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점령전-3
띠링.
[중립 몬스터, 어스 오우거가 출현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지도에 커다란 붉은색 점이 생겨났고, 그것을 확인한 고재원은 빠르게 텐트에 들어가 자고 있는 진원과 김수환을 깨웠다.
잠에서 깬 진원은 지도로 중립 몬스터의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스승님, 바로 가죠. 김수환 씨는 그동안 이곳에 남아서 하윤이 좀 신경 써 주세요.”
“그러자꾸나.”
“예, 맡겨주십시오.”
“크이!”
그 사이 콩콩이가 다가와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듯이 진원의 어깨에 올라탔고.
“포션들 챙겨두세요.”
그는 인벤토리에서 김수환과 손하윤에게 HP포션과 MP포션을 다섯 개씩 건네준 뒤, 어스 오우거가 나타난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하아. 내 레벨이 10만 더 높았어도······.”
그녀는 멀어져가는 진원의 등 뒤를 보며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주인님의 명령이 있기에 너희들을 도와주겠지만, 되도록 알아서 잘 행동하길 바란다.”
공중을 둥둥 떠다니던 꼬마 마도사는 김수환과 손하윤을 내려다보며 건방진 태도로 말을 내뱉은 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음, 소환수가 말도 하고 알아서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라.’
도대체 진원 씨는 직업이 뭐지?
소환사라고 하기엔 본인 자체도 엄청나게 강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허공에 떠다니는 저것은······.
‘이런, 잡생각은 그만둬야겠군.’
진원의 소환수를 쳐다보던 김수환은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내고, 주위의 경계를 시작했다.
* * *
진원과 고재원이 중립 몬스터에게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분.
미리 도착한 쿤족이 놈과 전투를 하고 있었는지, 주위의 지형이 변해있었다.
땅이 움푹 파여 있거나, 주위의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으니.
‘오우거보다 덩치가 세 배는 크네.’
거기다가 진흙 색의 피부를 가진 놈은, 돌로 만든듯한 커다란 기둥을 들고 쿤족을 향해 이리저리 휘둘러 댔다.
“기이이!”
“기이!”
“크워어어!”
괴성을 질러대는 어스 오우거의 주위로는 이미 수많은 쿤족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기이!”
“기이이!”
놈들은 주위의 동료가 거대한 기둥에 쓸려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숫자로 밀어붙였다.
“제자야, 어떻게 할 거냐?”
언덕 위에서 그 장면을 지긋이 쳐다보던 고재원이 고개를 돌려 진원을 응시했다.
“놈이 지쳤을 때 한꺼번에 쓸어버리죠. 마지막에 처리한 쪽이 버프를 얻거든요.”
“흠, 명쾌한 대답이구나.”
그는 몸 주위로 오러를 두르고 언제든지 전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치이이-
“크워어억!”
전투는 계속되었고, 쿤족들의 물량 공세가 효과가 있었는지 놈들의 피를 뒤집어쓴 어스 오우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기이이!”
“기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놈들은 더욱 집요하게 몬스터의 전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자야, 저놈 슬슬 갈 것 같은데 더 기다려야 하냐?”
“아직은 각이 안 나옵니다.”
“각? 그게 무어냐?”
그들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사이.
“후욱. 후우욱.”
“이제 슬슬 가도 되겠네요.”
중간에 난입할 타이밍을 잡고 있었던 진원은, 몬스터가 지친 듯이 숨을 몰아쉬는 것을 확인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심연의 마누스.’
스스스-
놈들의 싸워대던 땅이 점점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검은 갑주를 입은 진원의 소환수가 지면 위로 올라왔다.
“기이?”
“크, 크워어!”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던 쿤족들은 마누스를 보자마자 거리를 두기 위해 뒷걸음질 쳤으며, 어스 오우거 또한 주춤거리며 당황한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한 군데에 모아줄 테니까 한꺼번에 처리해.”
진원의 명령에 마누스는 고개를 들어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홱-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빨리 지배력 150을 찍든가 해야지.’
“제, 제자야. 저 소름 끼치는 것은 또 뭐더냐?”
“얼마 전에 얻은 스킬입니다.”
놈들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던 고재원은, 소환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흡!”
전체적으로 상황을 살펴보던 진원은, 와인드업하고 놈들이 가장 많이 밀집된 장소를 향해 마구: 블랙홀을 사용했고.
스스스-
“기이!”
“기이이!”
놈들의 한가운데서 크기를 키운 마구는 쿤족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크, 크워어어!”
어스 오우거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하체에 힘을 주었지만.
“이놈이, 어딜!”
그것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는 고재원은 놈의 다리를 향해 기탄을 연속으로 날렸고.
“크이!”
[골드 캥거루가 홀리 팡을 사용합니다.]
콩콩이도 이에 질세라 거리가 가까운 쿤족들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흡!”
진원까지 합세해 놈의 하반신에 마구를 던져 대자.
“크어어!”
연이은 공격에 버티지 못한 어스 오우거는 결국 블랙홀로 끌려갔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은 편에 있던 마누스가 손을 휘적거렸다.
쉬이익-
그러자 허공에서 생성된 검은 기운들이 뭉쳐있던 쿤족과 몬스터를 크게 감쌌다.
콰지직. 우지직.
“기이이이!”
“크워어어!”
마누스의 손짓에, 기운들은 놈들과 몬스터를 자비 없이 뭉개기 시작했다.
“허, 참.”
놈들에게 달려들려던 고재원은 그 장면을 보자 헛웃음이 나오는지 피식거렸다.
“수고했다.”
잠시 후, 진원의 명령을 수행한 마누스는 지면에서 솟아 나온 쇠사슬에 묶여 사라졌고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중립 몬스터, 어스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338번 행성 플레이어에게 3일 동안 모든 대미지 10퍼센트 추가효과가 적용됩니다.]
“호오. 확실히 중립 몬스터라는 것은 앞으로도 놓치면 안 되겠구나.”
“네. 우리야 그렇다 쳐도, 놈들 쪽에 버프가 적용되면 골치 아파지거든요.”
진원은 방금 전투로 인해 놈들의 수가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했다.
‘500이라.’
이제 남은 놈들의 수는 약 3,100.
이벤트가 시작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2천에 가까운 플레이어들을 처리했다.
‘이 정도 속도면 3일이면 끝나겠네. 그런데.’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놈들의 수가 3천이 넘게 남았다고는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기껏해야 B급 던전의 몬스터와 비등한 정도.
‘분명히 밸런스 조절을 했을 텐데.’
“이놈의 미니맵인지 뭔지 왜 이렇게 불편허냐? 일일이 손가락으로 눌러야 하고. 에잉.”
고재원이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지도를 살펴보던 사이.
“주인님!”
진원의 소환수, 꼬마 마도사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
“예! 주인님이 장소를 떠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놈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뭐라고?”
녀석의 설명을 듣자니 자신이 스승님과 함께 중립 몬스터를 처리하러 떠나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쿤족들이 몰려들었으며.
“제 공격이 전혀 듣질 않았습니다.”
놈들은 노란 피부가 아닌, 푸른 피부색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마도사는 마력탄과 중급마법들이 놈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보고했다.
“푸른색이라고?”
“예! 거기다가 움직임도 날렵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진원은, 고재원과 시선을 교환했고.
“김수환 씨하고 손하윤의 위치를 파악해!”
“예! 주인님!”
곧바로 그들이 있던 방향을 향해 내달렸다.
* * *
악마 군락의 최하층.
추방된 악마들은 진원이 다녀간 이후로, 훈련에만 매진하는 나날을 보냈다.
“끄아아아!”
“좀 더 세게! 그렇게 해서는 김진원 님의 도움이 될 수 없다!”
“으아아아!”
악마들이 저마다 케르베로스의 다리를 잡고 들어 올리려 애쓰고 있었고.
“키이잉!”
케르베로스 또한 질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간힘을 쓰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서로 간의 힘겨루기는 1시간 이상 팽팽하게 이어졌고.
“이제 그만!”
“후우.”
“크으!”
땀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실 때가 되어서야, 저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케르베로스를 이길 수 있겠는데.”
“너 그 저번에도 그 말 했지 않냐?”
“키잉.”
붉은 늑대가 그들에게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것들뿐이었고, 어느 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자 그들은 단순하게 근력을 기르는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자신감이 붙게 된다니. 모두 김진원 님 덕분이다.”
악마 하나가 팔을 들어 힘을 넣자 근육이 빵빵하게 팽창했고,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악마들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자님 덕분에 지옥 사냥개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뿔과 날개를 뜯겼다고는 하나 본래 악마인 그들의 성장력은 무시할 수 없었고, 그들을 보면 죽일 듯이 쫓아다니던 지옥 사냥개가 이젠 도리어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들! 식량 가져왔어요!”
그들이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는 도중, 에레나와 다른 악마들이 지옥 사냥개들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왔다.
“이놈들 머리에 화살이 박혀있는 걸 보니까, 에레나가 다잡은 것 같네.”
그녀는 악마들 중 유일하게 무기를 잘 다뤘으며 특히 활에 대해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곤 했다.
“저··· 그런데.”
다들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는 도중, 악마 하나가 입을 열었다.
“김진원 님은 정말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 걸까요?”
그 말에, 다른 악마들 또한 행동을 멈추었고.
“음····.”
“그 뒤로 시간이 꽤 흐르긴 했지.”
다들 침음을 뱉었다.
그는 보티스를 처치하고 새로운 군락의 지배자가 되자마자 모습을 감추었으니까.
“김진원 님은 우리를 언제 불러줄까요?”
필요할 때 자신들을 부른다곤 했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괜찮아요!”
분위기가 침체되는 것을 느낀 에레나는, 밝은 목소리로 악마들을 격려했다.
“저희를 구해주시고, 식량도 주시고. 무기도 주셨는걸요! 이렇게 자비가 넘치는 지배자는 지금까지 없었다구요!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강해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악마들은 그녀의 열변에 의욕을 되찾고 육체의 단련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 * *
같은 시각.
김수환과 손하윤은 쿤족들의 기습으로 인해 도망가는 처지가 되었다.
“아저씨! 저것들 어떡해요!”
“제 주위에 붙어 있으세요!”
그녀는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놈들을 보며 암담한 표정을 지었고.
‘망할. 이놈들은 도대체 뭐냐!’
그는 이를 꽉 깨물며 그림자를 이용해 놈들을 떨쳐냈다.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니.’
놈들은 이전에 본 쿤족과는 다르게 푸른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기에, 힘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었는데.
쉬익-
“키이!”
“키이이!”
쿤족은 날렵하게 김수환의 그림자를 회피하며 거리를 계속해서 좁혀왔다.
“후,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스킬을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원 씨와 고재원 씨가 방금 전 중립 몬스터를 처치했으니, 최대한 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그분들을 마주칠 확률이 높겠지.
나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다.
“네? 아저씨?”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쿤족들을 상대하기 버거웠던 김수환은 앞서가던 그녀에게 다가가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