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악마 군락-6
“보, 보티스 님, 기회를 주십시오!”
“저희는 보고를 하러 온 것입니다! 절대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아무리 보티스 님이라고 해도 강력한 성수에는…….”
진원에게서 도망친 상급 악마들은 서로 변명을 하기에 급급했다.
그중 몇은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떨었다.
“그만.”
악마들의 말을 끊은 보티스는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고.
그와 동시에 놈들의 발밑에서 검은 덩굴들이 튀어나와 몸을 옭아맸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끄아아아!”
놈들은 저마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다가, 피를 내뿜으며 몸이 잘려 나갔다.
“겨우 인간 하나를 막지 못하다니, 쓸모없는 것들.”
‘에레민에게 들은 그대로네.’
보티스의 행동을 보던 진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위로 올라갈수록 숫자가 적어지는 악마들. 악마 군락의 크기에 비하면, 놈들의 개체 수는 많은 편이 아니다.
‘상급 악마는 저놈에게 귀중한 전력일 텐데, 그런데 그걸 전부 죽여 버리다니.’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야, 너랑 그 옆에 놈으로 되겠냐? 내가 인간치고는 좀 강한 편인데.”
진원은 보티스가 앉아 있는 왕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군단장하고 보티스, 두 놈이 끝인 건가.’
상당히 대비를 갖추고 레벨을 56까지 올렸지만, 보티스의 이름은 빨간색이었다.
‘군단장이야 별거 없겠네. 노란색이면.’
놈은 전신에 두꺼운 흑색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양손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있는 모닝스타를 들고 있었다.
“나약한 인간이 최상층에 도달하다니, 확실히 놀랍군.”
철그럭.
보티스의 옆에 서 있던 군단장이 쇳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앞쪽으로 움직였다.
놈의 투구에서 붉은 안광이 새어 나왔다.
[군단장]
설명 : 상급 악마들을 통솔하는 악마. 자신은 보티스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공략 포인트 : 놈이 무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를 때는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
- 레벨 : 52
- 신뢰도 : 60퍼센트
[보티스]
설명 : 악마 군락을 지배하는 악마. 72 악마 중 17위의 서열을 가지고 있다.
- 공략 포인트 : 놈에게 가까이만 접근하면 이길 수 있다. 놈의 공격은 상당한 출혈을 일으키기에, 되도록 깔끔하게 피하는 것이 좋다.
- 레벨 : 58
- 신뢰도 : 60퍼센트
그사이 몬스터 백과사전으로 놈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신뢰도가 60퍼센트였기에, 참고하는 용도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시끄럽고, 시간 없으니까 덤벼라.”
“건방진 인간 놈. 머리통째로 으깨 주마.”
군단장은 여전히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진원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얘들아.”
[맡겨 줘.]
“맡겨 주십시오.”
진원의 신호에 모습을 드러낸 메시아와 붉은 늑대.
그녀는 군단장의 뒤쪽에서 나타나 놈의 심장 부근을 노렸다.
“갑자기 뭐냐! 큭!”
군단장은 갑작스러운 메시아의 공격에도 민첩하게 몸을 틀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놈은 옆구리가 꿰뚫려 피를 흘리면서도, 진원을 향해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쉬익- 기기긱!
“크으…….”
그러나 놈의 공격은 붉은 늑대의 검면에 막혔다.
모닝스타와 흑천검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듯 격렬하게 떨렸다.
“군단장이 겨우 이거밖에 안 되냐?”
“얕보는 거냐!”
군단장은 태평하게 서 있는 진원을 보고 이를 갈았다.
놈은 애초에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일부러 와 보라는 듯이 손을 까닥였다.
“스읍!”
잠시 군단장이 한눈을 판 사이, 붉은 늑대가 검에 무게를 실어 놈을 뒤로 힘껏 밀어냈다.
“크윽!”
그리고 메시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등으로 파고들었다.
부웅! 붕!
군단장은 모닝스타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앞뒤를 신경 쓰는 데 정신이 없었다.
‘망할. 도대체 이놈들은 뭐냐!’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공격하는 정체 모를 인물들.
그리고 놈들은 상당히 강했다.
“그만 떨어져라!”
부웅!
군단장이 집요하게 달라붙는 메시아를 떼어냈지만, 그녀가 날카롭게 세운 손톱에 갑옷들이 상당히 뜯겨 나갔다.
“마무리.”
“분부대로.”
[붉은 늑대가 스킬 :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자신의 말에 붉은 늑대는 검을 들어 지면을 향해 내려쳤다.
흑천검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검은 검기들.
메시아에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놈은 그대로 스킬에 직격당했고…….
“크아아아!”
갑옷에서 시꺼먼 피를 세차게 뿜으며 쓰러졌다.
“죄송합니다, 보티스 님…….”
띠링.
[악마 군락의 군단장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군단장이 뭐 이렇게 약해?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죽네?”
바닥에 쓰러진 놈을 잠깐 응시한 진원은 보티스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인간……. 넌 정체가 뭐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군단장만큼은 신뢰하고 있던 보티스였다.
그럴 것이, 지금껏 자신이 내린 명령을 깔끔하게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나? 조금 강한 인간.”
진원은 가볍게 대답하며 자세를 낮췄다.
‘발밑에서 덩굴들이 올라왔지. 주의해야겠어.’
“밑에서 악마들이 죽어 나가던 것도 네놈 때문이었나.”
“그래. 그런데 너는 그걸 알면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냐?”
그러자 보티스는 자리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약한 놈은. 나에게 필요 없다.”
쿵!
보티스가 발을 들어 지면을 밟자, 진원과 붉은 늑대, 메시아의 발밑에서 검은 덩굴이 솟구쳤다.
쉬이익-
미리 놈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진원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티스의 손짓에 덩굴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물거리며 자신에게 따라붙었다.
스슥- 스스슥-
진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빠르게 자라나는 덩굴의 속도에 순간 가속까지 사용하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확실히 이놈은 다르긴 하네.’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이 덩굴을 잘라 내고 태웠지만, 그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새로운 덩굴들이 튀어나와 자신을 노렸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
확실히 이것이 보티스의 능력이라면, 놈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울 듯했다.
‘그러면 멀리서 죽이면 되지.’
바로 전에, 군단장을 처치하고 얻은 스킬 포인트 1. 이것을 사용하면 마구 : 칼날 폭풍의 레벨이 20이 된다.
‘분명히 부가 스킬이 생길 거다.’
덩굴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스킬 포인트를 사용하니.
마구 : 칼날 폭풍 Lv. 20 (Max)
최대 레벨을 달성했다는 표시가 나왔다.
‘효과를 확인할 틈은 없다! 큭!’
띠링.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HP가 일정 시간마다 감소합니다.]
상태 창을 잠시 연 사이, 덩굴들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메시아!”
[알았어.]
[메시아가 밤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HP를 500 소모합니다.]
그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온 메시아가 스킬을 사용해 덩굴로부터 보호했다.
쉬익! 쉭!
그러나 보티스의 공격이 만만치 않은지, 진원의 몸을 뒤덮은 검은 장막이 조금씩 뜯겨 나갔다.
HP : 3,400/4,500
거기다 덩굴에 살짝 닿기만 했는데, 무서운 속도로 HP가 감소했다.
“내가 신호하면 스킬을 풀어 줘. 그리고 임프!”
“키긱!”
녀석을 불러 주머니에 넣어 둔 최상급 성수를 쥐여 주었다.
“장막이 걷히면, 보티스한테 힘껏 던져. 꼭 맞혀야 한다!”
“키기긱!”
그 뒤, 진원은 와인드업을 하고 칼날 폭풍을 사용했다.
“지금!”
자신의 신호와 동시에 장막이 해제되었고.
“키긱!”
임프가 던진 성수는 포물선을 그리며 보티스에게 날아갔다.
“크아악!”
붉은 늑대와 꼬마 마도사가 덩굴들의 시선을 끌어 주었기 때문에 성수는 놈의 머리에 그대로 직격했다.
띠링.
[최상급 성수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악마들의 피해량이 200초 동안 70퍼센트 증가합니다.]
“흡!”
쉬익- 드드드드
보티스를 향해 날아가던 마구에서 송곳이 아닌,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검은 단검들이 빗발쳤다.
그것도 보통의 단검이 아니다. 전체 길이가 40센티는 되는 레플리카 단검이었다.
“아니?”
갑작스러운 진원의 공격에 놈은 재빠르게 덩굴들을 모아 벽을 만들었지만, 벽은 3초도 버티지 못하고 금방 허물어졌다.
“크악!”
단검들은 그대로 놈의 몸에 꽂히거나, 꿰뚫고 지나갔다.
“엄청나네.”
바로 희석된 엘릭서를 구입해 마시던 진원은 상당한 스킬의 위력에 감탄했다.
붉은 늑대의 검으로도 제대로 자르기 힘들었던 덩굴들이 자신이 사용한 칼날 폭풍에 종잇장 찢어지듯 했으니.
‘그건 그렇고, 확실히 저놈 공격은 위험하네.’
보티스에게 살짝 스친 공격.
단지 그 정도 수준이었는데, HP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거기다가 일반 포션은 듣지도 않는다니.’
거기다 보통의 HP 포션으로는 회복조차 불가능했으니.
‘그래도 생각보다 방어력은 낮네. 가만히 놔두면 죽겠어.’
“이건 마, 말도 안 된다……. 이것이 인간의 힘일 리가 없다! 쿨럭!”
보티스는 검붉은 피를 토해 내며, 자리에 엎어졌다.
“안 된다……. 저 인간이 저것을 손에 넣으면 악마들은 끝장이다!”
놈은 이를 악물면서도, 한쪽 구석을 향해 팔을 뻗었다.
스스스-
그러자 검은 덩굴들이 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덩굴의 속도.
“그렇게 친절하게 입 밖으로 내주면……·.”
‘내가 안 막을 리가 없잖아. 서열 17위 악마도 멍청하네.’
“마무리해.”
“맡겨 주십시오.”
자신의 말에 앞으로 튀어 나간 붉은 늑대는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놈의 머리를 힘껏 내려찍었다.
푸욱!
“끄으…….”
몸을 부르르 떨던 보티스는 잠시 뒤 축 늘어졌다.
띠링.
[보티스를 처치하였습니다!]
[칭호 : 악마 사냥꾼을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 군락의 지배자를 획득하였습니다.]
[특별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악마 군락에 남아 있는 모든 악마들이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아이템 : 지배자의 부름을 발견하였습니다.]
[98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과연 서열 17위의 악마답게,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눈앞에 나타났다.
“후우, 그래도 마지막엔 위험했어.”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희석된 엘릭서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HP는 순식간에 0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엔 좀 더 주의해야겠어.”
놈에게 다가가 아이템을 챙기고 있자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뭐지?”
띠링.
[72 악마들에게 보티스의 죽음을 알리시겠습니까?]
(Y/N)
#보티스의 죽음을 알리게 되면, 명예 포인트 30을 획득합니다.
“이건…….”
악마들에게 내가 이놈을 죽였다라고 통보하는, 아니, 도발하는 느낌의 메시지.
“명예 포인트 30이라.”
당연히 거절하기엔 아까운 숫자다.
유투브로 인해 얻은 폭발적인 유명세와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자잘하게 모은 포인트들은 다 합쳐 봐야 40포인트도 되지 않는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이놈들이 나 잡으러 한국에 몰려서 쳐들어오고 그런 거 아냐?”
그러면 곤란해진다. 서열 17위의 보티스도 까다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놈들이 합세해서 몰려들기라도 하면…….
“피해가 크겠지.”
[괜찮아.]
진원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메시아가 안심하라는 듯 대답했다.
“뭐? 괜찮다고?”
[응. 확실해. 72 악마들은 서로 서열 올리기에 열을 올려서 오히려 더 좋아할걸?]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났어.]
자신을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메시아를 보고 자리에서 고민하던 진원은 ‘Y’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