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차원 퀘스트-6
“좋아. 그럼 너네 뜻대로 한번 해봐라.”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MP회복 포션을 꺼내 연달아 마시며, 소환수들의 스킬 연계를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의 명령이 있어야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소환수들이 의견을 나타내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
“아돌프! 그리고 너희들! 죽기 싫으면 뒤로 빠져!”
진원은 반센의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고, 쉴 새 없이 검을 찔러대는 아돌프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김진원! 마무리는 우리에게 맡겨다오! 이 이상 도움을 받을 수는 없… 물러나! 당장 이놈한테서 떨어져라!”
아돌프는 목숨을 내던지고서라도 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지만, 진원의 근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빠르게 부하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꼬마 디멘션 워커가 뒤틀린 차원: 메가모프를 사용합니다. MP를 600 소모합니다.]
[꼬마 임프가 지옥불 투척을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특수 행동으로 몸집을 크게 부풀린 소환수에게, 임프가 지옥불을 던졌고.
스윽.
녀석은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을 두른 채로 자세를 낮췄다.
“끄아아아! 몸을 내놔라!”
옆으로 후퇴하는 아돌프와 부하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반센은, 지옥불을 두른 소환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라.”
진원은 허락을 기다리며 자신을 응시하는 디멘션 워커에게, 짧게 대답했고.
쿵! 쿵! 쿵!
녀석이 반센에게 도달하기까지 단 세 걸음밖에 걸리지 않았다.
“끄아아아아! 내 몸이!”
디멘션 워커는 두 팔을 벌려 놈을 그대로 감싼 채로 힘을 주었고, 꼬마 마도사가 공중에서 파이어볼을 연사했다.
주르르륵.
액체화된 반센은 별 저항도 못 해보고 녹아내렸고, 그대로 증발했다.
띠링.
[오염된 차원의 조각에 지배된 숙주를 처치하였습니다.]
[차원 퀘스트 - 오염된 차원의 조각 정화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잠시 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바닥에 남아 있던 오염된 조각이 공중에 떠오르며 빛을 내뿜더니 투명한 색으로 변했다.
“이게 붉은 늑대 전용 차원의 조각이란 말이지. 너희들, 수고했다.”
차원의 조각에게 다가간 진원은 그것을 낚아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전신이 뜨겁게 타오르던 꼬마 디멘션 워커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몸을 털었다.
“김진원. 방금 처치한 반센이 네가 말한··· 조각이 들어있다는 놈이었나?”
“그래, 오염된 조각은 인간에게 주로 기생한다고 했으니까.”
“···그런가. 나를 배신한 건 본인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돌프가 새까맣게 그을린 바닥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길 잠시.
“망할! 그럼 내 여동생은! 설마 똑같이 먹혀버린 건가!”
곧 자신의 여동생 또한 방금 전의 기사들과 같은 방식으로 죽었을 거라고 판단해, 자리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르민! 미안하다. 못난 오빠라서 정말 미안하다! 끄흐흑!”
“얌마, 멋대로 네 가족 죽이지 마라.”
진원은 서럽게 우는 아돌프를 보며 기분 나쁘다는 표정과 함께, 뒤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아르민?”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작은 소녀의 품에 안겨 있는 여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저 소녀는 도대체 누구지? 어떻게 내 여동생을······.”
“내 우수한 부하.”
“부, 부하? 그렇군.”
아돌프는 진원의 간단한 대답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가를 닦았다.
메시아는 붉은 늑대와 함께 수정구를 찾아 부순 후, 아돌프의 여동생을 찾으라는 진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던 것.
“수고했어.”
[응. 그런데 이 여자, 많이 쇠약해져 있어.]
그녀는 아돌프에게 다가가 여동생을 넘겨주었다.
“고맙다.”
그는 메시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여동생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안색이 창백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당했길래!”
“이걸 먹여라. 회복 포션이니까 괜찮아질 거다.”
아돌프가 아르민을 보며 안절부절못하자, 진원은 HP 회복 포션을 건네주었고.
“김진원. 너에게는 정말 감사한다.”
아돌프는 그에게서 포션을 받아 황급히 여동생의 입가에 가져갔다.
띠링.
그리고 그 순간, 진원의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칭호: 차원의 견습 수호자]
조건: 차원 퀘스트를 한 번 깔끔하게 수행해 낸 플레이어에게 지급되는 칭호.
효과: 마력 +10
“응? 뭐야? 칭호?”
내용을 확인하던 진원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칭호 같은 경우는 좀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획득하기가 까다로웠다.
얼마 전 플레이어 이벤트에서 3만 가까이 되는 쿤족들을 처치하고서도 얻을 수 없었으니.
‘견습 수호자라. 그렇다면…….’
앞으로 차원 퀘스트를 깔끔하게 클리어해 나간다면, 더욱 성능이 좋은 칭호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일단 차원의 조각을 녀석에게 사용해 볼까.’
생각을 마친 진원은 붉은 늑대에게 정화된 조각을 건네주려 했지만,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고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마이 룸에서 사용이 가능합니다.]
“에라이 망할. 일단 인벤토리에 넣어놔야겠네.”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여동생에게 포션을 먹이고 안색을 확인하던 아돌프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돌프 님! 전부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살아남은 기사들은 한 놈도 없습니다!”
잠시 후.
성안을 살펴보던 아돌프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쿠아아아!”
그 사이, 전방에서 기사들을 쓸어버리던 레드 드레이크가 돌아와 진원을 향해 칭찬해 달라는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래. 너도 잘했다.”
“그르르르.”
진원이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만져주는 도중, 부하의 보고를 듣던 아돌프가 진원에게 다가왔다.
“김진원. 너와의 약속대로 먼저 지혜의 서가 있는 곳에 데려갔어야 했는데, 그럴 경황이 없었다. 미안하다.”
아돌프는 진원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지금이라도 장소에 안내해주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너희들, 여동생을 잘 부탁한다.”
“맡겨주십시오, 아돌프 님!”
* * *
“역시 예전과 같은 자리에 있군.”
“이게 지혜의 서냐?”
“그렇다.”
아돌프의 안내를 따라 성의 지하로 향한 진원은, 눈앞의 거대한 책을 보고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지혜의 서는 강력한 효과를 가진 물건답게, 길을 찾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아돌프가 주의 깊게 손을 더듬어 가며 벽돌을 누르길 다섯 차례.
그리고도 한참 나아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지혜의 서가 아돌프가 말한 대로의 효과를 가지고 있으면, 상당히 좋은 물건인데. 저렇게 큰 걸 옮기는 건 쉽지 않았겠네.’
아돌프는 두꺼운 쇠사슬로 여러 겹 감겨져 있는 책에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관찰한 뒤, 진원에게 보고했다.
“중간에 박혀 있는 보석의 색을 보면, 상태가 괜찮은 것 같다. 다만, 이것을 사용하고 나면 상당히 지칠 텐데, 괜찮겠나?”
그는 진원에게 지혜의 서를 사용하는 방법과 함께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웬만한 병사들은 며칠 동안 눈도 못 뜨더군. 다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그래? 잠깐 옆으로 비켜봐.”
진원은 지혜의 서에 한쪽 손을 갖다 대 보았지만.
“망할. 안 되잖아!”
[사용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진원의 말에 아돌프가 뒤이어 자신과 동일한 방법으로 손을 갖다 대었다.
“음, 알고 싶은 정보를 말하라고 하는군. 내가 대신 사용하겠다.”
“괜찮겠냐?”
“물론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팔 한쪽이 잘린다고 해도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줄 의향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어.”
아돌프가 진지한 표정으로 무거운 이야기를 내뱉자, 진원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자, 준비는 끝났다. 알고 싶은 정보를 알려다오.”
‘원래는 차원의 조각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찾으려고 했는데. 놈이 알아서 기어 나와버렸으니.’
그의 설명대로라면, 지혜의 서는 한번 효과를 발휘하고 길게는 3년까지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정보···….’
어차피 아돌프는 다른 차원의 인간이기 때문에, 대신 사용해 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신중하게 말해다오.”
“그래.”
진원이 자리에서 고민하는 동안, 아돌프는 그를 보며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338번 행성의 플레이어를 탄생시킨 놈들의 정체와 목적을 알고 싶다.”
포탈을 열어 몬스터를 쏟아내고, 이벤트를 열어 싸움을 강요하는 놈.
놈인지, 놈들인지도 모른다.
‘궁극적인 목적이 뭔지 알아낼 기회다.’
“알겠다. 맡겨다오.”
그의 표정을 살핀 아돌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혜의 서를 사용했다.
우우우웅-
책 표면의 중앙에 박혀 있는 보석이 붉은빛을 내뿜으며 진동하기 시작하다가.
우웅.
자동차 시동이 꺼지는 것처럼 힘없는 울음을 토해내며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음··· 김진원. 문제가 생겼다.”
“왜 그래?”
“제한된 정보라고 하는군.”
아돌프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재차 지혜의 서를 사용하려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렇다면 여기 있는 대륙도 놈들의 영향이 끼쳤다는 말인가?
“흐읍!”
“야야, 그만 됐다.”
진원은 안간힘쓰며 능력을 사용하려는 아돌프를 말렸다.
“그냥 네가 써라. 나는 다른 차원의 인간이라서 사용이 안 되는 것 같다.”
“…정말 그래도 되는가?”
“그래, 그것 말고는 알고 싶은 정보도 없고.”
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아돌프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현재 내게 필요한 정보··· 그것은.’
왕에게 산 오해를 풀고 제자리를 찾는 것.
‘원래대로 못 돌리더라도. 이대로는 안 된다.’
현재 자신은 수배가 되어있기 때문에, 평생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대륙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대로는 내가 너무 억울하다. 내 가족은 무슨 죄인가.’
생각을 마친 아돌프가 다시 지혜의 서에 손을 갖다 대었고.
우우웅-
방금 전과는 다르게, 강렬하게 진동하던 책에서 붉은빛이 한번 번쩍였고.
“크으윽!”
아돌프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뒤로 넘어졌다.
“아돌프, 괜찮냐?”
진원은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포션을 건네주었다.
“고맙다. 덕분에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고개를 몇 번 저어 정신을 차린 아돌프가 몸을 일으키며 효과가 다한 지혜의 서를 바라보았다.
“이제 다 끝났군.”
* * *
차원 퀘스트를 완료한 진원은 더 이상 알데바란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구와 알데바란과의 시간 비율은 1:10.
남은 기간 동안 이곳에 있는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를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띠링.
[경험치 획득이 불가능합니다.]
[아이템 획득이 불가능합니다.]
“망할. 아이템도 못 얻어?”
불친절한 메시지에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돌프는 병사들을 모아 그를 배웅해주기로 했고.
“저··· 김진원 님. 저를 구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돌아가신다고 하셨죠?”
시간이 지나 의식을 찾은 아돌프의 여동생, 아르민이 진원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