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묠니르
[아이템: 에픽 장비 변환권]
특수한 경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종류: 기타
등급: 에픽
효과: 장비아이템을 에픽 등급으로 상승시켜줍니다.
제한: 유니크 등급 이상
끄덕.
말없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던 메시아는 진원에게서 황금색의 티켓을 건네받았다.
“여기에 사용하면 된다.”
[응.]
그가 토르의 망치를 바닥에 내려두자, 그녀는 아이템을 무기에 갖다 대었고.
띠링.
[에픽 장비 변환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진원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네.’
그를 제외한 플레이어들 대다수가, 레전더리보다 위의 등급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두근 두근.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진원은 Y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가 천천히 눌렀다.
띠링.
[토르의 망치에 에픽 장비 변환권을 사용합니다!]
[토르의 망치가 묠니르로 변환됩니다!]
“뭐야. 아무 반응도 없는데?”
알림음과 함께 문자가 나타났지만, 딱히 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망치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파즈즈즈!
“아, 깜짝아!”
토르의 망치에서 엄청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메시아, 떨어져!”
[알았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진원은,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고 가만히 무기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이제 끝났나?’
한동안 강렬하게 백색의 스파크를 튀기던 망치가 잠잠해지기도 잠시.
쿠구구궁.
하늘이 심상치 않은 울음소리를 냈다.
“오빠, 곧 비 올 것 같은데? 천둥 치는 거 봐. 날씨가 갑자기 왜 이래?”
그 소리를 듣던 동생은 진원에게 창문을 잘 닫으라고 전한 뒤, 베란다로 향했고.
파지직!
“꺄악!”
눈부실 정도로 번쩍하는 번개에 놀란 김지원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우우웅.
아파트의 외벽을 뚫고 내려친 벼락은 토르의 망치로 향했고 망치는 한동안 빛을 내뿜으며 약하게 진동했다.
띠링.
[토르의 망치가 묠니르로 변환되었습니다!]
“하, 이럴 거면 경고문이라도 따로 달아놓던가. 한 번 더 사용했다가는 사람 잡겠네.”
진원은 커다랗게 뚫린 천장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와 씨! 깜짝아! 죽을 뻔했네. 와······.”
“아들! 다친 데는 없어? 도대체 이게 뭐래니!”
“일단 여기서 나가자! 빨리!”
윗집의 가족들은 방의 천장과 바닥이 한꺼번에 뚫린 것을 보고 기겁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네.’
잠시 볼을 긁적거리던 진원은, 묠니르로 이름이 바뀐 망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아이템: 묠니르]
완전한 힘을 되찾은 신화의 무기.
종류: 무기
등급: 에픽
공격력 +100
효과: 1. 손에서 벗어나도 무기의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거리 제한 없음)
2. 무기에 담긴 전류를 방출할 수 있습니다. (1일 최대 3회)
3. 뇌 속성 효과를 가집니다.
4. 적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제한: 1. 근력 80 이상
2. 마력 120 이상
3. 레벨 60 이상
#플레이어 김진원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와. 이게 에픽이라고? 미쳤네······.”
엄청나게 올라간 공격력과 새롭게 추가된 3개의 옵션을 보자, 절로 입이 벌어졌다.
겉보기에는 망치의 표면이 매끄러워졌다는 느낌뿐이었지만, 아이템의 등급은 확실하게 에픽으로 바뀌어있었다.
“하나같이 엄청난 효과들뿐인데? 거기다가 귀속까지 되어있고.”
귀속되어있다는 말은, 자신 말고 이 무기를 다룰 수 없다는 뜻이겠지.
“적에게 무기를 뺏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진원이 들뜬 마음으로 묠니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감상하는 것도 잠시,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고.
“아오! X발! 미쳤냐?”
그것을 확인한 진원은 격양된 목소리로 성을 냈다.
[플레이어 김진원이 에픽 아이템, 묠니르를 획득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하··· 망할 인형 새끼가.”
분명히 그 못생긴 인형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 어디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겠지.
이 메시지는 분명히 전 세계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아이템을 손에 넣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레전더리 아이템만 해도 침을 질질 흘릴 텐데. 이건 에픽이니까.”
방금 떠오른 문자 하나 때문에, 이제 자신은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을 적으로 돌렸다고 해도 될 수준.
‘아무리 나라고 해도 S급 플레이어들 수십 명이 죽자고 달려들면 힘들 것 같은데.’
[괜찮아. 내가 진원을 꼭 지킬게.]
“크이! 크이!”
진원이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메시아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고, 어느새 방으로 들어온 콩콩이 역시 자기만 믿으라는 듯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진원은 녀석들을 보며 피식 웃은 뒤, 최영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다음 날 아침.
진원의 아파트 주위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과 플레이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진원 씨! 계십니까? 국민일보의 기자입니다!”
“에픽 아이템을 최초로 획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짧게 인터뷰 한번 부탁드립니다!”
그가 에픽 아이템인 묠니르를 얻었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사진 한 장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들게 된 것이었다.
“거기! 밀지 마시죠! 저는 새벽 3시부터 여기서 기다렸습니다!”
“거참 예민하게 구시네. 한 발자국밖에 안 들어갔어요! 그리고 구경만 할 거라니까?”
사람들은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이며 신경전을 벌였고.
“아오! 내가 오빠 때문에 못살아, 진짜!”
그 장면을 베란다에서 지켜보던 김지원은 방에서 모자를 가져와 깊게 눌러썼다.
“나한테는 말도 안 해주고 새벽에 나갔다 이거지?”
그녀는 짜증 나는 듯 툴툴대며 마스크까지 하고.
“콩콩아. 집 잘 지키고 있어!”
“크이!”
태평하게 누워있는 콩콩이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섰다.
* *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플레이어1: 님들, 김진원이 에픽 아이템 먹었다는 거 실화임?
플레이어2: 에픽 등급이 레전더리보다 높은 거라던데, 플레이어 이벤트 보상으로 받은 거 아님?
플레이어3: 내가 갔으면 김진원 제치고 1등 먹을 수 있었는데, 저 새끼 운도 좋네.
플레이어4: 에픽 아이템 있으면 나도 김진원 이길 수 있음 ㅅㄱ.
플레이어5: 네 다음 김진원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찐따.
“이놈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아주 그냥 S급 플레이어야.”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인 것처럼 침대에 누워 플레이어 커뮤니티를 살펴보던 진원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어, 왔냐? 훈련은 괜찮냐?”
“···어, 일단은.”
최영호는 태평스런 진원을 보고 표정을 살짝 구기며, 야구 기어 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이 전화 너머로 큰일 났다는 말을 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급하게 휴가를 받고 돌아왔는데.
“야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나를 노려 대는 건 구라가 아니고 진짜거든.”
“그게 진짜면 이리로 안 왔겠지.”
진원의 진지한 말을 가볍게 흘려넘긴 최영호는 기어 백을 풀고 야구 배트를 꺼냈다.
“야, 무섭게 갑자기 방망이는 왜 꺼내는데.”
“아, 그냥 공 한번 던져달라고.”
그는 최영호의 무덤덤한 반응을 보며 싱겁게 웃었다.
“…여전하네. 공원으로 가면 기자들이 꼬이니까, 적당히 아파트 앞에서 하자.”
“그러다 사람 다쳐.”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최영호는 오랜만에 진원이 던지는 공을 친다고 생각하니, 살짝 들뜬 듯했다.
야구복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앞서 밖으로 나갔으니.
“봐주지 말고 던져도 된다. 요즘에 훈련량을 늘렸거든.”
“거기서 더 늘렸다고? 너 야구 말고 다른 건 안 하냐?”
“은퇴하면 취미를 찾으려고.”
“미친놈이네.”
적당히 아파트 뒤쪽에서 자리를 잡은 둘은, 서로 거리를 벌리고 대화를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말이 없어졌다.
‘너무 세게 던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진원은 바닥에 놓아둔 야구공을 잡은 뒤, 와인드업을 했다.
‘150 정도로 맞춰줄까.’
녀석이야 봐주지 말고 던지라고 했지만, 자신의 근력은 80이다.
마음만 먹으면 최영호의 금속 배트를 찌그러트릴 수 있는 위력을 낼 수 있다.
아무리 최영호가 잘나가는 프로 타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눈에 있어서는 그냥 일반인.
‘이래서 플레이어가 스포츠를 하면 안 된다니까.’
녀석이 아무리 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스텟을 조금만 투자하면, 차이는 금방 좁혀져 버린다.
“흡!”
진원은 최영호를 향해 직구를 던졌다.
타이밍을 재던 그는 기세 좋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부웅!
결과는 헛스윙이었다.
“…이게 사람이 던질 수 있는 공이냐?”
“플레이어라서 그런다 짜식아. 이제 됐지?”
“한 번 더.”
“아니, 이걸 치려고?”
적당히 녀석의 기를 죽이고 나서. 밥이나 먹으려고 한 진원이었지만.
‘글렀네.’
저놈의 눈을 보니, 앞으로 두 시간 이상은 꼼짝없이 공 던지는 기계가 될 듯했다.
* *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문명호는 오후 3시, 장관들을 모집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나는 에픽 등급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르겠는데. 설명 좀 부탁하네.”
“예!”
문명호가 먼저 말을 꺼내자, 그의 왼편에 앉아있던 장관 한 명이 일어나 설명을 시작했다.
“대통령님께서 이전에 김진원에게 건네준 칠지도. 그것보다 등급이 한 단계 높은 아이템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 세계에서 김진원 한 명에게만 있다고?”
“…그렇습니다.”
문명호는 장관의 설명을 듣자, 넌더리 난다는 듯이 목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겠나?”
“약간 과장된 말입니다만. 향후 에픽 아이템 때문에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우…….”
그 말은 들은 문명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도대체가. 평범했던 사람이 S급 플레이어로 각성한 것도 그렇고. 특출나도 너무 특출나서 문제야.”
이제는, 오히려 나라가 그를 감당하기에 힘들어졌다고 해도 될 수준.
“모든 외국인에게 입국 거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언젠가 큰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짐짓 화난듯한 문명호의 말에, 장관들은 침음을 뱉으며 침묵했다.
‘으음…….’
‘답이 없다.’
저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행법상, 외국인들을 입국 금지시킬 명분도 없었으며 함부로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후에 어떤 피해를 입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 건은 다음에 다시 하도록 하지.”
말을 마친 문명호가 먼저 자리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완전히 나가고 나서야, 다른 장관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같은 시각.
진원은 엘리트 길드의 소파에 누워있다.
쉴 새 없이 공을 던져달라는 최영호의 기세에 질려 이곳으로 온 것.
‘마침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네.’
이시현이나 최은식이 있었다면, 분명히 또 무기를 보여달라고 매달렸겠지.
‘적당히 시간 좀 보내다가 가야겠다.’
그러나 진원이 누워있기도 잠시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고, 그것을 확인한 진원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