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그림자-3
플레이어의 MP량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마법사나 소환사 같은 MP를 주로 사용하는 직업들은, 포션을 넉넉히 준비하고 다른 파티원들과 연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 혼자서 계속 싸우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플레이어도 사람이다. 15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천천히 공략해 가는 A급 던전을 혼자서 부담한다는 것은, 그만큼 피로도가 빨리 누적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오빠. 나 튼튼이 가져왔는데, 힘들면 꼭 말해. 도와줄게!”
“응? 괜찮아. 혹시라도 사용할 때가 오면, 너랑 동기들을 지키는 데 써라.”
“그래도…….”
손하윤이 자신을 걱정해 주었지만, 딱히 힘든 점은 없었다.
‘장비만 제대로 챙기면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수준이니.’
인벤토리에서 MP 회복 포션을 꺼내 한숨에 들이켠 진원은, 조금이라도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 * *
서울대학교의 총장실.
플레이어학과의 교수들과 총장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후우, 실습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그래서 제가 포탈이 2개가 붙어 있는 곳은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젊은 남성의 교수는 격양된 목소리로 다른 교수를 다그쳤다.
“E급 던전이라고 해도 학생들의 수가 많았습니다. 공평하게 실습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던전들을 예약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허어, 그쯤들 하면 됐고. 어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그런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은 총장 최준석이었다.
“아무리 김진원이 같이 들어갔다곤 해도 A급 던전이니, 최대한 빨리 플레이어들을 모집해 던전 난입 아이템을 사용하려고 한다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본 검은 그림자……. 그것은 마치 사전에 계획한 듯이 움직였습니다.”
이어지는 젊은 교수의 설명에 다들 침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플레이어일 가능성이 높다?”
“예. 그것도 철저하게 학생들만을 노렸습니다.”
“그래, 일단 그 점도 조사를 하도록 하고, 당분간은 실습은 하지 않는 걸로 하도록 하지. 그럼 지금 당장 움직여 주시게.”
간단하게 회의를 마치고 교수들 중 1명은 바로 플레이어 거래소로 향했고, 다른 1명은 파티원들을 긴급 모집하기 위해 협회로 연락을 했다.
* * *
진원과 학생들이 동굴 안쪽으로 나아간 지 1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몬스터들이 간간이 나타나 자신과 학생들을 습격했다.
하지만 지성이 없는 짐승형 몬스터들은 진원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빠악!
“끼이익!”
띠링.
[흡혈박쥐를 처치하였습니다.]
[37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하이오우거들은 안 나타나는 건가.’
그 뒤로 놈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다. 붉은 늑대가 놈들의 기척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으니.
‘동족들이 죽어 나가는데, 가만히 있을 놈들도 아니고.’
진원이 혼자 생각에 잠긴 채 망치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 있을 때, 손하윤이 뭔가 발견한 듯 소리쳤다.
“어? 오빠, 저기 끝에 뭔가 빛나고 있어요!”
진원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해 보니, 붉은 원모양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이오우거의 짓인가?’
[평범한 방어용 결계네. 부술까?]
‘아니. 내가 할게. 틈틈이 연습을 해 둬야 감을 잃지 않거든.’
[알았어.]
메시아의 대답을 들은 진원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마구를 사용해 결계를 향해 던졌다.
텅! 터엉! 텅! 빠지직.
마구 세 개째에 붉은 결계가 금이 가며 부서졌다.
‘평범한 결계치고는 튼튼하네.’
“가자. 저기 안에 보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 주위로 꼭 붙어 있어라.”
“네.”
“네!”
진원의 입에서 보스라는 말이 나오자 학생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앞쪽으로 걷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자신의 등 뒤로 찰싹 달라붙어 왔다.
“……그렇게 달라붙으면 걷기 힘드니까 조금은 떨어져라.”
5분 정도 걸어, 대략 중간 지점에 왔을 때 붉은 늑대가 말을 걸어왔다.
‘주군, 놈들의 기척입니다. 양쪽에서 옵니다.’
‘왠지 조용하다 했더니 이걸 노린 건가?’
“오빠,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진원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멈추자 손하윤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래. 일단 내 등 뒤로 최대한 붙어라. 하이오우거들이 양쪽에서 오고 있다.”
“네? 아까 그 몬스터들이요?”
그녀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양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쿵! 쿵!
아까보다 훨씬 많은 발소리.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개는 상당히 무게감이 있는지 동굴 바닥이 조금씩 흔들렸다.
“오, 오빠…….”
“혀, 형님…….”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져 갔다.
“괜찮아. 너무 긴장하면 몸이 굳는다. 숨을 천천히 크게 들이쉬고, 다시 뱉어 봐.”
진원은 그런 학생들의 불안감을 줄여 주면서도 시선은 동굴 안쪽을 응시했다.
“붉은 늑대.”
“분부대로.”
자신의 말에 실체화한 붉은 늑대는 흑천검을 뽑아 들고 다른 방향을 경계했다.
‘어떡해. 이번엔 아무리 진원 오빠라도 힘들 거야.’
손하윤을 포함한 학생들은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 이전에 나타났던 10마리의 하이오우거 전사들에 비하면 현재 양쪽에서 들리는 상당한 발소리의 숫자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동기들을 지키는 정도라면…….’
그녀가 조심스럽게 등에 멘 가방을 풀어 탱크를 찾으려 했을 때,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하이오우거 전사들이 화난 듯이 괴성을 질러 댔다.
“크록타르!”
“크르르르!”
“크아아!”
놈들은 양방향에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 댔다.
‘대략 36마리 정도인가.’
본래 같으면 놈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오히려 많은 것이 자신에게는 좋았다. 그만큼 경험치를 독식할 수 있었으니.
그러나 유난히 눈에 띄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 오우거 붐이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푼 붉은 피부와 거대한 덩치.
조금이라도 충격을 준다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야 괜찮겠지만…….’
자신의 등 뒤에 있는 학생들이 문제였다.
당연히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될 것이 뻔했다.
‘메시아, 얘들을 지켜 주는 스킬 같은 것은 없어?’
[미안해, 진원. 여기는 너무 좁아서 힘들어.]
‘그래. 괜찮아.’
“흐으윽…….”
“으으…….”
상당한 숫자의 하이오우거들이 뿜어대는 위압감에 학생들은 두려운지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을 포함한 소환수들은 오로지 공격 쪽으로만 특화되어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학생들을 지키면서 하이오우거들을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기랄. 이럴 때 최은식이 있으면 좋은데.’
이때, 진원은 처음으로 퍼펙트 쉴더인 최은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크록타르!”
그때, 하이오우거 전사들 중 1명이 무언가 크게 외쳤고, 으르렁대던 다른 놈들은 순식간에 조용히 길을 텄다.
저벅저벅.
그리고 놈은 자신을 향해 그대로 걸어왔다. 무장은 없는 채였다.
붉은 늑대가 놈을 향해 칼을 들이댔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붉은 늑대.’
‘분부대로.’
자신의 말에 붉은 늑대는 칼을 거두고 자신에게 돌아왔다.
‘저놈만 특이하게 이름이 있네.’
다른 놈들보다 덩치가 크고 몸에 수많은 흉터를 가진 하이오우거 전사 크락카.
그가 다른 몬스터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인 듯했다.
“크록타르! 쉬락 두그인 아릭타스!”
놈은 자신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뭐라는 거야.’
“크록타르! 드락키르!”
진원이 뭐라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놈은 손짓으로 자신이 부순 결계 안쪽을 가리켰다.
“이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그러자 놈은 자신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원은 놈들의 의도가 뭔지 파악하지 못했다. 놈들에게 있어서 지금이 자신을 습격하기 좋은 타이밍인데, 가만히 안쪽으로 들어가라니.
그러나 현재로서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 일단 놈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붉은 늑대, 메시아, 내 뒤에 학생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해.’
‘분부대로.’
[알았어.]
“얘들아, 아무래도 저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말인 것 같다. 내 뒤로 바짝 붙어라.”
진원과 학생들이 동굴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앞쪽에 있던 하이 오우거 전사들이 지나가기 쉽도록 길을 터 주었다.
“크르르르…….”
“크록타르!”
놈들은 화난 듯이 말을 뱉었지만, 공격적인 자세는 취하지 않았다.
“오빠, 이거 함정 같아요. 이대로 들어가게 되면…….”
“야, 저기 오우거 붐이 있잖아. 잘못 건드려서 터지면 우리 다 죽어!”
“저도 이대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그사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던 학생들이 의견이 충돌했는지 언성을 높였다.
“얘들아, 진정하고. 이렇게 좁은 곳에서 오우거 붐이 터지게 되면, 나는 괜찮겠지만 너희들은 아마 전부 죽을 거다. 그리고 난 너희들을 지켜 줄 스킬이 없어. 그러니까 지금은 저놈들 말을 따르는 것이 맞다.”
진원의 입에서 죽는다는 말이 나오자, 서로 싸울 듯이 대화를 나누던 학생들이 바로 조용해졌다.
“넓은 공간이 나오게 되면, 손하윤. 튼튼이 꺼낼 준비해. 내가 신호하면 바로 스킬을 써서 애들을 지켜 줘. 알겠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진원은 작은 목소리로 손하윤에게 지시했다.
“아, 알았어.”
자신의 말에 손하윤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 *
현재 신혜진은 사건이 발생한 A급 포탈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로 A급과 B급의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장비를 챙기고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여러분들, 준비 다 되셨나요?”
진원을 포함한 플레이어학과의 학생들이 뜻하지 않게 던전에 입장하게 되어, 도와 달라는 구조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기본가만 20억이 넘는 일반 던전 난입 아이템까지 사용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대학교에서 필사적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놈 혼자라면 어떻게든 클리어하고 나올 것 같아. 하지만…….’
같이 던전으로 들어가게 된 학생들. 그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남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학생들을 신경 써 가며 던전을 공략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힘들겠지. 아무리 그래도 A급 던전인데.’
그렇게 되면 진원은 신경 써야 될 것이 많아지게 되고, 그만큼 피로가 누적되는 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상당히 지난 지금. 학생들 중 1명이나 2명은 큰 부상을 당했을 거라는 가정까지 하고 프리스트를 2명이나 데려온 그녀였다.
‘하필이면 창의 수리가 끝나지 않은 날에…….’
급한 대로 길드의 무기를 가져오긴 했지만, 자신이 애용하던 창이 아니니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놈은 도대체 지가 폭풍이야 뭐야?’
어떻게 김진원이 가는 곳마다 사건들이 터지는지.
신혜진은 포탈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