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씨앗-2
협회의 입구 앞에서 장년의 거한 하나가 밖을 응시하며 서성이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다.
“흐으음, 흠흠-.”
‘아, 협회장님 또 저러시네.’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은 그런 협회장의 모습을 질린다는 듯이 쳐다보고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고,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들어오자 협회장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셨습니까, 진원 씨! 허허허.”
“안녕하세요. 갑자기 연락해서 죄송하네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데, 당연히 나와야지요. 허허!”
둘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협회장실로 향했다.
“편하게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진원이 소파에 앉자, 손태욱은 능숙한 솜씨로 커피를 타고, 간단한 먹거리를 쟁반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그…… 진원 씨와 같이 있던 여성분은 같이 안 오셨습니까?”
“네. 메시아는 피곤해서 쉬는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자신의 대답에 손태욱은 아쉬운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이전에 이곳에 전병과 같은 그의 취향인 과자가 가득했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젤리나 초콜릿이 가득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진원은 바로 입을 열었다.
“혹시, 악마라는 몬스터에 대해서 아십니까?”
“악마…… 말입니까?”
“네. 피부가 보라색이고, 등 뒤에 박쥐 모양의 날개가 자라나 있습니다.”
손태욱은 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살짝 당황했지만 바로 대답했다.
“보통 악마는 A급 던전에서 자주 출몰하는 몬스터입니다. B급 던전에서도 간혹 나타나긴 합니다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놈들의 배에 백색의 커다란 날개 한 쌍이 문신 형태로 자리 잡아 있던데 이것에 대해서도 아시나요?”
“백색의 날개라…….”
후룩.
손태욱은 커피를 마시면서 진원이 한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다.
“전혀 생각나는 것이 없군요. 그런데 악마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제가 방금 전 B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는데…….”
그의 설명을 듣던 손태욱의 눈이 점점 커졌다.
“플레이어가 악마로 변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처음부터 저를 노리고 파티에 지원했던 것 같네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하군요.”
손태욱은 진원의 말에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플레이어가 악마로 변했다면, 직업의 영향일 확률이 제일 높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직업들이 많으니까요.”
“그렇죠.”
처음에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놈들의 문신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현재 진원 씨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어떻게 판단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자세하게 조사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최근에…….”
벌컥!
“할아버지이, 진원 오빠가 왔다며? 어?”
갑작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은 손태욱의 손녀, 손하윤.
“아, 죄송합니다…….”
그녀는 방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고 천천히 문을 다시 닫았다.
“후우, 최근에 대천사 길드 놈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손태욱은 손녀를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어 나갔다.
“대천사 길드?”
“네. 아무래도 현재 영향력이 가장 큰 길드이기도 하고, 폐쇄적인 집단이다 보니 협회 쪽에서 감시원으로 사람을 몇 명 붙여 둔 상태입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 듣자하니, 거대한 건물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던 길드원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건물 밖을 오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어떤 물품들은 정말 조심스럽게 취급하며 옮기기도 했다는 보고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심증이기 때문에 저희 쪽에서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젊었을 시절부터 미군의 특수부대로 복무했었던 그의 감각에는 뭔가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자신은 이러한 감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죽을 뻔했던 적이 수십 번이었으니.’
“정보를 빠르게 제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악마에 관해서도 따로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네.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띠링. 띠링.
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문자가 왔는지 알림음이 연속으로 들려왔다.
잠시 스마트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하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은식이가 준 계약금 100억. 그리고 희석된 엘릭서가 41억에 팔렸다.’
아무래도 엘릭서라는 이름값 덕분인지 플레이어끼리 상당한 경쟁이 붙은 듯했다.
‘나머지 아이템들 처분한 것까지 합치면 153억.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협회장님, 대련장을 잠시 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진원은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물론이지요. 제가 미리 예약해 놓을 테니 편하실 때 가시면 됩니다.”
손태욱은 살짝 흥분된 기색의 진원에게 호기심이 생겼지만, 아쉬워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나도 따라가고 싶구먼. 허허.’
그는 업무가 상당히 밀려 있었기에 진원이 나가자마자 책상에 쌓인 서류더미로 향했다.
* * *
“오빠, 저랑 대련 한 번만 더 해 줘요. 네? 지난번엔 살짝 방심해서 그런 거라니까요.”
“…….”
대련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손하윤이 귀신같이 따라 들어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중이다.
“아, 진짜라니까요? 저번에 뾰족이 말고 쿵쿵이를 꺼냈으면…….”
진원은 그런 손하윤을 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봐. 스킬 하나 시험할 게 있어서 그래. 이거 끝나면 해 줄게.”
“진짜요? 아싸! 이번엔 진짜 안 봐줄 거예요!”
그녀가 대련장 밖으로 빠지자, 진원은 상점을 열고 캐시샵으로 들어갔다.
띠링.
[마구 : 칼날 폭풍을 구입하시겠습니까?]
Y/N
그리고 곧바로 스킬을 구매했다.
‘새로운 마구 스킬이라.’
1레벨부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스킬, 마구. 40레벨을 넘기고서야 새로운 마구 스킬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기대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 그래도 눈앞에서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은 적응이 안 되네.’
[잔액 : 4억 3천만 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스킬부터 확인해 보았다.
[마구 : 칼날 폭풍 Lv.1]
액티브 스킬
마력이 담긴 구를 생성해 날립니다. 대상의 근처에 다다르면 전방으로 칼날을 사출합니다.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MP : 300)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1레벨인데도 불구하고, MP 소모량이 상당히 높은 스킬이었다.
‘일단 사용해 보면 알겠지.’
진원은 곧바로 전방에 있는 철제 인형들을 향해 와인드업을 하고, 마구 : 칼날폭풍을 사용했다.
“흐읍!”
기존의 마구와 똑같은 크기의 공과 색깔이었다. 잡고 던질 때의 감촉도 같았다.
하지만 철제 인형들에 가까워지자 마구에서 수많은 검은 칼날이 전방으로 사출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얼핏 보면 송곳같이 뾰족한 느낌이 드는 칼날 폭풍은 철제 인형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텅. 터엉.
인형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파손된 철제인형들은 쇳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와, 상당히 강력하네.”
대련장의 철제 인형들은 상당히 튼튼하다. 자신이 마구를 힘껏 던져 봐야, 살짝 파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칼날 폭풍은 아예 인형들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와, 진짜 장난 아니다…….”
자신이 스킬에 감탄하는 사이, 뒤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손하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입까지 벌리고 있었다. 튼튼이가 세 발은 맞혀야 구멍이 뚫리는 철제 인형이, 그가 던진 작은 공 하나에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상태 창.’
스킬의 위력을 체감한 진원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곧바로 스킬 포인트를 투자했다.
<플레이어>
이름 : 김진원
레벨 : 41
직업 : 계약 소환사
등급 : 유니크
업적 : 끈질긴 놈
칭호 : 피의 계약자
HP : 4,500
MP : 2,200
[스텟]
근력 : 60 민첩 : 60 체력 : 50 마력 : 70 지배력 : 60
미분배 포인트 : 5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상점 기능이 개방됩니다.
#모든 대미지 10퍼센트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뱀파이어 군주 메시아와 피의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스킬]
마구 : 칼날 폭풍 Lv.2
마구 Lv.10 (Max)
불굴 Lv.1
순간 가속 Lv.10(Max)
미분배 포인트 : 0
[직업 스킬]
소환의 방 Lv.2
계약 소환 : 꼬마 임프 Lv.10 (Max)
인핸스 본드 Lv.10 (Max)
계약 소환 : 꼬마 마도사 Lv.10 (Max)
[상점]
Lv.5
‘1레벨에 추가 대미지 2퍼센트라. 괜찮네.’
MP 소모량이 10씩 증가했지만, 그 정도야 별로 부담되지 않았다.
“야, 나 다 끝났으니까 올라와. 빨리 끝내게.”
진원이 고개를 돌려 손하윤을 쳐다보자, 그녀는 움찔하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아, 내가 방금 급한 약속이 생겨서…… 다음에 하자, 오빠.”
“그래? 그럼 나야 좋지만.”
그녀는 밖으로 나가면서 앞으로 진원에게 절대 대들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제 슬슬 나가 볼까.”
그 후, 약 30분간 스킬 테스트를 마치고 대련장 밖을 나서려던 진원에게 메시아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진원, 악마의 냄새가 나.]
“뭐? 악마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지난번에 만났던 놈들보다 더욱 진한 냄새야.]
“바로 그 장소로 안내해 줘!”
[알았어.]
지난번 던전에서 자신을 귀찮게 했던 악마들. 놈들은 상태가 불안정했었는데도 강했다.
그런데 그놈들보다 더욱 강한 악마가 서울에 나타났다니.
‘던전 브레이크인가? 아니면 저번처럼 플레이어가 변한 건가?’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이대로 놈을 방치해 두면, 상당한 인명 피해가 날 것이 뻔했다.
* * *
같은 시각,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공에서 보라색 피부를 띈 몬스터가 나타나 일대를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파각. 빠각.
놈은 주위를 가리지 않고 도로나 건물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힘이! 힘이 넘쳐흐른다!”
“×발! 던전 브레이크다! 도망쳐!”
“꺄아악!”
그것을 본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놈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바빴다.
놈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으며, 접었던 박쥐 날개를 펼쳤다.
“무서워해라! 빠르게 도망쳐라!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불쌍한 양들아!”
그리고 순식간에 날아올라 멀리 도망치고 있던 남성을 향해 날아갔다.
푸확!
“커억…….”
“우선 1마리.”
“꺄아아악!”
악마는 순식간에 남성의 가슴팍을 꿰뚫었고, 정장차림으로 열심히 도망치고 있던 남성은 피를 토해 내며 앞으로 허물어졌다.
근처에 도망치고 있던 여성은 그 장면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흐윽, 살려 주세요…….”
그러나 눈앞의 악마는 흐느끼는 여성을 보고,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2마리.”
“히익!”
그러나 여성을 향해 내려친 팔은, 순식간에 나타난 어떤 남성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지×하고 있네, 미친놈이.”