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대천사 길드-3
대천사 길드의 모니터링실.
건물 바깥과 내부에 있는 수많은 감시 카메라가 화면을 비추고 있다.
“흠, 생각보다 빠르네요.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이연우는 감시 카메라에 잡힌 플레이어들을 보고 곤란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할파스의 무기가 이제 막 완성되기는 했는데……. 일단 그 방법을 써야 하겠네요.”
그는 근처에 있던 신도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곧바로 모니터링 실을 나갔다.
**
“형, 스킬 한 번만 더 사용할게요. 형이 말하는 악마를 아직 못 찾았어요.”
탐색 스킬을 사용한 이서훈은, 다시 자세를 잡고 눈을 감았다.
“그래. 천천히 해.”
그동안 진원과 송현성은 주위를 경계했다.
최은식은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촬영하는 데 정신이 없었지만.
잠시 후, 이서훈이 할파스를 발견했는지 눈을 번쩍 뜨고 진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 찾았어요. 악마는 지하 깊숙이 숨어 있어요! 그런데 지금 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모이고 있어요!”
“진원 씨.”
그 말에 송현성이 자신을 응시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협회장은 현재 대천사 길드에는 일반인들이 상당수 섞여 있으며 세뇌를 당한 것 같다는 보고도 자주 받았었기에, 되도록 죽이는 것은 지양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위협적인 스킬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면 죽여도 괜찮고, 나머지는 되도록 제압. 맞죠?”
“네. 그럼 제가 선두로 가겠습니다.”
“저도 앞쪽에 서겠습니다!”
대략적인 위치 파악을 끝내고 돌입 준비를 마친 뒤 송현성과 최은식은 방패를 세우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2억……. 2억짜리…….”
얼떨결에 카메라를 넘겨받게 된 이서훈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물러가라! 이단자들은 물러가라!”
“이곳이 어디라고 들어오냐!”
“불길하다! 꺼져라!”
마치 그들이 올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 건물 입구에서부터 로브로 전신을 가린 신도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길을 막아 섰다.
겉으로만 봐도 100명은 훌쩍 넘을 것 같은 인원수.
“음……. 도저히 비킬 것 같지 않으니 그냥 뚫고 들어가겠습니다.”
한동안 신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송현성은 강행 돌파를 위해 빠르게 앞으로 내달렸다.
철그럭. 철그럭.
그의 거구를 감싼 황금색의 플레이트 아머가 내는 쇳소리는 신도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비켜라.”
안 비키면 그대로 치고 지나가겠다는 느낌의 맹렬한 돌진에, 신도들은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어억!”
“무, 물러나!”
그의 어깨에 부딪힌 몇 명의 신도들은 충격에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인 것 같네.’
안으로 들어온 진원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무기를 들고 있거나 스킬을 캐스팅하고 있는 신도들은 없었다.
“형, 여기 밑으로 내려가야 해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대략 지하 3층이나 4층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미리 내부 파악을 어느 정도 끝낸 이서훈이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아니. 계단으로 가자.”
놈들이 엘리베이터에 무슨 짓을 해 놨을지도 모르고, 무거운 갑옷을 걸친 남자 둘과 안에 타는 것도 좀 그러니까.
“물러가라!”
“꺼져라!”
“이단이다!”
비상구의 계단을 통해 내려갈 때마다, 신도들이 나와서 그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그런데 이놈들 같은 말만 반복하는데……. 진짜 세뇌당한 건가?”
“뭔가 소름 끼치네요, 형.”
최은식이 진원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군요. 원래 이런 용도는 아니지만, 스킬을 사용하겠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던 송현성이 섬광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가 환하게 빛나며 주위를 밝혔다.
“그런데 이건 또 뭐냐?”
그 후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신도들을 몰아내며, 한동안 건물 안을 조사하던 진원이 발견한 것은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리는 벽이었다.
꿀럭. 꿀럭.
“으……. 징그러워요, 형.”
이서훈은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했다.
“다들 뒤로 물러나.”
[마의 벽]
설명 : 악마 술사의 소환수. 주로 상대방을 가두거나 특정 장소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 공략 포인트 : 일정 시간 동안 파괴가 불가능한 상태이기에,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
- 신뢰도 : 70퍼센트.
“파괴가 불가능하다고? 완전 사기 스킬이네 이거.”
몬스터 백과사전을 사용해 정보를 확인한 진원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붉은 늑대를 불러냈다.
서걱! 스걱!
붉은 늑대는 쉴 새 없이 마의 벽을 베었고, 진원 역시 마구나 토르의 망치를 사용해 보았지만…….
꿀럭. 꿀럭.
벽은 무슨 일 있냐는 듯이 재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거 그냥 기다려야 되겠네.”
“다른 곳은 별것 없었는데. 이곳에만 괴상한 생명체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여기에 악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흡!”
송현성은 뒤로 빠져, 계속해서 다가오는 신도들을 밀어내기에 바빴다.
‘그동안 할 것도 없으니 칭호들이나 확인해 둘까.’
진원은 지난번 악마 군락에서 획득한 칭호, 그리고 Max 레벨을 달성한 칼날 폭풍의 효과 확인하기 위해 상태 창을 열었다.
[칭호 : 악마 사냥꾼]
72 악마를 단신으로 처치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칭호.
효과 : 악마형 몬스터에게 추가 대미지가 30퍼센트 증가합니다.
[업적 : 군락의 지배자.]
악마 군락에 있는 군주를 처치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업적.
효과 : HP와 MP의 최대치가 1,000 증가합니다.
‘괜찮네.’
할파스를 상대하는데 딱 맞는 칭호. 그리고 HP와 MP의 최대치가 한꺼번에 올라가는 업적 효과 또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전부 바꾸자. 그리고 칼날 폭풍은…….’
최대 레벨을 달성한 스킬의 성능은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칼날 폭풍 : Lv20(Max) 부과 효과]
완벽한 형태를 갖춘 단검이 사출되며, 관통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사출되는 단검의 개수가 2배 증가합니다.
대미지가 30퍼센트 증가합니다.
‘이래서 보티스가 맥을 못 춘 거였나.’
성수의 효과도 있긴 했지만, 스킬 자체의 파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꿀럭. 주르륵.
“좋아. 드디어 열렸네.”
10분의 시간이 지나자,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마의 벽이 꿈틀거리며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다들 긴장해라.”
“맡겨주세요, 형!”
“네!”
“그렇게 하죠.”
허물어진 벽 너머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공간들. 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파티원들은 주위를 찬찬히 살피며 앞으로 나아갔다.
“얘들아, 주변을 살펴보고 와라.”
“분부대로.”
“키긱!”
“예, 주인님!”
자신의 말에 붉은 늑대와 소환수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졌다.
‘많은 기척이 느껴진다고 하니 여기는 주의해야겠지.’
소환수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치명적인 대미지만 아니면 자신의 MP로 복구가 가능했으니.
“저희는 이쪽으로 가죠.”
**
이서훈이 말한 대로 건물 내부, 특히 지하는 상당히 복잡했다.
“어……. 여기는 이쪽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분명히 스킬로 봤었는데, 헷갈리네.”
길을 찾았다 싶으면 그곳은 마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주위의 수많은 방을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형, 마치 시간을 끄는 것 같네요.”
“그래. 그런 느낌이 확 드네.”
꿀럭. 꿀럭.
마주친 세 번째 마의 벽이 허물어지길 기다리자,
“키긱! 키긱!”
쥐의 형태로 변한 꼬마 임프가 진원에게 되돌아왔다.
“찾았어?”
“키긱!”
본모습으로 돌아온 임프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음, 대단하군.’
그 장면을 바라보던 송현성은 속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저 정도로 지능이 높은 소환수들은 드문데.’
확실히 진원의 소환수들은 개체 수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녀석들은 말도 하고, 진원의 지시도 정확하게 수행했다.
‘역시 유니크 직업은 다르군. 간단한 명령만 수행 가능한 놈들과는 달라.’
거기다 놈들에게서는 최소 B급에서, 높게는 A급 플레이어들과도 견줄 수 있을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솔직히 일대일로는 이길 자신이 없다.’
송현성은 최대한 빨리 그에게 비약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뒤를 따랐다.
“키긱!”
“여기란 말이지?”
복잡한 갈림길을 몇 번씩 지나쳐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철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당히 두꺼워 보이는군요. 열려면 꽤 시간을 잡아먹을 듯합니다.”
“이 정도면, 망치로 세게 몇 대 내려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끼이이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철문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흐흐, 알아서 찾아와 주다니. 찾는 수고를 덜었구나.”
구석에 앉아 있던 할파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놈은 이전과는 다르게 양팔에 거대한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었다.
‘붉은 늑대에게 팔이 잘렸을 텐데. 역시 악마라 그런가?’
“난 도구 따위에 의존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인간들이 만든 것들.”
놈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인간의 육체만 아니었어도 김진원, 너는 진작에 나한테 먹혔을 것이다.”
“지×하고 있네.”
할파스는 진원이 내뱉는 험한 말에도 재밌다는 듯 웃었다.
“여전히 입은 살아 있구나. 귀찮은 인간도 데려온 것 같지만, 이전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말을 마친 할파스는 자세를 낮췄다.
놈의 다리근육이 팽창하며 부풀어 올랐다.
“진원 씨, 제가 앞을 막겠습니다! 지난번처럼…….”
“괜찮아요. 이서훈 좀 잘 챙겨 주세요. 콩콩아, 옆에 빠져 있어.”
“예?”
방패를 치켜들고, 스킬을 사용하려던 송현성은. 단호한 진원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거기 서 계시면 카메라에 방해됩니다!”
“형은 괜찮을 거예요!”
최은식과 이서훈까지 합세해 비키라고 하자…….
“음…….”
송현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얕보는 거냐, 인간 놈이!”
그 행동에 할파스는 성을 내며 지면을 박차고 진원에게 달려들었다.
‘지난번 저 신성력을 사용하는 인간만 없었으면, 넌 죽은 목숨이었다!’
거대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상당히 날렵한 움직임.
하지만 진원은 그런 녀석을 보며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어디 한번 해 봐.”
그는 토르의 망치를 꺼내고, 와 보라는 듯이 한 손을 까딱이며 놈을 도발했다.
“미쳐 버린 건가. 네놈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 주지.”
순식간에 진원에게 접근한 할파스는 오른팔을 들어 그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부웅! 붕!
할파스의 주먹이 지나간 자리에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맴돌았다.
놈이 착용한 건틀릿 때문일까.
지난번보다 상당히 매서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 봤자 안 맞으면 끝이지.’
한 대라도 맞았다가는 그대로 즉사할 법한 파괴력이었지만, 이미 악마 군락을 다녀온 진원의 민첩 스텟은 80.
놈이 휘둘러 대는 주먹질에 맞을 리가 없었다.
부웅! 붕!
‘뭐지? 나의 공격을 전부 피한다고?’
한참 동안 진원에게 공격을 강행하던 할파스는 위화감을 느껴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인간, 지금 날 얕보는 거냐!”
지난번과는 상당히 다른 놈의 움직임.
전엔 공격을 막는 것에 급급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