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차원 퀘스트-3
아돌프는 진원이 최대한 이해하기 편하도록 간략하게 이야기를 간추려 설명해나갔다.
그럼에도 2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정리하자면, 네 충신이었던 부하가 거짓을 꾸며내 너의 신분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서 가족까지 납치해갔다. 이거지? 그놈은 좋은 직위를 얻었고?”
“정확하다.”
진원의 말에 아돌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미 나는 왕의 목숨을 위협했다고 알려져 있다. 놈이 어떤 개수작을 부렸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그가 기사 기사단의 높은 직위에 속해 있던 시절.
한밤중 왕이 머무르는 침실에서 비명이 들렸고, 왕은 아돌프가 자신을 시해하려 했다며 피가 흐르는 손목을 부여잡고 크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때 나는 분명히 성벽 외곽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음? 이런, 이야기가 쓸데없는 곳으로 샜군.”
과거를 회상하던 아돌프는 진원의 시선을 느끼고 다시 화제를 돌렸다.
“내가 이전에 말했던 그 성안에는 지혜의 서가 있다. 그것을 사용한다면, 네가 찾는 인물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지혜의 서라고? 그게 뭔데?”
“음, 사용자가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내어주는 마도서다. 65년 전, 알데바란에 큰 도움을 받은 마도사가 보답으로 건네준 것이지.”
그는 지혜의 서가 보관되고 있는 장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의 여동생을 구해준다면.’
지혜의 서를 사용해, 오염된 차원의 조각을 품은 존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돌프의 설명을 들어보니까 알데바란이라는 곳은 상당히 넓은 대륙 같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진원은 결정을 내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도와준다.”
* * *
같은 시각.
타이거 길드의 파티원들은 B급 던전을 공략해 나가는 중이다.
“크에엑!”
10명의 길드원으로 구성된 파티원들은, 미리 훈련받은 대로 스킬 연계를 해나가며 보스를 쓰러뜨렸다.
띠링.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랭크 : B
“예쓰! 무난하게 클리어했네. 이제 B급도 별거 없는데?”
“무난하긴 무슨. 야, 은지희! 너 스킬 컨트롤 그따구로 할 거야? 앞에 파티원들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
“죄, 죄송합니다. 언니!”
“길드장님이라고 부르랬지!”
“넵! 길드장님!”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며 가볍게 웃던 은지희는, 뒤에서 들려오는 신혜진의 호통에 바로 등을 돌리며 사과했다.
“그리고 앞에 어그로 담당하는 탱커는 너무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것 좀 주의해주고.”
“예, 예! 알겠습니다!”
신혜진은 뒤편에 빠져서 길드원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야, 갑자기 왜 이렇게 빡세졌냐?’
‘나도 몰라,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그녀의 표정을 본 원딜러들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그리고 거기 원딜러 둘! MP 계산은 하면서 스킬을 사용하라고 했잖아! 그렇게 막 갈겼다가 MP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래?”
“죄, 죄송합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원딜러들 또한 그녀의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후,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신혜진은 길드원들을 보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플레이어 이벤트가 잦은 빈도로 발생하는 것은 알아채고, 길드원들을 열심히 굴리는 중이었다.
‘적어도 살아 돌아올 수 있게는 해줘야지. 내 길드원들인데. 그리고 다음 이벤트는 분명히 더 힘들어질 거야.’
그녀는 진원이 강제적으로 참가한 플레이어 이벤트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5명이랑 5,000명. 그런 쓰레기 같은 밸런스도 문제지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김진원 그놈도 문제네.’
나중에 시간 나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한편.
신혜진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은지희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길드장님. 진원 오빠 에픽 아이템 얻었다는데, 잠깐 구경 좀 하고 오면 안 될까요?”
“뭐라고? 지금 서로 못 들어가서 난리인 던전을 안 들어가겠다고?”
“···바로 정비할게요.”
신혜진이 짐짓 화난 눈빛으로 은지희를 노려보자, 어깨를 흠칫 떤 그녀는 바로 다음 던전을 공략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 묠니르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으로라도 한번 보고 싶네.’
* * *
진원은 그 뒤로 상점에서 간이 텐트를 여러 개 구매한 뒤, 병사들에게 설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김진원 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특이한 재질은 생전 처음 봅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많이 제공해 주시다니!”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
그들은 텐트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저마다 환한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저런 곳에 생활했었다니.’
그들의 방어구나 무기 상태를 보고 대강 짐작이야 했었지만, 5명이 자도 버거운 듯한 막사에서 10명 이상이 들어가 생활한다는 말을 들으니 텐트를 꺼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이거. 알아서들 먹어라. 많이는 못 준다.”
진원은 이어서 통조림을 대량 구매해 그들의 눈앞에 쏟아부었다.
그것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병사들은 먹을 것임을 알아차리고, 땅이 떠나갈 듯이 함성을 질러댔다.
“식량! 식량이다아아!”
“아직 만지지 마라!
“김진원 님, 정말로 먹어도 됩니까?”
병사들은 들뜬 듯한 얼굴로 진원의 허락을 기다렸다.
“그래.”
“얼마 만에 밥이냐!”
“한 놈 앞에 하나씩이다! 그 이상 건들지 마라! 그리고 아돌프 님 것도 따로 빼놔!”
자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사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통조림 뚜껑을 따 게걸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역시 위대하신 존재······.”
“야, 그만해라. 내가 가진 특수한 능력이다.”
진원은 다시 땅에 무릎을 붙이는 아돌프를 보며, 질린 듯이 말을 뱉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이유가 뭔가?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한테도 여동생이 하나 있거든.”
“그것이 정말인가? 그런데 겨우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를 도와주다니!”
미심쩍은 눈으로 진원을 바라보던 아돌프는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 급기야 울먹거리며 이마를 땅에 붙였다.
“김진원!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
‘명예 포인트가 오를 것 같아서 도와준 거였는데.’
사실은 다른 차원의 인간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명예 포인트가 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별 효과는 없는 듯했지만.
“놈들의 병력은 얼마나 있어?”
진원은 정신없이 식사하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아돌프에게 질문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최소 3천은 있을 듯하다. 거기다 우리가 두세 차례 습격했으니, 추가 병력이 동원될 확률이 높다.”
“놈들은 얼마나 강하냐?”
“마도사들과 정예 기사들까지 뒤에 합세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다.”
그는 진원에게 알데바란의 기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오라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플레이어라는 인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싸우는지 잘 모르겠지만, 놈들과의 근접전은 만만치 않을 거다.”
그는 주변에 있는 포크를 집어 들었고, 회색을 띠는 오라를 방출해 검과 유사한 형태를 만들었다.
“실력 있는 기사일수록 오라를 더욱 크게, 그리고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지.”
“모든 기사가 그걸 사용하는 거냐?”
“아니, 자질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나 말고는 없다.”
아돌프는 고개를 저은 뒤, 포크를 들어 땅을 세로로 그었다.
그러자 포크를 둘러싸고 있던 오라는 지면을 두부를 자르듯이 부드럽게 갈라져 나갔다.
“그리고 오라를 다루게 되면, 엄청난 절삭력을 지니게 되지. 웬만한 철제 갑옷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게 다야? 오라를 쓰는 기사들이랑 마도사들.”
“음? 그, 그렇다만.”
아돌프는 진원이 김빠진 반응을 보이자 허탈한 듯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군. 창조 마법과 유사한 능력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내가 무슨 추태를······.’
그리고 진원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드레이크. 놈을 혼자 힘으로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당장 단신으로 성벽에 돌진해도 되겠지.”
“드레이크? 그건 또 뭐냐?”
“기본 체구가 20미터는 넘는 흉포한 도마뱀이다. 놈을 잡으려면 수많은 기사들과 마도사들이 달려들어야 할 정도로 강력하지.”
물론 드레이크를 단신으로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은 알데바란에서는 없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을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돌프 님,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드레이크를 혼자서 잡는다니, 목숨이 100개여도 부족할 겁니다.”
아돌프의 부하들은 터무니없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저마다 가볍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놈 잡으면 뭐 좋은 아이템이라도 주냐?”
“아이템…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이빨이나 가죽은 상당히 가치가 높다.”
“그래?”
아돌프의 말을 거짓이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들의 은신처를 급습할 가능성이 있는 드레이크를 제거하고 싶었다.
‘드레이크의 둥지는 이곳에서 꽤 떨어져 있지만, 놈이 언제 이쪽으로 넘어올지 모른다.’
아돌프의 발언으로 인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레벨이 오를지도 모르니까 한번 가볼까. 이곳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긴 하네.’
진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아돌프에게 턱짓했다.
“좋아, 바로 가자.”
“지, 지금 바로 말인가?”
“놈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아돌프, 너만 따라와.”
아돌프는 진원의 엄청난 행동력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왜?”
“아니다. 바로 준비하지. 너희들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쪽에 세워둔 검을 챙겼다.
“아돌프 님! 너무 무모합니다!”
“아무리 김진원 님이 강하셔도 드레이크는 무립니다!”
그의 행동을 본 부하들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진원은 시끄럽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누가 너희들에게 잠자리랑 물이랑 먹을 걸 줬냐? 다시 뺏기고 싶어?”
그의 말에 부하들은 일제히 침묵을 지키고, 빠르게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금방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 * *
진원과 아돌프가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멀었냐?”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들은 말 한 마리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아, 아돌프가 말의 고삐를 쥐고 진원이 양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는 자세를 취했다.
‘아오, 엉덩이 되게 아프네.’
진원은 승마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말에서 전해지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도록 하지.”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며 나아가던 아돌프는, 드레이크의 발톱 자국을 발견하고 말을 멈춰 세웠다.
“얘들아.”
“맡겨주십시오.”
[맡겨줘, 진원.]
“예!”
“키긱!”
진원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소환수들에게 드레이크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자, 잠깐··· 방금 그것들은 도대체 뭔가?”
“얘들? 내 우수한 부하들.”
아돌프는 갑작스럽게 나타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소환수들을 보며 경악했다.
‘플레이어라는 다른 차원의 인간은 모두 저런 능력을 가진 건가?’
그러나 그가 놀라기도 잠시.
“쿠아아아!”
드레이크의 사나운 울음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