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대천사 길드-2
‘음……. 제발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손태욱은 김정주에게 사진을 전송받고 상황 파악을 끝낸 뒤 대천사 길드를 조사할 플레이어들을 조용히 모집해 왔다.
‘김정주,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너의 목숨을 절대로 헛되지 않게 하겠다.’
시체도 거두지 못한 채로 지내게 된 그의 장례식.
그 기간 동안 자신도 당연히 그곳을 지켜야 하는 것이 예의였지만, 할파스가 다시 사람들을 습격하기 전에 어떻게든 대비책을 찾아야 했다.
‘역시, 섣불리 나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어.’
그러나 워낙 규모가 큰 대천사 길드에다가 S급 플레이어와 악마까지 보유하고 있다 보니, 피닉스 길드의 길드장 송현성을 끌어들였음에도 돌아오는 반응은 밋밋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정보다.’
워낙 폐쇄적인 집단이다 보니 대천사 길드의 S급 플레이어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상황.
‘하지만 김진원 씨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거기다 얼마 전 그가 단신으로 악마 군락을 클리어하고 나왔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분명히 이전보다 강해지셨겠지.’
어떻게든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손태욱이 이마에 주름이 진하게 잡힐 정도로 고민을 하던 사이 가만히 앉아 있던 진원이 입을 열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손태욱이 화들짝 놀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정말입니까?”
손태욱은 그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거절당할 것으로 여겨 해외에 있는 플레이어들이라도 모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놈들에게 시간을 준다면 다음에는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기 때문.
“다음에도 할파스가 사람들을 습격하면 곤란하니까요.”
저번에는 플레이어 협회.
다음번에는 도심의 한복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무시하고 흘려 넘기면…….
‘일반인들이 죽어 나가겠지.’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지인이라도 있었다가는, 평생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성수도 있고, 레벨도 꽤 올려 놨으니.’
서열 28위의 악마한테 질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얼마 전, 17위의 악마를 단신으로 처리하고 왔기 때문일까.
오히려 할파스를 찾아내 준 협회장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보티스를 죽여서 명예 포인트를 30 얻었으니까, 할파스를 죽이면 15 정도는 주지 않을까?’
“정말 감사합니다, 진원 씨! 이 일은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손태욱은 일어선 자리에서 곧바로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진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시죠.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됩니까?”
그러자 손태욱은 주머니에서 볼펜과 메모장을 꺼내 진원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간단하네요.”
최소한의 인원으로 대천사 길드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건물 내부로 침입한 뒤 할파스를 우선적으로 찾아 그 즉시 처리하고, 공격해 오는 신도들 역시 처리하면 되는 작전.
딱히 그림까지는 안 그렸어도 될 듯한데.
“정부에서도 확실한 증거만 있다면 말리지는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민일보의 기자 김정주에게서 건물 내부의 사진을 조금씩 전송받았지만 워낙 내부 구조가 복잡해 할파스가 있는 곳을 단번에 특정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들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협조하기 꺼리는 것 같습니다.”
진원은 협회장의 말을 듣고, 뭔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분명히 플레이어 이벤트에서 탐색 스킬을 사용하던 애가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손태욱은 그런 진원을 보며 조용하게 기다렸다.
“이서훈.”
“예?”
“플레이어를 한 명 찾아 주세요. 이서훈이라고, 얘가 이번에 도움이 될 겁니다.”
**
서울의 한 아파트.
타다다닥!
키보드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가자! 장로 먹어! 이거 먹고 중앙 밀면 이겨!”
거실에서 헤드셋을 쓰고 전설의 연합에 정신이 팔려있는 중학생.
“후, 붸인을 1,000판 넘게 하고도 브론즈1에 있어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이기겠다.”
이서훈은 현재 실버4로 가는 티어 승급전을 진행 중이다.
“오예! 패패 승승승 가즈아!”
그가 기쁜 기색으로 채팅을 치는 것도 잠시.
아군이 처치당했습니다.
[타이거 길드 최고 미녀(붸인) : 아, 죄송합니다.]
[맛있는 과학 교과서(야쓰오) : 아니, 님. 뭐 하셈?]
“아니, 하. 핑 찍을 때 좀 오지 적팀 레드를 처먹고 있네. 아오!”
단 한 명의 욕심 때문에 순식간에 게임의 판도는 뒤바뀌었고…….
- 패배.
그대로 역전당하게 되었다.
[야쓰오 : 와, 진짜 레전드네. 붸인충 제발 좀 나가 뒈졌으면.]
[붸인 : 아 미안하다고요, 사람 죽일 기세네.]
[야쓰오 : 그냥 나가 뒈지면 안 됨? 그러니까 님이 브론즈에서 못 올라가는 거임.]
[붸인 : 뭐? 야, 너 주소 불러 봐. 내가 지금 당장…….]
[야쓰오 : 나 미국에 삼 ㅅㄱ.]
“에이 씨, 시간만 날렸네.”
이서훈은 사납게 컴퓨터 전원을 끄고, 소파에 가서 등을 기댔다.
그가 플레이어 이벤트에 끌려갔다는 것을 부모님이 아시고 나서 평범하게 다니던 학교를 휴학했고, 매일같이 게임을 하거나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난 진짜 괜찮은데. 엄마는 걱정이 너무 심해.”
학교를 쉬어도 된다니. 처음이야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에 있는 것이 답답해, 밖에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띵동. 띵동.
“응? 뭐지? 택밴가?”
그러고 보니 엄마가 화장품을 주문했다고 대신 받아 달라고 했었지.
“네, 나가요.”
현관문을 연 이서훈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남성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혀, 형?”
“오랜만이네.”
협회장의 도움으로 이서훈이 사는 주소를 확인한 진원은 곧바로 녀석이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손태욱은 작은 체구의 이서훈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을 데리고 간다니, 너무 위험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지죠. 그리고 얘가 앞으로 나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이서훈은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S급 플레이어와 협회장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그렇고, 데려간다니 마니.
‘도대체 뭐지? 그런데…….’
“키이잉.”
현재 진원의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캥거루.
분명히 플레이어 이벤트에는 없었던 소환수였는데.
‘새로운 소환순가 보네.’
콩콩이가 전설종 몬스터라는 것을 모르는 이서훈은 일단 눈앞의 진원과 협회장을 들어오라고 하고, 부엌에서 마실 거리를 뒤적였다.
“아, 지금 드릴 게 이거밖에 없네요.”
“아무것도 안 줘도 되는데, 고맙구나.”
손태욱은 그런 이서훈이 기특한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형이 저를 찾아오신 것은…… 제 스킬 때문인가요?”
“그래. 너의 탐색 스킬이 필요한데, 괜찮냐? 앞으로 이틀 뒤에 대천사 길드로 잠입할 거야.”
“지, 진원 씨, 그건 기밀 정보…….”
손태욱이 그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제가 탐색 스킬을 사용해 건물 안을 파악하고, 플레이어분들이 할파스를 죽이러 간다는 거죠?”
진원의 설명을 듣던 이서훈은 상기된 얼굴로 빠르게 대답했다.
“그런 셈이지. 그래서 너도 안으로 같이 들어가게 될 거야. 안전은 보장할게.”
“갈게요! 무조건요!”
그는 손태욱의 위험하다는 만류에도, 꼭 가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진원 씨가 추천하는 플레이어니 데려는 가겠다만…….’
한동안 이서훈과 대화를 나누던 그는 결국 졌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중학생일 줄은 몰랐는데.’
**
다음 날, 진원은 최은식을 데리고 플레이어 거래소
를 찾았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건 나와 최은식, 이서훈 그리고 송현성인가.’
아무래도 퍼펙트 쉴더인 최은식을 데려가는 것이. 이서훈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협회장에게 따로 부탁했었다.
“형, 이번 기회에 장비를 아주 싹 갈아엎어야겠어요.”
녀석은 신난 표정으로, 전시된 장비들을 살폈다.
협회장이 최대한 할 수 있는 지원은 전부 하겠다고 해, 이번 기회에 최대한 뽕을 뽑겠다고 했다.
‘짜식이.’
진원은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놈이 따로 열심히 던전을 돌고 있었나 보네.’
거기다 녀석은 자신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며 레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이제 B급 던전 정도는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다고 한다.
‘도와 달라고 하면 도와줬을 텐데. 그래도 알아서 잘 하긴 하네.’
진원은 플레이트 아머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녀석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진짜 가도 괜찮겠냐? 저번에 협회를 습격했던 할파스에, 신도들이 우글거릴 텐데.’
‘형, 저는 절대로 쫄지 않습니다. 저만 믿어 주세요!’
최은식은 그런 자신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여기요! 혹시 마정석을 소재로 해서 만든 카메라는 없나요? 액션캠 같은 것도 있으면 좋은데.”
새로운 장비들을 입어 보고 구매를 마친 최은식은, 손을 들어 직원을 호출했다.
“뭐냐. 카메라는 왜?”
“형, 당연히 촬영해서 유투브에 올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명예 포인트는 얼마나 모으셨나요?”
“포인트? 얼마 전에 보티스를 잡았으니까. 다 합치면 대략 80포인트 정도?”
그러자 최은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편집에 더욱 공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독자 수가 많아질수록, 모이는 포인트도 많아질 테니 영상은 계속 업로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직원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이쪽은 얼마 전에 출시된, 상급 마정석을 소재로 해서 만든 카메라입니다. 현재 물량이 별로 없어서 가격이 상당히 비쌉니다.”
“그럼 이거 하나만 살게요!”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님! 2억 원입니다!”
‘이것도 필요 경비로 처리해 주려나?’
어쨌든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
대천사 길드로 잠입하는 날. 새벽 2시.
건물과 충분한 거리를 둔 장소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각자 아이템들을 점검했다.
그러던 중 최은식이 자신의 발치에 있던 콩콩이를 보고 궁금한 듯 말을 걸었다.
“형, 그런데 얘를 왜 데리고 오셨어요?”
“나한테서 도무지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더라.”
“키이이이!”
당연히 진원은 콩콩이를 집에 두고 가려고 했다.
‘전설종이라도 능력도 모르고, 아직 어린 것 같아서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하지만 콩콩이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달라붙어서 그냥 포기하고 데려오게 되었다.
“괜찮겠지. 이번에는 너도 있으니까.”
“물론이죠, 형. 맡겨 주세요!”
각자 준비를 마치고 선두에 선 최은식과 송현성을 따라 천천히 대천사 길드의 건물로 움직였다.
‘이쯤이면 딱 적당하겠다.’
이서훈의 탐색 스킬의 범위는 반경 100미터.
지하 시설까지 살펴보려면, 최대한 건물 근처로 붙어야 했다.
‘형, 스킬 사용할게요.’
이서훈이 진원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