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103화 (103/200)

103. 고재원-1

“커억! 사, 살려주세요! 크허억!”

“아, 미친! 깜짝이야!”

“뭐야?”

구석에서 쓰러져 있던 힐데의 길드원 한 명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상반신을 일으켰고, 최은식은 그 목소리에 놀라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응? 인간이 하나 살아있었군요. 미동도 없길래 죽은 줄만 알았는데.”

관리자가 신기한 눈으로 살아남은 플레이어를 관찰하던 사이, 진원이 남성에게 다가갔다.

“기, 김진원!”

길드원은 그의 무심한 표정을 보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무, 무단으로 들어간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상황 설명부터 해 주시죠.”

“넵! 알겠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말을 더듬어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공격이 얕게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죽은 척하기라는 스킬을 사용해서 살아남으셨다고요?”

“네. 어찌 보면 파티원들을 배신한 걸 수도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 역시, 길드원들과 함께 보스 몬스터를 공략해나갔지만 압도적으로 몰아치는 기사들의 공세에 파티원들이 하나씩 쓰러져 나가자, 이대로 가면 모두 죽겠다고 판단해, 쓰러지는 척을 하면서 스킬을 사용했다고 한다.

“죽은 척하기를 사용하면, 제 몸은 가사상태에 빠집니다. 조금만 더 늦게 오셨으면, 저 또한 죽었을 겁니다.”

설명을 마친 길드원은 진원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뭐, 본인들이 벌인 일이니까. 협회에 가셔서 알아서 보고 하세요.”

다른 플레이어들이 무단으로 던전에 들어왔다고는 하나 보스를 건드리지도 못했기에, 자신에게 있어 손해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힐데의 길드원은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중소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이계 던전에 무단으로 입장한 사건이 있고 나서 연옥에 대한 경계는 훨씬 삼엄해졌다.

기존병력의 3배 이상의 군인들이 포탈 근처를 지켰으며, 새벽에도 그 숫자를 유지했다.

“2층과 3층까지 클리어해도 좋다는 말이 나왔으니, 나야 상관없지만.”

진원은 아파트에서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얘들, 귀여워.]

“크이이!”

그 사이 메시아는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개구리 상사 기로로를 시청하는 중이다.

콩콩이도 신기한 듯이 옆으로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본다.

“재밌어?”

[응.]

메시아는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영상에 집중하고 있는 메시아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최근 들어 영상매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진원, 나 이거 보고 싶어.]

얼마 전, 애니메이션의 짤막한 광고를 봤는지 메시아가 자신에게 부탁을 해왔었다.

피가 필요한 순간 말고는, 부탁을 거의 해오지 않는 그녀였기에.

‘한 달에 만 원도 안 하는 시청료 정도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지. 그건 그렇고.’

이계 던전 1층을 클리어하고 곧바로 협회에 들렀던 진원은, 협회장에게 연옥은 생각보다 클리어하기 난감했다고 말했으며 2층은 훨씬 어려울 테니, 자신 말고는 클리어할 사람이 없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필요한 지원은 최대한 해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원의 설명을 듣던 손태욱은, 연옥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그때는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해, 자신에게만 이계 던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해 둔다고 했다.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오히려 보스를 잡기 전이 더 귀찮았지.

1층의 보스 해머 왕은 자신의 새로운 소환수, 심연의 마누스가 2분 만에 처치해버렸으니까.

‘그래도 이것으로 연옥은 내 독차지네.’

연옥 1층을 클리어하자마자 나온 차원의 조각과 스킬 포인트 캡슐.

그렇다면 2층과 3층을 클리어하면 얼마나 좋은 보상이 나올지, 상상만 해도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상점 레벨이 올랐었지.”

이계 던전에서 레벨 60을 달성해, 상점의 새로운 기능이 열렸다는 메시지가 출력된 기억이 떠올랐다.

마이 룸(잠겨있음): 15일 뒤, 이용 가능합니다.

“···아. 망할. 또냐?”

새롭게 열린 항목은 마이 룸.

작은 방처럼 생긴 아이콘이 하나 추가되어 있었지만.

“뭔지 설명이라도 좀 해 주던가.”

기능이 잠겨있어, 이용할 수 없었다.

진원은 툴툴대며 새롭게 추가된 아이템들이 없는지 확인했다.

“레벨이 올라도 장비 쪽은 추가가 안 되어있고. 캐쉬샵이랑 명예 포인트 상점에는 그래도 스킬이 하나씩 있네.”

[마구: 블랙홀]

액티브 스킬.

주변의 적을 5초 동안 끌어들입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끌어들이는 힘이 강력해지며 유지시간이 늘어납니다.

(MP: 300)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특수행동: 부패의 균열]

액티브 스킬.

심연의 마누스 전용 스킬.

전방으로 솟아올라오는 부패의 가시를 소환합니다.

(HP: 500) (MP: 500) (마누스 소환 시마다 1번 사용 가능.)

“스킬들은 무조건 사야지. 그런데······.”

이전에도 느꼈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들이다.

새로운 기능을 가진 마구는 300억에, 심연의 마누스의 특수행동 1개가 명예 포인트 150을 요구하고 있었으니.

“거래소에 비하면야, 혜자이긴 하다만.”

플레이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직업 스킬 알약들은, 아무리 저렴해 봐야 300억은 넘었으며 그중 값비싼 스킬들은 700억도 가뿐하게 넘기곤 했다.

“그만큼 스킬 알약의 매물도 없고. 귀하다는 말이겠지.”

대다수의 플레이어는 50레벨부터 스킬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려면 난도가 높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스킬 알약을 구하든지 아니면 열심히 돈을 벌어 거래소에서 구매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상점 스킬이 사기긴 하네.”

한동안 소파에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던 진원은 몸을 일으키며 차 키를 챙겼다.

“연옥 2층은 레벨을 좀 더 올리고 가기로 하고.”

일단, 돈부터 모으자.

* * *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길드가 창설되고 시간이 흘렀지만, 길드 마스터인 진원의 별다른 지시가 없어 행정업무들을 혼자 담당하는 이시현은 여유로운 직장생활을 즐기고 있다.

“크으! 이게 바로 워라벨이지.”

딸깍. 딸깍.

책상에서 건프라를 조립하고 있던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린다.

눈가에 진하게 자리 잡았던 다크서클은 없어진 지 오래.

“여기서는 일 좀 줬으면 좋겠는데.”

한쪽 벽면에는, 유리 장식장이 세워져 있었는데 대부분 그가 직접 조립한 건프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진원 씨. 아니, 사장님 밑에 들어가길 잘했어.”

당일의 업무를 다 끝내고 나면, 자유롭게 퇴근하거나 사무실 안에서 취미 생활을 즐겨도 좋다는 사장님의 말에, 이시현은 이곳이 정말 대한민국인지 몇 번이고 의심했었다.

“피닉스 길드에 계속 있었으면 3년 안에 과로사로 죽었겠지.”

그는 이전에 있었던 직장에서 겪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업무가 생각났는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이시현 씨, 있어요?”

“아. 예! 오셨습니까, 사장님!”

진원의 말에, 이시현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뛰어나갔다.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도 됩니다.”

“좀 더 익숙해지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온 진원이 한쪽에 세워져 있는 유리 장식장을 보며, 작게 감탄사를 뱉었다.

“건프라 좋아하시나 보네요.”

“네. 제가 가장 즐기는 취미입니다. 그런데 따로 맡길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현재 그가 하던 일은 간단한 서류처리나 잡무들뿐.

이제야 제대로 된 일을 하겠다 싶어 의욕이 끓어올랐다.

“S등급 던전에 가려고요. 예약 좀 해주세요.”

“···예?”

그리고 진원의 말을 들은 이시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되물었다.

“S등급 던전을··· 그럼 파티원들은 모집하셨나요?”

“아, S급은 몇 명이 있어야 하죠?”

“20명이 있어야 하는데··· S급이 1명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나머지는 A급과 B급 플레이어들로만 파티를 구성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귀찮네요. 이제는 혼자서 가도 충분한데.”

A급까지야 적당히 D급이나 E급 플레이어들을 구해 던전에 입장하면 됐었지만 S급부터는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만 입장이 가능했고, 그마저도 까다롭게 심사를 봤으며 기본 심사 기간만 2주일이 걸렸다.

‘아무리 진원 씨가 S급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플레이어라지만, 법을 어기면서까지 던전에 들어가면 주위의 시선이···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시현은 갑작스러운 진원의 요구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했다.

“으음······.”

그가 인상까지 써가며 고민하고 있는 도중, 진원은 스마트폰을 꺼내 협회장 손태욱에게 연락했다.

- 안녕하십니까, 진원 씨!

“안녕하세요. 제가 S등급 던전에 혼자서 들어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 S등급 말입니까? 아무리 진원 씨라도 S등급을 혼자서 클리어하기에는··· 물론 진원 씨의 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손태욱은 난처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연옥을 빠르게 클리어하려면 되도록 저 혼자서 S급 던전의 경험치를 독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진원은 진지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연옥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 나갈지 상상만 해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 진원 씨!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신경 써 주신다니!

손태욱은 이어지는 진원의 말에 감동하였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쉽네.”

통화를 끝낸 진원은,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띠었고.

‘저건 거짓말인 것 같은데.’

그의 표정을 관찰하던 이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 * *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위치한 관악산.

파즈즈즈.

밤늦은 시간, 인기척이 없는 산의 정상에서 작은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고 그 포탈에서 흑색 도포를 입은 은발의 미소년이 걸어 나왔다.

“허어. 나도 나이가 있어서 힘들구만.”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던 그는 고재원. 한때 진원의 스승을 자처한 플레이어다.

“스읍. 후우. 산 공기는 역시 좋구나.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아일랜드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동안 심안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득을 취했다.

“아일랜드의 기억을 가지고 나오는 방법이 있었구만.”

그는 로봇들에게 심안을 사용하던 중 아일랜드의 기억을 보존하며 대상 1명의 기억도 복구시켜주는 특수 업적을 발견했고, 그 업적을 달성했다.

[업적: 아일랜드 존버왕]

누구보다 아일랜드에서 오래 살아남으신 당신이 바로 존버왕!

효과 - 1. 아일랜드의 기억을 보존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2. 대상 1명을 지정해, 삭제된 아일랜드의 기억을 복구합니다.

“그런데 존버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고재원은, 빠른 몸놀림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제자한테 가고 싶다만. 그전에, 김수환. 네놈부터 봐야겠다.”

고재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거운 표정으로 더욱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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