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그림자-2
‘주군, 전방에서 기척이 느껴집니다.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무게감 있지만 통일된 듯한 발소리가 동굴 안쪽에서 들려왔다.
“얘들아, 뒤에 빠져 있어. 메시아는 얘들 좀 지켜 줘.”
[알았어.]
“오빠, 나도 도울게.”
손하윤이 자신을 돕겠다고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가득 묻어 있었다.
“잔말 말고. 너 손 떨리고 있다.”
“아……. 알았어.”
손하윤은 자신의 말에 떨리는 손을 붙잡고 학생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돌려 학생들이 구석으로 숨은 것을 확인하고, 소환의 방에서 임프와 마도사를 불러냈다.
“준비해.”
“키긱!”
“예!”
그사이 진원은 상태창을 불러와 남은 스텟 15를 근력과 마력에 투자했다.
[스텟]
근력 : 70 민첩 : 60 체력 : 50 마력 : 75 지배력 : 60
미분배 포인트 : 0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어두운 동굴에서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록타르!”
“크록타르!”
‘하이오우거 전사인가.’
육중한 덩치와 느릿해 보이는 오우거의 몸집과는 달리, 놈들은 우락부락한 근육과 날렵한 몸을 자랑하며 대열을 맞춰 자신의 앞에 섰다.
하이오우거는 A급 몬스터들 중에서는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각각 긴 창이나 칼로 무장을 한 하이오우거 전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략 10마리.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크록타…….”
“시끄럽다.”
놈들이 뭐라고 하기 전, 진원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빠르게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내 자신과 가장 가까운 하이오우거 전사의 머리를 내려쳤다.
빠악!
“크아아악! 크로오옥!”
기습에 대비하지 못한 놈은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게 되었고, 놈은 머리를 움켜쥐며 뒤로 빠졌다.
‘역시, 단단하네.’
“크아아아!”
그러자 나머지 하이오우거 전사들이 열 받은 듯 괴성을 질러대며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진원의 선공을 시작으로, 놈들과 그의 소환수들이 뒤섞여 전투를 시작했다.
두두두두. 화르륵! 빠악! 서걱!
“크아아아!”
“크아아악!”
‘뭐야, 단단하기만 하고 생각보다 별거 없잖아?’
확실히 움직임이 날렵하고, 무기를 능숙하게 다뤄 보통의 오우거보다는 상대하기 귀찮았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크록타르! 크록타르!”
놈들은 힘 싸움에서 밀리자 뒤로 거리를 멀리 벌리고 태세를 정비했다.
“와……. 진원 오빠 미쳤다. 소환사 맞아?”
“S급 플레이어는 다 저러는 거야?”
하지만 뒤편에 숨어서 보는 학생들의 평가는 달랐다.
소환수를 앞에 세우고 뒤에 빠지는 것이 정석이라고 배운 이론과는 다르게, 진원이 앞장서 놈들의 머리를 두들겼으니.
“붉은 늑대.”
“분부대로.”
[붉은 늑대가 발도 : 추격을 사용합니다. MP를 50 소모합니다.]
검집에 검을 넣고 발도 자세를 취한 붉은 늑대가 하이오우거 전사들에게 검기를 날렸다.
쇄액! 티잉! 티잉!
“크록타르!”
그러나 놈들은 딱히 당황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를 쳐냈다.
“역시 A급 던전은 다르네.”
진원은 무기를 바닥에 내려두고, 와인드업을 했다.
“크아아아!”
놈들은 진원의 괴상한 행동을 보고, 빠르게 돌진해 왔다.
무기를 버린 그 행동은, 자신들에게 있어서 공격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흐읍!”
하이 오우거 전사들은 검은 공 하나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와 검을 들어 쳐 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공에서 송곳 모양의 날카로운 물체들이 빗발쳤다.
드드드드드.
“크아아악!”
“크로오옥!”
놈들은 마구 : 칼날 폭풍에 대응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온몸이 꿰뚫리며 쓰러졌다.
띠링.
[하이오우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하이오우거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765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겨우 이 정도 잡았는데 레벨이 오르다니, 역시 A급 던전.’
거기다가 경험치를 자신 혼자 독식하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크아아아!”
“크로오옥!”
뒤에 빠져 있던 놈들은, 저마다 든 무기로 투창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진원은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뻔하지.’
* * *
×킨 도너츠의 가게 안. 김수환은 딸의 병문안을 가기전, 항상 먹을 것을 포장해 갔다.
“어서 오세요.”
“여기 딸기 맛 도넛이랑 초코 맛 도넛 3개씩 주십시오.”
“스트로베리즈드랑 초코 크런치 말씀이시죠? 포장해 가실 건가요?”
“예.”
그는 계산을 마치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가게가 병원이랑 가까이 붙어 있어서 굳이 스킬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간단히 면회 신청을 하고, 병실 유리 너머로 자신의 딸, 김수진의 상태를 관찰했다.
딸은 TV에서 방영하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오늘은 다행히 좋아 보이는군.’
그는 하루에 20만 원 이상의 돈이 나가는 1인실을 고집했다.
조금이라도 딸이 편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해 주고 싶었다.
“우리 딸, 아빠가 맛있는 거 사 왔어요.”
“어? 아빠아!”
딸은 병실 문을 활짝 열고 활기차게 들어오는 아빠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도넛 사 왔지.”
“우와! 새로 나온 딸기 맛이다! 지금 먹어도 돼?”
“당연하지. 천천히 먹어야 한다.”
“응!”
수진은 신난 표정으로 딸기 맛 도넛을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김수환은 그런 딸의 입가를 닦아 주며 웃었다.
“아빠……. 나 갑자기 아퍼…….”
그런데 도넛을 우물거리던 딸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응? 아프니? 아빠가 빨리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 조금만 참아.”
끄덕.
김수환은 서둘러 호출 벨을 눌러, 간호사를 부르고 병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사를 데려왔다.
“아버님, 아무래도 이제 슬슬…… 전에 말씀드린 진통제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어엉…… 아파요…….”
원인불명의 흉통. 그것이 의사가 딸에게 내린 진단이었다.
어떤 병원을 다녀도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기가 어려워, 가장 시설이 좋은 병원에 입원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전에 비싼 돈을 내고 프리스트에게 치유스킬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자신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가며 10억이 넘는 비용을 지불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의사가 권한 진통제. 딸이 아픈 것이 사라진다면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 아직 수진이는 아홉 살이다.’
강한 통증에 사용한다는 마약성 진통제. 당연히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는 약물이었고, 어린 딸에게는 더욱 큰 부담이 될 것이었다.
“아빠아, 허엉…… 나 너무 아파아.”
“큭.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김수환은 통증에 몸부림치는 딸의 작은 손을 꼭 잡아 주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 *
하이오우거 전사들은 진원이 아닌, 구석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노렸다.
“어? 어어?”
“꺄악!”
쉬이익!
저마다 힘을 실어 던전 창이나 검들은, 날카롭게 학생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미리 뒤쪽에 배치해 둔 메시아가 가볍게 놈들의 원거리 공격을 막아 냈다.
“애초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고 있으면 모를 수가 없지.”
“크록…… 타르.”
자신들이 온 힘을 실어 던진 공격이 허무하게 막히자, 놈들은 당황하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무장하고 있던 무기를 사용해 버렸으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애들이 있었지.’
익숙한 동작으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집어 들고, 놈들을 향해 달려들려던 진원은 뒤로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잠시 눈 좀 감고 있어. 지금부터 얘들 머리 좀 깨야 하거든.”
그 말에 여학생들은 눈을 질끈 감았고, 남학생들은 오히려 흥미가 생겼는지 눈을 크게 떴다.
‘너희들은 도와주지 말고 가만히 있어.’
‘분부대로.’
현재 남은 하이오우거들은 6마리. A급 던전에서 자신의 힘이 얼마나 통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야, 쟤들은 관여 안 할 거니까 덤벼 봐라. 너희들이 머릿수도 더 많잖아?”
그리고 덤벼 보라는 듯이 놈들을 향해 도발했다. 그러나 효과가 별로 없는 듯해 땅에 쓰러진 하이오우거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들기도 했다.
“크아아!”
“크록타르!”
그러자 놈들이 못 참겠다는 듯 자세를 낮추고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와라.”
그로부터 진원과 하이오우거들의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가까운 놈에게 달려들어, 망치로 놈의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빠악!
“크아악!”
머리를 얻어맞은 놈은 스턴 효과가 발생했는지 그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그대로 그 옆에 있던 놈의 복부를 망치로 힘껏 타격하고, 다른 한 놈은 발을 들고 힘껏 밀어냈다.
“크록타르!”
“크아아!”
놈들은 진원의 공격에 잠시 주춤했지만, 금방 자세를 회복하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리 큰 대미지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공격은 통하는 것 같은데……. 장비가 문제인가.’
빠악! 퍼억! 빠각!
‘이 자식들 왜 이렇게 튼튼해? 내 팔이 다 아프네.’
그 뒤로 쉴 틈 없이 이어진 난타전. 진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히 머릿수가 많은 하이오우거들에게 공격을 조금씩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웬만한 물리 공격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에게 주먹질을 해 댔다.
“후우, 얘들아, 이제 처리해라.”
“분부대로.”
“예!”
“키긱!”
진원은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대로 뒤로 빠졌다.
두두두두. 서걱. 화르륵!
“크록타르!”
“크아아악!”
놈들은 소환수들의 공격에 맥도 못 추고 쓰러져 나갔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붉은 늑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확실히 튼튼하긴 하네.”
방금 것으로 A급 던전은 자신의 단순한 물리 공격으로는 클리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을 죽이기 전에 아이템의 내구도가 먼저 다 닳겠다.’
자신의 힘에 대해 살짝 실망감을 가지고 망치를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원은 하이오우거가 물리 공격에 대한 피해 감소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우와, 저 형님 대단하시네. 하이오우거들한테 전혀 안 꿀리잖아?”
“그러게. S급 플레이어라고 해도 A급 던전은 혼자서 클리어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상황이 종료되자 진원은 뒤쪽에 빠져 있던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몬스터들을 잡을 때 방금처럼 잘 숨어 있으면 된다. 특히 보스는 어떤 특수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더욱 잘 숨어야 해. 알겠지?”
아무렇지 않게 하이오우거들의 피를 뒤집어쓰고 말하는 진원의 모습에 학생들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빠 혼자서 정말 괜찮겠어요?”
그 와중에 손하윤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자신을 향해 물어왔다.
물론 진원의 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이오우거들은 보통 A급에서 B급 플레이어들 3명이상이 붙어 연계를 해야 처치가 가능한 몬스터였다.
그런데 10마리나 되는 하이오우거들을 혼자서 가뿐하게 처치해 버렸으니.
“그래. 아마 이 정도면 그리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것 같다. 너희들은 꼭 내가 책임지고 던전에서 나가게 해 줄게.”
그러나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