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플레이어 이벤트-3
“형! 남은 한 개는 여기 서랍 안에 있어요!”
그 뒤로 한동안 고민하던 진원은 이서훈과 이번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이서훈은 탐색 스킬을 사용해 곳곳에 숨겨져 있는 금화를 빠르게 찾아냈다.
지도에서 알려주는 금화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려준다.
정확한 위치는 플레이어가 그 주위를 맴돌면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이번 이벤트에 한해서는 사기적이긴 하네.’
이 건물에 있던 금화 4개도 제각각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자신이 찾았다가는 몇 시간이고 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거 너 가져라. 그거까지 하면 3개지?”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남은 플레이어: 154명]
시선을 돌려 잠시 지도를 확인하니, 어느새 40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죽었다.
‘뭐지? 짧은 시간에 이 정도나 되는 플레이어가 죽었다고?’
30분 전까지만 해도 남은 플레이어는 194명이었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40명이 한꺼번에 죽었다니.
‘처음부터 서로 죽여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일이지.’
진원이 생각하던 사이, 이서훈이 다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어? 형! 여기에 갑자기 금화가 엄청나게 떠요!”
“어디야?”
그 말에 지도를 키워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서 세 블록 정도 떨어진 건물. 호텔이다.’
이서훈이 가리킨 곳에 엄청난 숫자의 금화가 위치하고 있었다.
‘저기서 단체로 싸우기라도 한 건가.’
“바로 가보자.”
‘사람 목숨을 가지고 노는 이벤트니, 보상도 그만큼 크겠지. 망할 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를 거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왕 이벤트에 끌려온 거, 1등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어? 저기를 가려고요?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데요…….”
바로 가겠다는 진원의 말에 이서훈이 불안한 듯이 대답했다.
“너, 나 1등 만들어 준다며?”
“그…… 렇긴 하죠,”
“너 하나 지킬 능력은 된다. 못 믿겠으면 안 따라와도 돼.”
“그럼 갈게요.”
거침없이 건물을 나서는 진원을 보고 이서훈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 둘은 금화가 넘치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습격이 무서운지 이서훈은 진원의 옆에서 바짝 붙어 걸었다.
“여기네. 그런데 입구부터 이게 뭐냐?”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플레이어들과 부서진 뼛조각들.
격렬한 전투를 치룬 듯 건물 곳곳에 파인 자국이나 무언가에 깎여 나간 흔적이 가득했다.
“형. 이 사람들…… 전부 죽었어요.”
“그래. 그런 것 같다.”
플레이어들은 전부 무엇인가에 꿰뚫린 듯 몸이 원모양으로 파여 있었다.
‘플레이어 하나가 한 짓인가? 그렇기에는 근처에 있는 뼛조각들이 신경 쓰이고.’
“서훈아. 탐색 스킬을 사용해 줘. 몸은 걱정 말고.”
시체들을 관찰하던 진원은 이서훈에게 탐색 스킬을 요청했다.
“네, 형.”
그 말에 이서훈은 양반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아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그가 가진 탐색은 자신의 시야를 반경 100미터까지 날릴 수 있는 스킬이다.
거기다 구조물을 투시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탐색을 사용하는 동안 자신이 무방비가 되는 것만 빼면,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현재 그의 레벨로는 5분 정도가 한계였지만.
이서훈이 눈을 감고 탐색을 시작하자, 진원이 그의 주위로 가서 가만히 기다렸다.
그로부터 약 3분 뒤, 위쪽을 향해 탐색 스킬을 사용하던 이서훈은 다급한 듯이 눈을 떴다.
“형! 4층에 어떤 누나가 해골들한테 둘러 쌓여 있어요! 저대로 놔두면 큰일 날 거예요!”
“빨리 안내해 줘.”
“네!”
진원의 말에 이서훈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애라 그런가, 느리네.’
“4층 어디야?”
“4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오른쪽 통로 끝이요!”
“붉은 늑대. 얘를 지켜주면서 따라 올라와라.”
“분부대로.”
그는 간단히 붉은 늑대에게 지시를 내리고, 순간 가속을 사용해 4층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혹시라도 내가 아는 사람일 수 있으니.’
재빠른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계단을 놀라 4층으로 올라가자,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크웨에엑!”
“아오! X발 해골새끼들. 무기만 있었어도!”
‘……빙고네.’
오른쪽 통로 끝에는 신혜진이 힘겹게 해골 병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빠악! 빠각!
그녀의 팔이나 다리에 맺힌 붉은 오라는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해골 병사의 흉부를 꿰뚫어 버리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스스스슷-
그러나 그것이 결정타는 되지 못했는지, 해골 병사들은 다시 원상 복구되어 신혜진에게 달려들었다.
“야! 몸을 숙여!”
진원은 곧바로 토르의 망치를 들고 와인드업을 했다.
“뭐? 김진원……? 너도 여기 끌려왔어? 헉!”
그녀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고 흠칫 놀랐지만, 진원이 자신을 향해 커다란 망치를 던지려 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자세를 낮췄다.
“흡!”
부웅- 콰드드득!
묵직하게 날아간 토르의 망치는 신혜진을 둘러싸고 있던 해골 병사들을 가볍게 박살냈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내밀자, 망치는 자석처럼 진원에게 되돌아갔다.
“너,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아니다. 됐다, 말을 말자.”
망치의 강력한 성능을 본 신혜진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쨌든 도와줘서 고마워. MP가 바닥나가고 있어서 도망칠 틈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런데 얘는 누구야?”
숨을 고르며 진원에게 다가온 신혜진은 어느새 그의 뒤에 서 있는 작은 남자애를 발견했다.
“얘? 이서훈이라고, 이번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도와주기로 했다. 탐색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편하거든.”
“헉, 헉…… 안녕하세요, 누나.”
이서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혜진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어쨌든 다행이야. 무기를 챙길 시간도 없었는데, 하필이면 끌려온 장소가 여기였거든.”
“여기에 금화가 엄청 많이 잡히던데, 무슨 일이 있었냐?”
진원의 말에 신혜진이 질린 듯이 대답했다.
“말도 마. 뭐 쓸 만한 무기라도 있나 찾는데 밑쪽에서 플레이어들이 뭔가에 홀린 듯이 하나둘씩 들어오더라고. 스킬인 것 같아서 최대한 위로 피했었지.”
“홀린 듯이 들어왔다고?”
그렇다면 정신 계열의 스킬을 의심해볼 만했다.
나이트메어에게 몸을 뺏기고 고생했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래. 그래서 4층으로 올라가니 해골 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하고 있더라고. 아마 네크로멘서겠지.”
“좋아. 여기에 금화가 많으니까, 놈을 처리하고 금화를 모으자. 너, 지금 몇 개 가지고 있냐.”
“……1개.”
그녀의 대답에 진원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무기가 없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나는 창이 없으면 힘을 제대로 못 써.”
“그래. 그럼 도와줄 테니까 너 3개 채우고 금화 나한테 몰빵. 콜?”
“……하아.”
신혜진은 한숨을 쉬더니, 결국 동의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상황도 진원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었다.
‘어차피 1등만 보상을 받으니까. 2등이든 꼴등이든 똑같지 뭐.’
진원은 상점에서 낡은 창 하나를 구매해 신혜진에게 건네주었다.
“창은 이거밖에 없다. 그걸로 참아줘.”
“이거…… 스킬 하나만 쓰면 부서지겠는데?”
그녀는 상당히 저렴해 보이는 창을 둘러보면서 작은 불만을 토했다.
“얼마든지 써라. 리필해 줄 테니까.”
“그럼 뭐…… 참아야지. 아, 목마른데 물도 있어?”
“자.”
진원이 허공에서 물을 꺼내 건네주는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서훈은 속으로 경악했다.
‘뭐지? 무슨 스킬이지? 허공에서 무기가 튀어나오고, 이제는 물까지.’
이번 이벤트의 제한 시간은 48시간.
당연히 식량이나 식수의 보급에 제한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이벤트 후반부에 접어들면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너도 줄까?”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진원은 이서훈의 시선을 느껴, 물을 원하는 줄 알고 상점에서 생수 하나를 더 구입해 건네 주었다.
“크뤠에엑!”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해골 병사들이 왼쪽 통로에서 생성되었다.
“또 나왔네. 서훈아! 탐색 스킬 쓸 수 있지? 네크로 멘서가 이 근처에 있는 것 같다.”
“형. 탐색 스킬이 1번 남았어요. 지금 쓰면 24시간이 지나야 다시 사용할 수 있어요.”
“괜찮아. 사용해줘.”
“네.”
‘금화가 몰려 있는데, 사용하려면 지금이지.’
달그락- 달그락-
어느새 불어난 해골 병사들은 저마다 칼이나 몽둥이를 들고 자신에게 접근했다.
“데스 쓰로우!”
휙! 콰앙!
“후우. 속이 다 시원하네. 망할 놈들.”
그러나 신혜진이 날린 스킬 한 방에 뼈가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역시 하급 소환수네. 그렇게 강한 플레이어는 아니다.’
방금 생성되었던 해골 병사의 숫자는 많아봐야 20마리 정도.
상급 네크로멘서가 100마리 이상 소환 가능한 것을 볼 때, 약한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진원이 곰곰이 생각하던 사이, 눈을 감고 탐색 스킬을 사용하던 이서훈이 입을 열었다.
“형. 찾았어요. 607호 방이요. 6층에만 해골 병사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방 하나에만 사람이 두 명 있고요.”
이서훈은 눈을 감은 채로 상황을 설명해 나갔다.
“MP 포션을 꺼내 마시고, 다시 스킬을 쓰네요. 네크로멘서가 맞아요. 나머지 한 명은 모르겠어요.”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찾았어?”
신혜진의 질문에 이서훈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 사람들 도망치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바닥에 무슨 마법진 같은 것을 그리고 있어요.”
“붉은 늑대. 메시아. 놈들을 제압해. 서훈이 너는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금화의 위치를 찾아주고.”
“분부대로.”
[알았어.]
“네!”
진원의 말에 실체화한 붉은 늑대와 메시아가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
푸욱!
“컥!”
혼자서 주위를 조심히 살피며 걷던 플레이어의 목 뒤로 날카로운 그림자가 달려들었다.
목을 꿰뚫린 플레이어는 그대로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후우…….”
김수환은 가쁜 숨을 내쉬며 쓰러진 플레이어에게서 금화를 꺼냈다.
‘망할. 하필이면 쉐도우 스톰을 썼을 때 끌려오게 되다니.’
자신의 모든 MP와 함께 체력까지 소모되는 스킬이다 보니, 엄청난 피로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이걸로 2개다. 제발 김진원만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자신이 이전에 사용한 쉐도우 스톰으로 사무라이 하나 정도는 처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시간을 끄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제길! 지금의 내 스펙으로는 도저히 무리다.’
그는 지금껏 의뢰를 통해 플레이어들을 처리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플레이어들을 처치해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지금 내 레벨은 48. 김진원은 최소 60은 넘겠군.’
거기다가 따로 준비한 포션도 없었다. 이대로 행동하는 것은 위험했다.
딸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안전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MP가 회복될 때까지 조용히 숨어 있어야겠군.’
김수환은 주위를 슥 둘러보고,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쓰고 있던 토끼 가면을 바닥에 내려두고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