이미 그의 발은 지면에서 떨어진 상태.
‘쯧, 벌써 사용해야 한다니.’
장 민은 씩씩대며 김진원에게 달려드는 장 슈잉을 향해 스킬: 구조의 손길을 사용했다.
지정한 아군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구조의 손길은, 일반 스킬임에도 직업 스킬 못지않은 성능을 자랑한다.
‘300억이 넘는 스킬 알약이었지만, 장 슈잉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휘익!
그가 내뻗은 손바닥에, 장 슈잉의 몸이 마치 자석이라도 달라붙은 것처럼 끌려왔다.
“끼익! 장 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왜 말리는 거냐!”
장 슈잉은 그의 손바닥에 등이 붙은 채로 성난 듯이 몸을 들썩였다.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 네 공격이 통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마무리는 네가 하면 되는 거다. 그렇지 않나?”
“끼끼! 사실은 네 도움 없이도 충분하지만, 그러기엔 네가 재미를 못 볼 것 같다!”
장 민의 말에 침착함을 되찾은 장 슈잉이 지면에 착지했고, 입맛을 다시며 몸을 낮추고 자세를 잡았다.
‘저건 또 무슨 스킬이지?’
진원은 묠니르를 손으로 가져오면서, 장 민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을 향해 대상을 끌어들이는 스킬인가?’
아직은 저놈들이 어떤 직업과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 정도야 백과사전을 사용한다면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만, 문제는…….
‘당연히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겠지.’
놈은 자신이 포션을 마실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민첩했다.
“끼익! 한눈팔 시간은 없다! 김진원!”
“주군!”
[진원!]
그가 남은 MP량을 잠깐 확인한 사이, 장 슈잉은 지면에서 총알처럼 날아갔다.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어떻게 반응해보려 했지만, 이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속도에 대응하지 못했다.
“큭!”
“끼끼! 내 키를 가지고 놀린 녀석은 최대한 아프게 죽여버린다!”
장 슈잉은 진원의 복부를 찌르고, 그대로 왼쪽 벽면에 달라붙어 기분 나쁘게 웃었다.
‘망할. 이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진원은 피가 흘러내리는 복부를 움켜잡으면서도, 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띠링.
[중독 상태이상에 빠졌습니다. 1초마다 HP가 50씩 감소합니다!]
‘거기다가 이젠 없던 독까지. 탐색전을 할 시간도 없다.’
진원은 메시아에게 스킬을 사용하라고 지시하며, 놈들을 향해 묠니르를 던졌다.
“메시아!”
[맡겨줘!]
장 슈잉과 장 민이 묠니르를 회피하는 사이, 메시아가 진원의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메시아가 밤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HP를 500 소모합니다.]
스스스.
그녀의 검은 장막이 진원과 붉은 늑대를 감싼 뒤, 원구 형태로 변했다.
“음. 저런 스킬을 가지고 있었나.”
“끼끼! 멍청한 놈! 우리한테 에픽 아이템을 던져주다니!”
한 손으로 검은 구체를 보며 턱을 쓸어내리던 장 민은, 벽에 박힌 묠니르에게 다가가는 장 슈잉을 보며 경고했다.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옵션을 제대로 확인해라!”
“끼끼! 겨우 망치 하나가 이 장 슈잉을 이기겠다고? 어림도 없다!”
그는 장 민의 말을 가볍게 흘려넘기고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대려 했고, 장 민은 기겁하며 그의 팔을 낚아챘다.
“끼익! 뭐 하는 거냐, 장 민! 저걸 집고 김진원을 죽이면 된다고!”
“자세히 읽어봐라! 김진원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섣불리 만졌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의 설득에 장 슈잉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검은 구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끼익!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있을 거냐!”
지이익.
장 슈잉이 클로를 치켜세우고 구체에 접근해 세로로 길게 그었지만, 별 효과가 없자 발을 구르며 장 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끼익! 장 민! 빨리 인챈트를 해줘! 강한 걸로!”
“알겠다.”
장 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플레이어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장 슈잉의 무기에 스킬을 사용했다.
‘거인의 힘.’
그의 직업은 인챈터.
흔하디흔한 일반 직업 중 하나였지만, 장 슈잉과 호흡을 맞추며 그에게 얹혀가는 방식으로 세계랭킹에 이름을 올리게 된 플레이어였다.
‘김진원이 저렇게 방어적으로 나오다니. 뾰족한 수가 없나 보군. 여기선 MP를 최대한 사용한다.’
지이잉.
“키키! 이걸로 한 방에 꿰뚫어 버리자!”
장 슈잉은 진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클로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스스스.
“큭! 소름 끼치는 느낌이······.”
“끼, 끼익! 저건 또 뭐냐!”
그러나 그들은 구체가 사라지며 나타난 광경에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X발 놈들아. 나대지 마라.”
그곳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한 진원과, 섬뜩한 기운을 내뿜는 심연의 마누스가 서 있었다.
“봐주지 마라.”
진원은 입가를 닦으며 빈 포션병을 사납게 던졌고, 장 민과 장 슈잉을 가리켰다.
끄덕.
고개를 작게 끄덕인 마누스가 놈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팔을 휘저었다.
“장 슈잉! 저 검은 것에 절대 닿으면 안 된다!”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장 민! 어떻게 하면 되냐!”
“스킬을 아끼지 말고 회피하는 데 집중해라!”
놈들은 기겁하며 허공에서 나타나는 검은 기운을 피하기 시작했다.
“후우, 망할 놈들.”
진원은 묠니르를 손으로 되돌리고 놈들을 향해 겨냥했다.
‘중국의 플레이어들이라. 확실히 짜증 나긴 하네.’
메시아의 스킬이 없었으면,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몰렸을 뻔했다.
안 그래도 HP와 MP가 바닥나가는 상황에, 소모값이 큰 마누스를 소환하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
“뒤져!”
여유를 되찾은 진원은 장 슈잉과 장민에게 묠니르의 효과를 사용했고.
파지직.
망치에서 뻗어 나간 푸른 전격이 놈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큭! 장 슈잉! 그 스킬을 써라! 도망쳐야 한다!”
“키익! 김진원! 다음에는 네놈의 목을 꿰뚫어 버리겠다!”
진원의 본래 힘과 마주한 그들은 결국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10초만 있으면 된다! 장 민! 그동안 시간을 벌어줘!”
“알았다!”
장 슈잉의 다급한 말에 장 민이 그를 옆구리에 끼고 공격을 회피했고, 장 슈잉은 그 상태로 두 손을 모으며 스킬: 소닉 스피드를 사용하려 했다.
“크윽! 망할! 조금 스치기만 해도 말도 안 되는 고통이다!”
“키익! 조금만 참아라, 장 민!”
소닉 스피드는 10초의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민첩 스텟이 3배가 증가하는 효과를 가진 장 슈잉의 주력 스킬이었다.
“붉은 늑대! 메시아!”
“맡겨주십시오.”
[알았어.]
당연히 그것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는 진원은 붉은 늑대와 메시아에게 스킬을 사용하라고 지시하며, 자신도 자리에서 와인드업했다.
[붉은 늑대가 귀신검: 나락을 사용합니다. MP를 600 소모합니다.]
[메시아가 다크레이를 사용합니다. HP를 300 소모합니다.]
“스읍······.”
숨을 들이마신 붉은 늑대의 검날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그대로 지면에 내리치자, 작은 균열이 발생했고.
그아아아아!
끼아아아아!
그곳에서 나타난 불투명한 혼령들이 소름 끼치는 음성을 내며 장 슈잉과 장 민에게 날아갔다.
띠링.
[공포 상태이상에 빠졌습니다.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크윽! 이건 또 뭐냐!”
“키익! 살려줘! 살려줘어!”
혼령들은 놈들의 몸에 달라붙어 강하게 옭아맸고, 속박과 동시에 공포상태에 빠진 장 슈잉과 장 민은 그대로 진원과 메시아의 공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커헉!”
“끄아아아아!”
놈들은 몸이 꿰뚫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고, 마지막으로 마누스가 검은 기운으로 놈들을 감싼 뒤 자비 없이 쥐어짰다.
장 슈잉과 장 민은 자랑하던 스킬 연계를 제대로 내보이지도 못한 채, 온몸이 짓뭉개지며 사망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 짱깨 새끼들.”
진원은 걸레짝이 된 놈들을 한번 쳐다본 뒤, 바깥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컥!”
“끄헉!”
진원의 여동생을 목적으로 접근한 플레이어들은, 고재원에 의해 저마다 입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뭐야. 콩콩아. 왜 그래? 야! 너무 가까워!”
“크이! 크이!”
콩콩이는 김지원의 얼굴에 달라붙어 그 장면을 못 보도록 철저하게 가렸다.
“이걸로 전부구나. 살아 있는 녀석은… 없나.”
그는 사망한 플레이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제자가 가능하면 한두 놈은 살려놓으라고 해서 나름 조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 할아버지. 괜찮아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김지원은 수많은 외국인들이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자, 겁이 난 듯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나쁜 녀석들을 손 봐줬지. 죽이지는 않았으니 안심하거라.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는 그대로 눈을 감는 것이 좋을 게다.”
고재원은 아직 고등학생인 김지원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적당히 둘러댔다.
“크이! 크이이!”
“알았어! 안 볼 테니까 손 좀 치워봐! 답답해, 콩콩아!”
“크이!”
그러나 콩콩이는 그녀의 짜증 섞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 * *
세종 문화회관에서 묠니르의 전시회를 연 당일.
해외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미술관을 습격했고, 진원의 무기를 노린 플레이어들은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충격! 신분이 불분명한 플레이어들이 미술관을 습격! 목적은 묠니르였나. 현재까지 확인된 수만 200여 명.]
[협회 측 플레이어의 부상자 다수 발생.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망자가 없다는 것.]
[중국의 S급 플레이어 장 슈잉과 A급 장 민. 중국 정부가 S급 던전에서 사망했다고 밝혀.]
“망할 새끼들. 철저하게 신분을 세탁하고 왔었네. 그리고 누가 봐도 저놈들이 나를 습격한 놈들인데, 던전에서 사망했다고? 하…….”
진원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과 함께 떠오른 장 슈잉과 장 민의 얼굴 사진을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구만. 이 나라건 저 나라건.”
그 뒤로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습격한 플레이어들에게서 딱히 이렇다 할 정보는 획득하지 못했고 해외의 각 나라들은 대답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우리나라의 플레이어 수가 적긴 하지.”
안 그래도 S급 플레이어의 수가 적은 한국에서, 이연우가 중국으로 도망쳐 현재 남은 건 단 두 명.
거기다 그중 한 명인 송현성에게도, 러시아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조건으로 계약을 요청해왔다고 한다.
“후, 그래도 지원이나 영호에게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네. 신혜진이 다친 건 좀 의외다만.”
그녀는 다른 A급 플레이어들과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싸우다가 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정확한 조사결과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미술관을 습격한 플레이어들만 100명이 넘었고, 동생을 노리던 플레이어들은 40명이 넘었다고 한다.
“스승님을 지원이에게 붙여놓길 잘했어.”
진원은 3일 전의 일을 떠올리며 안도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