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플레이어 이벤트-5
플레이어 이벤트에 끌려온 지 24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진원과 일행은 건물들을 오가며 금화들을 쓸어 담았다.
그 엄청난 기세 때문인지 자신들을 습격하던 플레이어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소지 금화 : 쉰여섯 개]
현재 진원이 소지한 금화는 쉰여섯 개.
신혜진과 이서훈이 생존의 최소 조건인 세 개를 채우고, 나머지는 전부 자신에게 몰아준 결과였다.
“금화도 꽤나 모인 것 같은데, 슬슬 어때?”
“그래. 슬슬 가 보자.”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원은, 플랭크톤에게 금화를 건네주러 가기 위해 지도를 크게 키웠다.
“……야, 그런데 이건 뭐냐?”
“뭐가?”
플랭크톤의 위치를 확인하던 진원은 특정 지역들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그의 말에 신혜진과 이서훈까지 다가와 지도를 확인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드는 건 확실해.”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붉게 물든 지역은 현재 그들이 있던 장소에서 불과 2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최대한 멀어지자.”
진원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더 이상은 눈뜨고 못 봐주겠다! 쥐새끼처럼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냐? 싸워! 싸우라고, 이 벌레들아!]
곧이어 하늘에서 플랭크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며, 알림 음과 함께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플랭크톤이 레드 존을 향해 포탄을 날립니다!]
“형!”
“이 정도 거리면 괜찮아. 최대한 뛰어!”
“아오! 저 미친 할배 새끼!”
그 음성을 들은 진원과 일행은 달리기의 속도를 최대한 올렸다.
쿠웅! 쿵! 우르르르!
잠시 후, 레드 존의 곳곳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리며 건물의 파편들이 위로 솟구쳤다.
그 충격에 땅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양 격렬하게 흔들렸다.
“후, 이 정도 거리면 괜찮은 것 같다.”
“어? 형! 저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레드 존에서 최대한 멀어진 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땅에 쓰러져 있는 한 남성.
상당한 피를 흘린 듯했지만, 아직 몸이 움찔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야구장에서 봤던 것 같은데, 맞으시죠?”
남성에게 가까이 다가간 진원은 적당히 포션을 주고, 금화를 가져가려 했지만 낯익은 얼굴에 멈칫했다.
‘젠장할……. 운도 없군.’
힘겹게 고개를 돌려 진원의 얼굴을 확인한 김수환은 순간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필이면 내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다니.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일 수준이다.’
그는 조용한 곳에 숨어서 그동안 떨어진 체력과 함께 MP를 회복하려 했지만,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자신을 공격해 대서 극도로 피로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하필이면 그가 지나가던 지역 근처에 플랭크톤이 포탄을 떨어트린 것.
‘후우, 일어설 힘도 없군. 나는 이대로 끝인가……·.’
김수환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김진원 또한 플레이어였기에, 자신을 죽이고 금화를 거둬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거 하나 드세요.”
그러나 진원은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상점에서 희석된 엘릭서를 하나 구입해 김수환에게 건네주었다.
‘어린 딸이 있었지. 이대로 지나치기엔 신경 쓰여서 어쩔 수 없지. 상처도 상당히 깊어 보이고.’
야구장에서 나누던 두 부녀의 대화. 그것을 옆에서 들어 버린 진원은 금화를 뺏고 지나치기보다, 김수환을 도와주는 것을 택했다.
“아는 사람이야?”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신혜진은 의외라는 듯이 물어왔고, 진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 그냥 야구장에서 한 번 본 사이지.”
“뭐라고? 겨우 그걸로 희석된 엘릭서를 준다고?”
진원의 태평스런 대답에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이,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분명히 매물은 없었는데.’
한편, 진원에게 포션을 받은 김수환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희석된 엘릭서. 딸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포션. 대천사 길드가 가지고 있는 것 말고, 다른 하나가 더 있었을 줄이야.
“크으으윽…….”
그는 포션을 마시지 않고 어금니를 깨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제가 가진 금화를 전부 드리겠습니다. 희석된 엘릭서를 하나만 더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 딸이 지금 많이 아픕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진원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부르는 것이 값인 희석된 엘릭서. 그것을 한 병 건네준 것만 해도 그에게 평생 감사해야 할 수준이다.
그런데 그걸 한 병 더 달라고 하다니.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어떠한 약을 써 봐도, 수십 군데의 병원을 가 보아도, 힐러들에게 스킬이란 스킬을 다 받아도 딸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분이 남아 있으시다면, 꼭 부탁드립니다!”
현재 진원은 자신이 이전에 침입했던 괴한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다.
나중에 들켜서 죽게 되더라도, 이것은 기회였다.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찬스.
‘나는 나중에 죽어도 상관없다. 수진이만 살릴 수 있다면 백 번도, 아니. 죽을 때까지 절할 수 있다.’
그런 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진원은 잠시 자리에서 서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상점 창을 열었다.
‘두 개를 준다 해도 여분이 네 개는 남아 있으니, 괜찮겠지.’
플레이어 거래소에 팔면 개당 30억 이상은 받아 낼 수 있는 포션이다. 그런데…….
김수환의 딸은 기껏해야 여섯 살이나 일곱 살 정도로 보였다.
‘냉정히 생각하면, 타인이다. 하지만…….’
이전의 야구장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금화는 됐습니다. 살아서 돌아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갚으세요. 전 공짜를 싫어하거든요.”
결국 결정을 내린 진원은 희석된 엘릭서를 추가로 구매해 중급 HP포션과 함께 김수환에게 건네주고, 그대로 지나쳐 갔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수환은 그의 선행에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다가,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정작 진원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있었지만.
***
약 30분 뒤, 진원과 일행은 플랭크톤을 발견하고 그의 근처로 다가갔다.
쉬익! 쉭!
“하!”
“지금! 스킬 전부 갈겨!”
플랭크톤과 거리가 좁아질 때마다, 주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기습을 시도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은 무방비 그 자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고, 무기 또한 없었기 때문인 듯했다.
팅! 스걱!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진원에게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칼을 휘둘러 날아오던 단검이나 화살들을 무난하게 쳐 냈기 때문.
“합!”
뒤에 빠져 있던 신혜진은 플레이어들을 한 번 슥 훑어보고, 뒷발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창을 들어 스킬, 다크 레인을 사용했다.
어둠을 머금은 창은, 공중에서 수많은 작은 창으로 분열하여 땅으로 낙하했다.
후두두둑.
“×발! 야! 도망쳐! 커헉!”
“끄으으…….”
오히려 스킬이 막히고, 위치가 노출되어 버린 플레이어들은 그저 맞추기 좋은 표적에 불과했다.
“리필해 줘.”
“그래.”
그녀의 스킬을 보고 작게 감탄하던 진원은 상점에서 창을 건네주었다.
[호오.]
플랭크톤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거칠게 자라난 수염을 쓸어내렸다.
[소지 금화 : 예순네 개]
플레이어들에게서 추가로 모은 금화들까지 합해 상당한 수가 모였다.
진원은 곧바로 드럼통을 의자 삼아 앉아 있던 플랭크톤에게 다가갔다.
‘진짜 영화에서나 나오는 해적처럼 생겼네.’
플랭크톤은 육중한 덩치에 배는 튀어나왔지만, 다부진 근육이 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금화를 건네주러 왔습니다.”
[그래. 얼마나 가져왔지?]
그러자 진원은 그의 눈앞으로 금화 예순 개를 쏟아냈다.
[크하하하! 좋아! 좋구나! 한 개나 두 개씩 찔끔찔끔 갖다 바치는 벌레들보다 훨씬 낫군! 크으! 이런 때에는 럼주 한 병 마셔 줘야 하는데 말이야!]
상당한 수의 금화를 보고, 플랭크톤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띠링.
그리고 그때, 자신에게 퀘스트가 생겨났다.
[특별 퀘스트 : 럼주를 내놔라!]
현재 플랭크톤은 엄청난 금화에 기분이 좋은 상태입니다. 술을 바쳐서 그의 호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완료 조건 : 플랭크톤에게 럼주나, 다른 만족할 만한 술을 건네주십시오.
제한 시간 : 10분
보상 : 플랭크톤이 당신만을 편애합니다.
실패 시 : 페널티 없음.
‘특별 퀘스트?’
아무래도 일정 개수의 금화를 건네준 플레이어에게만 발생되는 퀘스트인 듯했다.
‘보상이 편애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완료하는 것이 좋겠지.’
제한시간이 10분밖에 없었기에, 진원은 곧바로 상점 창을 열어 술을 찾기 시작했다.
“야, 술 좀 잘 아는 사람 있어? 럼주랑 가장 비슷한 술이 필요해.”
“술이요?”
“뭐? 갑자기 술은 왜?”
“특별 퀘스트가 생겼어.”
간단히 진원에게서 퀘스트의 설명을 들은 신혜진과 이서훈은, 그가 말해주는 술 이름을 듣고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마이너스, 바카디 블랙, 트리니티…….”
“그거! 바카디 블랙!”
“형, 저는 트리니티요!”
신혜진은 바카디 블랙을 골랐고, 이서훈은 트리니티를 골랐다.
“헤비 럼 중에서도 가장 단맛이 깊은 술이야. 딱 저 아저씨한테 어울릴 것 같아.”
“형,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술이 좋다고 생각해요!”
신혜진은 이서훈의 대답을 듣고 순간 언성을 높였지만, 본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어린 애가 럼주를 어떻게 알아?”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요.”
“시간 얼마 없어. 그냥 둘 다 산다.”
제한 시간이 1분이 되자, 진원은 상점에서 두 병의 술을 구매해 플랭크톤에게 건네주었다.
‘한 개당 100골드인가……·.’
아무리 그래도 술 한 병에 천만 원이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필요할 때는 써야지.
[흐음, 꽤나 특이한 모양의 술이로군. 지금 이걸 나보고 마시라고 주는 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인들이 숙성시킨 술입니다. 드셔 보시고 판단하시죠.”
사실 어떤 술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플랭크톤이 술병을 흔들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기에, 최대한 좋게 포장해서 대답했다.
투욱.
플랭크톤은 손날로 술병의 머리 부분을 날리고, 그대로 바카디 블랙을 입에 들이부었다.
꿀꺽. 꿀꺽.
그는 순식간에 술 한 병을 비우고, 잠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가를 닦았다.
[굉장히 달고 풍미가 깊군. 싸구려 럼주가 아니었잖아! 크하하하, 나머지 한 병은 벌레들이 재밌게 싸울 때 마셔야겠군!]
띠링.
[특별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지금부터 플랭크톤이 당신만을 편애합니다!]
‘후우. 상점에 팔던 술이었는데, 다행이네.’
진원은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보고, 속으로 안심했다.
패널티가 없는 특별 퀘스트였지만, 플랭크톤의 공격력은 막강했다.
조금이라도 이득이 된다면 완료하는 것이 좋았다.
잠시 뒤, 진원의 눈앞으로 선택지 네 개가 생겨났다.
‘……엄청난 효과들밖에 없잖아.’
찬찬히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진원은 강력한 효과들을 확인하고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