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씨앗-3
진원은 메시아의 안내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악마의 옆에는 남성 1명이 피를 잔뜩 흘린 채로 죽어 있었다.
곧바로 순간 가속을 사용해 추가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빨리 도망쳐요!”
“흐윽. 가, 감사합니다.”
여성은 진원의 말에 몸을 일으키고 빠르게 자신의 등 뒤로 달려 나갔다.
“김진원.”
악마는 진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는 것처럼.
그때, 자신의 뒤에 있던 메시아가 악마에게 빠르게 돌진해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크흐흐.”
악마는 두 팔을 교차해 메시아의 공격을 가뿐하게 막아 냈다.
그러나 놈의 발밑 아스팔트가 살짝 파인 것으로 볼 때, 그녀의 공격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 녀석, 강해.]
“송진호, 이 망할 새끼가…….”
“흐흐흐. 나를 알아보겠나?”
놈은 팔을 내리면서 자신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현재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악마는 B급 던전에서 상대한 악마들과는 살짝 달랐다.
저놈의 이마에는, 커다란 뿔이 하나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크크크, 김진원. 네놈만큼은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겠다.”
“재수 없게 생긴 얼굴은 악마가 되니까 더욱 역겨워졌네. 붉은 늑대!”
“맡겨 주십시오!”
진원의 말에 실체화한 붉은 늑대가 지면을 박차고 놈에게 도약했고, 몸을 두 차례 회전시켰다.
검의 피해를 증폭시키기 위해서였다. 메시아는 그사이, 송진호의 뒤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티잉!
“크…….”
놈은 한쪽 팔을 들어 올려 붉은 늑대의 참격을 막아 냈지만, 상당한 충격 때문인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메시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은 그사이 마구를 사용하고, 총잡이의 장갑 도탄 특성으로 놈의 왼쪽 안면을 노렸다.
기기긱. 퍼억! 빠악!
“크아악! 우쭐대지 마라!”
송진호는 상당한 충격을 입었는지 입에서 보라색을 띠는 피를 토해 냈고, 등에 있던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쿠웅!
그 여파로 지면이 움푹 파이며 일대가 조금 흔들렸다.
씨익.
“위로 도망친다고 뭐 될 거 같냐?”
마침 놈은 공중에 떠 있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다 아직 놈은 대미지가 남아 있는 상태!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상황이다.
진원은 공중에 떠있는 악마를 향해 와인드업을 하고, 마구 : 칼날 폭풍을 사용했다.
“흐읍!”
쉬익-
놈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구를 보고 한 손으로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잠시 뒤, 구체에서 자신을 향해 검은색 칼날이 빗발쳤다.
드드드드.
“크아아악! 뭐냐 이건!”
송진호는 상당한 고통에 팔을 교차해 몸을 보호했지만, 칼날 폭풍은 놈의 온몸을 꿰뚫어 나갔다.
“크아아아!”
“메시아!”
자신의 신호에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메시아가 다크 레이를 사용합니다. HP를 300 소모합니다.]
지잉-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얇은 두께의 레이저가 놈의 몸통을 꿰뚫었다.
“크으윽! 김진원, 망할 새끼. 너 때문에 다른 인간들이 죽게 될 거다. 크흐흐!”
그러나 놈은 온몸이 너덜너덜해졌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짙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힘껏 날아갔다,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미친놈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순간 가속을 이미 사용한 자신이 따라잡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얘들아, 저놈을 막아!”
“맡겨만 주십시오!”
[알았어.]
진원의 놈의 행동에 추가적으로 임프와 마도사까지 보냈다.
“제기랄! 안 돼, 늦는다!”
그러나 놈은 이미 허겁지겁 차문을 열고 있던 여성 1명에게 근접했다.
“꺄아악!”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악마를 본 여성은 엄청난 공포감에 머리를 감싸 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크흐흐! 2마리.”
쇄액! 티잉!
“이건…… 뭐냐?”
그러나 놈의 팔이 여성의 몸을 꿰뚫으려는 순간, 황금색의 배리어가 나타나 순식간에 몸을 감싸고 악마의 공격을 막아 주었다.
“버러지 같은 놈. 넌…… 우리 집안의 수치다.”
악마는 가까이 들려오는 말에 시선을 돌렸고, 그 자리에서 살짝 얼어붙었다.
“아,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넌 내 손에 죽어야 될 몬스터다.”
전신을 황금빛 갑옷으로 무장한 남자. S급 플레이어이며 유니크 직업을 보유한 성기사 송현성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크, 크흐흐! 방해하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봐주지 않겠다. 흐흐!”
“이성을 잃은 건가……. 멍청한 놈.”
송현성은 악마에게 스킬 : 심판을 사용했다.
그러자 황금색 배리어가 놈의 몸을 감싸고, 황금빛의 신성력이 배리어 안에서 사납게 튕겨 가며 놈의 전신을 헤집었다.
지잉. 지잉.
“크…… 크아아아아!”
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악마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을 휘청거렸다.
“이제 죽어라.”
“방해하지 마라! 김진원 그놈의 형편없는 꼬라지를 보기 전까지는…….”
“한심하군.”
송현성은 악마를 마무리하기 위해 스킬을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놈의 발밑에서 원 형태의 소환진이 나타났고, 놈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쯧, 놓쳤나.”
송현성은 혀를 차며 바로 현장을 떠나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러나 상당한 기운을 품은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억……. 망할 놈. 송진호는?”
“놈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주군.”
‘그렇군. 이 남자가…….’
한국의 세 번째 S급 플레이어, 김진원.
공식적으로 직업이 밝혀지지 않아 많은 플레이어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동료인가? 그러기엔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의 주위로 사무라이와 금발의 여자애 하나.
여기까지 봤을 때는 뭔가 싶었지만, 뒤에 보이는 악마 형태의 몬스터까지 보니 대략 그의 직업이 예상되었다.
‘네크로맨서…… 는 아니겠군. 소환사인가.’
S급이라면 유니크 직업일 확률이 높았다.
상당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는 지금 당장 현장을 떠나기로 했다.
‘그 악마가 송진호라는 것을 알고 있군. 이 사실이 들키면 피닉스 길드는 끝장이다.’
그는 진원의 입에서 자신의 아들이었던 놈의 이름이 나오자 속으로 당황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저기요. 플레이어이신 것 같은데, 악마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아시나요?”
“나도 잘 모르겠군. 갑자기 놈의 발밑에 소환진이 생기더니,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뒤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다.”
송현성은 빠르게 말을 끝맺고 현장을 떠나려 했지만, 이어지는 진원의 말이 그의 발걸음을 막았다.
“그쪽 분의 아들 아닌가요?”
“뭣…….”
“피닉스 길드의 송진호. 그리고 당신은 길드장 송현성. 맞으시죠?”
그 말에 송현성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자신을 쳐다봤다.
씨익.
그 말에 진원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그거야 대형 길드에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그리고 송진호, 그놈한테는 제가 쌓인 게 좀 많거든요.”
부길드장인 송진호가 악마였다는 사실, 그리고 일반인을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피닉스 길드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원하는 것이…… 뭐지?”
“간단해요. 피닉스 길드 망하게 하는 거죠.”
“내가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진원의 도발적인 발언에 송현성은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당신의 아들이 내 여동생을 납치했던 것은 알고 있나?”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그리고 이어진 간단한 진원의 설명에 송현성의 표정은 점점 어둡게 물들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끝이다.’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찍은 사진들도 보여 드릴 수 있고요.”
진원이 스마트폰의 갤러리를 열어 넘겨주자, 송현성은 재빨리 받아서 사진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봤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인 동생은 없군.”
“제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입니다. 어린애라고요. 안 그래도 트라우마로 남았을 텐데, 사진까지 따로 저장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진원의 가시가 돋친 듯한 말.
그 말을 듣던 송현성은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본래 A급 정도의 플레이어만 되도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는 자신과 같은 S급. 어떻게는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신분이 없는 놈들은 우리 길드에서 어두운 쪽을 처리하는 놈들이 맞다. 그리고 거기에 송진호가 있었으니…….’
그는 마침내 진원의 말이 사실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꿇었다.
“아들을 잘못 교육시킨…… 제 잘못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키운 길드인데.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길드를 지킬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절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이 송현성이라는 인물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인 줄 알았더니…….’
송현성은 예상외로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생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평생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동생에게 남은 트라우마, 이것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면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안 되면, 기자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줘야겠죠.”
“그것이라면…… 제게 시간을 주신다면 어떻게든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
예상치 못한 송현성의 대답에 진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특정 날짜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 주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들지만, 1년…… 아니, 6개월 이내로 반드시 구하겠습니다.”
얼핏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진짜로 있었을 줄이야.
송현성이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태도를 보자, 피닉스 길드를 부숴 버리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누그러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정확하게 6개월 기다려 드리죠. 그 이후엔 얄짤 없습니다.”
“꼭 구하겠습니다.”
* * *
“허억…… 허억! 넌 누구냐!”
“흐음, 그릇이 별로였는지, 아니면 씨앗이 힘을 제대로 못 발휘했는지 잘 모르겠군요. 워낙 빨리 당해 주셔서.”
자신의 밭밑에 이상한 원이 생겼고, 그 원은 일순간 빛나더니 자신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아, 저는 뭐. 당신에게 악마의 힘을 준 사람이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요.”
“뭐라고? 크흐흐, 그러면 지금 당장 내 몸을 고쳐라! 그리고 바로 김진원을 죽이러 가겠다.”
악마 형태를 한 송진호를 보고도 눈앞의 남성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듯했다.
“죽기 싫으면 당장 내 몸을…….”
“시간이 다 지났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뭐? 그게 무슨…….”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남성은 웃으면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송진호는 놈에게 팔을 뻗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주륵- 주르륵-
자신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녹아 가고 있었으니.
“크아! 이게 도대체 뭐냐! ×발! 빨리 고쳐 달라고!”
“아무 대가도 없이 악마의 힘을 가지는 건…… 조금 양심이 없으시군요.”
“크아아아!”
시간이 지날수록 송진호의 몸은 빠르게 녹아 갔다.
“와우! 정말 아이스크림처럼 녹네요? 일부러 소환하길 잘했네. 좋은 구경도 하고.”
그의 몸이 완전히 녹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이었다.
“아직 실험 단계라 그런지 유지 시간이 짧군요. 뭐, 그래도 김진원의 힘은 확인했으니.”
보라색 액체를 쳐다보던 남성은 살짝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장소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