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서울대학교-2
평범한 원룸의 방 안. 3평 정도 될까 말까 한 좁은 크기의 방에서 포탈이 생성되었고, 남성 1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책상에 올려 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대략 6개월인가…….”
그는 아일랜드에서 특수한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다.
어디까지나 들리는 소문만 믿고 말이다.
“음……. 역시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머리에 뿌연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템을 하나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했지. 그것은 기억이 나는군.”
바지의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작은 호리병이 하나 튀어나왔다.
“……망할.”
아일랜드 입장 티켓을 구하는 데만 100억이 넘는 돈이 나갔는데, 볼품없어 보이는 호리병 하나만 가지고 돌아오다니.
그러나 그의 험악한 표정은, 걸려온 전화 소리에 금세 사라지게 되었다.
[아빠~ 전화 받으세요. 아빠~ 전화 받아요.]
“우리 딸! 아빠가 많이 늦었지? 정말 미안해요.”
남성은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얼굴에 동전 모양의 화상 자국까지 있고 날카로운 인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지만, 딸에게만큼은 천사나 다름없었다.
- 아빠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나 치료받느라 많이 아팠단 말이야!
“아이고, 그랬어요? 해외에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랬지. 아빠가 미안해. 몸은 좀 괜찮니?”
- 응! 의사 선생님이 나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맘껏 먹어도 된댔어! 오늘 나 보러 올 거지?
“당연하지. 아빠가 우리 수진이 좋아하는 도너츠 잔뜩 사 가지고 갈게.”
- 우와, 아빠 최고! 빨리 와야 돼!
간단하게 통화를 끝낸 남성은, 오른손을 불끈 움켜쥐었다.
“후우……. 이젠 어떻게든 엘릭서를 구해야 한다.”
2년 전부터 원인 모를 병으로 입원 중인 자신의 딸.
온갖 치료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나날이 상태만 악화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것이 엘릭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매물은 2개가 남아 있었고, 가격은 대략 600억 원이었는데…….
“젠장! 더러운 짓까지 해 가며 악착같이 모았는데!”
자신이 돈을 다 모으기도 전에 엘릭서는 팔려 버렸고, 감쪽같이 흔적을 감추게 되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자신이 빨간색으로 크게 적어 놓은 글귀를 응시했다.
마지막 수단 : 대천사 길드
“후우, 이제는 정말 이것밖에 없나.”
믿었던 아일랜드에서도 별 수확은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딸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손에 피를 묻히겠다.”
그 말을 끝으로, 중년의 남성은 그림자 안으로 사라졌다.
* * *
“크르렁! 크르렁! 커어어!”
“허, 이놈 잠버릇은 여전하네.”
진원은 자신의 침대에서 사납게 코를 고는 영호를 질린 듯이 쳐다보고,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향했다.
“나도 분명히 술이 약했을 텐데, 멀쩡하네.”
이것도 플레이어가 된 탓일까.
그 뒤로 둘은 소란스러워진 카페를 나가 적당한 삼겹살집으로 가서, 소주를 마셔 댔다.
술 좀 같이 마시자는 영호 놈 때문에 상당한 양의 술을 마셨지만, 취기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놈은 적응하나는 빠르다니까.”
영호가 자신이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S등급을 받게 된 것을 알자, 처음에는 살짝 놀랐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 뒤로 평상시처럼 자신을 거리낌 없이 대했으니.
“어? 큰일 났다. 나 빨리 가 봐야 돼.”
“응? 일어났냐?”
코를 골던 영호는 잠시 눈을 떴고,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빠르게 몸을 일으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택시 좀 불러 주라. 어우.”
“얌마, 그러게 술도 약한 놈이 뭘 그렇게 마셔 대고 그랬냐?”
“너무 오랜만이라 그랬지. 어쨌든 나 이제 간다!”
“그래. 나중에 경기 잡히면 말하고.”
영호가 급하게 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던전을 가기 위해 최은식에게 연락을 하려 했다.
띠리리. 띠리리.
그러나 그전에 귀신같이 협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협회장? 무슨 일이지.”
악마나 대천사 길드에 대한 정보인 줄 알고 받았으나, 의외의 내용이 들려왔다.
- 안녕하십니까, 진원 씨! 오늘은 다름이 아니고, 서울대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말입니다!
“……·네?”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졸인 자신에게 명문대학교가? 왜?
- 허허! 제가 사실 서울대 총장하고 가까운 사이거든요! 이놈이 글쎄, 이번에 신설되는 학과에 진원 씨를 꼭 입학시키고 싶다지 뭡니까! 허허허!
“……저 공부 못 하는데요. 대학교를 갈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은 고졸이며, 운동만 하던 운동부였다.
수업시간에 뒤에서 자빠져 자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대학교, 그것도 서울대학교라니.
- 진원 씨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동생분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거야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거랑 제가 입학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가요?”
-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총장을 만나 보시죠. 그놈 말로는 절대 후회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합니다. 허허!
“흐음…….”
보통 같으면 칼같이 거절했을 텐데, 동생 얘기가 나오니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일단 가 보기만 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 * *
진원이 학교로 가니, 마치 자신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로 그들은 친절하게 자신을 총장실로 안내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진원 씨. 급하게 말씀드린 건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앉으시죠.”
“네.”
환한 얼굴로 맞이해 준 장년의 총장이 직접 자신에게 커피를 내왔다.
“저를 입학시키고 싶다니 무슨 말이십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이번에 신설되는 플레이어학과에 진원 씨를 꼭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플레이어학과?”
총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플레이어들을 전문적으로 육성시키고,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강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국민들은 두려움에 밤길도 제대로 못 다니고 있죠. 던전 브레이크 그 이상의 현상이 언제 또 발생할지 알 수 없습니다.”
총장은 서류를 하나, 진원에게 내밀었다.
“플레이어학과는 이번에 신설되는 학과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불안한 점이 많겠지요. 그래서 S급 플레이어인 진원 씨를 데려온다면, 좀 더 안정적으로 학과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그렇군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체계적으로 훈련 과정을 거쳐 던전에 들어간다면, 그만큼 플레이어들의 생존율도 높아지겠지.
이어지는 총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도 하니까.
“원하신다면 교수 자리도 드릴 수 있습니다.”
진원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교수 자리까지 주겠다는 말이 나왔다.
“아니, 저는 남을 가르치는 것은 별로 못 합니다. 그리고 굳이 대학교에 입학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맞는 말이었다. 이미 자신은 S급이었으며, B급 던전 정도는 혼자서 가뿐하게 클리어할 실력이었으니까.
“물론 그렇죠. 그렇기에 말씀드리는 것이, 진원 씨의 여동생분, 김지원…… 이라고 했던가요. 협회장에게 미리 말을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총장의 말을 듣고, 진원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서 졸업을 한다면…… 동생을 서울대학교에 입학시켜 주겠다니.’
“당연히 불법적으로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사되려면, 진원 씨가 여기서 졸업을 해 줘야 합니다.”
그 말에 진원은 가만히 턱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총장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기다려 주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대학교를 다니게 되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에 지장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계획도 있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합니다. 중요한 행사, 또는 던전에서 실전 연습을 하는 날 정도만 나와 주시면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진원이 여전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총장은 추가적으로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했다.
“진원 씨와 나중에 입학하게 될 김지원 씨, 둘 다 전액 학비 면제는 물론이며 진원 씨가 졸업하는 날, 레전더리 아이템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레전더리라고요?”
유니크 등급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아이템. 레전더리 아이템의 가치는 상당하다.
최소 A급 던전 정도는 클리어해야 매우 낮은 확률로 드롭되기 때문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레전더리는 구경도 못 해 봤는데. 거기다가 매물도 별로 없고.’
당연히 믿기 힘든 말이다. 명문대학 총장이라고는 해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도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레전더리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건지.
“당연히 믿기 힘드시겠지요. 눈으로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만, 보시겠습니까?”
보여 주겠다는데 안 볼 이유가 없다. 어떤 아이템인지 상당히 호기심이 일었다.
“물론입니다.”
그의 표정을 관찰하던 총창은 희미하게 웃으며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밑을 더듬고, 버튼을 누르자 책상이 앞으로 움직였다.
우우웅.
책상의 움직임이 멈추자, 바닥에 은색의 철제문이 드러났다.
총장이 몸을 낮춰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추가적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에야 문이 열리고 계단이 나타났다.
‘진짜 레전더리 아이템인가?’
“따라오시죠.”
총장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니, 끝부분에 자그마한 유리 장식장이 세워져 있었다.
“이겁니다. 여기 유리에는 특수한 스킬이 걸려 있지요. 거기다가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들었기에 상당한 강도를 자랑합니다.”
“……이게 레전더리 아이템인가요?”
“그렇죠.”
장식장 안에 있는 것은 작은 공 하나. 탱탱볼보다도 작은 크기의 붉은색 공이었다.
띠링.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스킬이 걸려 있는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되게 애매하네. 저게 진짠지 아닌지 알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명문대 총장이나 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도 않고.’
가만히 아이템을 응시하고 있던 진원에게 총장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플레이어학과에 오신다면 저 아이템은 진원 씨, 당신 겁니다.”
레전더리 아이템은 기본가가 800억이 넘는다.
그만큼 구하기 어렵고, 성능이 뛰어난 아이템들뿐이었다.
눈앞의 이 아이템을 처리한 돈으로 학과를 발전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긴 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끝이 있는 법이지.’
그러나 그는 돈보다 S급 플레이어를 택했고, 그중에서도 김진원을 선택했다.
당연히 수차례 회의를 거쳤고, 엄청난 반대에 맞서야 했다.
“아니, 총장님, S급 플레이어가 3명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확실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피닉스 길드도 있고, 대천사 길드도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아, 대천사 길드에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것을 모르나?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 우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도 김진원은 새내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사람한테 레전더리 아이템을 건네주겠다니…….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릴! 첫걸음부터 시작하는데, 당연히 젊을수록 좋은 법이지.’
총장이 이전에 직원들과 있었던 회의를 회상하고 있자, 진원이 결심을 내린 듯 그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