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83화 (83/200)

83. 불꽃 남자 김진원-4

이른 아침.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동생 지원은 거실 베란다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했다.

“오빠, 그런데 오늘 시험이라고 안 했어? 길드 마스터 자격 시험이라고 했었나?”

그러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진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 그거 은식이 말로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수준이라고 쉽다던데? 그래서 적당히 몇 번 봤지.”

실제로도 플레이어들은 던전 클리어 횟수를 채우는 것을 훨씬 버거워했다.

“그리고 절대평가라서 70점만 맞으면 된다더라.”

“그래?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오빠는 좀…….”

“뭐?”

“아니, 힘내라고. 그거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오빠 엄청 놀릴걸.”

지원은 킥킥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 모르니 지금이라도 더 봐 둘까.’

***

대천사 길드의 지하 시설.

“후우, 이거 참 골치 아프네요. 그렇죠?”

빠각.

이연우는 대한민국일보의 기자 김정주에게서 초소형 카메라를 찾아내 부쉈다.

김정주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흉기에 복부를 찔린 듯했다.

“크으으…….”

원을 이루고 모여 있는 수많은 신도는 의식을 잃어 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자, 여러분들, 신도인 척하는 놈들은 분명히 더 있겠지만 우리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이연우가 원의 중앙으로 천천히 이동하자 잠시 후 손명유가 나타나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이걸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당신은 선택받은 몸이니까요.”

악마형 몬스터를 닮은 그를 보고, 신도들 몇 명은 겁먹은 듯 움찔거렸다.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기에.

‘후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더욱 상위 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을 테지만.’

김진원. 그가 이대로 빠르게 성장해 나간다면, 상위 악마를 소환한다고 해도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

‘그래도 저 정도의 그릇이라면…….’

72 악마 중에 중위권 정도는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뭐 하냐, 바로 시작해라.”

“아아, 알겠습니다.”

자리에 일어서 있는 손명유는 그가 뭔가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재촉했다.

악마 술사의 직업을 가진 이연우는 손명유를 대상으로 지정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시꺼먼 안개가 나와 손명유를 뒤덮었다.

띠링.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악마 할파스를 소환합니다.]

잠시 후, 소환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손명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크으……. 뭐냐. 너 이 새끼,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조금 전, 손명유는 이연우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힘을 갖게 해 준다는 달콤한 말에 믿고 그대로 몸을 맡겼는데.

“크아아아아!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는 갑자기 발생한 엄청난 두통에 자리에서 주저앉게 되었다.

“망할 새끼, 처음부터 나를 이용할 작정이었냐! 죽인다! 너라도 죽이겠다!”

손명유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갈며 이연우를 향해 두꺼운 팔을 뻗었다.

“흐음.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요.”

그러나 신도들의 스킬에 의해 그의 팔이 이연우에게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끄아아아아!”

손명유가 고통에 찬 소리를 질러 대는 것도 잠시.

어느 순간 그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췄다.

그리고 그에게서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가 나를 불렀지?”

깊게 잠겨 있는 목소리. 그 음성을 들은 신도들은 공포감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단지, 목소리만 바뀌었는데 말이다.

“제가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습니다, 할파스 님.”

하지만 이연우만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예의를 차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

플레이어 협회 내부에 있는 필기시험장.

‘와, 이거 생각보다 어렵잖아.’

문제를 풀어 나가던 진원은 생각보다 어려운 난이도에 당황했다.

문제는 총 30문제. 제한 시간은 30분. 1문제당 1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10분도 안 남았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8분. 그동안 자신이 푼 문제는 절반 정도.

‘이대로면 무조건 불합격이다. 어쩔 수 없지.’

진원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쓱 훑었다.

그리고 가장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은 남성 1명에게 붉은 늑대를 붙였다.

‘앞에서부터 부르겠습니다, 주군. 5, 3, 2, 4, 1…….’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은 커닝이었다.

물론, 실체화하지 않은 붉은 늑대를 감지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커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안 들키면 장땡이지 뭐. 중요한 시험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시험인데.’

진원은 적당히 자기합리화를 하며 답안지를 채워 나갔다.

“시간 끝났습니다. 머리에 손 올리시고, 뒤에서부터 답안지 걷어 가겠습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그대로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결과 발표까지 1시간이라고 했지.’

필기시험을 보러 온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협회 안에서 대기했다.

합격 판정을 받자마자 협회에서 길드 창설을 승인받기 위함이었다.

“실례합니다, 김진원 님. 길드를 만드신다면 힐러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A급 판정을 받은 탱커인데, 혹시…….”

적당히 구석진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자니, 플레이어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S급만 받습니다.”

성가심을 느껴 한마디 하자, 플레이어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자신에게서 떨어졌다.

“진원 씨, 시험은 어떠셨습니까?”

시험 결과 발표 10분 전, 이시현은 오늘 진원이 필기시험을 치르러 온다기에 시간에 맞춰 협회에 들렀다.

길드가 창설되는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것이었다.

“평범했죠. 그런데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피닉스 길드에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하하핫! 티가 좀 납니까? 그동안 일에만 치여 살았거든요. 진원 씨 덕에 별 탈 없이 퇴사할 수 있었습니다.”

진원의 말에 개운한 듯이 대답하는 이시현.

그는 한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취미인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형, 제가 길드 이름을 생각해 왔습니다!"

잠시 후, 최은식도 협회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아마 이시현과 같은 생각을 가진 듯했다.

[김진원. 71점. 합격]

“……되게 아슬아슬했네.”

“축하해요, 형! 이제 길드 이름만 정하면 되겠네요!”

“합격 축하드립니다, 진원 씨!”

잠시 후, 시험 결과가 대형 모니터에 송출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S급 플레이어다.

거저먹는다는 길드 필기시험에 불합격하게 되면 어찌 되었든 주위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 뻔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야, 그런데 너 뭐 하냐? 이거도 촬영하는 거야?”

“네! 이게 다 형의 명예 포인트를 위해서죠! 거기다가 오늘은 길드 창설을 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고요!”

최은식이 어느새 카메라를 꺼내 들어 자신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시현에게도 똑같은 모델을 건네주었다.

‘실제로 포인트가 오르고 있으니까 참아야겠네.’

최은식이 영상을 공들여서 만드는 만큼, 자신의 채널 ‘불꽃 남자 김진원’의 상승세는 엄청났다.

업로드된 영상은 하나였는데, 구독자는 진작에 30만을 넘겼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길드 이름이 문제…….”

“주군, 위쪽에서 뭔가가 옵니다!”

붉은 늑대의 갑작스러운 경고.

그가 실체화까지 하며 칼을 뽑았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진원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망치를 꺼내 들었다.

“최대한 여기서 멀리 떨어져! 빨리!”

“네? 갑자기 왜 그래요, 형?”

진원은 옆에 서 있던 최은식과 이시현의 등을 힘껏 밀었다.

“어억!”

둘은 건물 끝쪽의 화장실이 있는 위치까지 밀려났다.

콰지지직! 쿠웅!

그러기 무섭게, 건물 중앙의 천정이 사납게 부서지며 거구의 몬스터가 안으로 들어왔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 몸이구나. 이 정도면 내 힘의 7할 정도는 끌어낼 수 있겠어.”

[할파스]

악마 형상을 띤 거구의 몬스터.

온몸이 보랏빛을 띠고 있는 놈의 이마에는 커다란 뿔이 두 개 자라나 있었다.

“도, 도망쳐! 빨리!”

“꺄아아악!”

“던전 브레이크다! 빨리 나가!”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대피하기에 급급했다.

“흐음.”

할파스는 도망치는 사람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진원을 위에서부터 쓱 훑었다.

“확실히 인간치고는 강해 보이는 놈이군.”

그리고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다.

“재밌겠어.”

쉬익- 쿠웅!

두꺼운 주먹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진원은 붉은 늑대와 함께 놈의 공격을 받아 냈다.

“크으…….”

“어억…….”

진원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에 토르의 망치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호오, 방금 건 힘 조절을 하지 않은…….”

할파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소환의 방에서 나온 꼬마 임프와 마도사가 합세해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띠링.

[꼬마 임프가 지옥불 투척을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꼬마 마도사가 버스트를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키기긱!”

“주인님!”

화르르르. 드르르르륵-

“으음, 괜찮군.”

할파스는 몰아치는 소환수들의 공격을 오히려 음미하듯이 눈을 감았다.

‘뭐 하는 놈이지.’

표정을 일그러뜨린 진원은 토르의 망치를 바닥에 내려 두고, 총잡이의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바로 와인드업을 하고, 마구 : 칼날 폭풍을 사용했다.

“흡!”

쉬익. 드드드드.

전방에서 사출되는 수많은 송곳.

“저건 좀 위험하군.”

가만히 서 있던 할파스는 진원의 스킬을 보고 팔을 교차해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붉은 늑대!”

“분부대로!”

띠링.

[붉은 늑대가 스킬: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그사이, 붉은 늑대가 검을 들고 지면을 향해 내려찍었다.

“저것도 좀 위험하군.”

할파스는 교차한 팔을 풀고 발에 힘을 실었다.

쉬익!

그리고 최대한 뒤로 빠졌다. 바닥이 움푹 파이며 돌 파편들이 휘날렸다.

붉은 늑대의 검기는 거리를 두는 할파스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지만, 놈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회피하며 스킬을 떨쳐냈다.

“크으, 방패만 들고 왔었어도!”

“최은식 씨,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이시현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무는 최은식을 억지로 끌고 건물 밖으로 이동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진원은 놈에게 말을 걸며 인벤토리에서 몬스터 도감을 꺼냈다.

“흠, 나 할파스를 모르는 것이냐.”

할파스는 진원의 칼날 폭풍과 붉은 늑대의 스킬로 인해 팔 하나가 사라지고 어깨와 옆구리에 구멍이 뚫렸다.

‘재생 스킬인가.’

겉으로만 봐도 받은 피해는 적지 않아 보였는데.

놈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나는 72 악마 중 서열 28위인 할파스다. 듣기로는, 네놈이 상당히 강하다고 하더군.”

할파스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놈을 죽이고, 먹고, 능력을 얻어 서열 상승을 노리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72 악마? 도대체 무슨 말이지?’

진원은 놈의 괴상한 말에 의문을 느끼며 몬스터 백과사전을 사용했다.

‘이런 ×발, 이게 이렇게 된 거였다고?’

설명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