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전시회-3
“주군, 뒤쪽에 들어오는 인간 둘, 특히 키가 작은 남성의 양손에서 꺼림칙한 느낌이 듭니다. 주시하겠습니다.”
[진원, 이곳에 들어온 많은 사람이 뭔가를 숨기고 있어. 죽일까?]
“일단 계속 주시해. 그리고 저쪽이 먼저 공격해오지 않으면, 건드리지 마라.”
진원은 녀석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순서를 기다리는 남성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키가 작은 쪽이라.’
훤칠한 외모와 키를 가진 남성과 그 옆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허름한 가죽옷을 입은 남성.
“끼끼!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 거냐, 장 민! 지금 우리 눈앞에 묠니르가 있다고!”
“아직 때가 아니니까 기다려. 내가 말한 두 가지는 꼭 지켜야 한다고 했다.”
“끼익!”
당연히 장 슈잉과 장 민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진원은, 그들은 잠시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뭐라는 건지 모르겠네.’
그 뒤로 시간이 흐르며 전시회는 무난하게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진원은 붉은 늑대와 메시아의 보고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이 새끼들, 서로 간 보고 있네.’
전시를 시작한 지 대략 6시간.
그동안 미국인 몇 명이 자신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은 것 말고는 별문제가 없다 싶었더니,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줄이야.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결과긴 하지.’
진원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티를 내는데, 먼저 건드릴 수가 없으니까 짜증 나네.’
놈들이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 이상, 아무리 수상해도 심증만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원은 습격해오는 플레이어들이 자신에게 귀속된 묠니르를 잡으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호기심이 샘솟았다.
‘지원이나 영호만 괜찮으면 별문제는 없을 거다.’
스승님이나 은식이한테 별다른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괜찮은 듯했다.
“끼익!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 장 민! 더 이상은 못 참는다고!”
“조금만 더 참아. 그리고 그렇게 크게 말하지 마라! 아무리 중국어라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장 슈잉과 장 민은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위치를 옮겨 가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끼끼! 다른 놈들도 기다리기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어림잡아도 50명 이상은 될 거다. 저기 장식장이 부서지는 순간을 노리자.”
그들이 언성을 낮춰 대화를 나누던 사이, 기회를 엿보며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플레이어 하나가 스킬을 사용했다.
푸쉬이이익.
“뭐야!”
“꺄아악!”
“모두! 저희들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이동해 주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자세를 낮추시고 서로 밀면 안 됩니다!”
마치 연막탄을 터트린 것과 같은 효과.
진한 검은 연기가 미술관을 순식간에 가득 메웠고, 미리 경계하고 있던 신혜진과 A급 플레이어들이 재빠르게 안에 남아 있는 일반인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쿠우웅!
그 사이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진원에게 달려들었다.
“김진원이랑 정면으로 싸우지 마라! 묠니르를 가져가는 것만 생각해!”
“알겠습니다!”
놈들은 연막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진원의 위치를 포착해 단검들을 투척했다.
쉬익! 티잉!
진원의 앞에서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검을 휘두르며 단검들을 쳐냈고, 그 사이 지면에 착지한 플레이어들은, 통일된 듯한 날렵한 움직임으로 무기를 들며 진원과 거리를 뒀다.
“이 새끼들 어디에서 온 놈들이야? 전혀 못 알아먹겠네.”
그는 시야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당황한 기색 없이, 일반인들이 완전히 빠져나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연기 치울 수 있는 녀석 없어?”
아무래도 시야 확보가 안 되니 불편한 느낌이 들어 말을 꺼내자.
“…….”
소환의 방에서 나온 꼬마 디멘션 워커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일자로 그었다.
스으으으.
그러자 녀석이 그은 자리에 보랏빛 균열이 발생했고, 미술관에 가득 찬 연기를 조금씩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망할! 2팀! 최대한 김진원의 발을 묶어라! 그리고 1팀은… 커헉!”
그 광경을 보며 경악한 플레이어는 팀원들에게 추가 지시를 내리려고 했지만.
“키키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플레이어들부터 처리하고 그 다음이 묠니르다!”
재빠르게 플레이어의 코앞으로 다가간 장 슈잉이 오른팔로 외국인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망할. 역시 이렇게 되나. 애써 무기의 투명화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장 민은 철제 클로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장 슈잉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저 녀석의 정신 나간 성격만 아니면 랭커 자리도 노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 상황은 이미 예상했던 일.
장 민은 미술관의 구석에 쪼그려 앉은 뒤, 일반인처럼 겁에 질린 연기를 하며 난전이 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일반인들이 섞여 있으니까 스킬은 최대한 자제해라!”
“분부대로.”
[알았어.]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진원에게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사이, 그는 일반인들을 인질로 삼으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마구를 날렸다.
“망할 새끼들이! 더러운 짓 좀 작작해라!”
“커헉!”
그 사이 그의 소환수들이 겁에 질려 자리에서 주저앉은 사람들을 일으켜 밖으로 내보냈다.
‘사람들을 밖으로 대피시킨 신혜진이 안 돌아오는 것을 보면, 밖에도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진원의 시야에 깨져버린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윗면이 완전히 부서져 버려 집어서 꺼내 가기만 하면 되는, 무방비한 묠니르의 상태였지만.
“에픽 아이템을 회수해! 빨리! 끄아아!”
“키키키! 다 죽어라!”
“이놈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냐!”
유난히 키가 작은 중국인 하나가 민첩한 움직임으로 장식장에 다가가는 플레이어들을 처리했다.
‘저놈은 주의해야겠는데. 너무 빨라.’
진원은 자신의 눈에도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플레이어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 * *
같은 시각.
고재원은 진원의 동생 김지원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얘, 너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어허! 이 녀석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래도!”
김지원은 쉴 새 없이 내달리는 그를 보며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말했고, 그는 성을 내면서도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잘 쳐줘야 중학생 키···….”
“내가 네 오빠의 스승이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이쪽으로 오거라.”
“아, 쫌 천천히 가요! 너무 빨라!”
“크이! 크이이!”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돌계단을 올랐다.
고재원의 어깨에 올라탄 콩콩이는 그녀를 보며 힘내라는 듯이 울었다.
‘쯧쯧, 하여간 고약한 놈들이로구나. 애 하나를 잡으려고 42명이 쫓아오다니.’
그는 자신을 뒤쫓아오는 기척이 수를 확인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플레이어들의 기척을 미리 느낀 그는, 최대한 일반인들이 없는 산속으로 위치를 옮기고 있었지만.
“헤엑! 헤엑! 아니 조금만 천천히···….”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멈춘 진원의 여동생을 보며, 이대로 가다가는 금방 따라잡히겠다고 생각해,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내보이며 자세를 낮췄다.
흔히 말하는 어부바 자세.
“아니? 왜요?”
“왜요는 무슨 왜요냐 이 녀석아! 이대로 가다간 놈들에게 금방 따라잡힌다! 빨리 업히거라!”
“네에? 아니, 할아버지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녀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순간 짜증이 났지만.
쉬익!
“꺄악!”
자신의 근처로 날아와 꽂힌 화살을 보고 곧바로 고재원에게 다가가 업혔다.
“꽉 잡거라!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겠다!”
“아악! 할아버지! 나 떨어져요!”
“크이! 크이이!”
고재원은 자신의 목을 힘껏 감싼 채로 비명을 질러대는 김지원을 신경 쓰지도 않고, 더욱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 * *
“커헉!”
“끼끼끼! 약한 놈들! 나보다 키가 큰 주제에 약한 놈들은 모조리 죽어야 한다!”
장 슈잉이 플레이어의 어깨에 올라타 클로를 목에 찔러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미술관에는 진원과 장 슈잉, 그리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벌벌 떠는 외국인 한 명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키긱! 키긱!”
꼬마 임프가 몸을 덜덜 떠는 외국인을 들어 올리려 팔을 잡았지만.
뿌드득!
녀석의 팔이 순식간에 외국인의 완력에 뜯겨나갔다.
“키이익!”
“그놈 플레이어다! 공격해!”
진원의 소환수가 팔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난 사이,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몸을 일으키는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키! 남은 놈들까지 모두 죽인다!”
장 슈잉은 자리에서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만 뒤,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큭!”
[빨라!]
엄청난 속도로 장 민의 앞까지 도달한 장 슈잉은, 클로를 휘둘러 붉은 늑대와 메시아를 떨쳐내고 다시 진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체감상 0.5초도 안 될 것이다.
“X발! 뭐야!”
“키키키!”
진원은 급하게 묠니르를 손으로 되돌려 장 슈잉의 공격을 막아내길 잠시, 놈은 탱탱볼처럼 벽을 튕겨가며 소환수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키익!”
“죄송합니다, 주인니임!”
“···….”
붉은 늑대와 메시아를 제외한 소환수들은 제때 반응을 못 해 놈의 공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MP: 2200/4200
‘포션부터 마셔야 한다!’
진원은 소환수들의 회복에 사용되는 MP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빠르게 포션을 꺼내 마시며 칭호를 변경했다.
[칭호: 차원의 견습 수호자]
최대 MP량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였다.
“끼끼! 내 움직임을 눈으로는 절대 못 쫓을 거다!”
그 사이 장 슈잉은 괴성을 질러대며 공격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끼익! 빠르게 끝내주마!”
그의 직업은 스피드 스타.
직업명에 걸맞게 가속에 관한 스킬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더불어 민첩에만 모든 포인트를 투자했기 때문에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되었다.
“끼끼! 네 놈이 아무리 강해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장 슈잉은 진원이 자신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자, 신난 듯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소환수를 집어넣어야 한다. 이대로면 그냥 표적이 될 뿐이다.’
진원은 소환수들이 놈의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자, 소환의 방으로 빠르게 집어넣었다.
‘그나마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반응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문제는, 놈이 MP를 회복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는 것이었다.
“큭!”
“끼끼! 잘도 막아대는구나, 김진원!”
장 슈잉은 진원의 어깻죽지에 상처를 남기고 다시 붉은 늑대와 메시아에게 공격을 가했다.
‘생각보다 놈의 공격력은 높지 않다. 이 정도면 HP는 충분해.’
진원은 남은 HP를 확인하고, 붉은 늑대와 메시아를 뒤로 물린 뒤, 오른손을 들어 중간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와라. X만한 새끼야.”
그는 일단 장 슈잉의 공격을 허용해 준 뒤, 틈이 생기면 망치로 후려칠 생각을 하며 놈을 도발했다.
“끼익! 네놈의 미간을 뚫어버리겠다!”
너무나도 쉽게 그의 도발에 넘어간 장 슈잉은, 그대로 진원을 향해 클로를 치켜세우고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