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점령전-5
“꺄악!”
“큭!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냐!”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박민석은 괴로워하는 둘을 보며 빠르게 장소를 벗어났다. 잠시 후, 빛이 멎자 그들의 눈앞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쿤족이 들어왔다.
“아저씨! 앞에 몬스터!”
“뒤로 물러나세요! 빨리!”
놈에게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김수환은, 그녀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음, 이렇게 단시간에 해내리라 생각지는 않았다만. 꽤 쓸모가 있는 인간이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쿤족은 고개를 돌려 도망치고 있는 군인을 응시했다.
‘말을 한다고? 그것도··· 한국어를?’
놈은 갈라지는 듯한, 그것도 밤에 들으면 소름 끼칠 듯한 목소리를 냈다.
[지배자 쿤]
김수환은 놈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력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놈은 오히려 다른 쿤족에 비해 키도 작고 왜소해 보였지만,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악! 이놈들이 왜 쫓아오는 거냐!”
한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던 박민석이 뒤를 돌아보더니 기겁했다.
“기이이!”
“기이!”
어느새 나타난 쿤족들이 그를 향해 죽일 듯이 따라붙었던 것.
“이런 X발! 이딴 게 어디 있냐고 이 X 같은 새끼야! 분명히 네 말대로만 하면 살려준다고 했잖아!”
박민석은 지배자 쿤을 향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나야 네놈을 살려준다고 했지만, 저놈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박민석을 재밌다는 듯이 구경할 뿐이었다.
이미 체력을 꽤 소진한 그가 쿤족에게 따라잡히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적. 우적.
“끄아아아!”
결국 놈들에게 덮쳐진 박민성은 결국 놈들에게 전신이 물어뜯기게 되었고 눈을 치켜뜬 채로 사망했다.
“조금씩 뒤로 빠집시다.”
“아, 아저씨······.”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김수환은 손하윤의 팔을 잡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그림자 이동을 준비하려 했지만.
‘큭! 망할, 연속으로는 안 되나.’
곧 무리임을 깨닫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도망칠 장소를 물색했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 네놈들을 당장 죽일 생각은 없다.”
지배자 쿤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들을 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고.
쉬익! 드르르륵!
그 순간, 놈의 뒤통수를 향해 토르의 망치와 함께 꼬마 마도사의 마력탄이 엄습했다.
“역시, 생각보다 빠르다.”
놈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빠르게 반응해 날아오는 망치를 손바닥으로 막았고, 뒤로 물러났다.
팅!
튕겨 나간 망치는 다시 날아온 방향, 진원이 달려오고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저놈한테서 떨어져!”
망치가 날아온 방향에는 진원과 고재원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빠!”
“진원 씨! 저놈은 상당히 강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진원의 모습을 본 손하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고 김수환은 그를 향해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를 보냈다.
‘저놈만 이름이 다르네. 그리고 느껴지는 마력도 다르다.’
방금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낸 지배자 쿤.
지금까지 상대해오던 쿤족에게는 이름 색이 없었지만, 놈의 이름만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자야! 내가 일행들을 보호할 테니 저놈을 맡거라!”
“부탁합니다! 콩콩아! 스승님이랑 같이 붙어 있어!”
“크이이!”
그의 어깨 위에 타 있던 콩콩이가 힘차게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고재원의 어깨를 향해 뛰었다.
“얘들아!”
“맡겨주십시오.”
“예! 주인님!”
“키기긱!”
진원은 지배자 쿤에게 순간 가속을 사용해 가까이 붙어 망치를 휘둘렀으며, 그사이 붉은 늑대와 소환수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놈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내 뒤로 붙거라! 어서!”
“할아버지!”
“고재원 씨!”
진원이 놈의 시선을 끈 사이, 일행들에게 접근한 고재원은 그들을 자신의 뒤로 보내고 패왕의 투기를 사용해 오라를 몸에 둘렀다.
“역시 네놈이 338번 행성의 지배자였나.”
놈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소환수들을 보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놈의 몸을 감싸는 푸른 구체형태의 배리어가 생성되었다.
“인간, 나는 여기서 네놈과 싸울 생각이 없다.”
“X랄하지 마라!”
옆쪽에 보이는 군복을 입은 사람의 시체.
분명히 이벤트가 시작되고 도망친 남성이다.
시체를 둘러싸고 있던 쿤족들은 진원을 확인하자 곧바로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저렇게 전신을 헤집어놓고 이제 와서? 누굴 병X으로 아나?’
그는 놈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소환수들에게 명령했고 소환수들이 한동안 배리어를 향해 스킬을 퍼부었다.
드르르륵! 팅! 팅!
그 사이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백과사전을 꺼내 놈에게 사용했다.
[지배자 쿤]
설명: 337번 행성의 지배자. 다른 쿤족들에 비해 덩치가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 공략 포인트: 지배자 쿤은 신체 부위를 소모하는 대신, 특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놈은 상당히 날렵하기에, 특수 능력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레벨: 64
‘이 새끼, 나보다 레벨이 높잖아.’
지배자 쿤의 정보를 확인한 진원의 미간이 좁아졌다.
놈이 가장 강한 것이야 얼핏 보면 알 수 있었지만.
‘특수 능력을 유도하라고?’
놈의 능력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신체 부위를 소모한다는 조건인 만큼, 상당히 강력할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간, 계속해 봐야 서로 손해만 볼 뿐이다. 아니, 피해는 내 쪽이 훨씬 크겠다.”
한편, 배리어 안에서 가만히 자세를 유지하던 지배자 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원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이대로 소모전을 계속하게 된다면 내 부하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갈 것이다. 네놈의 힘을 보면, 길어야 3일 안으로 쿤족들은 멸망하겠지.”
놈의 배리어에는 작은 흠집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338번 행성의 지배자여, 네놈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놈은 붉은 늑대와 소환수들의 거듭된 공격에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조건을 제시했으며.
“그만.”
그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뒤, 진원은 녀석들의 행동을 중지시켰다.
“그럼 다음 날을 기대하겠다.”
그러자 놈은 배리어를 해제한 뒤 천천히 눈을 감았고 잠시 후, 장소에서 사라졌다.
‘망할 놈이.’
당연히 진원은 놈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놈은 한쪽 팔을 들어 고재원이 있는 방향으로 조준했고.
- 내 신체를 소모한다면 저기 있는 인간들. 특히나 약한 두 놈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자신을 쳐다보며 협박하듯이 말했다.
‘놈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하지만, 분명히 확인했다.
배리어 안에서 놈이 땀 같은 액체를 한두 방울씩 흘리는 것을.
‘공격이 아예 안 통하는 것은 아니네.’
꿀꺽. 꿀꺽.
진원이 MP 포션을 꺼내 마시는 사이, 상황이 종료된 것을 확인한 일행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오빠! 저 꼴뚜기 대가리 같이 생긴 놈 말 듣지 마세요! 딱 봐도 너무 수상하잖아요!”
일행들 역시 지배자 쿤이 제시하는 조건을 들을 수 있었고 특히 손하윤이 신경질 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말렸다.
“저도 동감입니다, 진원 씨.”
“크이!”
김수환과 콩콩이 역시 동감한다는 듯이 대답했고 고재원은 몸을 돌려 군인, 박민석이 사망한 자리로 걸어갔다.
“일단 이놈부터 잘 묻어주고 얘기하자꾸나.”
* * *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넓은 사무실 안에서 직원 한 명이 쉴 새 없이 통화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엘리트 길드의 이시현입니다. 아니요. 죄송하지만 인터뷰 생각은 없다고 저번에도 말씀드렸을 텐데요.”
이시현은 온갖 언론매체와 협회에서 몰아치는 전화와 메일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추측성 기사는 내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사무실에도 그만 찾아오세요! 당신들 김진원 씨가 있었으면······.”
이시현이 사납게 말을 이어나가던 도중, 상대방 측에서 연락을 먼저 끊어버렸고.
“아오. 기레기 새끼들 진짜.”
그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후우··· 사장님은 괜찮으시겠지?”
길드장인 김진원 씨가 플레이어 이벤트에 끌려간 지 2일이 지났다.
최은식 씨에게 들은 말로는, 저번 이벤트에서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겠지?”
그런데, 왜 김진원 씨가 강제참가 대상이지?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리고 이런 짓을 벌이는 놈들의 정체는 뭐지?
이시현이 진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의문 감을 느끼는 와중.
띠리리리. 띠리리.
다시금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아··· 사장님 돌아오시면 직원 좀 더 뽑아달라고 해야겠어. 피닉스 길드가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책상 위에 쌓여있는 피로 회복 음료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이시현은 다시 연락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 * *
그날 밤.
진원과 일행들은 전날과 다른 지점을 잡아,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지배자 쿤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놈은 내일 날이 밝자마자 지정한 장소에서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진원은 생수로 목을 축인 뒤, 미니맵을 확대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것도 가장 끝자리로요. 분명히 무슨 짓을 하겠죠.”
놈이 지정한 장소는 지도의 오른쪽 모서리 지점. 점령구역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
굳이 저렇게 먼 곳을 지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 그게 아니면 저렇게 먼 곳에 잡을 리가 없다.”
지도를 살펴보던 고재원이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고.
“그런데, 오빠. 진짜 혼자서 갈 거예요?”
한동안 옆에서 물을 홀짝이던 손하윤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당연히 아니지.”
놈이 제시한 조건은, 자신과 일대일로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
행성의 지배자인 자신이 패배하게 된다면, 다른 쿤족은 자동으로 소멸하게 된다는 말을 꺼냈다.
‘거기다··· 오히려 따로 움직이는 것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자신 혼자 놈을 상대하는 사이, 다른 쿤족들이 일행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놈들의 수가 그만큼 많았기에, 오히려 붙어 있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흠, 제자야. 만약 그놈이 약속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르다. 군인 한 명이 놈들의 손에 죽어 나갔으니 말이다.”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였던 고재원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남은 놈들은, 모두 나한테 맡겨라.”
그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고재원에게 집중되었고.
“아니, 저랑 대련 잠깐하고 진땀을 흘린 분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할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아무리 그래도 놈들의 수는 2천이 넘습니다. 무모합니다.”
다들 아연실색하며 그를 말리기 바빴다.
“허어··· 이놈들이 나를 뭘로 보고! 오히려 놈들의 수가 많으므로 하는 말이다!”
고재원은 일행들의 한결같은 반응에 욱하며 자신이 지금껏 아껴둔 스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진원은 납득했는지, 상점에서 희석된 엘릭서와 각종 포션들을 구매해 고재원에게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