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악마 군락-5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서, 설마?’
에레민은 여유로운 진원의 태도에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쳤다.
‘호, 혹시…… 악마가 아닐까?’
보티스의 자리를 노리고 온 악마. 지금까지 기세등등한 악마들의 침입은 꽤나 있었다.
그러나 그중 보티스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매우 드물었다.
‘아니, 아무리 봐도 인간이야.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악마는 들어 본 적도 없어.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진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던 에레민은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있는 남성은 자신의 딸인 에레나를 구해 준 은인이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상층부로 보낸단 말인가.
‘그래도 나와 내 딸이 먼저야. 가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어.’
혹시라도 눈앞의 남자가 운 좋게 보티스를 처치하게 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다른 악마들을 벌레 취급하는 폭군과 같은 악마보다는 차라리 눈앞의 인간이 군락을 차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제, 제가 상층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뭐? 비밀 통로?”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는 진원을 자신이 몰래 마련해 둔 통로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네. 상층부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통로를 만들고 있었어요.”
듣자 하니, 그녀는 최하층에 있는 딸을 만날 목적으로 다른 악마들의 눈을 피해 조금씩 길을 뚫고 있었다고 했다.
“최하층에 있는 악마들은 나중에 방패로라도 쓸수 있으니까 최소한의 식량만 보내 주면서 살려 두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보티스의 잔혹함이 소름 끼치는지 어깨를 살짝 떨었다.
“그쪽으로 가면 악마들이 없는 거야?”
“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면 곤란한데. 놈들을 최대한 죽여야 보티스를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어서.”
“네? 상층부터는 무장한 상급 악마들과 군단장까지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녀는 진원의 대답에 순간 언성을 높였지만, 그가 꺼내든 아이템을 보고 졌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럼 이쪽으로 올라가세요. 어?”
에레민은 운송기 앞을 막고 있는 케르베로스에게 명령을 하려 했다.
그런데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한 여자아이를 보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스윽- 슥-
“헥, 헥, 헥!”
[얘, 말 잘 들어. 착하네.]
어느새 케르베로스에게 가까이 다가간 메시아.
녀석들은 기쁜 기색으로 그녀에게 커다란 머리들을 들이밀었고,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녀석들의 머리 세 개를 차분하게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도, 도대체 얘는 누구죠? 제가 아무리 엎드려 있으라고 했어도…… 가까이 가면 물 텐데요.”
상급 악마조차도 길들이지 못한 몬스터가 케르베로스였다.
유일하게 자신만이 녀석을 길들일 수 있어서, 보티스 님이 상층부에 거주하도록 허락했는데.
“뭐, 그냥 내 동료라고 생각해라. 메시아, 이제 가자.”
[알았어.]
태연하게 말하는 진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그와 함께 운송기를 타고 상층부로 올라갔다.
“……내 딸은 얼마나 컸을까.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는데.”
에레민은 메시아의 뒷모습을 보며 딸이 생각났는지, 어느새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주군,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래. 놈들은 얼마나 있어?”
“상급 악마가 삼십에 강해 보이는 악마가 하나 있습니다.”
진원은 악마 군락의 상층으로 이동하고, 주위에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 후 붉은 늑대를 정찰로 보냈었다.
“강해 보이는 악마라……. 아마도 놈이 군단장이겠지.”
놈들은 하층과 중층의 악마들과는 다르게,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단 중급 성수를 사용해 볼까.’
“주군, 놈들이 다가옵니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기가 무섭게, 기척을 알아차린 악마들이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상급 악마]
설명 : 악마 군락의 상층에서 거주하는 악마. 다른 악마들과는 다르게 무기를 능숙하게 다룬다.
- 공략 포인트 : 놈들은 방어력이 상당히 높다. 웬만한 공격은 무시하면서 사납게 공격하기에,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수단이 있으면 수월하다.
- 레벨 : 50
- 신뢰도 : 90퍼센트
“흠. 그렇단 말이지.”
진원은 몬스터 백과사전으로 빠르게 정보를 확인하고, 성수 하나를 붉은 늑대에게 던져 주었다.
“붉은 늑대, 이것을 검에다가 뿌리고 싸워!”
“분부대로.”
그리고 곧이어 다른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고 대비했다.
“인간인가? 도대체 인간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냐! 다들 진형을 유지해라!”
상급 악마 하나가 선두에서 다른 악마들을 지휘했다.
‘군단장은 어디에 있지?’
날아오는 놈들을 살펴보았지만, 전부 상급 악마들뿐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좋은 기회다.
“공격해라! 가장 뒤쪽에 서 있는 인간을 노려라!”
“절대 최상층으로 보내지 마라!”
선두에 있던 악마들은 저마다 칼이나 창을 들고 진원을 향해 하강했다.
“나머지는 남아서 후속타를 준비해라!”
공중에 남아 있는 놈들은 스킬을 준비하는 듯했다.
“흡!”
진원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악마들에게 성수를 힘껏 던졌다.
촤악!
성수의 병이 깨지며 쏟아진 맑은 액체들이 놈들의 몸을 적셨다.
띠링.
[중급 성수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악마들의 피해량이 200초 동안 50퍼센트 증가합니다.]
“크아아악!”
“이딴 더러운 것을 던지다니!”
그러자 창을 든 악마들은 성이 난 듯 진원을 향해 들고 있던 무기를 힘껏 던졌다.
쇄액! 쉬익!
공기를 가르며 날카롭게 날아오던 창은, 공중으로 뛰어오른 붉은 늑대에게 막히게 되었다.
티잉! 팅!
“크읍!”
붉은 늑대는 날아오는 창을 연속해서 쳐냈지만, 놈들의 힘이 꽤나 강했는지 자세가 흐트러지며 땅에 착지했다.
“성수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확인해 볼까?”
진원은 토르의 망치를 들고 순간 가속을 사용했다.
“크하하하! 직접 죽으러 와 주다니!”
“멍청한 놈!”
악마들은 지면을 박차고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진원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무기를 위로 치켜들었다.
티잉!
“크악! 뭐냐!”
순식간에 놈들의 가슴팍으로 접근한 진원은 가뿐하게 한 놈의 무기를 쳐 내고,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힘껏 내려쳤다.
파악!
“크어어억!”
[상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그는 단 한 방에 머리가 터져 나가는 악마를 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사 놓길 잘했네.’
“뭐, 뭐냐!”
상급 악마 하나가 단 한 방의 공격에 몸이 허물어지자, 다른 악마들이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여기서 거리를 벌린다고? 더 들어오는 게 아니고?’
이전에 상대했던 악마들은 주위의 동료가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확실히 놈들은 이전에 상대했던 악마들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냐! 얘들아, 놓치지 마라!”
성수의 효과가 사라지게 전에 최대한 놈들을 처치하기로 하고, 추가적으로 소환수를 불러냈다.
“맡겨 주십시오.”
“예!”
자신의 말에 붉은 늑대가 도망치는 악마들을 향해 검기를 날렸고, 꼬마 마도사는 파이어볼을 연사했다.
서걱! 화악!
“크아아아!”
“보티스 님에게 보고해라! 그쪽에 군단장님도 계실 거다!”
“생각보다 강력한 성수다! 최대한 도망쳐라!”
놈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오로지 도망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 * *
[상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상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흠, 상급 악마들은 그래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나 보네.”
성수에 맞은 악마들을 처리하려니, 공중에서 스킬을 준비하던 악마들 또한 덩달아 후퇴했다.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가?”
거기다 피할 수 없는 스킬들, 특히 마구 : 칼날 폭풍에 대해서는 악마들이 하나씩 몸을 던져 피해를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음, 그래도 아깝네.”
생각보다 상급 악마들을 많이 놓쳤다.
현재 자신의 레벨은 56.
도망치는 놈들을 조금이라도 더 처치했으면 1레벨 정도는 더 오르지 않았을까.
“후, 레벨 1만 더 올랐어도 칼날 폭풍을 20레벨로 만들 수 있었는데.”
진원은 MP 포션을 마시며 아쉬운 기색으로 상태 창을 열었다.
최상층으로 향하기 전, 남은 분배 포인트를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플레이어>
이름 : 김진원
레벨 : 56
직업 : 계약 소환사
등급 : 유니크
업적 : 끈질긴 놈
칭호 : 피의 계약자
HP : 4,500
MP : 3,200
[스텟]
근력 : 70 민첩 : 60 체력 : 50 마력 : 120 지배력 : 120
미분배 포인트 : 30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상점 기능이 개방됩니다.
#모든 데미지 10퍼센트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뱀파이어 군주 메시아와 피의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스킬]
마구 : 칼날 폭풍 Lv.10
마구 Lv.10 (Max)
불굴 Lv.1
순간 가속 Lv.10 (Max)
미분배 포인트 : 9
[직업 스킬]
소환의 방 Lv.2
계약 소환 : 꼬마 임프 Lv.10 (Max)
인핸스 본드 Lv.10 (Max)
계약 소환 : 꼬마 마도사 Lv.10 (Max)
[상점]
Lv.6
“마력과 지배력은 당분간 괜찮겠지.”
마력과 지배력은 아이템의 효과도 따로 받고 있었기에, 근력과 민첩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스텟]
근력 : 80 민첩 : 80 체력 : 50 마력 : 120 지배력 : 120
미분배 포인트 : 0
“스텟은 이 정도면 되겠지.”
체력 같은 경우는 거의 5천대에 육박하고 있어, 굳이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니크 직업이 사기긴 사기야. 탱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최은식의 HP도 나보다 낮았으니까.”
거기다 붉은 늑대와 메시아, 소환수들도 있다. 그리고 불굴까지. 웬만해서 체력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킬 포인트야 무조건 이거지.”
마구 : 칼날 폭풍 Lv.19
안 그래도 강력한 성능을 보여 주는 스킬이었는데, 19레벨 달성으로 36퍼센트의 추가 데미지가 붙게 되었다.
“남은 1레벨이야, 이곳의 관리자를 처리하면 오를 수도 있는 거니까.”
이번에는 절대 봐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최상층으로 가는 운송기로 향했다.
“뭐야, 여기는 관리자가 없는 건가?”
상층의 운송기 주변에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열쇠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흠…….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긴 하네.”
최상층에 도착하니 진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철문. 그 주위로 횃불 두 개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끼이이이-
문으로 다가가자, 철문은 마치 들어오라는 듯 천천히 열렸다.
‘여기가 보티스가 있는 곳인가.’
문이 열리자마자 진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화려하게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들과 몬스터들의 뼈로 만든듯한 커다란 왕좌.
‘저놈이 보티스네. 그건 그렇고 저놈들, 이곳으로 도망쳤었나.’
[보티스]
왕좌에 앉아 있는 놈은 한 손을 턱에 괴고 상급 악마들의 변명을 무표정으로 듣는 중이었으며, 여태까지 본 악마들과는 다르게 괴상한 검은 덩굴들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나를 보고서도 무시하는 건가?’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최상급 성수를 꺼내 천천히 보티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