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서울대학교-1
악마 형상을 한 몬스터가 서울 도심에 출현한 날, 이미 주변이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경찰과 군인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진원과 송현성의 빠른 대응 덕분에 사망 1명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나 싶었지만, 군경의 늦장 대응으로 인해 여론은 뜨겁게 들끓었다.
-이이잉 : 아~ 국민들 세금 열심히 냈는데 일 안 하죠~ 날로 먹는 각이죠? 아시겠어요?
-전설의 폭풍 마니아: 그냥 우리 세금 플레이어들한테 주고 지켜 달라고 하는게 어떰? 그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무서워서 밖에 돌아다니겠음?
한편, 근처에 있던 용기 있는 기자 1명이 카메라로 숨어 영상을 찍었는지, 진원과 악마의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찍혀 뉴스로 퍼져 나갔다.
-전설의 연합 똥망겜 : 와, 씨…… 진짜 미쳤네. 도대체 저 형님은 직업이 뭐임?
-블랙스톤 갓겜 : 원딜러 아니냐? 주위에 사람들은 파티원 아님? 보셈. 혼자만 거리 두고 있는 거.
- 침대 위의 뫠시 : 사무라이 코스프레하고 있는 사람이 파티원이라고? 저 형님은 파티원 인원수만 적당히 채우고 솔플 위주로 던전 도신다던데. 내가 볼 때 소환사류 직업임.
- 우리 아빠 폭풍왕 : ㅇㅇ 리얼임. 이제는 저 형님 파티에 들어가려면 자기소개서 엄청 빡세게 써야 겨우 통과됨. 내가 한번 붙어 봤음. 그냥 뒤에 빠져 있으면 저 형님이 알아서 다 쓸어버림.
“뭐야. 도망 안 가고 숨어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고?”
여론의 주역인 진원은 타이거 길드의 사무실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역시, 기자들의 근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띠링. 띠링.
- 손하윤 : 아, 오빠! 나도 도와줄 수 있었는데!
- 손하윤 : 자기 혼자만 좋은 장면 다 가져가고!
- 손하윤 : 나도 생각보다 강하…….
“하……. 되게 거슬리네. 그만 좀 보내!”
- 김진원 : 아, 그만 좀 보내라. 메시지 알림 때문에 화면이 안 보인다. 한 번만 더 보내면 바로 차단할 거다.
자신이 손하윤에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잠잠해지게 되었다.
‘후우, 조금만 더 빨랐으면, 구할 수 있었을까.’
악마가 서울 한복판을 습격했고, 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나머지 몇 명은 경미한 부상 정도.
뉴스에서 악마는 보통 A급 몬스터로 분류되기에 이 정도 피해면 상당히 잘 막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사망한 1명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악마가 된 것치고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현재 송진호가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조금이라도 빨리 레벨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놈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그리고 송진호보다 더 강한 놈들이 있을 수도 있고.’
이번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협회장에게 전달을 해 두었다.
군인과 경찰, 그리고 플레이어까지 모집해 경비 인력을 늘리겠다는데, 큰 효과는 없을 듯했다.
‘플레이어 자체가 별로 없기도 하고, 저 정도 악마를 막으려면 최소 B급은 돼야 할 텐데. 차라리 던전을 돌지 않을까.’
끼익.
자신이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길드장 신혜장과 최은식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왔냐?”
“아주 그냥 편하게 누워 있네. 여기가 너네 집이야?”
“형, 저한테 주실 게 있다면서요!”
“그래. 앉아 봐.”
진원은 둘을 보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인벤토리에서 랜덤 아이템 박스 두 개를 꺼냈다.
‘마침 딱 두 개가 남아 있었는데, 얘들한테 주면 되겠네.’
그동안 녀석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겠다, 자신도 어느 정도는 돌려주고 싶었다.
“자, 이거 1개씩 가져.”
“이게 뭐야? 랜덤 아이템 박스? 처음 보는 아이템인데?”
“감사합니다, 형!”
신혜진은 박스를 신기한 듯이 돌려 가며 관찰했고, 최은식은 신난 기색으로 바로 상자를 개봉했다.
[아이템 : 하급 기사의 반지]
하급 기사들이 착용하던 구릿빛 반지.
종류 : 장신구
등급 : 노말
효과 : 체력 +5
“뭐야. 생각보다 별로 안 좋은…….”
“무슨 소리예요, 형! 장신구는 매물이 별로 없어요!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흠…… 그래?”
옆에서 그 장면을 보던 신혜진도 궁금함에 바로 상자를 개봉했다.
[아이템 : 하급 마녀의 목걸이]
견습 마녀들이 착용하던 목걸이.
종류 : 장신구
등급 : 노말
효과 : 마력 +5
“흐응……. 괜찮긴 한데, 너 설마 나한테 마음 있는 거야?”
“무슨 소리야. 상자에서 뭐가 나올진 나도 몰라.”
그녀는 자신을 향해 눈을 흘겼지만, 이내 만족한 듯이 목걸이를 바로 착용했다.
“흐음……. 나쁘지 않네. 잘 쓸게. 그런데 이거 때문에 쟤랑 나 부른 거야?”
“아니. 너희들도 봤겠지만, 악마에 대해서 말할 것이 좀 있어서.”
그 뒤로 둘에게 대천사 길드에 대한 정보와 송진호가 악마였다는 사실을 전했다.
“와……. 왠지 재수 없게 생겼다더라니, 송진호였다고? 그럼 던전 브레이크가 아닌 거네?”
“악마라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요?”
“놈은 도망쳤을 거다. 내가 보기엔 그랬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천사 길드를 주시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야.”
“흐응, 대천사 길드 말이지…….”
신혜진 역시 진원이 말해 주기 이전부터 대천사 길드에 대한 소문은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심증이었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 없이 대형 길드와 접촉하는 것은 위험했다.
“좋아. 그런데, 알지? 확실하지 않은 것에 우리 길드원을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타이거 길드의 손실이라는 거.”
“그래.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최대한 들어줄게.”
솔직히 자기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 일반인 1명이 사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으로는 타인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는 동생이나, 야구 선수인 영호, 또는 주변의 가까운 인물들이 재수 없이 휘말리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좋아. 그럼…….”
“뭐야. 겨우 그걸로 되는 거야?”
“응. 아! 쓰다듬는 것도 포함해서.”
그녀가 요구한 조건은 뜻밖이었다. 메시아를 자기 무릎에 앉히고 싶다나.
“메시아, 얘가 맛있는 거 준댄다. 대신 조금만 참아 줘.”
[……알았어. 진원의 부탁이라면 괜찮아.]
자신의 말에 메시아가 나타나 신혜진의 무릎에 올라가 앉았다.
“꺄아, 얘 너무 귀여운 거 아냐?”
그녀는 무릎에 앉은 메시아를 뒤에서 끌어안고 볼을 부볐다.
메시아의 표정에 싫은 티가 또렷했지만, 신혜진이 고급스러운 과자를 뜯어 하나씩 먹여 주니 얌전해졌다.
진원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맞은편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최은식이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형, 저희 이제 B급 던전 세 번에, A급 한 번이면 길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언제 갈까요?”
“응? 그래. 딱히 일도 없고. 오늘 가도 상관없…….”
띠리리. 띠리리.
그때, 전화가 왔다. 누군가 싶어 확인해 보니 영호였다.
“뭐야, 영호네. 잠깐만.”
-야, 너 오늘 시간 되냐? 훈련 끝나고 휴가를 냈거든.
“응? 그래.”
그러고 보니 영호 놈을 안 본 지 꽤나 오래되었다.
‘음, 내가 S급 플레이어인 것은 진작에 들켰을 테고. 뭐부터 설명해야 하나…….’
“은식아, 나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 던전은 나중에 가자.”
자신의 대답에 최은식은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형.”
* * *
깔끔한 분위기의 카페. 스타X스.
상당히 한산한 시간대였지만, 남성 2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빠아, 팬이에요!”
“어떡해! 나 실물로 처음 봤어! 진짜 존잘이야.”
“사인해 달라고 해 볼까?”
대부분 여성 위주로.
“얌마, 너 인기 과시하려고 나 부른 거냐?”
“무슨 소리냐. 저분들 중에 절반 이상이 너 보러 온 거다.”
카페의 2층 창가 쪽에 자리 잡은 두 남성은 진원과 최영호였다.
진원은 영호의 말에 손을 들어 조금 흔들어 보았다.
“꺄악!”
“…….”
“거 봐라.”
영호는 피식 웃으면서 커피를 마시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언제부터 플레이어가 된 거야? 나한테 말이라도 좀 해 주면 덧나냐?”
“뭐……. 그동안 정신없었거든. 이해 좀 해 줘라.”
‘후우. 제멋대로인 것은 여전하네.’
플레이어가 벌이가 좋다고는 하지만, 항상 위험을 안고 있는 극한 직업이다. 그래도 자신에게 한마디라도 해 줬으면 했다.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섭섭하게.’
사실 자신이 야구장에서 한 번 의식을 잃었을 때, 얼핏 눈치는 챘었지만, 전 세계에서 몇 없는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줄이야.
“넌 항상 앞서 나가는 구나.”
“응?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어이, 최영호!”
그의 말을 끊은 것은 덩치 큰 남성 2명.
그들은 영호와 같은 야구복을 입고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영호는 덩치 큰 남성들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인사를 했다.
“안녕은 ×랄. 너 친구 하나 만난다고 급하게 휴가 쓰고 나온 거냐?”
“선배님, 휴가는 제가 훈련 전부터…….”
“×랄 말고 빨리 돌아가라. 신입 새끼가 우리 허락도 안 받고 휴가를 쓴다고? 정신머리가 글러먹었네.”
‘악폐습은 여전하네.’
고등학교나, 프로나 어딜 가든 스포츠 계열의 군기는 항상 존재했다.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좋게 포장한 말일 뿐.
“뒈지기 싫으면 꺼지세요, 아저씨들. 얘랑 말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그것은 당연히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좋은 성적을 냈지만 오히려 선배들에게 욕을 듣곤 했으니.
“뭐? 이 새끼가 미쳤나.”
남성 하나가 주먹을 쥐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멱살을 잡았다.
“컥…… 커걱!”
“주먹부터 쥐고 달려드네. 네가 깡패냐?”
겉보기에도 90킬로는 넘어 보이는 덩치. 진원은 남성을 한 손으로 잡고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이 ×발 놈이!”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다른 남성은 흥분했는지 자신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스윽.
“거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베겠다.”
“히익!”
어느새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달려드는 남성의 목에 칼을 갖다 대었다.
그가 가까이 들이댄 칼끝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야, 앞으로 영호 건들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알겠냐?”
“커…… 아, 알겠습니다!”
진원은 대답을 듣자마자, 그대로 놈의 머리채를 붙잡고 테이블에 박았다.
우지직!
“끄어억!”
목재로 만든 테이블이 힘없이 부서졌고, 덩치 큰 남성은 그대로 바닥에서 기절했다.
“그리고 변상도 해라.”
“네, 네!”
“그리고 빨리 꺼져.”
“죄송합니다!”
붉은 늑대가 칼을 거두자, 남성은 엎어진 놈을 부축해 카페 밖으로 나갔다.
본래 같으면 이 정도로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진원 역시 과거에 당한 것이 많았다.
반쯤은 화풀이인 셈이다.
“……엄청나네.”
그리고 최영호는 그 장면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