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대천사 길드-1
불꽃 남자 김진원
구독자 98.8만 명
어느새 100만에 다다른 자신의 채널.
딱히 새롭게 업로드된 영상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뜨거웠다.
- 이이잉 : 아, 사이다 마렵다. 새로운 영상 마렵다고요, 형님. 아시겠어요?
- 구독 안 누르면 네 꿈에 나옴 : 제발 일주일에 하나씩이라도 좋으니까 좀 올려줘요!
- 야쓰오 픽하면 던짐 : 알림 울릴 때마다 여기 채널 영상 새로 올라온 줄 알고 항상 설렘 하…….
댓글들의 반응들을 살피던 진원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확실히 은식이가 영상에 공을 많이 들여서 그런가 조회 수가 쭉쭉 올라가네.”
채널이 이 정도까지 성장할 줄 몰랐던 진원은 악마 군락에 들어가기 전 액션캠이라도 하나 사 둘 걸 하고 후회했다.
띠리리- 띠리리-
새롭게 올릴 영상의 콘셉트를 생각하고 있자니, 이시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 안녕하세요, 진원 씨! 악마 군락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조금 버겁긴 했네요.”
- 다행이네요. 길드의 건물로 쓰일 사무실을 찾아 계약까지 완료했습니다! 간판 디자인은 최은식 씨가 했습니다. 꼭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셔서…….
가만히 이시현의 말을 듣고 있던 진원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그래서 그 새…… 그 자식이 하게 놔뒀어요?”
- 아, 네. 아무래도 창설자는 최은식 씨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직접 가서 보니까 디자인이 좀…….
뚝.
진원은 곧바로 통화를 끊고, 최은식에게 연락했다.
- 형, 악마 군락은 잘 다녀오셨어요?
“야, 인마, 너 길드 간판 어떻게 만들었냐?”
- 간판이요? 아, 아무래도 사무실 규모가 작다 보니까 신경 쓸 부분이 간판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명한 디자이너분들을 섭외해서…….
실수다. 최은식한테는 절대로 디자인 관련해서 일을 맡기면 안 되는 건데, 악마 군락 입장권에 정신이 팔려서 잊어 버리다니.
“일단 사무실 구경 좀 하자.”
* * *
대천사 길드의 지하시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악마 군락의 군주, 보티스가 플레이어 김진원에 의해 처치되었습니다.]
서열 28위의 악마, 할파스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서열 17위의…… 보티스가 죽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녀석이 있는 군락으로 들어간 수단도 그렇지만, 김진원은 분명히 자신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아니, 내가 이딴 내용을 믿을 것 같나?”
하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육체를 빌려 이곳에 있는 자신은 김진원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연우, 빨리 이곳으로 와라!”
쿵! 쿵!
할파스가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문을 사납게 두드리고 잠시 후…….
“무슨 일이십니까? 피가 더 필요하신가요?”
이연우가 싱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계획을 앞당겨야 되겠다. 무기의 완성까지 얼마나 걸리지?”
이연우는 그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자 눈을 가늘게 뜨며 이유를 물었다.
“보티스가 김진원에게 죽었다는 메시지를 봤다. 그게 진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보티스라면 서열 17위의 악마 아닌가요? 상당히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할파스의 대답에 이연우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진원은 자신의 계획에 있어 걸림돌이긴 하지만,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의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
“강하지. 이 육체로는 감히 이길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뿌득.
할파스는 분한 듯 이를 갈며 이연우를 응시했다.
“하지만 난 악마다. 내가 도망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놈들에게 당한 그 굴욕을 그대로 갚아 줘야 직성이 풀린다.
만약 자신이 그 장소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다른 악마들이 알기라도 하면, 평생 패배자, 72 악마의 수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무기는 어떻게 돼 가고 있지?”
“앞으로 5일 정도면 충분히 사용 가능하실 겁니다.”
자신의 육체적인 강함을 맹신하는 할파스는 무기류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무기에 의존하는 악마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그였다.
‘망할. 내가 인간들이 만든 장비를 사용하게 되다니.’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놈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김진원. 그때의 굴욕을 꼭 갚아 주겠다.”
* * *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
많아 봐야 1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던 이 건물은 최은식이 구매해 내부의 간단한 공사까지 마친 상태.
[엘리트 길드]
그리고 길드가 창설되는 당일.
소규모 길드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몰리게 되었다.
“와, 이거 간판 누가 만들었냐? 간판 때문에 들어오려는 애들도 나가겠네.”
“우와, 오빠, 이거 무슨 중학생이 디자인했어요?”
“……죄송합니다, 진원 씨.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길드 사무실을 구경하러 온 신혜진과 손하윤, 그리고 이시현은 간판 디자인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최은식이 유명 디자이너에게 맡겼다는 간판은 주위로 퍼져 나가는 강렬한 불꽃을 연상하게 했다.
말하자면, 되게 유치했다.
“은식아.”
“네, 형! 그래도 자세히 보면 나름 괜찮지 않나요?”
“뒈지고 싶냐?”
“…….”
이놈은 유투브부터, 어떻게 된 게 자꾸 불꽃에 집착을 하는 건지.
“크이이!”
자신의 발치에 있던 콩콩이는 고개를 들어 간판을 바라보더니 마음에 든다는 듯 폴짝 뛰었다.
“어? 야, 너 그거 뭐야? 잠깐만. 골드 캥거루?”
“와, 얘 되게 귀엽다!”
“어? 형, 그거 소환수예요?”
그녀의 말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콩콩이에게로 향했다.
“크이이이!”
그러자 녀석은 뭘 쳐다보냐는 듯이 성을 냈다.
“저, 저거 전설종 몬스터예요!”
“전설종?”
“평생 한 번 보기 힘들다는 몬스터요?”
콩콩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플레이어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남성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골드 캥거루는, 일반적인 던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전설종입니다. 무슨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후욱. 후욱.
남성은 들뜬 기색으로 말을 뱉으며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크이이!”
퍼억!
“크억!”
안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이 버거웠는지, 낯선 남성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화가 난 콩콩이는 용수철처럼 위로 튀어 남성의 배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괜찮으세요?”
“아하하,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뒤로 넘어진 남성은 오히려 영광이라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엘리트 길드의 건물 내부.
“음, 그래도 안은 괜찮네. 근데 너무 큰 거 아냐?”
한동안 작은 소란이 있은 뒤 건물 안을 둘러보던 진원은 상당히 넓은 공간에 의아해하며 최은식에게 물었다.
“네? 형, 그거야 당연히 길드원을 더 모아야 하니까 그러죠.”
“왜? 그냥 3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자신이 길드장이 된다고 해도 규모가 커질수록 귀찮은 일도 늘어날 것 같아, 최소 인원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었다.
“형, 협회에서 길드 시험 합격하셨잖아요. 거기에도 나올 텐데요?”
진원의 말에 최은식은 그것도 몰랐냐는 듯이 갸우뚱거렸다.
“……그래서 몇 명까지 늘려야 하는데?”
“최소 5명요. 적어도 2명은 더 뽑아야 하네요.”
길드의 인원을 더 늘려야 된다는 말에 창가에 있던 손하윤이 재빠르게 달려왔다.
“오빠, 저 뽑아 주세요! 저 진짜 잘할 수 있어요!”
그런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던 진원은 가볍게 시선을 회피했다.
“그냥 사무 볼 사람이나 더 뽑을까.”
“저 이래 보여도 A급 플레이어예요! 분명히 도움이 된다니까요?”
그녀가 진원에게 길드원으로 뽑아 달라고 조르던 사이.
“허허, 안녕하십니까, 김진원 씨. 새로 창설된 엘리트 길드를 둘러보러 왔습니다.”
플레이어의 협회의 협회장, 손태욱이 양손에 선물을 한가득 사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이, 나 여기 길드 들어가도 되지? 응?”
손하윤은 시원스럽게 웃으며 들어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애원조로 말했다.
“뭐냐? 누가 뽑아 준대?”
“아, 오빠, 제발요!”
“그럼 생각 좀 해 볼게. 여기 앉으시죠.”
진원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손태욱을 소파에 앉혔다.
그러자 눈치 빠른 이시현이 커피와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해 왔다.
후루룩.
싸구려 커피 믹스를 마시던 협회장은…….
“키이이이.”
“커헙!”
진원의 무릎에 올라탄 골드 캥거루를 보고, 순간 마시던 커피를 뱉을 뻔했다.
“이, 이런. 죄송합니다. 허어, 전설종을 길들이신 겁니까?”
“괜찮아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가 벙찐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본래의 목적을 떠올린 손태욱은, 들고 온 서류 가방을 탁자에 올렸다.
“사실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진원 씨의 도움이 필요해서입니다.”
“제 도움이요?”
“그렇습니다. 이 내용은, 기밀이기에. 진원 씨에게만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일단 들어는 보죠.”
진원의 손짓에, 건물을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은 일제히 밖으로 나갔다.
“아, 잠깐만!”
마지막으로 문밖을 나서던 신혜진은 뭔가 생각났는지 진원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귀 좀 대 봐.”
“뭔데 그래?”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자신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벤트에서 얻은 기괴한 시계, 아무리 찾아도 정보가 없더라. 넌 알아낸 거 있어?’
‘아니, 없어.’
‘그렇단 말이지.’
얼마 전, 플레이어 이벤트에서 그가 얻었다는 아이템.
도대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궁금해 온갖 인맥을 동원해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일단 알았어. 고맙다.’
그녀가 나가고, 어느새 둘만 남은 사무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던 손태욱은.
달칵.
비밀번호로 잠긴 서류 가방을 열고, 안에 있는 A4 용지로 정리된 자료를 꺼냈다.
“이것을 한번 보시죠.”
“이건…….”
그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은 진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난번에 협회를 습격한 악마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는…… 현재 대천사 길드에 숨어 있습니다.”
“네?”
협회장에 말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할파스의 근처에 남성이 1명 서 있었다.
“이 자료들은, 김정주라는 기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송해 왔습니다.”
말을 이어 나가던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역시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
대한민국 일보의 기자, 김정주.
평소에도 정의감이 투철하던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가능했던 일을 해냈다.
어떻게든 대천사 길드의 신도를 자처하고 들어가, 어두운 면모를 파헤쳐 낸 것이다.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는 없다.’
이것으로 그동안 문제시되어 왔던 대천사 길드를 끝장낼 명분이 생겼다.
하지만.
‘경찰들도 그렇고, 군인들도 움직이지 않겠다니. 망할 놈들.’
국가에서는 좀 더 기간을 두고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답변해 왔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든 플레이어들을 모아야 한다.’
더 큰 일로 번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 이번 일은 S급 플레이어인 김진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번 일은 당신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설명을 마친 손태욱은 초조한 기색으로 진원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