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시험-2
시험 종료까지 10분.
“10분 남았습니다. 슬슬 마무리하세요.”
교수의 말에 진원은 적당히 풀어 나간 시험지를 뒤집었다.
‘던전 많이 다닌 게 도움이 되긴 하네.’
단순히 암기를 필요로 하는 문제는 풀지 못했지만, 특정한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의 대처법이나 약점 등을 서술하는 문제는 진원에게 있어 거저먹기였다.
‘이런 곳에서 커닝은 벌 받을 짓이지.’
협회 필기시험에서야 절대 평가로 일정 점수만 받으면 되었지만, 대학교 시험 같은 경우는 상대 평가로 서로가 경쟁한다.
‘거기다가 장학금이나 혜택도 어마어마하고.’
서울대학교는 플레이어학과의 장학금 지급 범위를 넓혀, 어느 정도 공부만 한다면 재학생의 절반 이상은 학비를 내지 않고 졸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나야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돈이야 이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모을 수 있으니.
정직하게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잠시 후.
시험이 끝나고, 교수들이 앞서 나와 시험지를 직접 수거해 간다.
“1시간 뒤에 실기 시험 있으니까. 다들 준비해서 종합 체육관으로 집합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교수는 강의실에서 나갔고…….
“아, 첫 시험인데 뭐 이렇게 어렵냐?”
“야, 트롤 공략법 어떻게 적었어?”
학생들은 저마다 기뻐하거나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시험 잘 쳤어요?”
“응? 그냥 대충 쳤다.”
손하윤은 교수가 나가자마자, 쏜살같이 진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모습에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쏠렸다.
“우리도 말 걸어 봐도 되려나?”
“겉보기에는 시크해 보여도 막상 말 걸면 대답은 잘해 준다던데?”
“뭐라고 말 걸어야 하냐?”
“그런데 하윤이는 진원 오빠랑 어떻게 친한 거야?”
서로 소곤거리던 학생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진원을 향해 걸어왔다.
“형님, 저 불꽃 남자 김진원 채널이 개설되자마자 빠르게 구독 박았습니다. 팬입니다!”
“그러냐? 고맙다.”
그런데…… 제발 채널명은 그만 좀 언급했으면 좋겠는데.
선발대로 보낸 남학생의 반응이 양호하자, 곧 다른 학생들이 차례대로 그의 자리로 몰려들었다.
“오빠, 대천사 길드 들어갔을 때 그 캥거루는 어디서 났어요? 전설종 몬스터라면서요? 되게 귀엽던데.”
“형님, 그래서 그 악마 놈은 얼마나 강했나요?”
“형님, 유투브 구독자 이벤트는 언제 하나요? 저 광고 스킵 안 하고 끝까지 보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들.
학생들은 진원을 보고 자연스럽게 오빠나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적당히 대답이나 해 줘야지.’
자신이 유명인이 된 것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이 정도로 질문 세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와, 오빠, 왜 얘네들한테는 잘 대해 줘요?”
손하윤은 진원이 몰려든 동기들에게 일일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는 것을 보고,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똑같은데?”
“하나도 안 똑같거든요?”
**
1시간이 지나고. 종합 체육관에 플레이어학과 학생들이 모였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밀어주는 학교다 보니, 우수한 플레이어의 양성을 위해 내부 공사는 마친 지 오래.
벽이나 바닥은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든 소재로 교체되어, 웬만한 스킬에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자, 그럼 실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학과 번호 뒷번호부터 실시합니다.”
교수 한 명이 단상에 올라서서 실기 시험 방식을 설명했다.
“여러분들 대부분이 직업이 없는 플레이어들이니 종합적인 테스트를 통해 점수를 채점하겠습니다.”
실기 시험 항목은 4개로, 학생들의 기본 스텟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나중에 반을 나누는 데 반영한다고 한다.
‘근력, 민첩, 체력, 마력인가.’
근력이나 마력 같은 경우는 특수한 장비들을 사용해 수치를 측정하고, 민첩이나 체력은 단순히 빨리 달리기나 오래달리기를 통해 수치를 측정한다.
“자, 다치지 않도록 지금부터 스트레칭을 할 테니 잘들 따라 해 주세요.”
“하나, 둘, 셋, 넷.”
교수의 구호에 따라 학생들이 몸을 푸는 동안 밖에는 혹시나 있을 사고를 대비해 밖에 구급차를 대기시켜 놓았고, 체육관 안에는 구급대원들이 4명 정도 대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첫 시험이다 보니 학교 측에서 신경을 쓴 것이겠지.
“자, 그럼 근력부터 실시하겠습니다.”
“네!”
교수가 호명한 학생 세 명은, 앞에 세워진 철제 인형 앞에 다가갔다.
‘저번보다 발전했나 보네.’
예전, 진원이 시험했었던 철제 인형과 유사했지만 머리 부분에 수치를 나타내 주는 작은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스킬이 있으면 써도 좋습니다. 인형들은 상당히 강도가 높으니, 무리해서 다치지는 마세요. 시험 시간은 5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긴장한 기색의 남학생 세 명이 각자 보급 무기를 들고 철체 인형 앞에 다가가 섰고…….
휘익!
교수가 호루라기를 불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팅! 팅!
“합!”
“아오, 잘못 쳤네.”
학생들은 저마다 열심히 무기들을 휘둘렀지만, 상당한 인형의 강도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만점이 120점이라.’
5분 동안 가장 강한 공격이 측정되는 방식.
[89] [69] [58]
결과가 나오자, 학생들은 의기소침해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모니터에 나타난 숫자는 그리 좋은 성적이 아님을 나타냈기 때문.
“레벨을 본격적으로 올리기 전이라 당연한 겁니다. 다들 풀 죽지 말고 최선을 다하세요.”
그 뒤로 계속된 측정.
대부분 학생의 레벨이 1이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숫자는 비슷했다.
“와, 100점 1명 나왔네.”
“오, 률화 좀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률화의 차례가 되자.
그는 평소에 자신이 훈련하던 단검과 유사한 형태의 보급 무기를 들고, 철체 인형의 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후우, 열심히 노력하길 잘했어.’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
혹시라도 손하윤이 보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오빠, 이거 끝나고 뭐 해요?”
그녀는 진원에게 말을 거느라 관심도 없어 보였다.
“손하윤.”
“네! 근데 저 스킬 써도 되나요?”
“됩니다.”
과 학생 중 유일하게 유니크 직업을 보유한 그녀는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고 온 가방에서 튼튼이를 꺼낸다.
“튼튼아!”
잠시 후, 모형 탱크의 크기가 점차 커지며 실제 탱크와 유사한 크기로 변했다.
덜덜덜덜-
“와. 말로 듣긴 했는데 진짜 탱크 같네.”
“저거 진짜 대포 쏘는 거야?”
“잠깐! 손하윤은 그대로 다른 학생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세요!”
“네!”
교수는 거대한 탱크를 보자, 기다리라는 지시를 하고, 다른 학생들이 말려들지 않도록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이제 해도 됩니다.”
“네! 튼튼아!”
덜덜덜. 파앙!
그녀의 신호에, 독일 전차 티거를 연상시키는 탱크가 굉음을 내며 포를 발사했다.
[384]
“와……. 미쳤네.”
“쟤 직업 뭐냐?”
철제 인형이 산출한 숫자를 보고 학생들은 저마다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녀에 대해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네. 그런데…….’
철제 인형은 튼튼이의 대포에도 흠집 하나 없었다.
‘가장 비싼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들었다고 했지.’
얼마나 튼튼한지 한번 시험해 볼까.
“마지막으로…… 김진원 씨.”
“네.”
진원의 경우는 소환사 직업이다 보니 혼자서 철제 인형 3개를 전부 테스트해도 좋다는 교수의 말이 뒤따랐다.
꿀꺽.
학생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김진원의 힘이 어느 정도 일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인형이 3개니까……. 붉은 늑대, 메시아.’
“예, 주군.”
[응.]
스스슷-
자신의 말에, 양옆으로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나타났다.
“와! 미쳤…….”
“입 닫아, 미친놈아!”
한 학생이 입을 열자, 다른 학생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다그쳤다.
진원은 뒤에 있는 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명령을 내렸다.
“내가 중간, 왼쪽은 붉은 늑대, 오른쪽은 메시아. 강하다 싶은 것으로 마음껏 때려. 나보다 점수 높으면 원하는 거 하나씩 들어줄게.”
[정말로?]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
“…….”
그 말에,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잡으며 철제 인형을 응시했다.
“그럼 시작해 주세요.”
‘5분 동안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든 인형을 마음껏 두들겨도 된다니.’
힘 조절해 달라는 부탁은 없었으니까 마음껏 테스트해 볼까.
‘일단은…… 마구부터.’
진원은 와인드업하고 철제 인형을 향해 마구를 힘껏 던졌다.
“흐읍!”
[571]
“와……. 미쳤네. 스킬 한 개에 570이 나온다고?”
“야, 조용하고 봐라 좀. 형님 집중하시잖아.”
확실히 최상급 마정석으로 가공한 인형은 다른지, 흠집 하나 없었다.
티잉! 팅!
[521] [501]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붉은 늑대와 메시아의 수치도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얘들아, 제일 센 거 한 방씩 하고 끝내자.”
“분부대로.”
[알았어.]
자신의 말에 뒤로 물러난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스읍-
붉은 늑대가 숨을 고르고, 메시아는 손가락을 들어 철제 인형을 조준했다.
‘아, 괜히 마음껏 해도 된다고 했나?’
한편, 그 장면을 지켜보던 교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철제 인형이라 마음껏 측정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자신의 예상치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니.
‘아……. 저거 하나에 아파트 한 채 값이 넘는다. 저게 부서지기라도 하면.’
평생 일해도 다 못 갚을 텐데.
그러나 그런 교수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진원은 철제 인형을 향해 마구 : 칼날 폭풍을 사용했다.
“흐읍!”
[붉은 늑대가 스킬 :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메시아가 다크 레이를 사용합니다. HP를 300 소모합니다.]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 붉은 늑대와 메시아도 뒤따라 스킬을 사용했다.
쉬익- 드드드드.
사출되는 수많은 검은 단검들이 철제 인형의 몸을 꿰뚫었다.
또한 왼편에 있던 인형은 몸통 부분이 녹아내렸으며, 오른편에 있던 인형은 팔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렸다.
[1,013] [1,840] [826]
푸쉬익.
결과를 표시하던 모니터는 연기를 내며 잠시 뒤 화면이 꺼졌다.
[원하는 거 있었는데…….]
‘역시 주군이십니다.’
메시아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고.
붉은 늑대는 자신의 힘에 감탄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와씨, 미쳤다 형님! 저 팬티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요!”
“진원 오빠, 진짜 멋있어요!”
“저 이거 영상으로 찍어 놨어요! 유투브에 꼭 올려 주세요!”
와아아아! 휘이익!
진원의 실기 시험을 뒤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학생들은 잠시 후 나타난 엄청난 숫자에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수치를 알 수 있으니까 뭔가 재밌네.”
진원은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는 꿈도 꾸지 말자.”
그 결과를 본 이률화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자고 결심했으며, 앞으로 훈련량을 2배로 늘리기로 다짐했다.
“……나 교수직 해임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던 교수는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누더기가 된 철체 인형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