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그림자-1
최은식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신도훈을 향해 스킬 : 쉴드 대쉬를 사용했다.
“합!”
터엉!
방패를 들고 자세를 낮춘 뒤, 그대로 체중을 실어 신도훈을 멀리 밀쳐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방패를 들고 밀쳐내는 행동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당했다.
‘오. 꽤나 하잖아.’
“꺽…… 웨엑!”
위력을 상당히 줄였는데도, 바닥을 몇 번 구르던 신도훈이 그대로 구역질을 해 댔으니.
‘끝났네.’
“끄…… 아…….”
신도훈은 기를 쓰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 듯했다.
“그만. 거기까지 하시고. 최은식이 이긴 걸로 하겠습니다. 괜찮죠?”
진원이 송윤재를 쳐다보며 말하자, 그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믿고 나댄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식으로는 D급 던전도 버거울 겁니다. 약속대로 오늘 중으로 자퇴는 해 주시고요. 저쪽이 아직 정신 못 차리는 것 같으니, 송윤재 씨가 잘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송윤재는 그 뒤로 아무렇지 않게 점심 메뉴를 의논하며 대련장을 나서는 둘을 멍하니 쳐다봤다.
* * *
대천사 길드의 건물 안.
이연우는 사무실 안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흠…….”
스스슥-
그의 눈앞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연우가 보고서를 서랍 안으로 넣자 그림자 밑에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이곳에 오셨다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구하지 못하셨다는 거네요. 김수환 씨.”
“…….”
“뭐, 저로서는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좋죠. 당신은 괜찮은 능력을 가졌으니.”
“엘릭서가 필요하다.”
씨익.
이연우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엘릭서는 상당히 귀하죠. 물론 저희가 힘을 좀 쓴다면 찾을 수야 있긴 하겠는데……”
“원하는 것이 뭐지?”
“역시, 말이 잘 통하시는군요. 이 이야기는 당신의 성과를 보고 계속하도록 하죠.”
그는 이어서 김수환에게 지시를 내렸고, 김수환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그림자 밑으로 사라졌다.
“좀 쓸모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물론 엘릭서를 구해 줄 생각은 없지만.”
* * *
“크워어어어!”
띠링.
[보스 : 오우거 킹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붉은 늑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이템 : 오우거의 질긴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62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 S
추가 보상: 상급 마정석 1개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오. 랭크 S는 상급 마정석을 주네.”
그 뒤로 진원은 4일 동안, B급 던전을 공략했다.
던전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포탈의 개수가 적어져 플레이어 간의 눈치 싸움이 상당했다.
‘이제는 던전도 경매식으로 경쟁해야 하니.’
그래도 방금 것으로 B급 던전을 총 네 번 클리어했으니, 이제 A급 던전 한 번만 클리어하면 길드 창설이 가능해진다.
“형, 이제 A급 한 번 남았네요.”
“그래. 그래도 A급이니까 대비를 어느 정도 해 가야겠지.”
자신이 최은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은지희가 불쑥 나타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빠,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부탁이 있는데요.”
“안 돼.”
“아직 말 안 했어요!”
“뻔하지. A급 던전에 데려가 달라고 하는 거 아냐?”
“어……. 안될까요?”
“절대 안 돼.”
그녀는 진원의 단호한 거절에 어떻게든 방법이 없나 생각하다가, 옆에 있던 최은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쟤, 쟤도 가잖아요! 저랑 같은 C급인데! 왜 쟤는 되고 저는 안 되는데요?”
“그럼 200억 줄래?”
“……네?”
은지희는 진원의 입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이 나오자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저놈은 200억 내고 나랑 계약을 했거든. 그래서 200억 주고 갈래?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래?”
“……돌아갈게요.”
“훗.”
그녀는 포기하고 등을 돌리려 했지만, 최은식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자 언성을 높였다.
“뭐야? 200억 내고 던전 클리어하는 것이 자랑이야?”
“성격 좋은 형 아니었으면 그쪽은 자기 소개서에서 그냥 탈락이거든요?”
“뭐야?”
‘아, 이놈들 또 시작이네.’
진원은 싸우는 둘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바로 가면 얼추 맞겠네.’
그 뒤로 택시를 불러 진원이 향한 곳은 E급 포탈이었다.
오늘은 플레이어학과 던전 실습이 있는 날이라,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참여를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E급 던전에 S급 플레이어라. 과하긴 하지.’
현장에 도착하니, 상당히 많은 인원수의 학생들이 정렬해 있었다.
아무래도 던전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들 들뜬 기색이었다.
“자자, 다들 조용! 아, 진원 씨. 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앞쪽에서 학생들을 통솔하던 젊은 교수는 진원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자, 오늘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S급 플레이어인 김진원 씨가 오셨습니다.”
“와아아아!”
“오빠, 멋져요!”
“잘생겼어요!”
당연히 학생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고, 엄청난 함성이 현장 안을 채웠다.
“조용! 오늘은 E급 던전을 실습하는 날입니다. 던전 안의 변수는 항상 생각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목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와, 쟤가 왜 저기 있어?’
협회장의 손녀, 손하윤이 자신에게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분명히 입학식 때는 없었는데. 설마…….’
신도훈이 자퇴를 하고, 그 자리에 쟤가 들어오게 된 건가?
“손하윤! 아무리 A등급을 받았어도 경험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고 했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녀는 교수하게 혼나면서도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A등급이라…….’
확실히 손하윤의 스킬들은 활용만 잘하면 괜찮은 느낌이긴 했다.
“자, 그럼 진원 씨. 다양한 던전, 특히 위장 포탈까지 클리어하신 플레이어로서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되도록 따끔하게.”
그 말에, 학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다.
진원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E급 던전을 실습한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던전은 항상 변수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저는 예전에 E급 던전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말에, 학생들이 긴장했는지 소란스럽던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혹시라도 던전 안에서 포탈을 발견했으면, 절대로 건드리지 마세요. E급 던전은 그것만 주의하면 충분합니다.”
“자, 진원 씨 말씀 잘 들었죠? 그럼 조를 편성해서 입장을 하겠습니다. 왼편에 있는 포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네!”
자신이 와 있는 현장에는 두 개의 포탈이 동시에 열려 있었는데, 한쪽은 A급 던전이었고, 다른 한쪽이 E급 던전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만 안 일어나면 별문제는 없겠네.’
실습 방식은 자신이 선두, 뒤에 학생 9명. 총 10명의 인원이 던전에 들어간다.
E급 던전은 보통 4명이서 파티를 짜 클리어한다.
그러나 학과의 인원수가 많기도 했고, 혹시나 있을 변수에 대비하게 위해서 자신을 선두로 세운 듯했다.
‘하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학교에 안 좋은 이미지가 박힐 테니.’
조를 편성하고, 자신이 선두로 던전에 입장하려 했을 때,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야, 밑에! 발밑에!”
“뭐라고? 악! X발! 뭐야?”
“아악! 도와주세요!”
대열의 뒤쪽에 있던 남학생 두 명이 발밑에서 솟아난 그림자에 발목을 잡혀 거꾸로 매달렸다.
학생들은 당황해 현장에서 멀어지기 바빴고, 그 사이 그림자는 학생들을 왼쪽의 포탈을 향해 던졌다.
홱!
“으아아아!”
“붉은 늑대, 1명을 받아!”
“분부대로.”
진원은 빠르게 달려가 날아오는 학생을 받았고, 나머지 1명 역시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여유롭게 받아 냈다.
“후우…….”
왼쪽의 포탈은 A급 던전이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던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상황. 아슬아슬했다.
스스슥-
그러나 그 사이 그림자가 송곳 모양으로 변해 자신이 받아 낸 학생들을 향해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고, 진원은 등을 돌려 그림자의 공격을 대신 맞아 줄 수밖에 없었다.
푸욱!
“크…… 제길.”
고통이야 잠깐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주군!”
그러나 잠시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림자는 뒤편에 빠져 있던 여학생 1명과 손하윤의 발목을 휘감고 자신을 향해 던졌다.
휘익!
“꺄아아악!”
“진원 오빠아아!”
추가적으로 날아온 2명의 학생을 받느라 중심이 무너진 진원은, 결국 포탈 안으로 삼켜지듯이 들어갔다.
스스스스-
그림자는 그 뒤로 땅에 스며들며 감쪽같이 없어졌다.
“다들 진정하세요! 감시원님, 빨리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
“아, 예!”
교수는 혹시나 학생들이 추가적으로 그림자에 의해 사라지진 않았는지 빠르게 인원 점검을 했다.
‘진원 씨가 같이 들어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러나 A급 던전은 S급 플레이어가 혼자서 클리어할 만큼 만만한 던전은 아니었다.
A급에서 B급의 숙련된 플레이어가 최소 15명 이상이 필요했고, 직업 간의 조합도 잘 맞춰야 했으니.
거기다 김진원은 장비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은 듯했다.
‘프리스트가 없는 건 큰 약점이 될 텐데.’
교수는 학생들을 현장에서 돌려보내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A급 포탈을 쳐다보곤 했다.
* * *
“허어엉…….”
“으으…….”
뜻하지 않게 A급 던전에 들어가게 된 학생들은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여학생 중 1명은 땅에 주저앉아 울기까지 했다.
본래라면 다그쳐서라도 멈추게 해야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으며, 아직 E급 던전조차 경험이 없는 학생들인데 A급 던전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아까 그 그림자, 분명히 플레이어다.’
사전에 계획한 듯한 철저한 움직임이었다. 몬스터들은 보통 사람들을 보면 죽이려고 달려드니.
‘도대체 놈의 목적이 뭐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던전으로 유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괜찮아, 진원 오빠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A급이야. 그만 울어. 뚝!”
“흐윽…….”
그 와중에 손하윤이 자신의 동기들을 달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던전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긴장된 기색은 없었다.
“얘들아, 혼란스럽겠지만 잘 들어. 내말을 잘 들어야 살아나갈 확률이 올라가. 알겠지?”
끄덕. 끄덕.
“여기는 그나마 동굴형 던전이야. 가장 흔하게 나오는 맵이니까 최대한 떨어지지 말고 붙어 다녀. 알겠지?”
“네…….”
그러나 대비를 확실하게 해야 했다. A급 던전이기도 하고, 학생들을 지키면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메시아, 있어?”
[응. 있어.]
“지금은 졸려?”
[잠에서 방금 깼어.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그리고 피가 필요해.]
“그래.”
진원이 익숙하게 한쪽 팔을 앞으로 뻗자, 메시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피를 빨기 시작했다.
“얘는 메시아. 같은 편이니까 괜찮아.”
그녀에게 피를 주는 도중, 붉은 늑대가 몬스터의 기척을 감지했는지 신호를 보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