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불꽃남자 김진원-3
“그으으으으!”
독성 이끼거인은 쏟아지는 수많은 공격에 힘을 다해 쓰러지는가 싶었지만,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크게 부풀렸다.
‘몬스터 백과사전에는 적혀 있지 않았는데.’
신뢰도 50퍼센트. 아무래도 수치가 낮을수록 보여 주는 정보량 또한 적어지는 듯했다.
“메시아, 전방을 막아 줘!”
[알았어.]
진원은 거대한 풍선처럼 몸을 부풀린 보스를 보고, 서둘러 메시아를 불러냈다.
띠링.
[메시아가 밤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HP를 500 소모합니다.]
그녀의 스킬이 전방을 빈틈없이 메운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보스가 폭발했다.
퍼어엉!
곧 엄청난 충격이 맵을 뒤흔들었고, 메시아의 장막이 세차게 떨렸다.
드드드득!
[진원, 미안해.]
“버티기 힘들어?”
[아니, 나 갑자기 졸려 와…….]
두 손을 들어 스킬을 유지하던 메시아는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동안 졸리다는 말을 안 하긴 했었지.’
“형, 이쪽으로 오세요!”
“오빠, 빨리 이리로 와요!”
메시아의 밤의 장막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그 장면을 본 최은식과 은지희가 재빠르게 진원을 향해 소리쳤다.
푸쉬이이이.
“후우, 잠시 독 안개가 걷힐 때까지만 스킬 유지 좀 해 줘.”
“맡겨 주세요, 형!”
은지희가 사용한 배리어를 최은식의 퍼펙트 쉴드가 완벽히 감싸서 보스의 독 안개는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오빠…… 괜찮아요?”
“뭐가?”
“아니, 그래도 A급 던전의 독인데 괜찮으신가 해서요.”
손하윤이 진원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분명히 보스와의 전투 중, 그가 독 안개를 조금씩 들이켜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독성 이끼거인과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다곤 하나, 진원 역시 독 데미지를 피할 순 없었다.
HP : 2,960/4,500
‘데미지 감소 효과 때문인가. 그냥 코가 따끔거리는 수준이라 계속 무시했는데.’
그러나 해독 아이템 없이 단독으로 보스와 전투를 치른 그의 HP는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조금 따갑긴 하더라.”
“아, 네…….”
그녀는 앞으로 진원의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띠링.
[보스 : 독성 이끼거인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이템 : 강력한 독 이끼를 발견하였습니다!]
[아이템 : 독성 이끼거인의 독 주머니를 발견하였습니다!]
[48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 A
추가 보상 : 상급 마정석 1개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됐다. 이걸로 마지막이네.”
방금 클리어한 던전을 마지막으로, 최은식과의 계약도 끝이 났다.
“고생하셨어요, 형! 이제 길드를 만들면 되겠네요! 제가 이전에 봐 둔 건물들이 있는데……·.”
‘아니, 이제 시작인가.’
자신에게 다가와 길드 사무실로 사용할 건물 리스트를 보여 주는 최은식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야.”
“네, 형.”
“너, 길드 이름 나한테 꼭 허락받고 지어라. 안 그러면 내쫓아 버릴 거니까.”
“……넵.”
***
서울특별시의 재난대책본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밤 12시였지만, 건물 안의 직원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후우.”
중앙에 앉은 문명호 대통령을 시작으로, 수많은 고위직 간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는 중이다.
“얼마 전 있었던 플레이어 이벤트에 200명이 강제적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다음번에는 몇 명이나 끌려갈지…….”
중년의 남성이 자료를 읽어 내려가며 침음을 내뱉었다.
“정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회의는 2시간째 쉬지 않고 이어져 왔지만, 그 누구도 이렇다 할 해결책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도 난 국민들의 표를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의미 없는 회의를 이어 나가던 문명호는 속으로 자신의 한심함을 자책했다.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회의는, 보여 주기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국민들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한다는 측근들의 의견이 많았다.
“저, 대통령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대천사 길드가 말입니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자료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와중, 재난 안전실장인 김현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고 있네.”
대천사 길드가 몰래 불법적인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의뢰를 통해 각종 길드에서 플레이어들이 신도로 위장해 잠입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규모가 너무 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건에 대한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볼 수만도 없는 노릇.
‘김진원이나 송현성. 그 둘을 어떻게든 이용해야 한다.’
***
“뭐? 오빠가 아파트를 샀다고? 그것도 19억이나 하는 신축 아파트를?”
5일이 지난, 아침.
갑작스럽게 집에 들어오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보고 의아해했던 동생이 진원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래. 아파트야 미리 다 봐뒀는데, 너 놀라게 해 주려고 말 안 하고 있었지.”
“19억이라고?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난 거야? 부모님 빚 갚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원은 처음에야 오빠가 장난치는 줄 알고 적당히 받아넘기려 했었지만, 직원들이 바쁘게 집안의 가구들을 옮기고 있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주소 문자로 보내 줄 테니까, 학교 끝나고 천천히 와라. 그리고 낡은 가구들은 내가 버리고 새것으로 살게.”
“우리 오빠 최고! 알았어! 내 방 제일 큰 거로 줘야 해!”
“너 앞으로 하는 거 봐서.”
신난 듯 현관문을 나선 동생과 그 뒤를 따라나서는 보고 나서, 얼추 정리가 끝난 텅 빈 집안을 둘러보았다.
여태까지 이런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지원이는 상당히 불편했을 텐데.’
진원은 동생에게 가장 좋은 방을 주기로 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일단 여기는 남겨 두자. 팔아 봤자 얼마 하지도 않으니.’
택시를 타고 아파트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짐과 가구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응? 뭐냐?’
띠링.
[명예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명예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들.
아무래도 최은식이 유투브에 던전 공략 영상을 올린 영향인 듯했다.
‘드디어 업로드를 했나 보네.’
동영상 촬영을 끝내고 5일.
최은식은 단순히 업로드만 하면 끝이 아니라, 그 전에 사전 작업인 광고 또한 중요하다고 자신에게 강조했다.
형, 제가 유명 사이트들한테 홍보용으로 광고를 최대한 많이 넣을게요! 편집도 저한테 맡겨 주세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명예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최은식의 고집에 그냥 적당히 맡겨 버렸다.
‘궁금한데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유튜브에 접속하니 10분짜리의 영상이 하나 업로드되어 있었고…….
“뭐냐. 조회수가 왜 이렇게 높아?”
불과 3시간 만에 20만 조회 수가 찍히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허……. 무슨 영화를 만들어 놨어, 이놈은? 도대체 돈을 얼마나 퍼부은 거야?”
자신이 전투를 하는 장면과 어울리게 삽입된 강렬한 배경음.
거기다가 고난이도의 화려한 편집 효과들은, 보는 사람들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단번에 사로잡았다.
- 맡겨 주십시오, 주군.
마지막은 붉은 늑대의 참격과 함께, 자신이 던지는 마구가 빠르게 오버랩되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확실히 잘 만들긴 했네. 그런데…….”
자신의 채널을 구독한 사람들이 벌써 15만 명을 넘어섰다.
겨우 영상 하나를 올렸을 뿐인데 어느새 실버 버튼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족했다.
“1년을 해도 10만을 못 채우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구독자 수에 작은 만족감을 느낀 진원이었지만, 불만스러운 점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치킨 매니아 : 1빠! 영광스러운 1등! 바로 구독 박습니다, 형님.
우리 아빠 폭풍왕 : 크!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유투브를 하는 S급 플레이어가 생겼다! 1등으로 구독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형님.
순한 맛 무 : 와, 무슨 영화 한 편 보는 줄 알았네. 10분 실제로 순삭임.
이이잉 : 와, 저건 진짜 돈 내고 봐야 되는 수준이에요. 여러분들 아시겠어요? 아시겠냐구요!
‘불꽃 남자 김진원이 뭐냐. 아오, 이거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본다며.’
댓글들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지만, 유치찬란한 채널명을 보니 자괴감이 드는 진원이었다.
띠리리. 띠리리.
‘귀신같이 전화가 오네.’
- 형, 이번에 촬영한 영상들은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아서 베테랑 편집자들한테 작업을 맡겼어요! 그래서 명예 포인트는 얼마나 얻으셨나요?
연락을 받자, 최은식이 들뜬 기색으로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본인도 이 정도 반응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 뭐, 어쨌든 잘 만들었더라. 잘 봤다. 그리고 포인트는…… 3포인트 얻었네.”
- 구독자가 15만 명에 조회 수가 20만을 넘겼는데 겨우 3포인트요? 역시 광고에 돈을 더 썼어야 했나…….
자신의 대답을 들은 최은식은 의외의 결과에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얌마,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됐어. 도대체 영상 하나에 돈을 얼마나 퍼부으면 이렇게 되는 거냐?”
- 길이가 그렇게 안길어서 천만 원 정도밖에 안 썼어요! 영화 제작 비용에 비하면 이건 뭐, 그냥 껌값이죠.
상급 마정석을 팔아서 비용을 충당하라고 최은식에게 넘겨줬는데, 그걸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말을 말자.
“하아, 명예 포인트 얻었으니까 됐다. 너 그런데 길드는 언제 창설할 거냐?”
- 아,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요. 형, 필기시험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길드 마스터를 맡을 사람은 필수적으로 합격점을 받아야 창설할 수 있다고 하네요.
“……시험?”
공부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손절했는데.
***
대천사 길드의 제단실.
지하 시설 깊숙이 위치한 장소에 수많은 신도들이 원을 이루고 모여 있다.
곳곳에 보이는 악마 형상의 조형물들을 보면, 마치 그들을 숭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발, 이 새끼들 생각보다 더 또라이들이었잖아!’
몰래 신도로 위장해 활동 중이었던 대한민국일보의 기자 김정주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 위대하신 존재를 영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뵙기 위해서는 대규모 정화가 필요합니다!”
검은 로브로 온몸을 가린 신도 1명이 손짓하자, 다른 신도들이 캡슐 형태의 알약을 들고 원 중앙에 묶여 있는 남성을 향해 다가갔다.
“히익! 저, 전 정말로 충실한 신도입니다! 정보를 빼돌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당신의 모습이 변할 리는 없을 테니.”
꿀꺽.
넘치는 긴장감 속에서도 김정주는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해당 장면을 촬영했고, 다른 신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