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악마 군락-3
식량난에 굶주리고 옷과 무기조차 없는 악마들이었지만, 그 문제점만 해결해 준다면 어느 정도 녀석들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악마들의 열띤 분위기도 잠시.
“이런 쓰레기들이!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멀리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 관리자님이다!”
“빨리 안으로 숨어!”
쿵! 쿵!
[최하층 관리자]
묵직한 발걸음을 울리며 추방된 악마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악마.
놈은 찢어진 천으로 최소한의 부위만 가렸고, 한 손에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다.
덩치만 크고 살만 찌운 오크 같은 느낌이다.
“네놈들, 여기서 소란을 피우다니 도대체 무슨 배짱이냐? 음……?”
다른 악마들을 살피던 관리자는, 인간을 하나 발견하고 침을 질질 흘렸다.
“크흐흐, 인간이 섞여 있었나. 인간의 고기는 정말 맛있어. 육즙이 장난 아니거든.”
그리고 입맛을 다시며 진원을 쳐다봤다.
“기분 더럽네. 에레나, 저놈을 죽이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거냐?”
“네, 네! 아마 관리자의 심장 부분에 열쇠가 심어져 있을 거예요!”
그들의 대화를 듣던 악마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크흐흐, 인간, 내 앞에서 겁먹지 않은 것은 칭찬해 주마. 그리고 네놈들! 인간을 들이고도 가만히 살려 두다니. 그러니까 네놈들이 추방된 것이다!”
부웅-
말을 마친 놈은 도끼를 위로 치켜들고 진원에게 달려들었다.
‘이름이 초록색이라……. 굳이 몬스터 백과사전을 사용할 필요도 없겠네.’
애초에 별로 위협적이지도 않았지만.
“크아아아!”
티잉!
힘찬 고함을 지르며 기세 좋게 내려친 도끼는, 진원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토르의 망치에 쉽게 막혔다.
덜덜덜.
망치를 잡은 놈의 손이 떨렸다.
‘이, 인간이 이렇게 강하다고?’
“흡!”
진원이 망치에 힘을 실어 밀어내자, 중형 악마가 들고 있던 도끼는 힘없이 뒤로 날아갔다.
“겨우 인간한테! 군락의 최하층을 관리하는 내가 질 리가 없다!”
“시끄럽다.”
푸학!
“끄으으…….”
육중한 덩치를 믿고 달려들던 놈은 그대로 진원이 한 번 휘두른 공격에 머리가 깨져 나가며 죽게 되었다.
띠링.
[최하층 관리자를 처치하였습니다!]
[50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최하층 관리자의 열쇠를 발견하였습니다!]
“과, 관리자가 단 한 방에 쓰러졌어.”
“저분은…… 정말 인간이 맞는 건가?”
천막 안에 숨어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악마들은, 최하층의 관리자가 힘도 못 써 보고 죽게 되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보니 이제 얘네들은 내 말에 복종한다고 했지.’
관리자에게서 열쇠를 가지고 바로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현재 그들에게는 전투 능력이 없는 상태.
‘어쨌든 저 상태로는 쓸모가 없으니까.’
진원은 상점을 열고, 값싼 활이나 창, 검 같은 무기류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너희들 평생 이대로 살 거야?”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무기들을 앞에 두고 추방된 악마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저희들은 뿔이나 날개가 없으면 신체 능력이 약화됩니다.”
그 말에 악마 중 하나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기회를 주는 거잖아. 힘이 없으면, 도구를 써라.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해서 강해졌으니까.”
“기, 김진원 님…….”
“나는 지금부터 보티스를 죽이러 갈 거다. 내 말을 따라서 강해지든가, 아니면 그대로 억압당하면서 죽든가.”
‘이놈들은 지금 패배 의식에 찌들어 있다.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어.’
웅성웅성.
그의 말에 악마 하나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와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저는 김진원 님을 따, 따르겠습니다!”
“맞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도 악마다!”
와아아아아!
그 작은 변화를 시작으로, 악마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띠링.
[최하층 악마들이 당신을 군주로 인정합니다.]
[악마 군락 최하층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명예 포인트를 5 획득하였습니다.]
‘역시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어.’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 작은 만족감을 느낀 진원이 등을 돌리자 악마들이 말을 걸어왔다.
“김진원 님, 보티스를 처치하러 가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희들도…….”
“아니, 너희들은 여기서 단련해. 난 병사가 필요하지, 소모품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
“기, 김진원 니임!”
“어디서 이런 분이 나타나셨는지!”
그러자 악마들은 자신의 말에 감동받았는지 연신 눈물을 흘려 댔다.
‘얘네들 진짜 악마 맞나?’
“그럼 제, 제가 하층으로 가는 입구로 안내해 드릴게요! 길이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인간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신기한지 구경하고 있던 에레나가 황급히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부탁할게.”
“맡겨만 주세요!”
진원의 등 뒤로, 추방된 악마들은 어느새 저마다 무기를 들고 어설프게 휘두르고 있었다.
* * *
“여기예요. 하층으로 가시면 또 관리자를 처치하셔야 해요.”
‘혼자 왔으면 못 찾았겠네.’
에레나가 선두에 서며 복잡한 갈림길을 요리조리 걸어가며 안내했다.
진원의 높은 스텟 때문인지 지옥 사냥개들이 습격해 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 이제 갈게.”
“저희…… 버리지 않으실 거죠?”
하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운송기를 탄 진원에게, 에레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왔다.
“너희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진원은 그녀에게 장난스럽게 대답해 주고, 하층으로 올라갔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그 뒤,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눈물을 훔쳤다.
‘최하층이나, 하층이나 별 차이는 없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층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최하층과 똑같았다.
서늘하고 축축한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필드.
“인간이다!”
“죽여라!”
다른 점이라면 몬스터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보자마자 달려들었을 뿐.
서걱!
“크에엑!”
“커억!”
진원에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은 실체화한 붉은 늑대의 참격에 목이 날아갔다.
띠링.
[하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하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흠, 하층이 이 정도 수준이면, 상층까지는 그냥 무난하겠는데.’
놈들은 그저 짐승처럼 맨몸으로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지능도 없는지, 다른 악마들이 썰려 나가거나 머리가 터져 나가도 개의치 않고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왔다.
‘확실히 놈들 숫자가 최하층과는 비교도 안 되네.’
진원은 계속해서 몰려드는 하급 악마들을 향해 와인드업하고 마구 : 칼날 폭풍을 사용했다.
“흡!”
드드드드.
띠링.
[하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하급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크아아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송곳에 상당수의 악마들이 죽어 나갔지만, 놈들은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임프.”
“키긱!”
[꼬마 임프가 지옥불 투척을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자신의 말에 소환의 방에서 나온 꼬마 임프는 손에서 지옥불을 만들어 놈들에게 힘껏 던졌다.
화르르르!
“크에에에!”
“크아아악!”
임프의 불길에 휩싸인 하급 악마들은 순식간에 타올라 재가 되었다.
“이걸로 끝인가?”
엄청나게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악마 군락의 하층은, 겨우 스킬 두 개로 인해 깔끔하게 청소되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마리는 가뿐하게 잡은 것 같은데, 2레벨 업이라.”
그 말은 최하층도 그렇고, 하층 또한 악마들의 레벨이 낮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면 중층까지도 가뿐하겠는데?”
놈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성수를 있는 대로 구매해 놓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약했다.
‘아니면 내가 강해진 건가? 아니, 여긴 하층이니까.’
긴장감은 어느 정도 유지하기로 했다.
“사, 살려만 주세요!”
“응? 뭐야?”
쿵! 쿵!
몬스터들의 시체를 살피고 있자, 육중한 발소리를 울리며 악마 하나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최하층에 있던 관리자와 똑같은 생김새. 단지, 놈은 겁을 먹은 듯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저, 저는 이곳 하층을 관리하는 악마입니다. 살려만 주시면,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몸을 떨어? 몬스터가?’
놈은 하층의 관리를 맡은 악마였다.
‘말도 안 되게 강하잖아. 아무리 보티스 님의 명령이라도 그렇지, 난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고.’
아마도 수많은 악마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 듯했다.
“음, 그럼 이곳에 대한 정보를 불어. 유익한 정보들이 많을수록 네가 살 수 있는 확률은 올라가.”
“죄, 죄송합니다! 저는 하층에 대한 것들 말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급기야 놈은 자신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붉은 늑대.”
“분부대로.”
“힉! 자, 잠깐만요! 생각났습니다! 중층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관리자의 목에 칼을 겨누자, 놈은 재빠르게 말을 바꿨다.
“거짓말했네? 이거 괘씸해서 죽여야겠는데?”
“아,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 중에 혹시라도 잘못된 사실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럼 말해 봐.”
“알겠습니다!”
진원의 말에 놈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정좌하고, 중층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중층부터는 중급 악마가 주로 모여 있고, 상급 악마들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중급 악마부터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정보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케르베로스입니다.”
“케르베로스?”
“예. 중층의 관리자죠. 상층으로 가시려면 놈을 꼭 처치하셔야 합니다. 특히 놈의 왼쪽 주둥이에서는…….”
설명을 마친 관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진원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 혹시 이곳에 온 목적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겉으로만 봐도 진원이 단순한 인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군락의 위쪽으로 계속 올라간다는 것은, 이곳을 통치하는 왕을 죽이려고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시 다른 악마가 보티스 님을 노리고 온 건가? 도대체 누구지?’
몸에 저 정도의 마력을 품고 있으면, 72악마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외형이 인간과 똑같다니.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목적? 보스 때려잡고, 좋은 아이템 가지고 나가는 거.”
그의 태평한 대답을 들은 관리자는 몸을 떨었다.
‘혀, 혁명이다. 오늘 혁명이 일어난다!’
악마 군락의 주인 보티스. 그야말로 폭군의 상징인 악마.
‘이미 하층이 공격당한 이상, 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악마들을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처리해 버리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냉혈한 그 자체.
“제가 중층까지 모시겠습니다!”
관리자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몸을 일으키고, 중층으로 가는 운송기로 안내했다.
“여기가 중층인가.”
군락 중층으로 올라오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자신을 맞이했다.
[미안해, 진원. 나 이제 일어났어.]
“괜찮아. 그래도 다행이네.”
마침 타이밍 좋게 메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있을 상층부나 보티스와의 전투.
그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날 듯했었는데, 다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한테 줄 게 있었지.”
진원은 그녀를 보고 뭔가 생각난 듯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