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서울대학교-3
“이렇게까지 해 주신다니 입학은 하겠는데, 원래 서울대학교는 학교에서 1등하는 범생이들이 가는 학교 아닌가요?”
진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자 총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허허헛! 플레이어학과에 한해서는 김진원 씨, 당신이 항상 1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올라가서 서류 작성을 하시죠.”
총장은 진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함으로서 생기는 메리트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해 주었다.
“서울대 출신의 S급 플레이어. 그리고 동생분도 서울대생. 좋지 않습니까? 마치 명문 집안을 보는 것 같군요. 허허허!”
서류를 작성하던 진원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으면, 난 여전히 백수였겠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몽과 같았겠지만, 자신에 한해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서류 작성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총장이 기쁜 듯이 입을 열었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진원 씨. 입학식은 4일 뒤입니다.”
“4일 뒤라고요?”
그렇게 빨리?
“정부에서 최대한 빨리 진행해 달라고 압박을 넣어서 말이죠. 허허! 내일부터 서류 접수 기간. 그리고 나머지 2일 동안 실기 시험을 치르고, 그날 합격 인원을 가려낸 뒤 바로 다음 날 입학식을 할 겁니다.”
다른 학과의 입학식은 100일 이상이 남았지만, 플레이어학과만 따로 입학식을 진행한다나.
‘그만큼 급하다는 건가.’
“일단 알겠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납득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좋구나! 좋아! 으윽! 내 허리.”
총장은 마치 중요한 계약을 따낸 신입 사원처럼 신나게 몸을 움직였다.
진원을 입학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 훨씬 빵빵해질 것이며, 혹시라도 학교에 몬스터들이 습격한다면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깟 작은 공 하나로 데려올 수 있는 것이 어디냐. 허헛!”
* * *
진원이 이번에 새로 신설하는 학과에 입학한다는 기사가 퍼져 나가자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던 플레이어학과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렸다.
서류 접수 시간은 10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지만, 한꺼번에 많은 접속자가 몰리는 바람에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그만큼 S급 플레이어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오빠, 오늘 입학식이라며?”
“어. 왜?”
“넥타이 좀 단정하게 해야지! 이리 좀 와 봐.”
“뭐야. 이 정도면 괜찮은데?”
“아, 뭐가 괜찮아! 완전 삐뚤거든?”
동생 지원은 자신의 정장차림을 보고 한숨을 쉬며 넥타이를 고쳐 주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한테 돈 보내 주고 있었다면서?”
“응? 그렇지 뭐.”
“어제 연락 왔었는데, 이제 빚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셔. 오빠가 서울대 간다고 하니까 놀라서 소리를 지르시더라니까.”
동생은 부모님과의 통화가 생각났는지 피식 웃었다.
“……공부 잘해서 간 거 아닌데.”
“뭐 어때. 어찌 됐든 오늘부터 서울대생인데.”
“그래.”
진원은 그대로 등을 돌려 집을 나가려다, 뭔가 생각났는지 동생에게 말했다.
“부모님은 당분간 해외에서 계속 쉬시라고 해.”
“응? 왜?”
“아무래도 거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여기는 최근에 몬스터도 나왔고.”
해외라고 해서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부모님이 현재 계시는 미국은 몬스터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음…… 그렇네. 알았어. 나 이제 학교 간다.”
동생이 현관문을 나서자, 자연스럽게 그 뒤를 경호원들이 따라붙었다.
그 뒤로 진원은 택시를 타고, 시간을 확인하며 서울대학교로 향했다.
끼익.
“아, 왜 나만 일찍 나와야 되냐.”
택시에서 내린 진원은 불만스러운 듯이 툴툴댔다.
자신은 입학식 30분 전부터 나와서, 예행연습을 해야 한단다.
신입생 대표이기도 하고, 유명한 연예인과 대통령까지 온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혀엉!”
그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최은식이 기다렸다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응? 뭐야. 넌 또 왜 왔냐.”
“그거야 당연히 서울대 플레이어학과 수석으로 입학하신 신입생 대표…….”
“야야, 됐다. 그만해라.”
진원은 그 말에 손사래를 치며 최은식의 말을 끊었다.
“어서 가요, 형. 저는 맨 앞줄 VIP석으로 예약해 뒀습니다.”
“……입학식인데 그런 거도 있냐?”
“특별하니까요.”
진원은 한숨을 내쉬며 강당으로 향했고, 최은식은 실실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 후로 진원이 강당 안에서 예행연습을 하는 동안, 듬성듬성했던 자리는 어느새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차게 되었다.
‘1층 앞에는 유명 인사들. 뒤에는 기자. 2층에는 방문객들인가.’
“지금부터 제1회 서울대학교 플레이어학과의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일어나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익숙하게 진행을 시작했다.
“먼저, 업무로 바쁘신 와중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문명호 대통령님.”
짝짝짝짝.
그 말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빈 소개.
정치인들, 연예인들, 또는 A급이나 B급 플레이어들. 그중에서도 연예인의 인기는 대단했는지, 모두가 환호성을 질러 댔다.
그러나 진원이 신입생 대표 인사를 하기 위해 강단에 올라가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환호가 터졌다.
와아아아! 꺄아아악! 휘익!
‘뭐지.’
진원은 학생들의 엄청난 박력에 순간 움찔했지만, 곧 대본도 없이 자연스럽게 인사말을 이어 나갔다.
‘선서. 하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의 학생으로서…….’
“선서! 하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서울대학교의 학생으로서…….”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구석에서 대본을 들고 자신에게 미리 알려 주고 있었다.
‘굳이 외울 필요는 없지. 안 외우고도 잘할 수 있거든.’
입학식은 10시쯤 되어서 끝이 났지만,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인들이 자신에게 계속 다가오는 바람에 11시가 훌쩍 지나서야 강당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혀엉, 밥 먹으러 가요! 제가 형 입학 기념으로 쏘겠습니다!”
“그래. 밥 먹고 바로 던전으로 가자. 당분간은 학교 안 와도 되니까.”
그때, 몇몇 남성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뭔가 싶어 등을 올리자, 이전에 앞자리에서 인사했던 B급 플레이어 2명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진원 씨. 오늘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B급 판정을 받은 신도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송윤재입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인 듯했다.
“얘는 아는 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C급 플레이어입니다.”
자신의 말에 최은식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했다.
“아, 그쪽은 별 관심 없습니다. 그것보다 저희랑 식사라도 어떠신가요? 고급 코스 요리를 예약해 두었는데.”
신도훈은 최은식을 관심 없다는 듯이 흘겨보고, 진원에게 식사를 권했다.
“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왜 그래? 죄송합니다. 얘가 성격이 좀 이래서요.”
“뭐가? 상대할 가치가 있어야 해 주지.”
옆에 있던 송윤재는 그런 신도훈을 말렸지만, 정작 본인은 가볍게 흘려 넘겼다.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네.’
자신의 경험으로 보면, 꼭 저렇게 자기가 잘난 줄 아는 놈들이 꼭 던전에서 죽곤 했었다.
‘위장 포탈에서 신성 기사였나? 누구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그러나 최은식은 아무렇지 않게 신도훈을 향해 질문했다.
“던전 클리어 경험은 있으세요?”
“클리어 경험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쪽보다는 B급인 제가 더 낫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던전 클리어 경험이 있으면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진짜인 듯했다.
옆에 있던 송윤재 또한 경험이 없었으니.
‘나만 예외인가.’
일부러 백지 상태의 플레이어들만 골라서 뽑은 듯한 총장의 의도가 느껴졌다.
최은식은 분위기가 가열되기 전, 입을 열어 신도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진짜로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볼 땐 저에게 5분도 못 버틸 것 같은데.”
“5분? 고작 던전 클리어 좀 해 봤다고 C급에게요? 제가?”
최은식의 말에 신도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소를 지었다.
“자신 있으시면 가볍게 대련이라도 해 보시죠. 은식아, 괜찮지?”
“물론이죠, 형!”
진원의 말에 최은식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
“……다쳐도 책임 못 집니다.”
* * *
그 뒤로 4명은 곧바로 플레이어 대련실로 향했다.
최은식은 평소 같으면 적당히 넘겼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을 도발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흠. 신도훈이 좀 싸가지가 없긴 했지. 그런데 뭘 믿고 저렇게 나대는 거지?’
고작 B급인데? 거기다 던전 클리어 경험이 없다는 것은 레벨도 낮을 것이고, 직업조차 없을 확률이 높다.
물론 B급과 C급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동실력이라는 가정하에 신도훈이 가볍게 이기지 않을까.
그만큼 기초 능력치 차이가 나니.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를 하나 하죠. 그쪽이 지면 서울대학교 자퇴하는 걸로.”
“……·네?”
갑작스럽게 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세 명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신 없어요? 물론 최은식이 지면 쟤가 가지고 있는 방패, 그대로 그쪽에게 드리죠. 유니크 아이템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제 쪽에서도 아이템 하나를 추가로 드리죠.”
“…….”
진원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가니, 신도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게 왜 나대냐, 도훈아.’
최은식이 던전에서 구른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거기다가 퍼펙트 쉴더라는 직업도 가지고 있고. 저런 초보에게 질 확률은 매우 낮다는 소리다.
“준비 다 되셨으면 빨리 끝내죠.”
진원의 말에 얇은 가죽으로 만든 장비를 걸친 신도훈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저기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저 레벨 30이 넘어요.”
최은식은 사복을 입은 채로 방패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도훈을 더욱 열 받게 만들었다.
“우쭐대지 마라!”
진원이 시작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그는 땅을 박차고 최은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흥. 내가 괜히 B급을 받은 줄 아나?’
그가 최은식에게 거만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플레이어가 되면서 가지고 시작한 스킬 : 핵주먹 펀치 때문이었다.
주먹으로 대상을 타격 시 1퍼센트의 확률로 10배의 대미지를 입히는 스킬.
‘한 번만 터지면 놈은 그대로 쓰러진다.’
“하압!”
그러나 그가 휘두른 주먹은 딱딱한 배리어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퍼펙트 쉴드!”
팅!
‘……설마 탱커였나? 그래 봐야 C급이지!’
팅! 팅! 팅!
시간이 지날수록 신도훈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지만, 최은식은 평온했다.
“이제 그만하시죠?”
“이익!”
팅! 팅! 콰앙!
신도훈은 최은식의 말에 더욱 기를 쓰고 배리어를 향해 주먹질을 해댔다.
‘터졌다! 이제 넌 죽었다.’
운이 좋았는지, 핵주먹 펀치의 효과가 빠르게 발생해 배리어가 부서졌다.
그러나 그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배리어를 부순 것이 아니라 최은식이 일부러 스킬을 해제한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