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그림자-5
대천사 길드의 건물 안.
“난 시키는 대로 했다. 엘릭서는 언제 주는 거지?”
“이런……. 너무 성격이 급하시군요, 김수환 씨. 겨우 한 번 의뢰를 수행했다고 600억이 넘는 아이템을 요구하시다니. 양심이 너무 없으시군요.”
다짜고짜 엘릭서를 달라는 말에 이연우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엘릭서를 미리 준다면 앞으로 네가 요구하는 일들을 추가적으로 얼마든지 수행해 주겠다.”
“하하하! 당신의 무엇을 믿고 말이죠?”
건방진 이연우의 태도에 김수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그림자로 놈의 온몸을 꿰뚫고 싶었지만, 딸을 생각하며 분노를 참았다.
“그래도 이전의 일은 잘 수행해 주셨으니, 이걸 드리겠습니다.”
이연우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작은 포션을 하나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중급 HP포션이군.”
“저도 나름 양심은 있거든요. 이번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젠장. 중급 포션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김수환은 주도권이 없었다. 그대로 앞으로 다가가서 포션을 챙겼다.
“흐음. 의욕이 없어 보이시는군요. 어쩔 수 없죠. 다음 의뢰를 완료하시면, 이걸 드리겠습니다.”
김수환은 이연우가 추가적으로 테이블에 올린 포션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아이템이 있었다고? 처음 보는 아이템이다.”
“그렇죠? 저도 신기하더군요. 거기다 지금까지 나온 매물은 이것 딱 하나. 가치 있어 보였기에 거금을 주고 구매했습니다. 이러면 의욕이 좀 생기십니까?”
“받아들이지.”
그 말에 이연우는 씨익 웃으며 김수환에게 의뢰 내용을 전달했다.
“너 이 새끼,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김수환은 의뢰 내용을 듣고 나서 이연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제가 그만큼 당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죠. 물론 강제는 하지 않습니다.”
“……큭!”
자신은 분명히 유니크 직업의 플레이어며, 나름 경험도 많이 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손쉽게 처리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기습적인 공격에 약한 모습을 보여 줬으니까.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다.’
S급 플레이어. 그것도 그의 가족을 납치해 오라는 말을 하다니.
지뢰밭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랑 별다를 바 없었다.
“하하, 저도 나름 양심이 있습니다. 직접 그를 상대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의 특기로 조용히 그의 가족을 여기에 데려오면 됩니다.”
‘……제기랄. 선택지는 없는 건가.’
이연우가 자신의 눈앞에서 흔들고 있는 저 포션. 저것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겠다.”
“역시 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김수환은 호탕하게 웃는 이연우를 한 번 쳐다보고 그림자 밑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 * *
띠링.
[붉은 늑대가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메시아가 다크레이를 사용합니다. HP를 300소모합니다.]
“크아아악! 이 정도로 굴하지 않는다!”
진원이 사용한 마구 : 칼날 폭풍을 포함한 세 개의 스킬이 그림갈의 몸을 헤집었지만, 결국 놈의 손에서 커진 스킬을 취소시키지는 못했다.
“아니, 미친! 이래도 안 죽는다고?”
놈의 손에서 떠나간 검은 구체는 공처럼 지면을 구르며 근접한 하이 오우거 전사들에게서 생명력을 빼앗기 시작했다.
“크로오옥!”
“크아아악!”
놈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몸이 말라비틀어져 가며 죽어 나갔다.
‘생명력을 흡수하는 스킬인가.’
“다들! 저 공한테서 멀리 떨어지세요!”
자신의 말에 그림갈의 스킬을 본 파티원들은 서둘러 뒤편으로 빠졌다.
“프리스트분들!”
“네!”
“알겠습니다!”
그사이 후방의 프리스트들이 배리어를 전개했지만, 굴러오는 거대한 구체를 막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손하윤, 튼튼이로 보스의 스킬을 막아! 빨리!”
“아, 알았어!”
진원의 말에 손하윤이 가방에서 급하게 모델 탱크를 꺼내 앞쪽을 향해 던졌고, 그대로 크기를 키웠다.
덜덜덜.
“튼튼아, 막아!”
실제 크기와 흡사하게 몸집을 부풀린 탱크는 보스의 스킬을 받아 낼 준비를 했다.
터엉!
곧 그림갈의 검은 공과 손하윤의 탱크가 부딪혔다.
“힘내, 튼튼아!”
드르르르르.
마치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탱크는 굉음을 내며 공을 서서히 밀어냈다.
“그렇게는 안 된다!”
그 광경을 본 그림갈은 입술을 움직이며 다시 주문을 외우려 했지만, 진원이 그것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이미 그림갈의 머리 하나와 팔 세 개는 진원의 소환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그의 공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텅. 텅. 빠악!
“흐읍!”
“크아악!”
천정과 땅을 오가며 사납게 움직이던 마구는 그림갈의 입술을 타격했지만, 놈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스킬을 사용했다.
“인간들이 나를 뭘로 보고! 크아아!”
“큭!”
곧 그림갈의 몸 주변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진원을 포함한 소환수들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오빠, 튼튼아, 조금만 더 힘내!”
“야, 김진원! 괜찮아?”
다른 파티원들은 그림갈의 검은 구체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그림갈은 지쳤는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저 인간…… 너무나도 강하다.’
분명히 자신에게 달려드는 소환수들의 숫자는 적었고, 몸집조차 작았다. 그렇기에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진원의 소환수들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며 쉬지 않고 자신을 공격해 왔다.
‘크으……. 부하들의 생명력을 다 거두었는데도 부족한가.’
그림갈은 거의 30마리가 넘는 하이오우거들의 생명력을 흡수했다.
그러나 워낙 진원에게 입었던 데미지가 컸는지, 상처를 적당히 수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버스트.”
“알겠습니다!”
띠링.
[꼬마 마도사가 버스트를 사용합니다. MP를 100 소모합니다.]
자신의 말에 위로 떠오른 마도사가 그림갈을 향해 마력탄을 쏴 댔다.
드르르르륵!
상당히 빨라진 마력탄의 연사 속도는 마치 기관총을 연상케 했다.
“크아아아!”
“메시아, 드레인을 사용해 줘!”
[알았어.]
그사이 메시아는 그림갈에게 접근했고, 붉은 늑대 역시 자신의 옆에서 놈에게 검기를 날려 댔다.
“오, 오빠, 나 오래 못 버틸 것 같아!”
그때, 보스의 스킬을 막고 있던 손하윤이 힘든 듯이 말했다.
그림갈의 검은 구체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파티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으……. 괜히 버스트 쓰로우를 썼나.”
신혜진이 급하게 길드에서 가져온 창은, 스킬 한 번을 견뎌 내지 못하고 바로 망가져 버렸다.
이 정도로 창의 내구성이 약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오!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그녀는 무기가 없더라도 나름 싸울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검은 구체를 뚫고 갈 방법은 없었기에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러 댔다.
띠링.
[메시아가 라이프 드레인을 사용합니다.]
“크아아아! 내, 내 힘이! 빠져나간다!”
메시아에게 목덜미가 물린 그림갈은 격하게 몸부림 쳤지만, 그녀를 떼어 놓기에는 부족했다.
진원은 그사이, 와인드업을 하고 마구의 부가 스킬을 사용했다.
“오, 오빠! 나 이제 진짜 힘들어…….”
“손하윤, 10초만 버텨라! 넌 할 수 있어!”
손하윤이 무리하게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본 프리스트들은 서둘러 방어 스킬을 해제하고, 손하윤에게 버프를 걸어 주었다.
“조금만 더 힘내!”
“손하윤 씨, 힘내세요!”
“으으으…….”
그녀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격려에 입술을 깨물고 최대한 스킬을 유지시켰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다! 크아아!”
놈은 괴성과 함께 아까와 같은 충격파를 다시 방출했고, 메시아는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미안해, 진원.]
“아니, 충분해. 그리고 이제 끝이다.”
그러나 그림갈은 축 늘어진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누적된 데미지로 인해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모아 온 힘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닥치고 이제 그만 뒈져라! 흐읍!”
쉬이익!
푸확! 서걱!
진원이 던진 마구는 놈의 오른쪽 머리를 뚫고 지나갔고, 다른 머리는 붉은 늑대가 접근해 깔끔하게 베어 냈다.
“오빠, 진짜 미안해! 이제 더 이상은 무리야!”
손하윤이 말을 마치자마자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탱크는 작은 크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괜찮아. 방금 끝났거든.”
띠링.
[보스 : 그림갈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붉은 늑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업적 : 보스의 악몽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 : 그림갈의 화려한 목걸이를 발견하였습니다!]
[98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 A
추가 보상 : 상급 마정석 1개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어?”
그림갈이 죽게 되자, 놈이 사용한 스킬 또한 사라졌다.
손하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눈을 끔뻑이다가, 보스가 쓰러진 것을 알고 환호성을 질러 댔다.
아무리 숙련된 플레이어들이라 할지라도, A급 던전의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급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하다니.”
“와, 오빠 진짜 대박!”
“그럼 우리 이제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래! 형님이 혼자서 보스를 죽였다고!”
“대단하십니다, 김진원 씨!”
“여러분, 빨리 아이템부터 챙깁시다!”
학생들은 던전을 나갈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며 눈물을 쏟았고, 다른 파티원들은 기뻐하면서도 재빠르게 하이오우거들의 시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후우.”
진원은 이마에 맺힌 땀을 한 번 닦아 내고, 놈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상당히 단단한 놈이었어.’
자신의 모든 소환수들을 전력으로 동원해 보스를 잡긴 했지만, 정작 본인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보통 15명 이상이 매달려서 잡는 A급 던전의 보스를 혼자서 처치해 놓고 말이다.
‘역시, 앞으로 장비를 신경 써야겠어.’
그렇게 들어 올린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하던 진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이템 : 그림갈의 화려한 목걸이]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들은 그림갈의 탐욕을 나타내는 듯하다.
종류 : 장신구
등급 : 유니크
효과 : 마력+20 최대MP 500 증가
상당히 쓸 만한 장신구가 나왔다. 액세서리 쪽은 드랍율이 낮다고 들었는데, 운이 좋은 듯했다.
“뭐야? 기분 나쁘게 실실 웃기나 하고. 좋은 아이템이라도 얻은…… 헉!”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온 신혜진이 그림갈의 화려한 목걸이를 보고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와……. 미쳤네. 마법사들이 보면 환장하겠는데? 운도 좋지. 너 A급 던전 처음 클리어하는 거 아니야?”
“응? 그렇지. 뭐야, 뭘 그렇게 쳐다봐? 이거 내 거다.”
“달라고 안 할 거거든? 너도 빨리 아이템 챙기는 거나 좀 도와줘.”
“그래.”
진원은 앙칼진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하이오우거 전사들의 시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