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S급 던전-2
진원은 와인드업하고 격한 숨을 몰아쉬는 녀석을 향해 마구: 칼날 폭풍을 사용했고.
“크에에에!”
형태를 갖춘 수많은 검은 단검들이 놈의 전신을 헤집기 시작했다.
“크와아악!”
놈은 몸에서 검은 피를 내뿜으며 그대로 쓰러지는가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머리를 돌려 멀리 떨어져 있는 파티원들을 향해 입을 오므렸다.
“미친! 피해!”
“왜 어그로가 갑자기 우리한테 쏠리냐!”
“그쪽! 저 따라오지 마세요! 다른 방향으로 가세요!”
터질 듯이 크게 부푼 탈라리온의 입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파티원들이 기겁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흡!”
당연히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는 진원은, 놈을 향해 토르의 망치를 힘껏 던졌다.
“합!”
그의 등 뒤로 빠져 있던 신혜진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투창 자세를 취하고 녀석의 입을 향해 창을 날렸다.
“크에엑······.”
머리를 얻어맞고 뒤에 날아온 창에 입을 꿰뚫린 녀석은 힘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띠링.
[보스: 탈라리온을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 최상급 마정석을 발견하였습니다.]
[120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A
추가 보상: 상급 마정석 1개
[특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줄줄줄.
쓰러진 탈라리온의 입에서 새하얀 액체가 새어 나와 바닥을 적셨다.
“가, 감사합니다.”
“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녀석이 완전히 쓰러진 것을 확인한 다른 파티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진원에게 다가갔다.
“야, 방금 건 어쩔 수 없었어. 알지?”
“그래.”
진원의 망치가 손으로 되돌아오는 와중 그녀 또한 오른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고.
스스스-
보스의 입을 관통한 게이볼그-프로토타입 역시 그녀의 손에 빨려들 듯 되돌아갔다.
“얼마 전에 배운 거야. 이제 마음껏 던져도 상관없어. 그동안 주무기는 던지기 아까웠거든.”
진원보다 먼저 되돌아온 무기를 잡은 그녀는 ‘내가 이겼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더 빠르네.”
‘유치하기는.’
진원은 그녀를 적당히 무시해주고, 보스에게 아이템을 수거하러 다가갔다.
“S급 던전이라 그런가. 보스가 잘 안 죽긴 하네.”
“뭐? 미친 소리 하네. 저거 너 혼자 잡은 거야. 그것도 1시간도 안 지나서!”
신혜진은 망치에 달라붙은 찐득한 액체를 털어내는 진원을 보며, 순간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S급 플레이어를 포함해 최소 20명 이상의 파티원을 갖춰야 예약이 가능한 S급 포탈은 대형 길드들도 오랜 기간 치밀한 계획을 세워 들어가야 하는 수준.
‘그거야, 국내에는 S급 플레이어들이 3명밖에 없으니까. 한 명은 감옥에 있고.’
신혜진은 혼자서 S급 던전의 보스를 처치하는 진원을 보고 타이거 길드를 넘겨주고서라도 데려올 걸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던전에 들어온 지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클리어해버리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배낭 무게 좀 줄이는 건데.
“뭐야? 또 뭐 있어?”
그녀는 돌연 천장을 올려다보는 진원을 향해 말했다.
“추가 보상.”
“뭐?”
“추가 보상 준다는데?”
그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천장에서 검은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작은 구체가 떨어졌다.
띠링.
[히든 업적: 무자비한 학살자를 달성하였습니다.]
조건: 최초로 맵 안에 존재하는 탈라리온의 광신도를 혼자서 모두 처치.
보상: 흑색 보주
#보상을 획득하게 되면, 100일 동안 히든 업적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대박인데?”
테니스공만 한 크기의 아이템을 살펴보던 진원은 짙은 미소를 지었고.
“크이이이!”
콩콩이가 다가와 축하한다는 듯이 자신의 주위를 뛰어다녔다.
“뭐야? 나도 구경 좀 하자.”
“저도 살짝 봐도 되겠습니까? 김진원 씨.”
신혜진을 포함한 다른 파티원들은 호기심이 일어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했다.
[아이템: 흑색 보주]
무드 등으로 사용해도 좋을 수준의 빛을 내뿜고 있다.
종류: 기타
등급: 레전더리
효과: 아이템의 효과를 한 단계 강화시켜 줍니다. 최대 레전더리 등급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장비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와, X발 레전더리 아이템이다! 어, 죄송합니다.”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한 파티원 한 명이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고.
“와······.”
신혜진은 별다른 말 없이 그를 향해 부럽다는 눈길을 보냈다.
‘최대 레전더리까지 사용이 가능하다라.’
그렇다면, 당연히 가장 높은 등급에 사용해야지.
진원은 고민도 없이 인벤토리를 열고, 몬스터 백과사전을 꺼냈다.
“어? 바로 사용하게? 야,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그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 신혜진이 조심스럽게 나서서 말렸지만.
“아껴 뒀다가 뭐하냐. 딱 여기에 쓰라고 나온 것 같은데?”
띠링.
[흑색 보주를 몬스터 백과사전에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진원은 망설임 없이 흑색 보주의 효과를 적용했다.
“으아아······.”
“리틀 만수르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이!”
“건물 살살 녹는다!”
“조용히 좀 하세요!”
작은 공이 몬스터 백과사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른 파티원들은 저마다 머리를 감싸 쥔 채 소리를 질러댔다.
띠링.
잠시 후.
진원의 눈앞에 효과가 적용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고, 곧바로 강화된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했다.
[백과사전]
무턱대고 사전을 펼치는 것은 멋이 없으니 적당히 사용하는 것이 좋다.
종류: 기타
등급: 레전더리
효과: 플레이어들과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합니다.
“역시 여기에 사용하길 잘했네.”
한 단계 강화된 아이템은, 이제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도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효과가 바뀌었다.
고재원의 심안과 같은, 어쩌면 심안보다도 월등하게 좋은 효과!
‘스승님의 심안은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건 몇 번이고 사용해도 되니까.’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신혜진에게 백과사전의 효과를 사용했다.
<플레이어>
이름: 신혜진
레벨: 51
직업: 마창사
등급: 유니크
업적: ??
칭호: ??
HP: 1600
MP: 900
[스탯]
근력: 45 민첩: 50 체력: 45 마력: 50
미분배 포인트: 0
#플레이어중 유일하게 ????이 개방됩니다.
[스킬]
순간 가속 Lv.10(Max)
[직업스킬]
다크 쓰로우 Lv.10(Max)
다크 레인 Lv.10(Max)
버스트 쓰로우 Lv.10(Max)
???
???
미분배 포인트: 6
‘모든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네.’
그래도 아이템의 성능이 한 단계 올라간 것 치고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저 녀석도 뭔가가 있구나.’
무슨 스킬인지 호기심이 일어, 한번 물어나 볼까 생각하던 차.
“야, 너 나한테 뭐한 거야?”
신혜진이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진원을 쳐다보았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 플레이어랑 몬스터의 정보창을 열람할 수 있다길래 한번 시험 삼아 사용해 본 거야.”
“뭐라고?”
그녀는 진원이 들고 있는 두꺼운 책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 스킬도 쟤한테 밀리면······.’
도대체 난 뭐지.
“크이이!”
“왜 그래?”
던전을 나가려던 진원에게, 콩콩이가 가까이 다가와 그의 허벅지를 슥슥 쓰다듬었다.
[골드 캥거루가 패스트 힐을 사용합니다.]
그러자 콩콩이의 작은 손에 빛이 일었고, 자신의 HP가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고맙다.”
“크이이!”
자신이 보스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HP가 500 정도 낮아졌지만 그다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어서 자연적으로 회복되길 기다리려고 했는데.
‘역시 전설종이네. 앞으로 포션 값도 굳겠는데?’
진원이 콩콩이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도중.
“어? 진원 씨. 저, 저도 힐 좀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아까 도망가다가 다쳤습니다!”
스킬을 사용한 콩콩이를 보며, 파티원들이 눈을 빛내며 저마다 아픈 척을 했다.
사실 그들의 HP는 아주 살짝 떨어져 있었지만 작은 캥거루의 힐을 한번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
“한번 해줘.”
“크이······.”
진원의 대답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콩콩이는 가장 가까운 파티원에게 다가갔고.
[골드 캥거루가 패스트 힐을 사용합니다.]
퍼버버벅!
“악! 잠깐만! 왜 때려!”
“크이이!”
위로 뛰어올라 남성의 복부를 연속으로 가격했다.
“그거 힐 하고 있는 거예요.”
“예? 아무리 봐도 그냥 두들겨 패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꾀병 부리지 말라는 거 아닐까요? 뒤에 계신 분도 얘한테 힐 한번 받으시죠.”
“아, 전 방금 나았습니다. 하하핫!”
복부를 움켜쥐고 쓰러진 남성을 보며, 다른 파티원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고.
“크이이!”
콩콩이가 그들에게 까불지 말라는 듯이 작은 주먹을 치켜세웠다.
* * *
서울의 유명한 초밥집.
본래 아파트의 입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초밥 전문점에, 중국인 세 명이 들어왔다.
“아저씨! 여기 세 명이요.”
“여기 입주민이신가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저씨.”
예의 없이 의자에 앉아 옆자리의 초밥을 구경하는 행동에도, 주방장은 성을 내지 않고 정중하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안 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지만, 그가 듣기에는 그저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들이었을 뿐.
“손님, 여기는 해당 아파트의 입주민만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방장은 중국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유를 설명하며 타일렀고.
“흠, 굉장히 착한 아저씨구나.”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중국인, 왕 첸이 옆에 앉아있는 남성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고.
10분 뒤.
“아저씨, 여기 호실 하나 샀어요. 보이죠?”
가만히 생선을 손질하던 주방장을 향해 스마트폰을 가까이 내밀었다.
“···바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코스 있으신가요?”
주방장은 속으로 상당히 놀랐지만.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최대한 태연함을 유지하며 메뉴판을 내밀었다.
“아저씨, 여기 있는 메뉴 전부 우리가 만족할 때까지 주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초밥이거든요.”
왕 첸은 실실 웃으며 종이로 된 메뉴판을 접어 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는 시늉을 했다.
“그럼 내가 산 아파트, 아저씨 드릴게. 그쪽이 너무 착해서 하는 말이야.”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주방장의 손놀림이 빨라졌고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초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형님, 이거 먹고 바로 갑니까?”
초밥을 손으로 들고 입에 욱여넣던 남성 한 명이 왕 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가볍게 혀를 차며 젓가락을 이용해 초밥 하나를 들어 올렸다.
“쯧쯧, 무슨 소리. 밥을 먹었으면, 그 뒤에는 디저트지. 어차피 놈이 갇혀 있는 곳까지는 금방 갈 거 아니냐.”
“알겠습니다! 형님!”
“얌마. 뱃살은 내 거다. 딴 거 먹어.”
“예, 형님!”
주방장은 그들의 심상치 않은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눈앞의 중국인 세 명과 엮이기 싫어 못 들은 척하며 생선을 손질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