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119화 (119/200)

119. 인형

“괜찮아요. 전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모닥불을 한참 바라보다가, 풀이 죽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못 해서 미안해요, 오빠.”

이벤트에 끌려오기 전, 꼭 오빠의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오히려 짐이 되어버리다니.

‘유니크 직업을 너무 믿었어.’

할아버지에게 받은 튼튼이는 이미 망가진 지 오래였고, 뾰족이 또한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다.

“너 이전에 김수환 씨랑 쿤족들 상대로 시간 끌어주는 거 봤다. 그거만 해도 잘한 거야.”

진원은 손하윤이 자책하는 표정을 보고,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애초에 그녀는 던전 클리어 경험도 없었고, 레벨도 낮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칠지도의 효과 덕분이겠지.’

그러나 무기의 버프 덕분인지, 그녀 나름대로 기습을 시도하는 쿤족들을 잘 상대해 나갔다.

“그래도 그거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요······.”

“너 레벨 몇이야?”

“10이에요.”

딱!

진원은 그녀의 대답에 딱밤을 날렸다. 물론 최대한 가볍게.

“아! 오빠! 아프잖아요!”

갑작스러운 고통에, 그녀는 이마를 어루만지며 진원에게 신경질을 냈다.

“제일 약한 쿤족의 레벨이 30인데, 겨우 10인 네가 어떻게 이기려고 하냐? 그리고······.”

손하윤은 이어지는 진원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갑자기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보고 잘했다고 칭찬해줬어! 항상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던 오빠가!’

방금까지 진원에게 짜증을 부리다가, 갑자기 기쁜 표정을 지으면 그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한 행동이었다.

‘이대로 제한시간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가?’

진원은 그녀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혼자서 고민에 잠겼다.

‘337번 행성의 모든 플레이어를 처리했다.’

하지만, 따로 나타나는 메시지는 없었다.

‘아직도 3일이 넘게 남았는데. 이벤트를 만든 새끼는 도대체 뭘 하는 거냐.’

융통성이 없는 것도 그렇고, 자신은 이벤트 강제 참가에, 말도 안 되는 밸런스 조절로 고생시키기까지.

“신이든 뭐든 너는 무조건 죽인다.”

* * *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

문명호 대통령은 장관들을 긴급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중국 쪽 움직임은 어떤가?”

“예.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래. 계속 주시하도록 하고, 특히 우면산 터널은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예!”

문명호의 말에 장관들이 바쁘게 자료들을 넘겨 가며 펜을 움직였고.

‘음··· 이번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 사이, 문명호는 두 손으로 턱을 괴며 생각에 빠졌다.

김진원을 포함한 플레이어 5명이 이벤트에 참가한 지 4일이 지났다.

저번 플레이어 이벤트에서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었는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현재 수배 중인 이연우가 중국에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한국의 S급 플레이어는 김진원과 송현성 단 2명밖에 없는 상태.

‘그가 이대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중국의 견제가 강해지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수준일 것이다.

‘아니. 이제 4일이 지났을 뿐이다. 믿고 기다려야 한다.’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떨쳐낸 문명호는 두 손을 풀며 입을 열었다.

“제주도에서 나온 그 용액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나?”

“예!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미국의 CSI가 협동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질문에 장관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일의 진행도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알았네. 한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바로 다음 건으로 넘어가지.”

회의는 길어져 갔다.

* * *

진원과 일행들이 점령전을 시작한 지 7일째.

[337번 행성: 3680포인트]

[338번 행성: 9999포인트]

“이제 10분 정도 남았네요.”

진원은 점수 현황과 함께 남은 시간을 살펴보았다.

점령 포인트는 일정수치를 달성하고 난 뒤, 변동이 없는 상태.

“어찌 되었든, 다들 안 다쳐서 다행이구나. 그 군인이야 딱하게 됐다만.”

쿤족들과 대규모 전투를 치르고 2일이 지나서야 잠에서 깬 고재원은, 몸이 뻐근한지 온몸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감사합니다, 진원 씨. 덕분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

“저도요, 오빠!”

이벤트가 거의 끝나가자, 김수환과 손하윤이 진원에게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어허! 이놈들이! 내가 그놈들 절반을 죽였어! 나한테도 감사해 하거라!”

그 광경을 본 고재원이 아쉬운 티를 팍팍 냈고, 그들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띠링.

[플레이어 이벤트, 점령전이 종료됩니다.]

[338번 행성이 우승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 사이, 남은 시간이 지나갔고.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각자의 눈앞에 나타났다.

[기여도 1위: 김진원 - 무자비한 지배자]

[기여도 2위: 고재원 - 패왕]

[기여도 3위: 김수환 - 치사한 놈]

[기여도 4위: 손하윤 - 왜 있는지 모르겠는 애]

“치사한 놈이라고?”

“야! 난 왜 이상하게 적어놓은 건데!”

그것을 본 김수환과 손하윤은 짜증 난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고.

스스스스-

진원을 제외한 일행의 등 뒤에서 포탈이 나타났다.

“헛?”

“잠깐······.”

“악! 오빠!”

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도 잇지 못하고 포탈로 삼켜졌고 이벤트 맵에는 진원 혼자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망할. 또 나 혼자냐?”

지난번과 똑같은 현상.

이제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다리자.

“축하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작은 인형이 튀어나왔다.

“···뭐야?”

흔히 뽑기방에서 볼 수 있는 천사 형태를 본뜬 인형.

놈은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부웅!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망치를 꺼내 놈에게 가차 없이 휘두르려 했지만.

“큭! 뭐야!”

“너는 참을성이 정말 없구나!”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뒤이어 나타난 소환수들도 마찬가지.

“아무리 힘을 줘도 안 될 거야. 여기는 내가 창조한 공간이니까.”

“창조? 너 이 새끼! 우리한테 이러는 목적이 뭐야!”

인형의 말을 듣던 진원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고.

“지금 가르쳐 줄 수는 없지롱. 그것보다 이 모습 어때? 특별히 플레이어 1명에게만 나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거든.”

인형은 그를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망할 놈이.”

“흐흐. 장난은 여기까지 할게. 나도 바쁘거든.”

인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원의 눈에서 선택지가 3개 나타났다.

“5분 기다려 줄게. 원래는 1분인데, 날 즐겁게 해줬으니 특별 서비스야.”

“후우······.”

진원은 놈을 보며 이를 갈았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침착을 되찾았다.

‘분명히 자기가 맵을 만들었다고 했지.’

눈앞의 인형은 분명히 이 공간을 창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저놈이 세상이 급변하게 된 원인일 확률이 높겠지.

‘후.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자.’

평정을 되찾은 진원은 나타난 선택지에 집중했다.

[기여도 1위 플레이어 특별 보상]

에픽장비 변환권

2. 모든 스텟 +10

3. 보너스 라이프 +1

“에픽 아이템이 뭐지?”

선택지를 확인한 진원은 고개를 들어 공중에 떠 있는 인형을 향해 질문했다.

“원래는 안 가르쳐 주는데 특별히 한 번만 설명해 줄게. 레전더리 아이템보다 한 단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

그러자 인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대답했다.

‘모든 스텟 10상승이라면···· 레벨 10이 올라간 효과와 같다.’

거기다 3번은 여분의 목숨을 하나 더 주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하나같이 엄청난 보상들밖에 없다.’

눈동자를 굴리며 꼼꼼하게 내용을 확인한 진원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세계적으로도 장비에 대한 매물은 없다고 했다.’

기껏해야 유니크.

레전더리 장비조차 거래소에 등록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그리고 에픽 장비를 얻었다는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에픽이라는 정보도 저 인형에게서 처음 들었으니.

그렇다면 선택지는 이게 최선이다.

“시간 다 되어가는데, 결정은 끝났어?”

진원을 가만히 쳐다보던 인형이 입을 열었다.

“그래. 1번으로 할게.”

“탁월한 선택이야! 1번! 에픽장비 변환권!”

인형이 짧은 팔을 휘적거리자 황금색 티켓이 나타났고,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이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다음 이벤트도 기대할게!”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이 새끼야!”

티켓을 낚아채던 진원은 다음 이벤트라는 말에 언성을 높였고 놈에게 따지려고 한순간.

스스스.

포탈이 나타나 그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런 x발! 사람들을 언제까지 가지고 놀 거냐!”

진원이 이를 악물고 버티기도 잠시.

그는 엄청난 흡입력에 결국 포탈에 빨려 들어갔고, 그것을 지켜보던 인형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장소를 벗어났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겠네.”

* * *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이시현과 최은식은 늦은 밤에도 사무실을 지키는 중이다.

특히 이시현은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시현 씨, 오늘로 며칠째죠?”

“최은식 씨, 벌써 10번째 물어보셨습니다. 사장님이 이벤트에 참가하신 지 오늘로 7일째입니다.”

길게 하품을 하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는, 기자들이 추측성 기사를 내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중이다.

“형은 괜찮겠으시겠죠?”

최은식은 불안한 기색으로 소파 주위를 맴돌았다.

“사장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애초에 사장님이 못 당해낼 정도면… 우리나라는 그냥 끝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시현은 그의 질문세례를 피하고 싶어 최대한 긍정적으로 대답했고.

“3일만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최은식 씨! 옆에!”

“네? 헉! 던전 브레이크!”

최은식의 말이 끝나기 전, 그의 주위로 검은 포탈이 생성되었고 그는 기겁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너희들 뭐하냐?”

포탈에서 나온 진원은 자세를 낮추고 있는 이시현과 최은식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혀, 혀엉!”

진원을 보며 잠시 눈을 깜빡이던 최은식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달려들었고.

“징그럽다, 이놈아.”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회피하며 최은식을 발로 밀었다.

“커억! 형! 무사히 돌아오셨네요! 괜찮으신가요?”

“사장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다들 귀아프니까 살살 말해.”

그들의 거친 반응에 눈살을 찌푸린 진원은 소파에 앉았고, 눈치 빠른 이시현이 재빠르게 냉장고로 가 마실 음료를 찾았다.

“사장님, 힘드셨을 텐데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괜찮아요.”

진원은 얼음이 띄워진 콜라를 받아 한숨에 전부 들이켰고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최은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5명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 돌아왔나요?”

“1명 빼고는 전부 살아남았다.”

진원이 이벤트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해주려는 순간.

띠링.

[추가보상이 지급됩니다.]

그의 눈앞으로 작은 돌이 하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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