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준비-1
“아, 네. 안녕하세요.”
진원은 대통령과 비서관들의 깍듯한 인사에도, 덤덤하게 대답하며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나를 못 불러내서 안달이야?’
하루 전.
갑작스럽게 문명호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왔고, 다음 날 어떻게든 청와대에 와줄 수 없냐고 부탁해왔었다.
‘당연히 갈 이유가 없어서 거절했는데.’
딱히 갈 명분이 없었던 진원은 간단하게 거절 의사를 남긴 뒤 통화를 끊었고.
- 진원 씨, 이건 국민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빈말로 부탁하는 것도 아닙니다.
3초 만에 다시 전화를 건 문명호는 부탁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며 간곡한 어조로 꼭 한 번만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연우가 중국으로 도망쳤고. 동시에 왕 첸이 연옥 근처에서 난동을 부렸으니.’
아마 중국과 연관된 문제일 확률이 높겠지.
“그럼,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진원이 비서관에게서 넘겨받은 보고서를 훑어보는 도중 목소리를 가다듬은 문명호가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의 주모자는 중국의 S급 플레이어, 왕 첸입니다. 우면산 터널에서 50명이 넘는 군인들에게 중상을 입혔고 현재 수감 중인 이연우를 국외로 탈출시킨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진원을 제외한 비서관들은 그동안 자리에 앉아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래서 저한테 하실 부탁이 뭔가요?”
이어지는 설명을 듣던 진원은, 적당한 시점에 말을 끊고 문명호를 향해 질문했다.
‘나를 이곳에 부른 목적이야, 이제 대강 알겠으니.’
대통령을 향한 예의 없는 발언과 행동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면, 진원 씨가 중국에게 본때를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히는 중국의 플레이어들에게 말입니다.”
그것은 문명호 또한 마찬가지.
그는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진원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은, 플레이어를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그래 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대, 대통령님!”
숨죽여 그들의 대화를 듣던 비서관들은, 문명호의 돌발행동에 저마다 경악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거지?’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사전에 없었던 말을 내뱉는 대통령을 보며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 바빴지만, 모른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문명호는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진원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전과 같은 사건을 그대로 넘겨버리게 되면 중국은 우리나라를 우습게 알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시 들어오겠죠. 그리고 현재 저희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만 열린 이계 던전, 연옥.
해당 던전을 클리어하게 되면, 막대한 보상이 쏟아진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현재 김진원에게만 특혜로 던전에 입장할 수 있게 조치했다곤 하나.
‘놈들은 분명히 기회를 엿보며 이계 던전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겠지.’
물론 A급이나 B급 플레이어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중국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기겁하며 거절하기에 바빴다.
‘결국, 기대할 플레이어는 그 말고는 없다.’
김진원이 아닌, 송현성도 있다.
그 또한 S급 플레이어.
거기다 최근 그가 운영하는 길드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알고 있기에 파격적인 보수를 손에 쥐여 준다면, 부탁하는 것은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송현성이야 그렇다 쳐도 김진원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문명호는 비서관에게 손짓하며 신호를 보냈다.
‘이전에 말한 아이템,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비서관 한 명이 조용히 회의실을 나간 사이, 진원은 자리에 놓인 생수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중국의 플레이어들을 죽여서, 모든 S급 플레이어들이 전부 한국으로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알기로 중국은 수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S급이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 나라를 책임지는 수장이 저런 무책임한 발언을 한다고?’
당연히 조금 전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상당히 낮다.
하지만, 최악이라면 있을 수도 있는 일.
“이미 중국은 세계적으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기회인 셈이죠.”
문명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진원을 향해 머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이대로 가만히 두어도 국민은 계속 피해를 볼 것이고,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최악의 수는 감안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미끼로 삼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누구보다 국민을 첫 번째로 생각합니다.”
그의 진지한 표정에, 가만히 말을 듣던 진원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말인가요?”
“무책임한 것 같지만, 그렇습니다.”
진원의 미묘한 표정에, 고개를 든 문명호는 비서관들에게 고갯짓했고.
“알겠습니다!”
비서관들을 재빠르게 회의실을 나가, 철제로 된 커다란 사각 케이스를 가지고 들어왔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아니 국가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사례입니다.”
딸깍.
문명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케이스가 열렸고 양옆으로 6개의 가지가 뻗어있는 철제 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하는 진원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아이템: 칠지도]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분명히 검이다.
종류: 무기
등급: 레전더리
공격력 +48
특수 효과- 군주의 힘: 주위 아군들의 모든 스텟을 30퍼센트 올려줍니다. (지속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0일)
제한: 군주의 자격을 증명한 자
“네, 레전더리 아이템입니다.”
이어지는 문명호의 설명을 듣자니 하늘이 갈라지며 소름 끼치는 음성과 함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날.
튜토리얼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의 눈앞으로 검이 하나 떨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칠지도였다고 한다.
“진원 씨가 사용하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케이스에서 조심스럽게 칠지도를 꺼내 자신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예상 밖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에 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뭔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한 기분이 들었는데.
“일단 주신다니 받겠습니다.”
문명호는 진원의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보며, 이때가 기회다 싶은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진원 씨와 직계가족분들에게 세금 면제 혜택까지 드리겠습니다.”
김진원을 방파제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붉은 늑대.”
“예, 주군.”
한동안 칠지도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진원은, 붉은 늑대를 실체화시켰다.
“엇! 저, 저거!”
“쉿! 조용해! 김진원 씨의 소환수다.”
비서관들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사무라이를 보고 어깨를 들썩였다.
“이거 사용할 수 있겠어?”
“한번 해보겠습니다, 주군.”
붉은 늑대는 진원이 건네주는 칠지도의 손잡이를 잡자마자, 한쪽 눈을 찡그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큭! 죄송합니다, 주군.”
“괜찮다. 제한이 걸려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건네준 거니까.”
아무래도 녀석에게는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역시 붉은 늑대는 안 되나.’
칠지도는 붉은 늑대가 사용하면 딱 좋을듯한 아이템이었지만 걸려있는 제한 때문인지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들 수 있는 것은, 악마 군락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
진원은 바닥에 놓인 칠지도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문명호의 부탁에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진원 님!”
그는 문명호와 비서관들이 연신 고개를 숙여대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지만. 거절하기에는······.’
엄청난 보상들이었다.
레전더리 아이템에 세금까지 면제라. 그것도 자신의 가족들까지.
‘분명히 벌어들이는 돈이 많을수록 내야 하는 세금도 올라간다고 했지.’
자신이 플레이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들인 금액은, 수백억이 넘는다.
그렇다면, 연마다 내야 하는 종합소득세만 해도 42퍼센트.
‘···하마터면 세금으로만 백억 넘게 낼 뻔했네.’
“그럼 김진원 님. 여기에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가 쓴웃음을 짓는 사이, 비서관 한 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계약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고.
“그거 이리 가져오게.”
그것을 받아 내용을 확인하려던 찰나, 문명호가 다가와 종이를 낚아챘다.
찌익-
그는 거침없이 계약서를 찢은 뒤 바닥에 뿌리고 진원을 바라보며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계약서 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저는 진원 씨를 믿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진원은 문명호의 행동에도 별 감흥 없이 등을 돌려 회의실을 나갔고.
“···내가 너무 티 났나?”
그는 회의실 문을 바라보며, 민망한지 괜히 입맛을 다셨다.
* * *
한편.
최은식은 파티원을 모집해 B급 던전을 공략해나가는 중이다.
‘형은 형 대로 바쁘니까. 최대한 방해하지 말자.’
그는 자기 나름대로 진원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레벨을 올려 나갔다.
“우워어어!”
“합!”
전방에서 몬스터의 어그로를 담당하던 최은식이, 기회를 틈타 앞 열에 있던 오우거에게 스킬: 쉴드대쉬를 사용했고.
“크어어!”
놈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균형을 잃었는지 비틀거렸다.
“으아아!”
최은식이 다시 한번 방패를 들고 놈의 몸을 밀쳐내자, 육중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지금! 다들 공격하세요!”
“죽어! 이 돼지 새끼야!”
“은식 씨! 자세를 낮추세요!”
그의 신호에, 뒤에 포지션을 잡고 있던 은지희와 다른 파티원들이 놈을 향해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띠링.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좋아. 이 정도면 무난해. 그런데······.’
숨을 고르던 최은식은 갑옷의 어깨 부분에 그을린 자국을 발견하고, 은지희를 향해 말했다.
“야! 스킬 조준 좀 잘 하라고! 내 갑옷 스쳤잖아.”
“뭐라고? 방금 오우거 머리에 정확하게 스킬 적중하는 거 못 봤냐?”
B급 던전을 주로 공략해나가던 그들은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같은 파티를 맺게 되었고, 어느새 반말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오! 왜 하필 네가 메이지 계열이냐! 짜증 나게!”
“닥쳐! 네가 퍼펙트 쉴더라는 게 더 놀랍거든?”
‘하아··· 저분들 또 시작이네.’
‘이걸로 세 번째다.’
티격태격하는 둘은 쳐다보던 다른 파티원들은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고 이제 슬슬 보스를 상대할 준비를 하자고 말하려던 찰나.
띠링.
[플레이어 이벤트- 점령전]
그들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