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대천사 길드-4
‘무기를 한 번도 휘두르지 않다니. 정말 같은 인간이 맞는 건가?’
기세 좋게 공격해 오던 할파스가 주춤하며 경계하자 진원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얕보는 거 맞는데? 아, 방금 건 그냥 간단하게 테스트 좀 해 본 거야. 얼마 전에 민첩 스텟을 꽤나 올렸거든.”
“망할 인간이…….”
지금까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에 할파스는 분노를 느끼고 곧장 진원에게 돌진하려 했지만,
탓! 휘익!
“이제 내 차례다, 새끼야.”
“뭐라…….”
눈 깜짝할 새에 순간 가속을 사용해 할파스의 품으로 파고든 진원은,
빠악!
토르의 망치로 놈의 턱을 힘껏 쳐올렸다.
“크아악!”
상당한 충격에 육중한 놈의 몸이 살짝 들리는가 싶었지만, 놈은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자신을 잡기 위해 양팔을 내뻗었다.
“느리네.”
빠악! 빡!
그는 할파스가 내뻗는 팔을 가뿐하게 피하며 놈의 복부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크으……. 얕보지 마라, 인간!”
할파스는 이전보다 확연히 달라진 진원의 힘에, 자신의 모든 힘을 이끌어 내기로 결심했다.
‘이연우가 되도록 참으라고 했지만. 내가 고작 인간의 말을 들을 것 같으냐!’
아무것도 없는 군락에서 소환된 것은 좋았다.
인간들의 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으니까.
‘인간의 육체에 나를 불러들이다니. 망할.’
자신에게 힘의 제약이 생겼다는 것도 괜찮았다.
나약한 인간들은 자신의 모든 힘을 쓰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여겨 왔으니까.
그러나 할파스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김진원, 네놈은 내 모든 힘을 다해서 죽여 버리겠다!”
티잉!
어느 순간 자신이 휘두르던 망치가 놈의 피부에 닿자, 손에 얼얼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뭐냐?”
놈이 팔을 교차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고, 동시에 피부의 강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일단 거리를 둬야겠네.’
진원은 놈의 변화를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크으으…….”
놈의 피부는 점점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촤악!
“크아악!”
꿀렁이던 놈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 한 쌍이 튀어나왔다.
“얘들아, 준비해라!”
“분부대로.”
[맡겨 줘.]
그 모습을 본 진원은 곧바로 붉은 늑대와 메시아, 소환수들을 불러내고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형!”
“진원 씨!”
“괜찮으니까 이서훈을 잘 지켜 줘!”
심상치 않음을 느낀 최은식과 송현성도 자신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손을 들어 그 자리에 있으라는 지시를 했다.
“이 상태로는 오래 못 버티겠지. 3분 안에 네놈을 죽여 주겠다.”
말을 마친 할파스는 곧바로 진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의 몸 주변으로 푸른 오러가 일렁였다.
‘뭐야, 괜히 긴장했잖아. 별거 없네.’
이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놈의 속도.
그러나 자신의 눈에는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크아아아!”
사납게 포효하며 달려드는 놈을 향해 와인드업을 하던 진원은,
“크이이이!”
“야, 너 뭐 해!”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으로 튀어나온 콩콩이를 보고 당황해 소리쳤다.
그것을 보고 빠르게 녀석에게 달려들었지만,
띠링.
[골드 캥거루가 섬광을 사용합니다.]
콩콩이의 몸이 빛나면서 자신의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저, 저건 뭐지? 나와 같은 스킬이라니?”
송현성은 콩콩이가 자신과 똑같은 스킬을 사용하자, 순간 놀라 말을 더듬었다.
“크아아악!”
신성력이 담겨 있는 빛.
언데드나 악마형 몬스터들은 잠깐만 빛에 노출되어도 일정 시간 시야를 잃게 되는 스킬이었다.
할파스가 눈을 가리고 휘청거리자 붉은 늑대와 메시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흐읍!”
당연히 진원도 놈을 향해 최상급 성수를 던졌다.
띠링.
[최상급 성수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피해량이 200초 동안 70퍼센트 증가합니다.]
서걱! 푸학!
“크아악!”
붉은 늑대와 메시아의 연이은 공격에 할파스가 괴성을 질러 댔다.
“크이이이!”
그 사이 콩콩이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마치 칭찬해 달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너 대단한데?”
섬광이라면 프리스트 계열이나 성기사 계열이 사용하는 스킬인데…….
‘혹시 나중에 크면 HP도 채워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녀석이었다.
“망, 망할……. 내가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
그사이.
붉은 늑대와 메시아에게 쉴 새 없이 베이고, 꿰뚫린 할파스는 전신에서 피를 뿜으며 무릎을 꿇었다.
“저래도 안 죽어? 최상급 성수를 던졌는데? 맷집 하나는 좋네.”
진원은 거친 숨을 뱉어 내는 할파스에게 마구를 사용하고, 와인드업을 했다.
“그냥 곱게 뒈져!”
쉬익- 빠악!
“커헉…….”
마구가 놈의 미간에 적중하자, 놈은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띠링.
[할파스를 처치하였습니다!]
[72 악마들에게 할파스의 죽음을 알리시겠습니까?]
(Y/N)
#할파스의 죽음을 알리게 되면, 명예 포인트 10을 획득합니다.
그와 동시에 출력된 메시지. 지난번 보티스를 처치했을 때와 같은 내용이다.
‘72 악마를 잡을 때마다 명예 포인트를 준다는 건가?’
당연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10포인트밖에 주지 않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역시 형입니다! 이번 영상을 잘만 편집하면 5천만 뷰까지도 노려 볼 만하겠어요!”
최은식이 진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할파스의 외형이 변했을 때 순간 긴장했지만, 갑작스럽게 콩콩이가 내뿜는 신성한 빛을 보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영상을 촬영했다.
“대단하군요, 진원 씨. 이제 이연우만 찾아내면 될 듯합니다.”
“네. 놈이 대천사 길드의 주요 간부라고 했었죠.”
송현성은 MP포션을 마시던 진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 놈이 도주할 것을 대비해서, 제 길드원들을 바깥에 배치해 뒀습니다.”
송현성은 그가 할파스를 어린애 다루듯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곧바로 피닉스 길드에 연락을 취해 길드원을 소집했다.
‘할파스가 협회를 습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단기간에 저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놈의 공격을 받아 본 적이 있는 자신은 안다.
성기사라는, 악마들에게 강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놈과 제대로 싸우게 되면 확실하게 질 것이라고.
**
콰앙!
“망할!”
모니터로 할파스의 전투를 지켜보던 이연우는 벽을 세게 쳤다.
“하아……. 수백억하는 돈을 들여서 전용 무기까지 마련해 줬는데! 거기다가 쓸모없이 죽어 버리다니!”
분명히 버거우면 뒤편에 마련해 둔 마법진으로 도망치라고 그토록 당부했는데.
“하필이면 힘만 세고 지능이 낮은 악마가 걸려서!”
김진원. 그는 S급 플레이어지만, 세계 랭크로 따지면 100위 언저리에 머무는 수준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저게 어딜 봐서 세계 랭크 최하위 플레이어냐!”
이연우는 할파스가 힘도 못 쓰고 당해 버리자, 안절부절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악마의 힘을 나눠 주는, 대규모 정화까지 앞으로 조금이었는데.
“후우, 혹시나 싶어서 마법진을 만들어 두길 잘했군.”
이곳의 연구소를 버리게 되는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막강한 신도 수를 자랑하는 대천사 길드라곤 하지만, 자신이 적당히 암시를 걸어 모은 일반인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스윽-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베겠다.”
“아니?”
급하게 주요 기밀 서류들을 챙기던 이연우는 목 뒤에서 서늘한 감촉을 느꼈다.
‘도대체 뭐지? 분명히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그는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약 30분이 흐른 뒤, 무장한 경찰들과 군인들이 안에 들이닥쳤다.
“이연우 씨, 당신을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3에 따라 긴급 체포합니다.”
“그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군인들은 혹시라도 있을 그의 돌발 행동에 대비해 몸쪽으로 총을 겨눴다.
“이연우 씨,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
경찰은 그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우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가까이 다가간 경찰이나, 근처의 군인들은 옆에 있는 사무라이를 보고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저, 저거…….”
“김진원 씨의 부하다. 절대로 자극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옆에 계신 분은?”
군인 한 명이 손끝으로 가리킨 곳에는 어느새 따라 들어온 최은식이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좋아. 여기선 이 구도로 찍어야겠다.”
“저거 그대로 촬영하게 둬도 되는 겁니까?”
“저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손쉽게 왔으니 그냥 냅둬.”
그 와중에 붉은 늑대는.
다른 곳에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이연우의 목에 들이댄 칼을 거두지 않았다.
‘망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스킬을 아껴 두는 건데!’
사용 제한이 있는 마의 벽을 남발한 것은 그의 큰 실책이었다.
“제가 이대로 끝날 리가 없습니다! 저는 특별한 인간입니다!”
잠시 후, 소리를 연신 질러 대던 이연우는 그대로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남은 인력들은 그대로 대천사 길드의 조사를 진행했다.
“플레이어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건물 밖으로 나와 돌아갈 준비를 하자 경찰 한 명이 진원에게 다가와 고개를 크게 숙였다.
“사실은, 지금까지 꽤나 답답했습니다. 높은 분들은 대천사 길드의 규모가 크다고 서로 쉬쉬하기에 바빴거든요. 저는 이러려고 경찰이 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 네.”
진원은 열정적으로 말을 내뱉는 젊은 경찰관을 보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따로 보상도 없이 국가를 위해 조사를 감행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뭐지? 협회장이 그런 식으로 전달한 건가?’
그 뒤, 젊은 경찰관은 한동안 파티원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데 말인데요, 형.”
“왜.”
멀어져 가는 경찰차를 질린 듯이 쳐다보던 최은식이 입을 열었다.
“대천사 길드가 의외로 별거 없네요.”
그러고 보니 협회장이 그토록 경고했었던 대형 길드는, 막상 들어가 보니 정말 별거 없었다.
압도적인 신도 수야 대부분 일반인들이었고.
‘이연우가 악마 술사였나?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던데.’
플레이어가 소환한 악마라 그런지, 할파스는 명예 포인트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뭐, 그래도.’
꼬마 임프가 희석된 엘릭서를 가져다준 것은 소소한 이득이었다.
이놈들한테 팔렸다고 하니까 뭔가 기분이 더럽긴 했지만.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이서훈, 너도 잘해 줬다.”
“네, 형! 다음에도 저 필요하면 꼭 불러 주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원 씨. 저는 밀린 업무가 있어서 바로 가 보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가볍게 인사한 송현성은 그대로 길드원이 끌고 온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형,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쟤는 스킬이라도 썼지.”
최은식이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느꼈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얌마, 열심히 영상 찍었잖아. 내 명예 포인트가 얼마나 중요한데.”
진원은 그런 녀석에게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혀, 형!”
“왜?”
곧이어 장소를 떠나려던 진원에게 이서훈이 가까이 다가왔다.
“형, 저 쓸 만하죠?”
“그래. 탐색 스킬 괜찮더라.”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말해 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들어줄게. 과도한 건 안 된다.”
녀석은 자신의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거절하지 않고 따라와 줬다.
‘중학생을 위험한 곳에 데리고 온 건 사실이라, 할 말이 없네.’
당연히 녀석을 지킬 자신이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흠……. 어떻게 할까?”
잠시 후, 이서훈의 부탁을 들은 진원은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