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차원 퀘스트-5
“좀 더 살살 쳤어야 했나? 안 죽었으면 됐다만.”
진원은 거품을 물고 기절한 기사를 슥 쳐다본 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사 셋의 복부를 추가로 가격했다.
뻐억!“커헉!”
“끄억!”
놈들은 진원의 주먹질 한 방에 저마다 배를 부여잡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후, 그냥 주먹질 한 방에 이 정도면, 스킬은 강제봉인이겠네.”
총잡이의 장갑을 착용했다고는 하나, 놈들이 이 정도로 약했을 줄이야.
‘허, 오라를 쓰는 것도 아니고 무기를 장비한 것도 아닌데. 설마 단순한 완력인가?’
그의 옆에서 기사들을 상대하던 아돌프가 속으로 혀를 차기도 잠시.
“주군, 말씀하신 여성을 찾았습니다.”
탐색을 마치고 돌아온 붉은 늑대가 진원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그게 정말인가? 지금 당장 안내해다오!”
“바로 안내해줘.”
“예.”
붉은 늑대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대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멀리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그놈은 적입니다!”
[붉은 늑대가 발도: 추격을 사용합니다. MP를 50 소모합니다.]
“뭐야?”
서걱!
“크아악!”
진원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가 날린 검기가 붉은 늑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놈에게 적중했고, 놈은 괴성을 지르며 시꺼먼 연기로 변했다.
“분신이네.”
진원은 점점 옅어지는 연기를 보며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붉은 늑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분신체에 대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
“마법인가? 저런 종류의 마법은 난생처음 본다. 벌써 마도사가 도착한 건가?”
아돌프 역시 긴장한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낼 수 있는 마법이라… 설마?’
왕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오해를 사 기사단에서 쫓겨나고, 그대로 지명수배가 되어 버린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왕께서 내 얼굴을 확실하게 봤다고 했지. 그때의 나는 외곽에 있었고.’
그러나 그가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하기도 잠시.
“몸! 새로운 육체가 필요하다!”
“네놈! 반센! 내 여동생은 어디 있냐!”
반센이라고 불리는 남성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길이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양손에 쥔 채로, 진원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몸! 몸을 내놔라!”
“이 새끼가 차원의 조각을 품고 있는 놈인가?”
진원은 느긋하게 묠니르를 꺼내고, 달려드는 반센을 보며 자세를 낮췄다.
‘확실하지 않으니까 일단 막기만 하자.’
제아무리 육중한 덩치와 힘을 가진 놈이라 해도, 에픽 무기인 묠니르를 당해낼 리가 없을 테니까.
“망할 놈! 네놈은 내가 반드시 죽인다!”
하지만 이를 갈던 아돌프가 앞서 달려나가 놈이 휘두르는 공격을 막았다.
티잉!
“크윽! 무슨 힘이······!”
“으아아!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
아돌프는 반센의 힘에 경악하며 검을 든 팔에 최대한 힘을 불어넣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나는커녕 일반 기사들에게도 쩔쩔매던 녀석이 어떻게?’
분명히 반센은 왜소한 체격에 검을 드는 것도 힘겨워했었다.
하지만 놈은 그것을 메울 정도로 엄청난 지략가였고 함께 해 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자신이 신뢰하는 부하이기도 했다.
“으아아아!”
“크억! 더 이상은······.”
반센은 이성을 잃은 듯이 괴성을 질러댔고, 놈과 검을 맞대고 있던 아돌프는 힘겨운지 왼쪽 무릎을 꿇었다.
‘저놈은 아닌가? 꽤 의심스러운데.’
그 사이 진원은 아돌프의 뒤에서 반센이라고 불리는 남성에게 백과사전을 사용해 보았지만, 차원의 조각을 품고 있다는 정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아니면 아이템의 성능 문제겠지.’
진원은 거한의 남성에게 쩔쩔매고 있는 아돌프를 보며 인벤토리에 백과사전을 넣은 뒤.
‘저놈한테는 스킬 써도 되겠네.’
자리에서 와인드업하고 마구를 사용했다.
“크아아악!”
안면에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지자 반센은 한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돌프가 놈의 복부에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크아악! 새로운 육체!”
“큭! 깊숙이 찔렀는데! 도대체 뭐냐!”
반센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돌프를 거칠게 밀쳐낸 뒤.
“크아아아아아!”
하늘을 보며 울부짖었다.
즈즈즈.
그러자 놈의 피부색이 시꺼멓게 물들며, 거구였던 덩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몸. 원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이윽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게 된 반센은, 손가락을 들어 진원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스스스.
“···저놈 맞잖아.”
놈의 이마에 솟아난 붉은 색을 띠는 조각.
확실하게 차원의 조각이다.
“얘들아! 저놈만 죽여라. 나머지는 죽이면 안 된다.”
“분부대로.”
놈의 주위로 분신체들이 생겨나는 것을 확인한 진원은, 붉은 늑대와 소환수들에게 명령하며 묠니르를 놈에게 던졌다.
“흡!”
그러자 놈의 주위로 생겨난 수많은 분신체들이 묠니르를 몸으로 받아내며 충격을 흡수했다.
“에픽 아이템인데 그 정도로 될 것 같냐!”
그러나 묠니르는 엄청난 공격력과 함께 갖가지 추가효과가 붙은 무기.
아무리 놈의 분신체가 많다 한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크, 크아악!”
반센은 분신체를 뚫고 날아오는 묠니르를 잡으려 했지만.
파지지직!
손잡이를 잡자마자, 놈의 몸에 전기가 흐르며 스파크가 강렬하게 튀었다.
“그건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망할 놈아.”
진원은 고통스러워하는 놈을 보며 조소를 지은 뒤, 와인드 업 했다.
그동안 놈의 분신체들은 끊임없이 생성되며 자신에게 달려들었지만, 붉은 늑대와 소환수들이 분신체들을 가볍게 처리해나갔다.
“아돌프! 비켜라!”
“김진원! 도대체 그건 또··· 알겠다.”
아돌프는 진원의 오른손에 생성된 구체를 보며 순간 눈이 커졌지만, 비키라는 그의 재촉에 빠르게 옆으로 물러났다.
“흡!”
진원의 던진 마구: 칼날 폭풍의 수많은 칼날이 놈의 몸을 꿰뚫는가 싶었지만.
주르르륵.
그것을 본 놈은 자신의 몸을 순식간에 액체화시킨 뒤, 다른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억! 이건 또 뭐냐!”
“육체를 내놔라!”
한창 아돌프의 병사들과 싸우고 있는 기사는 자신의 몸을 감싼 괴상한 액체를 보며 떼어내려 안간힘 썼지만, 검은 액체는 순식간에 기사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이런 미친! 다들 뒤로 물러나!”
“저 괴상한 액체에 다가가지 마라!”
그것을 본 아돌프와 그의 부하들이 기겁하며 거리를 벌렸고.
“아아아악!”
“도와줘! 도와달라고!”
그 사이 머리를 제외하고 모든 부위가 액체로 변한 반센은, 근처에 있는 기사들을 끊임없이 삼켜댔다.
“칼날 폭풍도 안 통하고. 전기도 안 통하네.”
진원은 묠니르를 자신의 손으로 되돌린 뒤, 꿈틀거리며 덩치를 불려가는 반센에게 백과사전을 사용했다.
[오염된 차원의 조각]
설명: 인간의 몸에 기생한 차원의 조각. 현재 숙주의 육체가 불안정해, 새로운 숙주를 필요로 하고 있다.
- 공략 포인트: 화염과 빙결 스킬에 약하다.
“화염과 빙결? 일단 나는 둘 다 없는데.”
반센이었던 이름은 어느새 차원의 조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보를 확인한 진원은 꼬마 임프와 마도사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들였다.
“아돌프! 불이나 빙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은 없냐?”
“그것이 저놈에게 효과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
“알겠다. 잠깐만 시간을 다오.”
진원의 대답에, 아돌프가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임프, 저놈한테 최대한 강한 화력으로 던져. 마도사, 너도 마찬가지다.”
“키긱!”
“맡겨주십시오, 주인님!”
[꼬마 임프가 지옥불 투척을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꼬마 마도사가 버스트를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키기익!”
진원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임프가 꿈틀거리는 액체를 향해 지옥불을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화르르. 퐈악!
“녹아라! 더럽게 생긴 놈아!”
공중으로 올라간 마도사가 파이어볼을 기관총처럼 연사했다.
“크아아아!”
몸집을 부풀린 놈의 몸에 녹색 불길이 세차게 치솟았고, 잠시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마도사의 파이어볼이 놈의 머리에 연이어 적중했다.
꾸르륵. 꾸륵.
놈은 그러는 중에도 근처에 있는 기사들을 잡아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지원을 요청해라! 빨리 가서 수정구를 사용해! 이러다가 전멸이라고!”
“망할! 부서졌단 말이다! 통신용 수정구 세 개 전부!”
“그게 말이 되냐고! 끄아아아!”
수천에 달했던 기사들은 반센이 앞뒤 가리지 않고 삼켜 버려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만큼 많은 수의 기사들을 삼킨 반센의 덩치는 어느새 10미터를 넘겼다.
“화력이 살짝 부족한데. 임프, 다음 지옥불은 얼마나 남았냐?”
쉴 새 없이 연발한 소환수들의 스킬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놈은 녹다 만 아이스크림처럼 괴상한 형태로 변해 있었다.
“키긱!”
“5분이라··· 마도사. 너는? 중급 화염 마법도 연사할 수 있겠냐.”
“죄송합니다, 주인님. 중급 마법을 연사하기에는 제 실력이 부족합니다.”
심연의 마누스의 검은 기운이라면 놈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소환하려던 진원이었지만.
“나에게 맡겨라! 아니, 우리에게 맡겨라. 김진원! 반센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버리게 해다오!”
“아돌프 님을 따라라!”
“겁먹지 마라! 김진원 님이 우리를 위해 저렇게 싸워주신다고!”
“우와아아아!”
어느새 롱소드에 불을 붙인 아돌프와 병사들이 절반가량 녹아내린 반센을 향해 내달렸다.
“아돌프 님! 1분도 못 버틸 것 같습니다!”
“1분이라도 버텨라!”
“악을 쓰고 화력을 더 올려! 죽어도 내일 죽어라!”
그의 부하들은 뒤편에서 이를 악물며 능력을 유지했다.
“반센! 어쩌다가 그런 몸이 되어버린 거냐!”
“끄아아아!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
반쯤 녹아 흐물거리던 반센의 저항은 여전히 거셌는지, 사방에서 공격을 허용하면서도 주위의 부하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음··· 뭔가 결정타가 필요한데.’
분명히 놈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맞지만, 치명적인 데미지를 주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일단 마누스를 소환하자. 이대로면 저놈들까지 먹혀버리겠네.’
진원이 스킬을 소환하려던 그때.
툭툭.
어느새 옆에 다가온 꼬마 디멘션 워커가 진원의 허리를 두드렸다.
“뭐야. 왜 그래?”
그러자 녀석은 손을 들어 꼬마 임프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쟤랑 너? 둘이서 뭘 어떻게 하려고?”
진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녀석은 열심히 손을 휘저어가며 그에게 설명했고.
“키기익! 키긱!”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꼬마 임프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긱! 키긱!”
녀석은 꼬마 디멘션 워커에게 불을 만들어 던지는 시늉과 함께, 덩치가 커진다는 것을 온몸을 사용해 표현했다.
“그거 한 방이면 확실하겠네. 그런데 너, 견딜 수 있겠냐?”
진원은 소환수의 아이디어에 내심 감탄했지만, 꼬마 임프의 스킬을 일정 시간 버텨야 한다는 단점 때문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끄덕.
그러자 녀석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반센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