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왕 첸-1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진원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자신의 채널에 새롭게 업로드된 영상을 감상하는 중이다.
“최은식 이 녀석이 왜 연락이 없나 싶었더니 영상 편집하느라 바쁜 것이었구만?”
동영상의 길이는 단 2분이었지만, 자신이 연옥 1층에서 소환한 심연의 마누스.
녀석의 압도적인 힘과 그것을 강조한 편집 효과가 합쳐져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올라온 지 하루 만에 1000만 조회 수라.”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들 역시 역대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뜨거웠고.
[명예 포인트가 2 올랐습니다.]
유투브. 불꽃 남자 김진원의 구독자 수는 어느새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이잉: 아! 학창시절이 생각나는 몬스터들이에요! 마치 찐따들이 일진 한 놈한테 뭣도 모르고 덤볐다가 참교육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죠!
사딸라: 2분은 너무 적소. 10분쯤 합시다.
우리 아빠 폭풍왕: 와. 새로운 소환순가? 그냥 팔 몇 번 휘저으니까 애들 다 쓸려나가는데?
진원은 실시간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 수와 명예 포인트를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은식이가 채널 신경 쓰는 이유를 알겠네.”
유투브에서 발생하는 광고수익.
조회수가 높을수록, 시청시간이 길수록 들어오는 돈이 많다고 알고 있긴 했는데.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벌써 4천만 원이 쌓였으니.”
돈도 돈이지만, 명예 포인트의 획득 속도 또한 빨라졌다.
영상을 좀 더 자주 올려 볼까 생각하던 사이.
[진원, 나 이거 좀 해줘.]
메시아가 스마트폰을 들고 진원에게 다가왔다.
“그래.”
진원은 어플을 켜 그녀가 즐겨보는 개구리 상사 기로로를 틀어주고, 다시 건네주었다.
‘좀 더 빨리 사줄 걸 그랬네.’
평소 그녀는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하염없이 자신의 주위에 앉아있거나 무릎 위에 올라가 가만히 눈만 깜빡거렸었는데.
‘스마트폰을 추가로 개통하길 잘했네.’
애니메이션에 빠져든 그녀를 보며 피식 웃기도 잠시, 플레이어 거래소에서 아이템들이 판매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유니크 직업 체험권은 154억에 팔렸고. 최상급 마정석이랑 포션들을 최대한 팔아서 어떻게 채우긴 했네.”
캐쉬샵에 추가된 마구: 블랙홀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은 300억.
진원은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을 최대한 처분했었지만, 여전히 100억 이상이 부족해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한 뒤 거래소에 등록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불렸다.
“골드야 꽤 많이 쌓였으니까 괜찮겠지.”
수량에 제한이 없는 각종 HP포션과 MP포션, 그리고 희석된 엘릭서까지 구매하고도 4천 골드 가까이 남았으니 꽤 여유롭다고 할 수 있다.
띠링.
[마구: 블랙홀을 구입하시겠습니까?]
(Y/N)
진원은 지체 없이 스킬을 구입하고,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스킬 포인트 캡슐을 꺼내 삼켰다.
띠링.
[스킬 포인트 5를 획득하였습니다.]
‘5개라, 나쁘지 않네.’
그 후, 바로 상태창을 열어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플레이어>
이름: 김진원
레벨: 61
직업: 계약 소환사
등급: 유니크
업적: 군락의 지배자
칭호: 악마 사냥꾼
HP: 4100
MP: 4200
항마력: 50
[스탯]
근력: 80 민첩: 80 체력: 60 마력: 120 지배력: 130
미분배 포인트: 10
#플레이어중 유일하게 상점 기능이 개방됩니다.
#모든 데미지 10퍼센트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뱀파이어 군주 메시아와 피의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스킬]
마구: 블랙홀 Lv.1
마구: 칼날 폭풍 Lv.20 (Max)
마구 Lv.10 (Max)
불굴 Lv.1
순간 가속 Lv.10 (Max)
미분배 포인트: 6
[직업스킬]
소환의 방 Lv.2
계약 소환: 꼬마 임프 Lv.10 (Max)
인핸스 본드 Lv.10 (Max)
계약 소환: 꼬마 마도사 Lv.10 (Max)
계약 소환: 심연의 마누스 Lv.3
[상점]
Lv.7
어느새 상당히 불어난 스킬들을 보니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61레벨에 스킬이 10개라. 아니지, 상점 스킬까지 11개네.”
보통 60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이 보유한 스킬은 기껏해야 5~6개 남짓인 것에 비하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일반 스킬이야 스킬 알약을 구매해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곤 하나.
“순간 가속 말고는, 쓸만한 걸 찾기가 어려웠어.”
도대체 이런 걸 돈 주고 누가 사나 싶은 스킬들의 매물만 넘쳤다.
가장 저렴한 바느질 스킬만 하더라도 10억이나 했으니.
“흠, 그런데 스킬 포인트를 어디에 먼저 투자해야 할까…….”
한참 동안 가만히 고민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는지 마구: 블랙홀에 잔여 포인트를 모두 사용했다.
[마구: 블랙홀 Lv.7]
액티브 스킬.
주변의 적을 6.2초 동안 끌어들입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끌어들이는 힘이 강력해지며 유지시간이 늘어납니다.
(MP: 300)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1레벨에 지속시간이 0.2초가 늘어나네.”
자신에게 있어, 처음으로 생긴 유틸성 스킬이다.
거기다가 주변의 적만 끌어들인다는 효과까지.
“지금 바로 시험해봐야지.”
마침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 * *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서울 교도소.
플레이어들이 생겨난 후로 범죄율은 꾸준히 상승해 왔고 그들의 힘 또한 일반인들에 비해 상당히 강력했기에, 마정석으로 강화한 감옥이 필요했다.
“648번 이연우. 면회입니다.”
그중에서도 최상급 마정석을 사용한 특별 교도소에는 얼마 전 징역 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인 이연우가 수감되어 있다.
‘쯧, 사람들의 돈을 빼돌리고 집단으로 세뇌까지 해 놓고도 겨우 5년 형? 미쳐 버리겠네.’
면접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미리 면접실에 들어와 있던 교도관은 혀를 끌끌 차며 우리나라는 형량이 너무 낮다며 속으로 불만을 토했다.
“648번 이연우. 지금부터 10분간 면회입니다.”
잠시 후.
마력을 억제하는 특수수갑을 찬 이연우와 함께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 세 명이 면회실로 따라 들어왔고, 면회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도와주러 온 건가.’
식사시간과 잠자는 시간 이외에, 햇빛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독방에 갇혔던 그는 오랜만에 본 조명에 눈이 부신지 눈을 찡그렸다.
1분 뒤.
“하오 지우 부지엔!”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걸치고 있는 중국인이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뭐지?’
이연우는 당황스러운지 창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중국인을 관찰했다.
‘목소리는 분명히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의 남성.
자신이 모르는 인물이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 아마?”
왕 첸은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씩 웃었다.
“설마… 왕 첸?”
“꽁시꽁씨! 정답!”
한동안 밝던 왕첸의 표정이, 순간 진지하게 변했고.
“내가 그렇게 돈을 퍼부어주고 지원을 해줬는데, 지금 이 꼬라지야.”
“그, 그것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만…….”
이연우는 말을 더듬어가며 변명을 이어나갔다.
왕 첸.
대천사 길드의 기반을 확실하게 다져주고 자신의 터무니없는 계획에도 재밌겠다며 해보라고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 준 플레이어다.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전화상으로만 일의 진행도를 알리던 이연우는 그의 화난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다 김진원. 그놈 때문이다.’
한 달 정도의 시간만 자신에게 있었더라면 대규모 정화는 성공했을 것이다.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편, 그들이 중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듣던 교도관은 골치 아픈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최대한 자세하게 대화를 기록해야 하는데.’
그는 고개를 돌려 군인들에게 중국어를 아는지 물어보았지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럼 연옥에 먼저 갔다가 너 데리러 올 테니까 나올 준비 하고 있어.”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S급 플레이어인데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왕 첸은 밖으로 나가며 한마디 남겼고, 그 말을 들은 이연우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이번엔 잘해라.”
* * *
플레이어 대련장.
소환수들이 철제인형들을 진원이 지정한 장소에 배치하는 중이다.
‘마침 아무도 없기도 하고.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상관없겠지.’
“거기, 좀 더 뒤에.”
“키긱!”
“아니, 좀 더 앞에.”
“키기긱!”
잠시 후, 철제인형들은 원을 이루는 형태로 배치가 완료되었고.
“흡!”
한쪽에 자리를 잡은 진원이 와인드업하고 마구: 블랙홀을 사용했다.
스스슷-
보랏빛을 띠는 마구는, 그가 지정한 장소에 다다르자 자리에서 멈추고 크기를 키웠다.
스스스스-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린 마구는, 철제인형들을 엄청난 힘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30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던 인형들까지 끌려와 다른 인형들과 얽혔다.
“역시 마구 시리즈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
진원은 지속시간이 끝나 바닥에 뒹구는 철제인형들을 보며, 흡족한 듯이 웃었다.
“이번엔 좀 더 멀리 떨어트려 놓고 시험해 보자.”
다시 진원의 소환수들이 철제인형들을 배치하고 있을 때.
띠리리. 띠리리.
협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자신의 예상대로, 전화를 받자 협회장 손태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진원 씨! 손태욱입니다. 중국의 S급 플레이어가 연옥 포탈 근처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S급 플레이어라고요?”
- 예! 왕 첸이라고. 세계랭킹 40위쯤 하는 플레이어입니다. 그동안 주시하고 있긴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손태욱은 현재 피닉스 길드의 송현성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 꼭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 이대로면 상당히 많은 군인이 죽어 나갈 겁니다! A급 플레이어들도 최대한 보내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그러죠.”
통화를 끝낸 진원은, 포탈로 향하기 위해 대련장을 나섰다.
* * *
우면산 터널.
오늘도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눈앞으로, 화려한 셔츠를 입은 남성이 들어왔다.
“멈춰!”
군인들은 장발의 남성을 보며 총을 조준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다가왔다.
“기, 김상원 중사님.”
병사 한 명이 옆에 있는 김상원을 보며 불안한 듯이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 저기 앞에 선 넘으면, 바로 갈겨라. 알겠냐? 지금 상황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다. 망설이지 말고 그냥 갈겨!”
“아, 알겠습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곧바로 부대에 연락을 취해 현재 상황을 보고했고 매뉴얼 대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5분만 버티면 추가병력이 온다.’
현재 김진원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시.
당연히 부대원들은 그의 얼굴을 외우고 있었고 눈앞의 남성이 김진원이 아니란 것쯤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선 넘지 마세요! 뒤로 돌아가세요!”
“넘으시면 경고 없이 바로 발포합니다!”
군인들의 계속된 경고에도, 남성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다가왔으며, 남성이 노란색 선을 넘자마자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
“갈겨!”
“하, 하지만 김상원 중사님.”
“병X아. 쏘라고! 저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쏴라!”
병사들이 망설이던 사이, 김상원은 다가오는 남성을 향해 먼저 발포를 시작했고.
“으, 으아아!”
다른 병사들도 저마다 소리를 질러대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야, 정말 장난 없네?”
왕 첸은 그들의 행동에 놀란 척하며, 미리 준비해둔 스킬, 다크볼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