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전시회-2
“나보고 네 녀석의 여동생을 지키라고?”
진원의 부탁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고재원은 그런 소중한 가족을 자신에게 맡긴다는 사실에 성이 난 것이었다.
“천천히 설명해 드릴 테니까 일단 끝까지 들어주세요.”
진원은 그런 고재원을 진정시키며 이벤트에서 얻은 아이템 ‘에픽 장비 변환권’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추가적으로 자신에게만 모습을 드러냈던 인형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러니까 너에게만 특별한 보상을 주었다고?”
“네, 기여도 1등을 해서 그런 건가 싶네요. 그런데 스승님은 어떤 보상을 받았나요?”
“나 말이냐? 모든 스텟이 5 올라간다고 하더구나.”
지난번 플레이어 이벤트, 점령전에서 고재원의 기여도는 2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위였던 자신에 비하면 초라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게 다예요?”
“그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이벤트구나.”
고재원은 의아한 듯이 물어오는 진원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그래서 그 묠니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무기이길래 전 세계에서 너를 노려대는 것이냐?”
“한번 보세요. 만지시면 큰일 납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묠니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고.
“허업!”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하던 고재원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제자가 에픽 아이템인지 뭔지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을 때, 순간 호기심이 생겼지만 별 것 아니겠거니 하며 넘겼는데.
“이만한 무기를 가진 플레이어가 너 혼자라는 것이냐?”
“네, 그래서 공개적으로 전시회를 여는 겁니다. 그동안 여동생이나 제 친구가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그것 때문이라면 내가 한번 도와주도록 하마. 제자가 나한테 직접 부탁해 온 것도 처음이니.”
말을 마친 고재원은 시선을 포장된 박스로 옮겼다.
“제자야, 미리 말하지만 나는 속물이 아니다.”
저 고급스러운 포장 하며 형태를 보면, 분명히 술이다!
“나야 귀여운 제자의 부탁이라면 아무 대가도 없이 들어줄 의향이 있다만, 그래도 제자가 주는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는 헛기침하며 빨리 술을 넘기라는 듯한 태도를 취했고.
“제가 안 그래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스승님을 만나러 가는 데 그냥 올 수는 없어서요.”
그의 표정을 본 진원은 가볍게 웃으며 상자를 건넸다.
“이건… 와인이로구나.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데.”
“샤또 디껨 1811년산입니다.”
라벨을 유심히 확인하던 그는 진원의 말을 듣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확히는, 뒤에 이어지는 술의 가격을 듣고.
“1억 4천만 원이라고? 술 한 병에? 제자야. 네가 도대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비싼걸 사오느냐?”
“S급 플레이어라 벌이가 좋거든요. 그리고 스승님한테는 이 정도는 별로 안 아깝습니다.”
사실 아깝다.
벌이가 좋다 해도, 한 병에 1억이 넘는 술을 사다니.
‘그래도 확실한 게 좋으니까. 점령전에서도 꽤 도움을 받았고.’
샤또 디껨은 고재원에게 동생의 경호를 부탁하기 위한 최후의 공물이었다.
‘그런데 스승님 정도의 실력이라면 S급 던전까지 공략할 만하실 텐데, 평범하게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계시다니.’
그의 과거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만 관두기로 했다.
‘사람마다 개인 사정이 있는 거니까.’
진원의 말을 듣고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고재원은, 검지를 들어 병 입구에 찔러넣고 마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껄껄! 내가 역시 보는 눈이 있다니까! 아일랜드에서부터 너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단 말이지!”
와인의 맛을 음미하던 고재원은 기분이 좋은지 시원스럽게 웃었다.
“음, 이건 아무래도 한 번에 마셔버리기엔 아깝구나.”
“그럼 동생에 대해서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오냐. 그만 가 보거라.”
고재원은 태권도장을 나가는 진원에게 손을 까닥이며 등을 돌렸다.
* * *
서울의 한 모텔.
중국의 플레이어 장 민과 장 슈잉은 허름한 방을 잡아 짐을 풀어 놓았다.
전시회장과 가까운 위치는 이미 다른 외국인들로 가득 찬 상태여서, 그들은 상당히 떨어진 중랑구로 향했다.
“끼끼끼! 당장 가자!”
장 슈잉은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가방을 뒤적거려 클로를 찾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참아.”
장 민은 자신의 주위를 정신없이 맴도는 그를 진정시켰다.
“투명화는 내일 때가 돼서 풀어줄 테니까, 오늘은 푹 쉬자고.”
철제 클로 같은 물품은 당연히 반입금지 물품이었지만, 공항 검색대를 문제없이 통과한 데에는 장 민의 스킬이 크게 작용했다.
“내 생각에, 우리 말고 묠니르를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내가 알려준 우선 순위 기억하고 있겠지?”
겉으로만 보면 미국인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이목구비를 가진 그는, 깔끔한 수트를 입은 채로 장 슈잉을 보며 질문했다.
“묠니르가 첫 번째! 다른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공격해와도 최대한 무기부터 확보한다! 끼끼! 그리고 두 번째! 네가 신호하기 전까지는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
장 슈잉은 신난 듯이 말을 속사포로 뱉었고.
‘두 번째만 지켜줬으면 좋겠는데.’
장 민은 제발 저 녀석이 평범한 중국인처럼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전시회 당일 날.
세종 문화 회관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줄 서주세요! 9시부터 24시간 동안 무료개방입니다! 인원 제한은 없으니까 밀지 마시고 한 줄로 서주세요!”
직원들은 엄청난 인파에 정신없이 관람객들을 통제했다.
“4시간 일찍 기다리길 잘했지?”
“맨 앞줄은 전날부터 와 있었대. 와, 독하다, 진짜.”
중간 열에 서 있던 외국인들은 저마다 대화를 나누면서 팜플렛을 들여다보았다.
입장료 11만 8천 원.
보통 무료로 진행되거나 5천 원 미만의 가격대를 형성하는 전시회와는 다르게, 말도 안 되는 요금에도 비싸다고 불만을 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것이,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에픽 아이템. 묠니르를 실물로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전 솔직히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그렇게 많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제 착각이었네요.”
“그러니까요. 도대체 12만 원 가까이 하는 돈을 내라니. 아무리 대통령님 부탁이라도 그렇지, 너무 하다고 생각했어요.”
“거기다가 이 근처 숙박시설들 전부 가격이 3배 이상 오른 거 아세요?”
“너무 노골적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룻밤 자는데 30만 원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다른 직원들이 손님들을 통제하는 사이, 잠깐의 쉴 틈이 생긴 여직원들이 대화를 나눴다.
“괜히 이미지만 나빠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어쨌든 오늘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네요. 추가 근무수당은 배로 주신다고 했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직원들은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밖에 엄청 시끄럽네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무기니까요. 거기다가 대통령님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신 것은 처음 봤습니다.”
한편.
진원은 미술관 1관에서 협회장 손태욱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위기인 동시에, 돈을 끌어모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겠지.’
손태욱은 오히려 고가의 입장료로 경제를 조금이라도 발전시키겠다는 문명호의 의지에 감탄했다.
“어떻게든 제시간에 완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그는 최상급 마정석을 가공해 만든 장식장을 가볍게 두드렸다.
“A급 플레이어 10명, B급 20명, C급 30명. 거기다 대통령님이 보내주신 경호원 50여 명. 최대한 많이 지원해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제 능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손태욱은 진원을 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묠니르를 꺼내 장식장에 넣었다.
“오늘 중으로 분명히 무기를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습격해 올 겁니다. 되도록 생포하셨으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권장 사항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격해오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신분을 위조해 올 것은 불 보는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손태욱은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진원의 손에 생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 일단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스마트폰을 꺼내 고재원에게 연락했다.
띠리리. 띠리리.
통화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불만스럽게 연락을 받는 고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잉, 요즘 휴대폰은 뭐 이리 복잡하냐?
“스승님, 집에 도착하셨나요?”
-그래. 네 동생은 걱정하지 말 거라.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마.
짧은 통화를 끝낸 진원은 시간을 확인했다.
‘20분 남았네.’
동생에게는 미리 충분한 설명을 해놓았고, 스승님과 콩콩이까지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이서훈한테도 협회 소속의 플레이어들을 붙였다. 그런데 얘네 둘이면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영호에게는 최은식과 은지희를 붙여놓았다.
이전에 녀석에게 연락하자, 훈련에 방해된다고 딱 2명까지만 경호로 붙이라고 해서 신혜진을 제외하고 그나마 가장 믿을 만한 둘을 경호로 보내긴 했는데.
‘하여튼 야구에 미친 놈이라니까. 너무 태평하잖아.’
진원은 영호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서 한동안 야구는 쉬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했지만, 별것 아니라는 영호의 대답에 기가 찼다.
“진원 씨, 그럼 저는 이만 자리를 비워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러죠.”
손태욱이 자리를 비우고 잠시 후.
게이볼그-프로토타입을 장비한 신혜진을 선두로 A급 플레이어 9명이 따라 들어왔다.
“다들, 미리 지정받은 위치를 잘 지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지시에 플레이어들은 각자 맡은 자리로 위치했다.
“안에는 10명 정도가 한계인 것 같더라. 나머지는 관람객을 받아야 한다나.”
아무래도 미술관 내부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B급과 C급 플레이어들은 바깥쪽으로 배치한 듯했다.
“그래, 어쨌든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누가 공짜로 해준대? 다음에 최대한 어려운 던전이라도 알아 보든지 해야겠어.”
“그래라.”
진원은 그녀에 대답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김진원 씨의 에픽 무기, 묠니르의 전시회를 진행하겠습니다. 직원의 지시에 잘 따라주세요.”
9시가 되자, 직원의 말과 함께 엄청난 수의 관람객들이 앞서 입장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들어가 주세요.”
“아오. 하필이면 내 앞에서 끊네.”
직원들이 주의 깊게 입장하는 관람객들을 살피며 통제했다.
“와, 옵션 미쳤네. 솔직히 구라라고 생각했었는데.”
“저걸 어디서 얻은 거야? 사람들 말로는 플레이어 이벤트 보상일 확률이 가장 높다던데?”
묠니르의 성능을 확인한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떡 벌리며 감탄사를 뱉다가, 한쪽 벽에 기대고 있는 진원의 얼굴을 확인하고 유난을 떨었다.
“김진원! 저기 김진원도 있다!”
“한국의 S급 플레이어! 이벤트를 연달아 클리어하고 돌아온 남자!”
“에픽 아이템은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몰려드는 사람들의 질문 공세를 적당히 떨쳐내던 그는, 붉은 늑대와 메시아의 보고에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